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주 조천~구좌 갯바위 에깅터

모래밭인줄 알았는데 무늬오징어 소굴이었네

김진현 기자 kjh@darakwon.co.kr

▲ 제주 조천읍 북촌포구 일대 전경.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서우봉이며 가운데 방파제가 있는 곳이 북촌포구다.

제주도에서 유명한 에깅터를 꼽으라면? 아마도 비양도나 제주시의 애월, 하귀, 서귀포시의 대정, 사계 등지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시에 있는 조천읍이나 구좌읍이 에깅터로 유명하다고 한다면 제주도 현지인이 아닌 이상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제주시 조천~구좌읍은 제주도 북동쪽에 있는 작은 촌이다. 여느 제주의 마을과는 다르게 어업이나 고랭지 채소 농사가 아닌 당근 농사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도 잘 찾지 않는 제주도에서도 시골에 속한다.

지난 10여 년간 제주도 전역에서 에깅 열풍이 불었지만 이곳은 잡지나 방송에 소개된 적이 거의 없다. 단지 시골이라서 조용했던 게 아니라 포인트 여건이나 위치 모두 에깅터로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성지도로 조천~구좌읍의 지형을 보면 그 일대 연안은 바닥이 대부분 모래다. 제주시 함덕해수욕장과 이어진 서우봉을 지나 성산포 방향으로 이동하면 수심 1~2m의 얕은 갯바위가 나타난다. 심지어 갯바위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갯바위와 모래바닥이 듬성듬성 나타나고 썰물에는 바닥이 드러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누가 봐도 에깅 낚시터로 선호하지 않을 법하다. 그런데 그런 곳이 생각지도 못한 천혜의 무늬오징어 낚시터라니.... 취재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멀쩡한 하늘에 윈드시어 경보

지난 8월 29일, 제주도에 살며 라팔라 필드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보성 씨, 제주도로 에깅 원정 출조를 온 김병철(다이와 솔트루어 필드스탭) 씨와 함께 조천읍 북촌마을로 에깅 취재를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멀쩡했던 날씨가 갑자기 바뀌면서 제주도에 윈드시어(Wind shear 급변풍) 경보가 발효된 것이다. 윈드시어란 바람 방향이나 세기가 갑자기 바뀌는 현상으로 비행기 이착륙에 상당히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행기 결항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주, 부산 등 남부지방에 뇌우 특보까지 내려 전국의 비행기가 이착륙을 못하고 회항이나 결항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갑갑한 것은 정작 서울 김포나 제주의 하늘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것.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며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 오후 4시에 제주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제주시에서 렌터카를 인수 후 곧바로 조천읍 북촌마을로 달려가니 해거름에 맞춰 포인트로 나온 공보성 씨와 김병철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공보성 씨가 취재지로 꼽은 곳은 북촌포구 바로 옆에 있는 수산공장 앞 정자 포인트. 초들물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으나 한눈에도 수심이 얕아 보였다. “이런 곳에서 에깅이 가능합니까?”라고 물으니 공보성 씨가 “한 번도 꽝을 친 곳이 없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려도와 본섬 사이에 거대한 잘피밭이

▲ 북촌포구 앞에 있는 다려도. 이 일대에 거대한 잘피밭이 있어서 무늬오징어가 잘 낚인다.

1m 가라앉는데 8초 정도 걸리는 슈퍼 섈로우 타입의 에기로 채비하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최대한 멀리 캐스팅해도 에기가 바닥에 닿기까지 불과 15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은 에기를 멀리 캐스팅해도 이 주변 수심이 2m 이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조류는 제법 잘 흘러갔다. 그러다가 에기가 금방 바닥에 걸리기 일쑤였다. 내가 낚시하는 모습을 본 공보성 씨는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에 있는 섬이 다려도입니다. 본섬과 다려도 사이에 물골이 형성되어 있으며 다려도 주변이 거대한 잘피밭이라 무늬오징어가 아주 많습니다. 밑걸림을 잘 피해서 낚시하면 손맛 보기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김병철 씨가 입질을 받았다. 에기에 빠른 액션을 주어 700g급 무늬오징어를 올렸다. 연이어 공보성 씨가 히트! 1kg에 가까운 씨알 좋은 무늬오징어로 손맛을 보았다. 그 후 망설이지 않고 포인트를 이동했다. 공보성 씨는 “요즘은 해질녘에 한두 마리가 반짝 낚였다가 입질이 끊어지기 일쑤입니다. 한자리에서 밤새도록 낚시를 하거나 한두 마리를 낚으면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나은 조과를 거두는 비결입니다”라고 말했다.

