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흑산도의 화약고
다물도 참돔 대폭발
이기선 기자 blog.naver.com/saebyek7272
한국프로낚시연맹 전서지부의 정형욱씨가 10월 25일 일요일 오후 다급한 전화를 걸어왔다. “다물도에서 팔이 아프도록 참돔을 낚았소! 팀을 짜서 빨리 들어가보시오!”
▲ 다물도 고래여(윗간여)의 떨어진여에 오른 꾼들. 대흑산도를 통틀어 최고의 포인트로 각광받는 이곳에 엄청난 참돔 떼가 회유하고 있었다. 맞은편 촛대바위에선 돌돔도 잘 낚인다.
다물도는 대흑산도 북쪽의 부속섬이다. 수 년 전부터 목포해역 최후의 참돔 보고로 주목받아온 곳이다. 그동안 나도 두 번 다물도 참돔에 도전했으나 악천후 탓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정형욱씨의 낭보를 듣고도 반신반의하며 다물도 김완식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다. 김 선장은 “어제 세 명이서 고래여에 올라 오십에서 칠십 센티 사이로 스무 마리 가까이 올렸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정씨뿐만 아니라 그런 조황은 요즘 매일같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틀 뒤 목포로 달려갔다. 10월 27일 아침 8시에 홍도로 출발하는 첫 쾌속선을 타기 위해 목포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자 대흑산도로 들어가는 낚시꾼들이 여럿 보였다. 전북 고창에서 온 류준택씨(43)는 “먼저 들어간 일행들이 며칠째 참돔을 타작하고 있는데 오늘도 꽤 많은 양을 낚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몹시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또 강원도 원주에서도 5명의 낚시인이 다물도 참돔 호황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 “간여만 참돔 명당인 줄 알았는데….” 류준택·김영호(좌)씨가 대둔도 아랫인여에서 낚은 참돔을 자랑하고 있다.
▲ “손맛 대단하더군요.” 부산꾼 배무웅씨가 고래여에서 낚은 참돔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낚시인들이 민박집에서 열기와 참돔 회를 맛보고 있다.
“간여만 포인트인 줄 아능가?”
홍도행 파라다이스호는 두 시간 항해 끝에 다물도 앞 해상에 멈춰섰고, 기다리고 있던 종선이 나와 우리를 다물도 선착장까지 실어주었다. 시간 맞춰 김완식 선장이 마중을 나왔다. 올해 예순셋의 김 선장은 한때 흑산도에서 최고의 홍어잡이 선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낚시손님만 받고 있다.
대개 낚시꾼이 오면 민박집에 짐을 푼 다음 복장을 갖추고 갯바위로 나가는 법인데, 이날따라 김 선장은 낚시꾼들이 배에 타자마자 곧장 뱃머리를 돌렸다.
“지금 싸기 시작한 날물을 놓치면 오늘낚시는 끝장잉께로 빨리 가야한당게!”
먼저 원주꾼들을 아랫간여(포여)에 내려주더니 대둔도로 다시 내려왔다. 고창꾼들이 ‘왜 고래여나 윗간여 쪽으로 가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선장을 바라보자 눈치를 챈 듯 “오늘은 내릴 포인트가 없소, 대둔도에도 포인트가 많은께 걱정하지 마쇼이.”하고 말한다. 선장은 고창꾼들과 기자를 대둔도 동쪽 떨어진 여(아랫인여라고 불렀다)에 내려주고는 “조금 기다리면 날물이 흑산도 쪽으로 흘러가는데 바로 물 것”이라며 배를 돌려 가버렸다.
내리자마자 얼른 채비부터 꾸렸다. 세 사람 모두 3~4호 찌 반유동채비. 각기 다르게 수심을 맞추고 흘리기 시작했다. 만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열기가 연거푸 낚인다. 손바닥보다 큰 씨알이라 참돔은 잠시 잊고 열기 낚는 재미에 빠졌다.
