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현장]

섬진강과 보성강

남도 쏘가리 하이파이브

조홍식 「루어낚시 100문 1000답」 저자

▲섬진강의 아침.

어둠에서 자줏빛으로 다시 푸르게 변화하는 하늘과 강물 속에 이병철 시인이 물들어 있었다.

▲이병철 시인이 석곡 보성강에서 낚은 45cm 쏘가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필자가 곡성 섬진강에서 낚은 쏘가리.

짧은 시간이지만 연속으로 비슷한 씨알을 계속 낚을 수 있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강계의 수온이 늦게 오르는지, 이미 들려 왔어야 할 남도의 쏘가리 조과 소식이 영 들리지 않았다. 본지에 에세이를 연재 중인 시인 이병철 씨가 4월 첫 주부터 섬진강에 다녀오더니 조과가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실은 지난 겨울에 병철 씨와 미리 약속해둔 섬진강 쏘가리낚시 동행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금어기가 시작되기 딱 1주일 전으로 일정을 잡길 잘했던 것 같았다.

정한 날이 하루 이틀 다가오면서 수십 년 반복해서 가는 낚시이건만 출조 전 ‘낚시꾼의 기대’는 세월이 가도 전혀 삭지 않는 터라 조금이라도 수온이 오르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섬진강은 5년 전부터 전혀 발걸음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이유야 여럿 댈 수 있겠지만, 멀다는 것보다 동행자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걸지도 몰랐다. 젊은 앵글러에게 동행을 권유받으니 참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올해 들어 개인적으로 조과가 신통치 않았다. 특별히 개시하지 못했다는 심정이었는데, 관탈도 부시리 지깅은 제주 도착하자마자 기상악화로 취소되었고 얼마 전 산천어 계류낚시도 겨우 2마리 만나보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남도로 향하는 발길이 구름을 밟듯 가벼웠나 보았다. 거기에다 이번에 가는 장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중상류 포인트, 소풍 전날 마음이 들뜬 어린이로 돌아가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곡성 섬진강에서 거둔 쏘가리 조과.

▲석곡 보성강.

이병철 시인이 웨이딩 중이다.

▲이병철 시인은 요리 솜씨도 뽐냈다.

낚은 쏘가리로 회를 뜨고 껍질은 데치고, 시골장에서 사 온 두릅으로 봄 향기를 더했다.

젊은 앵글러, 이병철 시인

지난 4월 12일, 밤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남 곡성읍 신기리 섬진강 연안. 막 해가 뜨는 강변에서 웨이더로 갈아입고 여울의 끝에 살짝 입수했다. 조금 떨어져서 병철 씨는 이미 루어를 캐스팅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 강과 바다를 누비는 이 시인의 굳은 의지와 강철 체력이 부러웠다. 나도 분명 저러했으나, 나름의 낚시를 다녔지만, 그때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에 절반에도 못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둠이 자줏빛으로 물들어 다시 파랗게 변해가는 하늘과 강물에 하나 되어 있는 병철 씨를 보니 그의 시와 작품이 저기에 있나 보다 생각되었다.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고 사방이 밝아지고 나서 병철 씨가 작은 쏘가리를 한 마리 낚아 올렸다. 금색 미노우를 물고 나온 섬진강 쏘가리와 인사를 하고 나도 루어를 금색으로 교체했다. 여울 끝에서 이어지는 물골이 있는데 루어가 이 물골로 들어오면 쏘가리가 달려들어 입질하는 느낌이었다. 곧바로 입질이 왔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루어를 물었다 놓아버리는 쏘가리가 언뜻 보였다. 또 한 번 입질, 끌려오던 쏘가리가 또 떨어졌다. “아이구~”하는 탄식을 나도 모르게 지르고 말았다. 사용하는 루어는 꽤 오래전에 세일로 구매한 국산 소형 싱킹 미노우인데, 이게 좀 자꾸만 낚싯줄이 바늘에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트레블훅을 떼고 더블훅으로 바꿔 튜닝을 한 상태였다. 오늘의 쏘가리는 미노우 몸통을 물어 앞바늘에 걸리는 것 같은데, 바꿔 달아놓은 더블훅이 몸통에 밀착되어 있다 보니 헛챔질이 되고 마는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 한 마리 30cm가 조금 넘는 쏘가리를 낚았다. 이유를 댄다면, 마침 뒤쪽 바늘을 물어 무사히 랜딩할 수 있었다고 할까. 바로 두 번째 입질, 쿡쿡거리는 쏘가리 특유의 저항이 의외로 세서 드랙도 차고 나갔다. 이윽고 무사히 랜딩을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꺼내자마자 떨어져 버리는 게 앞바늘에 설 걸려 있던 게 분명했다.

