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낭끝의 수수께끼 호황 - 엄동설한의 참돔 파시
선상찌낚시에 50마리! “참돔은 겨우내 머물고 있다”
ㅣ김진현 기자ㅣ
거문도 동도 낭끝에서 배낚시에 50마리가 넘는 참돔이 낚였다. 씨알은 대부분 50cm를 웃돌았고 큰놈은 70cm를 넘었다. 5호 목줄도 감당하지 못하고 터진 게 대여섯 번. 거문도는 이제 사계절 참돔낚시터가 되었다고 하지만 겨울, 그것도 혹한에 이런 대박이 터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순천 119피싱 강희정 사장이 거문도 동도 낭끝 선상찌낙시에서 낚은 70cm급 참돔 두 마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더 큰 것도 입질했지만 5호 목줄이 견디지 못했다.
지난 1월 27일 오후 7시 순천의 119피싱 회원들을 만났을 당시만 해도 참돔 배낚시는 예정에 없었다. 본래 목적은 거문도 갯바위낚시 취재였다. 녹동에서 출항하는 태풍호 정민호 선장의 ‘거문도 종일낚시’ 상품을 소개할 계획이었다. 종일낚시란 기존의 철수 시간보다 두세 시간 늦춘 오후 4시경에 철수하는 것으로 같은 출조비를 내고 오후 물때까지 낚시할 수 있기 때문에 당일낚시가 성행하는 거문도에서 인기를 끌 것 같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순천에 도착했을 때 태풍호를 타고 거문도로 나가기로 한 낚시인들이 춥고 날씨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죄다 펑크를 내었다. 출조인원은 119피싱 강정희 사장과 4명의 회원뿐. 다섯 명으로는 거문도 선비를 맞추기 어려웠고 하는 수 없이 금오도나 황제도로 가려고도 알아봤지만 그곳은 조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포기할 무렵 강정희 사장이 “태풍호를 전세 내서 거문도로 가봅시다. 적은 인원으로 갯바위에 내려봤자 확률이 낮을 테니 차라리 참돔 배낚시를 합시다. 이틀 전에 낚싯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채비를 한번 흘려봤는데 육십 센티가 넘는 참돔을 두 마리 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제수고기도 마련해야 하고 취재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니냐’는 말에 결국 거문도 참돔 배낚시로 결정되었다. 선비는 60만원. 이 비용으로 독배를 내어 거문도로 가서 배낚시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정민호 선장이 특별히 취재팀의 사정을 봐주었다. 밑밥으로 쓸 크릴은 119피싱에서 준비해 나갔다.
포인트는 동도 낭끝 앞으로 결정되었다. 강정희 사장이 그곳에서 참돔을 낚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오후 썰물에 입질을 받았는데, 낭끝은 원래 들물자리니 오늘 오후 들물에 참돔을 낚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 취재팀이 배낚시를 한 낭끝. 뒤에 보이는 곳은 동도 안간여 일대다.
낭끝은 참돔 구덩이
새벽 5시 녹동항에서 출항한 태풍호는 6시에 거문도에 닿았고 종선에 인계할 낚시인이 없어 곧장 낭끝으로 향했다. 코직이와 낭끝 사이에 있는 홈통에 닻을 내렸다. 예전부터 참돔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다. 다행이 갯바위에 낚시인이 없어서 갯바위에서 30~40m 떨어진 자리에 낚싯배를 고정했다. 하지만 오전에는 파도가 너무 높게 쳐서 낚시하기가 힘들었다. 멀미로 선실에 드러누운 사람도 있었고 몇몇은 파도를 무릅쓰고 힘들게 낚시를 했지만 열기만 올라올 뿐 참돔은 낚이지 않았다. 강 사장은 11시가 되자 “물돌이와 초썰물을 꼭 봐야 한다”며 멀미로 쓰러져있던 회원들을 일으켜 세워 본격적인 낚시를 시작했다.