한 시간 가량 지나니 조류가 바뀌어 드디어 흑산도 쪽으로 조류가 내빼기 시작했다. 밑밥을 뿌리며 흘리길 한 시간째. 이윽고 참돔이 떼로 들어왔는지 찌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류준택씨(43)가 비명을 질렀다. “와우, 손맛 좋은데요. 칠십은 되겠어요!” 2호대가 한참 반원을 그렸고, 드디어 녀석이 수면에 떠올랐다. 그런데 선장이 닦달하는 통에 뜰망을 챙겨오지 못했다. 그러나 파도에 태워 올리기엔 너무 큰 씨알이다. 머뭇거리던 류씨는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낚싯대를 높이 치켜세웠다. 그러나 순간 낚싯대 끝만 하늘로 치솟았고, 우리 세 사람은 70cm가 넘는 참돔이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나 참돔은 계속해서 물어주었다. 이번에는 낚시초보 백영일씨(38)가 걸었다. 낚싯대 휨새로 보아 이 녀석도 크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영일씨를 보고 “빨리 감지 말고 천천히 버텨!” 류씨가 고함치며 응원했지만 큰 녀석을 낚아본 경험이 전무했던 영일씨를 무시하듯 참돔은 목줄을 터트리고 달아나버렸다.
나도 14m 수심에서 입질을 받았지만 이번엔 다소 잔 40cm급이다. 5분 후 또 류씨에게 입질이 왔다. 이번에는 60cm 정도 되는 참돔이 떠올랐다. 이번엔 안전하게 파도를 태워 단번에 올렸다. 그 뒤로 입질이 뜸해지더니 조류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더 이상의 입질은 없었다.
▲ 다물도 주민과 낚시인들이 홍도행 쾌속선에서 종선으로 짐을 옮겨 싣고 있다.
◀ 다물도 최고의 참돔 명당 고래여. 중간여가 고래여본섬, 왼쪽이 떨어진여, 제일 우측이 삼각여다. 사진의 정면이 썰물포인트, 뒤쪽이 들물포인트다.
10년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오후 4시, 도영호가 우리를 철수시키기 위해 다가왔다. 배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12년 전 태도 고깔여 농어 취재 때 만났던 부산의 김태수(57)씨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그가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반가움도 잠시, 기자의 본능 탓에 그의 쿨러부터 열었다. 굵직굵직한 참돔이 가득하다. ‘부산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 잔챙이만 낚은 원주 사람들이 부러운 듯 쳐다보며 말했다.
김태수씨는 “윗간여(떨어진여, 고래여, 삼각여를 합쳐 부르는 이름) 중 제일 작은 여에 내려 썰물에 낚았다. 좀 안다는 사람들이 들물포인트라며 썰물에는 내리지 말라고 했는데 썰물에도 낚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흐뭇해했다.
대둔도에서 배에 오르던 라호훈(고창)씨도 역시 10년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는 “오전에 고래여 중간여에서 썰물에 86cm등 세마리를 낚았는데, 철수 때 보니 꿰미에 꿰어 놓은 86cm만 사라졌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태수 사장은 “그러니까 왜 물살이 센 데서 꿰미에 꿰어갖고 손해를 봐? 우리처럼 낚자마자 피 빼서 쿨러에 넣는게 상책”이라며 같이 안타까워했다.
11월 말부터는 감성돔이 바통터치
민박집으로 돌아와 조황을 체크해보니 이날도 윗간여, 삼각여, 아랫간여, 다물도 인여, 본섬 등에서 참돔이 쏟아져 나왔는데 10명이 도합 30여 마리의 조과를 기록했다. 오랜만에 보는 호황이었다.
김태수씨는 “다물도에 참돔이 비친 것은 벌써 두 달 정도 되었고 오늘 같은 호황은 추석 이후 연일 계속되었다”고 말했다. 그럼 왜 외부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다물도를 찾는 단골꾼이 극소수인데다, 김 선장이 방송이나 잡지사 기자가 오는 것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민박집도 한 채, 낚싯배도 달랑 한 척밖에 없어 낚시인들이 많이 와도 소화를 시키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따라서 다물도의 호황 소식은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낚시춘추 기자라며 전화로 조황을 물어봤을 때 신통치 않다고 대답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간여에서만 참돔이 낚이는 걸로 알고 있었으나 큰 오산이었다. 대흑산도 단골꾼 길현구씨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만 3년 전부터 나를 비롯한 몇몇 단골꾼들이 참돔 포인트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곳곳에서 참돔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물이 가는 곳이라면 참돔이 낚인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다음날에도 참돔은 여러 곳에서 낚였다. 하루만 더 머물러 있었더라면 낚시춘추 지면을 온 통 대흑산도 참돔으로 도배해야 할 뻔했다. 이날 오전 목포 피싱투어 손님 열 명이 목포에서 배를 대절하여 다물도로 들어 왔는데, 대부분 2~5마리씩 낚았고 그중 몇 사람은 삼각여(윗간여 제일 우측 섬)에 올라 20마리가 넘는 참돔을 낚았다.