▲영화 ‘곡성’의 촬영지이기도 한 곡성 읍내의 메타세콰이어 길.

▲뒤늦게 합류한 내쇼날보이 장정민 사장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에서.

좌로부터 필자, 내쇼날보이 장정민 사장, 이병철 시인.

하늘과 강물에 하나가 되어

병철 씨가 이어서 낚은 쏘가리는 당당한 크기로 40cm에 육박했다. 사진을 찍으며 살펴보니 역시 앞바늘을 물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른 미노우를 사용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를 살짝 했지만, 어쩔 수도 없는 게 내 태클박스에는 신통한 싱킹 루어가 몇 개 없고 빨리 써버리자고 생각한 그 루어, 바늘을 튜닝한 그 미노우만 줄지어 들어있었다.

어느새 해는 중천, 초여름 날씨처럼 더위를 느낄 정도였다. 잠시 낚시를 쉬고 영화 ‘곡성’의 무대가 된 곡성 읍내 메타세콰이어 길을 달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밤을 새워 이동한 관계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른 아침 1시간여에만 우당탕 쏘가리가 연속으로 낚였기에 그 장소를 오후에도 다시 찾았다. 어둑해지는 시간이 되자 다시 입질은 참 많이 받았는데, 또 몇 마리나 떨어뜨리고 말았다.

정말 면목이 없는 시간, 그래서 놓칠 때마다 루어와 바늘 탓, 자기합리화를 하고 말았다.

이튿날은 느지막이 움직여서 곡성을 떠나 석곡으로 이동, 보성강을 찾았다. 그곳은 석곡면 당동리 연안. 섬진강과 달리 조금 탁한 물색의 보성강으로 조금 깊게 엉덩이에 꾸욱 하는 수압을 느끼며 웨이딩을 시작했다. 전날과 달리 딱 2개 가져온 바늘이 제대로 달린 미노우를 캐스팅하자마자 낚싯대가 휘고 드랙이 ‘짜르르륵’ 풀려나갔다. 지나가던 잉어의 등을 훌친 모양이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몇 초가 지나고 회수한 루어를 살펴보니 바늘이 하나 부러져 있었다. 어떻든 또 바늘은 더블훅이 되어 있었다. 루어를 점검하다 보니 내 앞으로 잠수함같은 잉어가 스르륵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루어가 등지느러미에 걸렸었다는 것도 모르는 듯 유유히 사라져 갔다.

▲남도 식도락을 즐기다.

특대형 노계로 만든 촌닭 백숙.

45cm 쏘가리와 함께 들려온 환호성

건너편 연안은 얕지만, 그곳에 쏘가리가 있다는 병철 씨의 어드바이스를 듣고 상류로 비스듬히 캐스팅하고 강 중간의 바위를 통과시키는데 강한 입질이 들어왔다. 처박는 게 쏘가리가 분명했다. 연안으로 끌고 가기엔 험한 강바닥 때문에 무리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살살 달래서 띄우고 피시그립으로 아래턱을 붙잡았다. 얼마 만에 느끼는 희열인가?

어제 낚은 쏘가리에 비해 확실히 컸다. 계측해보니 37cm. 대물은 아니지만, 멀리 남도의 청정지역에서 오랜만에 낚는 큼직한 쏘가리보다더 기쁜 일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혼자만 낚았다는 미안함에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병철 씨의 함성이 들렸고 서둘러 다가가 보니 대물 쏘가리가 이미 뜰채에 담겨 있었다. 적당히 재어 보아도 45cm가 되는 대물이었다. 이어지는 세리모니와 사진 촬영, 병철 씨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침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던 시커먼 구름이 우리 위로 다가와 있었고 우리의 열렬한 흥분을 눌러주듯 차가운 비로 식혀주기 시작했다. 냉정해야 할 시간, 철수하기로 했다. 어제는 대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더니 이틀째인 오늘은 강풍에 비가 내리고 밤에는 기온이 2도까지 떨어진다는 일기예보, 도로 겨울이 되고 있었다.

따뜻했던 오늘까지 그 기간에 기막히게 맞춰 쏘가리를 낚았으니 금년 쏘가리낚시 운은 다 사용한 거로 쳐도 될 것 같았다. 썰렁해진 공기에 비를 맞으며 웨이더를 벗고 어제와 오늘의 낚시를 갈무리, 어떤 낚시를 하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대하고 계획한 그대로 낚시가 성공적일 수는 참 어려운 일이다.

“박사님~”하며 나를 부르는 병철 씨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짝!” 그 하이파이브는 모든 걸 함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