해외 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에 사는 잉어의 왕

Golden Mahseer 골든마시르

골든마시르를 품에 안고. 원정 마지막 날에 낚은 7kg 골든마시르를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는 필자.

2018년 8월, 쏘가리낚시 동호회 팀쏘가리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해외낚시 탐험가인 엄일석이 대뜸 물고기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평소 집에 어항을 두고 각종 대형어를 기르며 습성을 공부해온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진 속 생명체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일석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인도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강에 사는 아시아 최고의 루어낚시 대상어인 골든마시르(Golden Mahseer, :Tor putitora)였다. 그제야 나는 사진 속의 물고기가 국내 대형어 애호가들에게 ‘토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잉어목의 관상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미의 이빨고기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수족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야생 마시르의 자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몇 달 후인 2019년 1월, 일석은 골든마시르를 노리고 인도 동북부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원정을 떠났고, 비록 골든마시르를 낚았으나 목표했던 씨알을 만나지 못해 12월에 재도전을 계획하게 되었다. 어느덧 골든마시르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 나는 동행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일석의 도움을 받아 각종 장비를 마련하고 출입국 절차 등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출국 예정일인 12월 14일이 되었다.    

골든마시르 원정의 밤. 일행을 위해 현지 원정대장의 가족들이 화로에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고 있다.

캠핑사이트의 점심식사 시간. 현지 빵인 '난'을 굽고 있다.

여울 상목에서 스푼을 흘리며 골든마시르의 입질을 노리고 있는 가이드 쉔.

5분여 파이팅 끝에 1m가 넘는 대형 골든마시르를 낚은 필자.

이번 원정을 위해 루어 제작자 이진호 씨를 통해 특별 제작한 대형 스피너. 표층의 루어에 관심을 보이는 초콜릿마시르에 효과적이었다.

전형적인 골든마시르 포인트. 여울이 시작되기 직전 물 흐름이 느려지는 구간에서 많은 입질을 받았다.

이번  원정에서 주력 루어로 사용한 60g 스푼. 대형 골든마시르가 머무는 강바닥을 공략하는 데 효과적이다.

강기슭에 난 야생 동물의 발자국. 발톱 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표범이 분명하다.

사진 속 물고기에 압도되다
14일 오후 3시에 인천공항에서 시작된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와 일석은 방콕과 콜카타를 거쳐 아삼주 디부르가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하루 장거리 비행을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경유지인 콜카타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출신의 동행인들인 '쉔'과 '차이'와 합류하여 잠시 노숙을 하는 동안에는 모기들에게 줄기차게 뜯겨 온몸을 박박 긁었다. 디부르가에 당도한 후에는 현지 조력자들과 합류하여 곧장 히말라야를 향해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도심에서 일어난 큰 시위 때문에 주 정부가 통행금지령을 내려 디부르가 시내에서 예기치 않게 발이 묶여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인근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황금 같은 하루를 허비하게 되었으나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16일 아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이동이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자동차, 그리고 소와 돼지와 염소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도로를 3시간 정도 달려 히말라야의 초입에 도달했다. 길이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험한 산비탈 위로 아슬아슬한 오프로드가 시작되었으나 얼마 못 가 산사태에 유실된 도로의 복구를 기다리느라 몇 시간을 더 지체했다. 길이 뚫리자마자 재개된 곡예운전은 날이 저물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석양녘에 가까스로 도달한 파시갓이라는 마을에서 우리는 드디어 원정대장 ‘니노’를 만나 그의 사촌들이 사는 히말라야식 대나무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집 한가운데 화롯가에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과 술로 주린 배를 채웠다. 쌀로 빚은 전통 술은 막걸리와 굉장히 흡사했는데, 정신없이  들이켜는 내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할머니들이 4통이나 더 내어주었다.

