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석조, 침묵의 종지부를 찍다
옛 명성 그대로 씨알은 전국 톱클래스
김진현 기자
▲ 몽실여 안통에 내린 김정기씨가 오전 초들물에 낚은 조과를 보여주고 있다. 54~56cm 세 마리와 45cm가 넘는 한 마리를 낚았다.
거문도가 마침내 돌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낱마리 반짝 조황이 아니다.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호황무드가 형성되고 있다. 거문도 돌돔의 경쟁력은 씨알. 낚이는 평균 사이즈가 50cm를 웃돈다. 돌돔파이터 조운용 부회장이 거문도의 돌돔 호황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 8월 14일 서도 남동쪽 몽실여에 혼자 내려 50cm가 넘는 돌돔을 4마리 낚았다. 몽실여 주변 무지개통, 배치바위, 삼백냥도 대형 돌돔이 많이 붙은 것 같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거문도의 낭보인가! 마침 돌돔의 산란이 끝나갈 무렵이라 덕우도, 황제도, 광도, 평도 등 남해 중서부의 근거리 돌돔포인트 조황이 시들해졌기 때문에 거문도의 소식은 더 솔깃했다. 하지만 그 소식만 듣고 거문도 취재를 결정하기에는 개운치 않았다.
사실 거문도는 지난 1~2년간 낚시인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았다. ‘현지의 낚싯배 요금이 너무 비싸다’ ‘불친절하다’ ‘다이버들이 난입해 고기를 싹쓸이해간다’ 등의 부정적 인식이 낚시인들 사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데다 결정적으로 삼부도를 비롯해 광도, 평도, 손죽열도의 조황이 계속 좋았기 때문에 “굳이 출조비가 비싼 거문도로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 몽실여 안통에서 김정기씨가 돌돔을 뽑아내고 있다. 초들물에 전방 50m의 물골을 노렸다.
20년 동안 거문도를 다녔다는 조운용씨는 “지금 거문도에서 돌돔이 많이 낚이지만 동호회 회원들도 거문도행을 꺼려 동행하자고 권유하기 껄끄럽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에서 거문도 돌돔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만큼 호황의 확률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결국 가거도와 거문도를 놓고 저울질하다 거문도로 최종 결론을 내린 이유는 포인트 경쟁이 없고 조운용씨가 “거문도만큼 돌돔 씨알이 크고 손맛이 좋은 낚시터는 없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숨통을 죄는 돌돔의 맹공
8월 28일, 돌돔파이터 한규송, 조운용, 김정기, 신보균씨로 팀을 이뤄 거문도 취재에 나섰다. 하루 전에 낚싯배를 수소문해 봤으나 대부분 갈치 배낚시에 나섰고 남은 배들은 삼부도, 평도, 광도행이어서 녹동항에서 거문도행 여객선을 탔다. 여수에서 출항하는 객선보다 소요시간도 1시간10분으로 짧고 요금도 2만 4000원으로 쌌다.
거문도에 도착하니 오전 9시. 곧장 거문도 현지 낚싯배인 엘지호로 갈아타고 몽실여로 향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거문도로 들어왔지만 낚시인이라고는 김해에서 온 서한수씨 뿐이었다. 그도 여수에서 낚싯배가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우리가 가지고 들어올 보라성게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서한수씨가 무지개통에 내렸고 김정기씨가 몽실여 안통에 내렸다. 나와 조운용씨가 바로 옆 몽실여에 내렸고 한규송, 신보균씨는 거문도 등대 아래에 있는 배치바위에 내렸다. 조운용씨는 “서도 남쪽 일대는 전복 종패를 뿌리기 때문에 다이버 출입을 엄격히 막고 있어요. 이곳 몽실여 일대는 포인트 전방 30~50m에 있는 물골이 포인트로 그 골을 따라 돌돔이 이동하죠. 보통 들물에 조류가 서서히 흐를 때 지나가며 조류가 너무 세거나 멈추면 입질이 없습니다.”하고 말했다.
채비를 마치고 갯바위에 걸터앉으니 10시쯤 되었다. 전방 물골을 겨냥한 캐스팅 거리는 약 50~50m. 썰물이 끝나고 30분이 지나자 들물이 서서히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운용씨는 “초들물에 조류가 서서히 밀고 들어올 때 좋다”며 “긴장하라”고 했다.
▲ 8월 들어 30~40cm 돌돔이 여러 마리 낚인 무지개통.
입질은 몽실여 안통에 내린 김정기씨가 먼저 받았다. 순식간에 휘어진 낚싯대를 부여잡고 버티는 모습이 한눈에도 대물 같아 보였다. 망원렌즈로 들여다보니 빨래판만한 돌돔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김정기씨가 돌돔을 꿰미에 꿰고 있는데 그의 나머지 낚싯대가 출렁출렁 요동을 치고 있었다. 조운용씨가 “입질했다”며 고함을 지르자 김정기씨도 출렁이는 낚싯대를 보고선 돌돔이 확실히 바늘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먼저 건진 돌돔을 꿰미에 꿴 후에 낚싯대를 낚아챘다. 수면을 뚫고 나온 녀석은 역시 빨래판만한 숫돌돔. 그는 삽시간에 5짜 두 마리를 뽑아내고 우리를 향해 돌돔을 치켜들어 보였다.