▲ 폭발적인 참돔의 입질에 뜰채 지원을 받지 못한 강희정 사장이 목줄을 잡아 참돔을 들어올리고 있다.
코직이(남쪽) 방향으로 흐르던 썰물이 주춤해지자 바다는 잠잠해졌다. 정오를 지나자 조류가 들물로 바뀌어 낭끝 위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1물이라 조류는 세지 않았다. 이때부터 참돔이 물기 시작했다. 수심 23~24m로 고정한 3~4호 구멍찌 채비가 사정없이 빨려 들어갔다. 입질 수심은 거의 바닥이었다. 참돔들이 배 밑에 포진해 있는지 채비가 멀리 떠내려가지 않아도 마구 입질했다.
들물이 시작한 직후에는 20~30cm 상사리가 낚이더니 조류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참돔의 씨알이 점점 커졌다. 오후 1시경에는 50cm 참돔이 동시에 서너 마리씩 입질해 뱃전이 난장판이 되었다. 오후 2시경엔 김경석씨와 강정희 사장이 70cm가 넘는 참돔을 낚아냈다. 그와 동시에 박영일씨와 이재영씨 그리고 정민호 선장이 연속으로 참돔을 걸었다가 채비를 터뜨리고 말았다. 오후 2시경 중들물이 클라이맥스였고 3시부터 소강상태가 되더니 4시엔 완전히 입질이 끊겨버렸다.
▲순천 119피싱 이재영, 강희정, 김경석, 박영일씨가 조과를 펼쳐두고 포즈를 취했다. 잔챙이는 다 살려주고 40cm급 이상만 골라 촬영했다.
3월엔 갯바위 참돔 조황도 기대
낚은 참돔을 갑판에 펼쳐 놓으니 위판장이나 다름없다. 김경석씨는 “3년 낚을 고기를 오늘 다 낚은 것 아닌지 걱정이다”라고 말했고 정민호 선장은 “거문도에서는 겨울에도 곧잘 참돔이 낚이지만 이런 호황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는 거문도의 수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추웠는데, 어째서 참돔들이 거문도 연안을 벗어나지 않았을까?
순천 낚시인들은 “백도와 거문도, 삼부도를 회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거문도권의 참돔이 최근에는 꾸준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멀리 회유하지 않고 감성돔처럼 적당히 깊은 곳을 찾아 월동해도 될 정도로 거문도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낭끝이 호황을 보인 이유로는 북서풍의 영향을 덜 받아 서도에 비해 수온이 좋고 20~30m로 깊은 골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낭끝의 대박조황이 그물 때문이라는 말도 나왔다. 거문도 참돔이 명물이 된 후 어부들이 섬 곳곳에 그물을 쳐 놓아 참돔의 정상적인 회유가 어렵게 되면서 서도의 제립처나 용댕이 같은 참돔 포인트가 예전만 못한 반면 낭끝처럼 참돔들이 다량으로 모여 있는 장소가 생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희 사장과 정민호 선장은 “이제 곧 수온이 오르면 참돔이 연안으로 붙을 것이다. 대물 참돔을 노린다면 영등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문도의 대물참돔 시즌이 매년 앞당겨지고 있는데, 올해는 비록 한파가 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예년보다 참돔 시즌이 늦게 시작될 이유가 없다. 당분간 갯바위낚시와 배낚시를 계속 병행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 70cm 참돔을 보여주고 있는 김경석씨.
▒ 출조문의 녹동태풍호 017-623-8605, 순천 피싱119 010-3106-5516
출조길 맛집 - 과역 동방기사식당
고흥 녹동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순천으로 가다보면 과역면소재지가 나온다. 동방기사식당은 과역면의 많은 기사식당 중에서도 소문난 곳으로 1인당 6천원이면 돼지고기불고기와 전라도의 명물인 굴젓, 꼬막, 간재미(가오리), 갓김치, 매생이, 게장 등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061)932-9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