그리고 전날 낱마리에 그쳤던 원주꾼들도 고래여 떨어진 여에 올라 마릿수 조과를 올려 어제의 아쉬움을 풀었다고 했다. 대흑산도 참돔낚시는 11월 말까지 이어지며 그 뒤에는 감성돔낚시로 바통터치를 한다는 게 단골꾼들의 말이다. 다물도 체류경비는 1일 7만원(민박비+종선비)
■취재협조 대흑산 다물도 김완식 선장(061-246-2182, 010-9433-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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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꾼 길현구씨의 다물도 어드바이스
경기도 오산에 사는 길현구씨는 홍도, 태도, 가거도를 주로 찾다가 6년 전 다물도의 매력에 푹 빠져 시즌이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대흑산도 전문가다. 그가 말하는 다물도 참돔낚시의 이모저모.
1. 대흑산도 참돔은 전역에서 낚인다
어부들의 말에 따르면 몇 십 년 전부터 대흑산도 전역에서 주낙으로 참돔을 낚아오고 있으며 해마다 많은 양이 대흑산도 어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간여(윗간여, 아랫간여, 삼각여 등)를 비롯하여 하죽도, 상죽도(등대 밑), 촛대바위, 승섬 홍어굴, 윗신여(승섬 바라보는 곳), 대둔도 본섬 및 인여 등 수십 개의 포인트에서 참돔을 낚았다. 또 촛대바위 일원에서는 해마다 돌돔을 마릿수로 낚고 있다. 그러나 배 사정이 좋지 않고 위험한 자리들은 선장이 잘 내려주지 않는다고.
2. 물때보다 날씨가 조과를 좌우한다
다물도는 물색이 탁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목포에서 두 시간이 빠진 외해로여서 거의 뻘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리물때 만조에만 잠깐 흙탕물이 일어날 뿐이다. 오히려 사리 때 대형 참돔이 잘 낚인다. 다만 파도가 높으면 낚시에 제약이 따른다. 다물도 김 선장의 낚싯배가 작아서 파도가 높은 날은 갯바위에 붙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3. 10~11월 두 달이 피크다
다물도 참돔 시즌은 9월부터 11월 말까지다. 8월부터 떼고기가 낚이곤 하지만 여름에는 상사리급이 주종을 이루고 9월 하순부터 씨알이 굵어지는데 10월과 11월이 대형 참돔 시즌이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12월 말까지도 낚인다.
4. 반유동으로 발밑 바닥을 노려라
참돔이 낚이는 포인트는 대부분 직벽지형으로 발밑 수심이 15~25m로 깊다. 참돔들도 갯바위에 바짝 붙어 회유하며 갯바위에 붙은 먹이를 취한다. 따라서 채비를 멀리 흘리지 말고 20m 안쪽 근거리를 노려야 한다. 떠서 무는 씨알은 30~50cm가 많고 큰 씨알들은 대개 바닥에서 낚인다. 특히 80cm가 넘는 대형급은 바닥을 박박 긁어야 낚일 정도로 움직임이 둔하다.
5. 간여에 목숨 걸 필요 없다
다물도는 물론 대흑산도를 통틀어 참돔 명당은 간여를 꼽는다. 그러나 굳이 간여를 고집하지 않아도 참돔이 수두룩하다. 조류가 잘 가는 곳이라면 참돔은 다 서식한다. 단지 다물도 본섬은 참돔낚시에선 피하는 게 좋다. 수심이 얕은 본섬은 대부분 감성돔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