‘5짜 두 마리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김정기씨는 30분 만에 5짜 한 마리와 45cm 한 마리를 더 낚아냈고 한 마리를 끌어내다 떨어뜨려 버렸다. 반면 얄밉게도 몽실여에선 단 한 번의 입질도 받을 수 없었다. 조운용씨는 “조류의 세기에 따라 입질이 들어오는 자리가 달라진다. 들물에 몽실여 뒤쪽에서 밀려오는 조류가 세면 조류는 몽실여 안통에 먼저 받히고 꺾여 나가버리기 때문에 몽실여로 조류가 들어오지 않는다. 반대로 조류가 약하면 몽실여가 좋고 안통에선 밑걸림이 생기기 시작한다”며 “썰물엔 어차피 입질이 없으니 오후 들물을 노리자”고 했다.
▲ “거문도가 제대로 이름값을 했습니다.” 몽실여 일대에서 거둔 이틀간의 조과를 보여주는 돌돔파이터 김정기, 조운용, 한규송, 신보균씨(좌측부터).
“10월 전후가 피크, 전면적 호황 기대”
썰물엔 입질이 전혀 없었다. 심심풀이로 던진 에기엔 무늬오징어가 끝없이 낚였다. 그마저도 지루할 정도. “썰물포인트로 이동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으니 “썰물에 노릴만한 곳은 서도 북쪽이라 갔다가 다시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차라리 여기서 물때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오후 들물. 그러나 조류가 생각보다 거세게 흘렀다. 틀렸구나 싶어 포기하고 있는데 조류가 서서히 죽는가 싶더니 조운용씨의 낚싯대에 입질이 왔다. 단번에 낚아채 끌어내니 45cm 정도 되는 돌돔. 그 후 연속으로 입질이 왔다. 바늘을 빼기도 전에 나머지 한 대가 사정없이 고꾸라졌다. 낚싯대를 거머쥔 조운용씨는 “대물이다”하고 소리쳤다. 몇 번의 릴링과 펌핑… 끌려오던 돌돔은 일순간 엄청난 괴력을 뿜어내더니 어딘가로 처박아 버리고 말았다. 거의 다 끌어낸 놈이라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일단 낚싯대를 받침대에 꽂아두고 다른 낚싯대에 얼른 성게를 꿰어 던졌다. 채비가 바닥에 안착되는가 싶더니 다시 입질이 왔다. 소나기 입질이다. 지켜보는 내가 목이 다 타들어 갔다. 그때 전혀 엉뚱한 방향에 던져두었던 내 낚싯대에도 입질이 왔다. 게다가 돌돔이 처박혀 그냥 꽂아둔 낚싯대마저 다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일이 정확히 1분 안에 전개됐다. 조운용씨가 캐스팅 직후 입질 받은 돌돔은 끌려나오다 떨어져버렸다. 곧바로 꽂아둔 낚싯대를 쥐고 낚아채자 원줄이 터져버렸다. 내 낚싯대엔 25cm 뺀찌 한 마리가 달려 나왔다. 돌돔의 불같은 속공에 조운용씨와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조류가 다시 강해지더니 더 이상 입질은 오지 않았다.
철수 때 조과를 확인하니 배치바위에 내린 한규송, 신보균씨는 60cm 혹돔과 40cm 돌돔을 낚아왔다. 한규송씨가 “신보균씨가 빨래판만한 돌돔을 두 마리나 코앞에서 놓쳐버렸다”고 일러바친다. 무지개통에 내린 서한수씨는 “큰 놈은 아니지만 돌돔 두 마리를 낚았는데 살림망 밑이 찢어져서 모두 놓쳐버렸다”고 했다.
▲ “좌측에 낚시인이 캐스팅 하는 자리가 몽실여, 우측 곶부리가 몽실여 안통이다. 서도 남동쪽 끝에 있다.
다음날엔 태풍이 북상하면서 오전부터 너울이 심하게 일기 시작했다. 서도 북쪽의 녹생이로 가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정기씨는 삼백냥과 몽실여를 오가며 40cm가 넘는 돌돔을 두 마리 낚아냈고 신보균씨도 몽실여 안통에서 40cm급 돌돔을 한 마리 낚아냈다. 배치바위엔 여수 낚시인이 들어가 5짜 돌돔을 두 마리 낚아왔다.
이틀 동안 서도 남쪽만 돌아본 결과 엄청난 양의 돌돔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더 확인하고 싶어도 낚시인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돌돔파이터 회원들은 “거문도는 10월 전후가 피크다. 그때 돌돔의 활성도가 제일 좋다. 서도 북쪽의 제립여, 녹생이, 안간여 등 최근 일이년 손이 안탄 자리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가을 돌돔 조황이 너무나 기대된다”고 말했다.
취재협조 돌돔파이터 cafe.daum.net/doldomfighter
출조문의 거문도 엘지호 017-615-0087
▲ 엘지호 박철광 선장의 민박집에서 돌돔회 파티가 벌어졌다.
▲ 돌돔회와 껍질 데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