히말라야에 이르는 고난의 여정
17일 새벽 4시, 일어나자마자 차에 몸을 실었다. 해가 지기 전에 캠프사이트에 도착해야 했다. 이동 중 어느 촌락에서 인도식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3시간을 더 달린 끝에 드디어 히말라야 중턱 수반시리 강 상류에 도착했다. 깊은 계곡 사이로 힘차게 뻗어 나가는 강의 웅장한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 마침내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에 고무보트를 띄우고 각종 물자를 실어 래프팅을 시작하자 거대한 산과 절벽 등 다채로운 풍경이 우릴 반겨줬다. 이 아름다운 경관이 몇 년 후 수반시리 하류 댐의 완공으로 모두 유실될 것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곳에서의 낚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각성하자 불끈 힘이 솟았다.
오후 4시, 오랜 노질 끝에 도착한 모래강변에 야영지를 구축한 후에야 비로소 첫 캐스팅을 할 수 있었다. 쏘가리낚시만 해왔던 나에게는 원정을 위해 특별히 장만한 부시리용 로드로 60g의 육중한 스푼을 캐스팅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동작을 숙달하는 동안 해가 지는가 싶었는데, 하류 여울을 공략하던 일석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가이드 쉔이 팬티바람으로 텐트 밖으로 뛰쳐나와 일석을 도왔다. 그러나 대물 낚시 경험이 많은 일석조차도 엄청난 무게와 속도로 합사 3호줄을 연신 끌고 달려가는 물속 존재에게 속수무책이었다. 급류에 다다른 녀석은 물살을 타고 더욱 맹렬한 기세로 하류로 질주했고, 일석은 라인이 다 방출될까 봐 괴어를 뒤쫓아 허둥지둥 뛰어 내려갔다. 그런데 하필 낚싯줄이 수몰나무에 감겨버리고 말았다. 일석은 배를 띄워 줄이 감긴 반대 방향으로 건너가 줄다리기를 계속했으나, 이미 수몰나무에 손상된 낚싯줄은 곧 허무하게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의 얼굴엔 허탈감이 가득했다. 옆에서 그 긴박한 상황을 지켜본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골든마시르의 괴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게 놈이 왔을 때 과연 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을 느꼈다.

과연 내가 골든마시르를 끌어낼 수 있을까?
낚시 2일차인 18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전날 일석이 고기를 놓친 여울 상목으로 향했다. 급류를 이루기 전 유속이 완만한 그 구간은 큰 물고기가 쉬어가기 좋은 곳처럼 보였다. 자연스레 그곳에 캐스팅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캐스팅은 아직 다른 이들에 비해 서툴렀고, 원하는 지점인 물골 건너편에 스푼을 던져 넣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쉔과 일석의 조언을 듣고 동작을 교정하자 비거리가 점점 향상되었다.
캐스팅에 몰두하던 중 아침 해가 산 위로 솟아올라 내가 집중공략하고 있던 구간의 수면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바로 그 순간, 나풀거리며 가라앉던 스푼을 무언가 낚아채 갔다. 순간 릴에서 드랙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났다. 나는 로드를 세우기는커녕 붙들고 있기조차도 벅찼다. 괴생명체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하류로 내달리는 1분여 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두서없이 뒤죽박죽 떠올랐고, 릴에 감아놓은 200m 합사 3호 줄은 고작 몇 미터만 남긴 채 모두 풀려버리고 말았다.
다급해진 나는 급기야 스풀을 움켜쥐고 녀석의 질주를 막아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매듭이 힘없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본 쉔은 고기를 놓친 것은 내가 미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녀석이 워낙 대물인 까닭이라며 위로해주었지만 큰 위안이 되진 못했다. 그날 밤 야영지에 돌아온 나는 마음이 무거워 거의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녀석의 질주 앞에 터져 버린 낚싯줄
19일 오전,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으로 오전 낚시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오후에 다음 캠프사이트로 옮겨 낚시를 재개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고기가 나오지 않자 가이드 쉔이 몸소 탐색을 나가선 9kg급 골든마시르를 낚아 일행을 고무시키기도 했지만, 딱히 성과가 없는 원정대원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날 밤 우리는 불가에 둘러앉아 실패의 요인을 분석했다. 상류에 내린 비로 탁해진 물색, 강풍, 낮은 수온 등 많은 원인들을 찾았으나 향후 낚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궁색한 변명거리들만 늘어놓는 것 같아 기분이 더 언짢아졌다.
어느덧 낚시 일정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골든마시르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행여 요행으로 입질을 한 번 더 받는다 하더라도 부시리용 낚싯대로 무장한 나를 한낱 장난감 병정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괴력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저 '세계의 천장' 히말라야에 와서 낚시를 한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이미 반쯤은 포기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애써 잠을 청했다. 