▲ 북촌포구에서 킬로급 무늬오징어를 낚은 공보성 씨. 라팔라 필드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구좌읍 세화리에 살며 주변 에깅 포인트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북촌포구 방파제에서 비가 오는 중에도 벵에돔을 노리고 있는 낚시인들.

한두 마리 잡으면 곧바로 포인트 이동

포인트를 이동한 곳은 북촌포구에서 함덕 방향으로 1km 떨어져 있는 해동포구. 포구 바로 앞에 서우봉이 있는 곳으로 포인트 여건은 북촌포구 일대와 비슷했다. 오후 10시를 지나 해동포구에 도착하니 거의 만조 무렵이라 얕은 곳은 발판이 물에 잠겨 낚시가 힘들었다. 발판이 높은 해동포구 선착장에 자리를 잡았다.

▲ 해가진 후 해동포구에서 야간 에깅을 하고 있는 취재팀. 멀리 보이는 불빛은 갈치와 한치 어선이다.

수심, 조류, 바닥 등 대부분 여건이 비슷해 슈퍼 섈로우 에기로 공략하니 곧바로 입질이 왔다. 이곳에서는 공보성 프로가 700g 무늬오징어를 한 마리 추가했고 또다시 포인트 이동. 해동포구에서 북촌포구 방향으로 0.5km 떨어진 북촌환해장성 갯바위로 이동해 한 마리를 더 낚을 수 있었다.

▲ 해동포구 앞 서우봉 입구에서 무늬오징어를 노리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8월에 연안 에깅이 잘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조천읍 일대는 예상외로 무늬오징어가 잘 낚였다. 특히 대부분 만족할 씨알이었고 입질도 빠르고 시원했다. 공보성 씨는 “제주도에서는 조천~구좌읍 일대의 무늬오징어 시즌이 가장 늦습니다. 구좌읍의 반대편인 제주시 한림 일대는 3~4월에 무늬오징어 산란 시즌이 시작되지만 구좌읍 일대는 5~6월에 본격 산란 시즌을 맞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팁런을 할 시기지만 구좌읍에서는 8월에도 연안 캐스팅에 큰 무늬오징어가 낚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다면 9월~10월에는 구좌읍에서 에깅이 잘 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렇지 않습니다. 2차 산란을 시작하는 큰 무늬오징어가 다려도 주변으로 붙기 때문에 그때는 산란철 수준으로 씨알이 커집니다.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면 11월 중순이면 시즌이 거의 막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 해동포구에서 700g급 무늬오징어를 낚은 김병철 다이와 필드스탭.

▲ 김병철 씨가 낚은 무늬오징어와 에깅 장비.

UV 핑크보라 에기의 위력

첫날 조과는 4마리에 만족하고 다음날은 구좌읍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하도어촌체험마을방파제로 출조했다. 오전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려 공보성 씨와 함께 하도어촌체험마을방파제 앞 토끼섬이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비가 그치자마자 출조에 나섰다.

▲ 구좌읍 토끼섬 맞은편에 있는 카페. 카페 이름이 토끼썸이다.

▲ 하도포구에서 바라본 우도(좌측 섬). 오른쪽에 솟은 봉은 관광지로 유명한 성산일출봉이다.

하도어촌체험마을방파제는 구좌읍의 다른 포인트에 비해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수심은 5~6m이며 맞은편에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큰 여객선이 오갈 정도로 큰 물골이 형성되어 있어서 항상 조류소통이 좋다고 한다.

해질녘을 노리고 오후 6시가 되어 본격적으로 에깅을 시작하니 현지인도 서너 명 방파제로 나와 낚시를 시작했다. 그런데 전날과 달리 입질이 없었다. 그러다가 공보성 씨가 UV 기능이 있는 핑크보라 컬러 에기를 던져 넣는 순간 입질이 들어왔다. 아무도 입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공보성 씨만 연속으로 두 마리를 낚는 기술을 보였다. 그런데 핑크보라 에기가 그만 바닥에 걸려 떨어지고 난 후엔 입질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