블랙마시르를 낚다 
20일 아침이 밝았다. 전날 쉔이 근처에서 마시르의 존재를 확인했으므로 이동 대신 그 장소를 하루 더 공략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새벽같이 포인트에 자리 잡고 낚시를 시작했기에 입질 예상 시간인 일출 무렵까지 여유가 있었다. 여울 상목 너럭바위 위에 자리를 잡은 나는 상류를 향해 스푼과 스피너를 던져 바닥 근처까지 가라앉힌 후 릴링으로 유영층을 유지해주며 입질을 기다리는, 쏘가리 낚시의 ‘흘림낚시’와 유사한 패턴으로 계속 공략을 이어나갔다.
수중 지형을 파악하고 나니 해가 수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천천히 릴링을 하며 스피너의 블레이드가 팔랑팔랑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느끼고 있는데, 별안간 묵직함이 전해졌다. 드랙을 차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로드 팁이 산발적으로 휘청거리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무언가가 걸렸음이 틀림없었다. 큰 저항 없이 딸려 나온 것은 길이 60cm에 무게 2kg 정도 되는 골든마시르였는데, 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어두운 체색을 띠고 있었다. 한걸음에 달려온 일석은 그것이 상당히 희귀한 변이종인 블랙마시르라며 기뻐했다. 나는 마침내 무언가를 잡아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21일은 공식적인 낚시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원정대원들은 그날까지 아무것도 잡지 못했기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비장한 각오로 채비를 했다. 그러나 전날 만난 마시르로 인해 마음이 느슨해진 나는 오전에 푹 쉬고 오후부터 낚시를 하겠노라고 전했다. 그렇게 혼자 캠프사이트에 남아 간밤에 타다 남은 장작불 앞에서 몸을 데우다 보니 내가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낚싯대를 집어 들고 포인트로 향했다. 어제 블랙마시르를 낚았던 곳에 도착해보니 일석은 이미 열심히 캐스팅 중이었다.
나도 근처에 자리를 잡고 무한 캐스팅에 돌입했다. 7시 반이 되자 해가 산 위로 떠올라 강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때 일석이 “Fish on!”을 외쳤지만, 격하게 휘어지던 그의 로드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고기가 먹이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더욱 날을 세웠다.
햇빛이 집중적으로 내리쬐는 강 건너편을 노리기 위해선 상당한 비거리가 필요했다. 아직 캐스팅에 서툰 나는 10번을 던져야 겨우 한 번 핀포인트에 루어를 착수시킬 수 있었다. 30분쯤 계속 던졌을까, 원하던 위치에 스푼이 보기 좋게 떨어졌다. 온 신경을 집중해 바닥을 읽었다. 스푼이 물살을 타고 하류에서 캐스팅 중이던 일석의 정면을 지나는 순간, 무언가가 스푼을 거세게 때리고 돌아서는 듯한 입질이 느껴졌다. 침착하게 훅킹을 한 후 로드를 번쩍 세웠다.

1년만의 재도전 끝에 대형 골든마시르를 낚는데 성공한 해외낚시 여행가 엄일석 군.

엄일석 군이 바늘에 걸린 대형 골든마시르가 급류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출신 낚시인 차이가 깊은 소를 공략하고 있는 있다.

골든마시르를 낚은 필자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일행들.

“골든마시르!”
물속의 녀석이 질주를 시작했으나 10초 정도 지나자 움직임이 둔해지는 듯했다. 전에 놓친 괴물과는 달리 이 정도면 끄집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쪽에서부터 달려온 일석이 "펌핑!" 외쳤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즉시 반사적으로 펌핑을 시작했다. 녀석이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이미 급류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까지 녀석을 끌어낸 나는 침착하게 릴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금빛 광채가 연안을 가득 메웠다.
“골든마시르!”
일석과 쉔이 동시에 소리쳤다. 인기척을 느낀 녀석이 몇 차례 더 강심을 향해 달음박질했으나 두 친구의 도움으로 여유롭게 랜딩을 성공시켰다. 우리는 모두 부둥켜안고 환희를 만끽했다. 무게를 재보니 11kg, 길이는 1미터가 넘었다. 직접 마주한 골든마시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아드레날린을 뿜어대는 내 몸은 찢어질 듯한 근육통을 이미 잊었고, 나는 그 큰 고기를 번쩍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후 녀석에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준 후 강으로 돌려보냈다. 일석은 릴리즈 후 돌아서는 나에게 "아침에 네가 쉬겠다고 했을 때 핀잔을 주려다가, 가만 내버려 두면 알아서 낚시하러 올 줄 알았기에 그냥 뒀다"고 웃으며 말했다.

미터오버 골든마시르 낚고 환호
그렇게 성공적인 오전 낚시를 마치고 다음 캠프사이트로 이동하던 중 우리는 적당한 유속과 멋진 물골을 가진 훌륭한 포인트를 발견했다. 긴장이 풀리자 뒤늦게 피로와 통증이 찾아와 도저히 낚시를 할 수 없었던 나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위 절벽 너머에서 “Fish! Fish!” 차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쉔이 정신없이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일석이 크게 휘어진 로드를 붙잡고 한창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일석은 내 것과 같은 크기인 11kg의 멋진 골든마시르를 능숙하게 랜딩해냈다. 일석이 고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후 우렁차게 포효하는 순간, 우리는 해냈다는 기쁨에 서로 얼싸안았다. 일석의 아시아·태평양 원정낚시 버킷리스트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이제 우리는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낚시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차이가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다급해진 차이는 포인트를 향해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캐스팅을 하는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다. 일행 모두가 마시르를 낚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좋은 포인트를 차이에게 양보했지만, 그에겐 계속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날 오후, 캠프사이트에 도착한 일석과 내가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동안 차이는 포기하지 않고 홀로 다음 포인트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 진흙 범벅이 되어 돌아온 그는 해맑은 미소로 5kg에 달하는 골든마시르를 낚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제 됐다!' 그렇게 우리는 일정의 마지막 밤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었다. 차이는 그동안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던 맥주를 한 캔 깔 정도로 기뻐했다.

버킷리스트의 마침표를 찍다 
다음날, 지체 없이 디부르가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첫날 도심 시위로 인해 하루를 허비한 우리를 위해 니노는 래프팅으로 내려가는 중간 중간 좋은 포인트가 나타날 때마다 낚시를 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마침 날씨도 화창하고 물까지 맑아져 낚시하기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지난 며칠간의 낚시 경험을 통해 상당한 지식을 축적한 일석과 나는 골든마시르를 더 낚을 자신이 있었다.
노질을 하던 중 캠프사이트 인근에서 그림 같은 여울 상목을 발견한 우리는 잠시 배에서 내려 스푼을 날려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상했던 대로 나는 7kg, 일석은 11kg의 훌륭한 골든마시르를 낚을 수 있었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우리는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은 후 철수 접선 지역인 수반시리댐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이제 이 멋진 자연을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자 착잡해졌다. 더 많은 풍경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모든 일정이 끝나가는 그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도와준 원정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와 일석은 “운이 나쁜 와중에 운이 좋았다”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몇 차례 급류를 지나며 즐겁게 래프팅 동영상을 찍고 풍경들과 함께 추억도 카메라에 담으며 하류로 나아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반시리 강의 마지막 모습은 웅장한 기암절벽이 아닌 황량한 댐 건설 현장이었다.
얼마 전 골든마시르가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적색목록에서 위기종으로 승격되었다. 댐의 완공과 함께 얼마 없는 그들의 서식지 중 하나가 완전히 파괴될 것이란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골든마시르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찬란한 금빛 광채는 내 기억 속에서 오래토록 빛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래도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