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희망
가거도, 왕년의 명성 되찾나
씨알도 마릿수도 원도 최상급!
| 이기선 기자 blog.naver.com/saebyek7272 |
가거도가 그간의 부진을 털고 화려하게 일어섰다. 씨알이 잘다는 오명을 단번에 벗어던지고 대형 감성돔을 마릿수로 터트리며 전성기의 면모를 되찾고 있다. 그러나 폭풍주의보가 수시로 터져 낚시꾼들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 “가거도의 저력을 보시오.” 목포꾼 임성인씨(알토 필드스탭)가 12월 22일 오후 2시 초썰물에 낚은 58cm 감성돔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가거도가 옛날의 명성을 되찾고 있어요. 감성돔 씨알이 가거도다워졌어요. 열 마리 중 두세 마리는 어김없이 오짜급이 낚이고 있습니다.” 12월 22일, 가거도의 해성호 임세균 선장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겨울감성돔의 보고였던 가거도는 3~4년 전부터 잔챙이 일색으로 바뀌며 손님들의 발이 뚝 끊어졌었다. 최근 2년 사이에 10척이 넘던 가거도의 낚싯배들이어업으로 돌아서고 3구에 한 척(경진호), 1구에 4척(해성호, 한보호, 미광호, 은성호)만 남아 있는 현실이 그간의 속앓이를 말해주고 있다.
주의보 속 3구 도보 포인트에서 먼저 폭발
올 겨울도 시즌 초반은 조황이 부진했다. 그러나 12월 초순에 늦게 터진 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민박집마다 감성돔이 지천으로 깔렸다. 그러나 하늘은 냉정했다. 기쁨도 잠시, 사나흘 손맛을 보는가 싶었더니 이내 폭풍주의보가 장기간 불어 낚싯배들의 발을 꽁꽁 묶었다.
“올해 폭풍주의보의 특징이라면 두세 개가 연달아 터져 한 번 묶였다하면 10일 정도는 예사로 섬에 갇혔다”고 낚시인들은 말한다. 이런 현상은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어 낚시인들은 이제 물때보다 기상을 체크하고 출조 날짜를 정하고 있다.
주의보 때 빛을 발한 곳이 3구 대풍리 본섬 포인트였다. 3구의 경진낚시 임종재 선장은 “1구의 몽돌밭과 달리 3구는 전역이 여밭으로 이뤄져 있어 잔챙이급이 드물다. 북서풍이 세게 불어도 3구 갯바위는 의지가 되어 마을에서 등대까지 걸어다니면서 공략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은데, 올해도 2~4m의 얕은 파도밭 속에서 대형 감성돔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칠 때면 특정 포인트가 따로 없을 정도인데, 사끼미나 평상내리에 비해 B급으로 간주되던 간대취, 장개다랑이, 새새골에서 월등한 조황을 보여줘 굳이 먼 사끼미나 평상내리까지 갈 이유가 없다. 목포 낚시마트 회원들은 오히려 주의보를 기다렸다가 본섬낚시를 수차례 반복하며 수 십 마리의 5짜 감성돔을 낚아 돌아갔다.”
도보 포인트가 적은 1구와 2구는 주의보 뒤끝에 마릿수가 속출했다. 폭풍이 잠깐씩 멎은 12월 1~3일, 5~7일, 16~17일, 23~25일, 28~29일에 낚시를 할 수 있었는데 가거도 전역에서 감성돔이 솟구쳤다. 단골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2구 앞 성건여와 3구 검은여, 1구 오구멍여, 앞면 일대에서의 조황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 거둔 꾼들의 무용담은 놀라울 정도였다.
목포 국제식당 신현수 사장은 12월 16일 1구 두렁여에서 48~56cm까지 8마리를, 성남꾼 황규환씨는 12월 7일 성건여와 목난개에서 5짜만 4마리를, 광명 신신낚시 전진호, 서동열씨는 24일 오전 3시간 동안 오구멍여에서 58cm를 포함 15마리를 타작했다는 것.
▲ 광명 신신낚시 가이드 전진호씨(우)가 서동열 회원과 함께 2구 갯자리에서 낚은 감성돔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그는 첫날 8마리, 둘째 날 15마리(최고 58cm)를 낚았고, 1월 11일에는 2구 노랑바위에서 59, 58cm 포함 5짜만 4마리를 낚았다.
▲ 가거도 입성 둘째 날 성건여 물걸어간취에서 54cm 감성돔을 낚은 여수꾼 서종찬씨(62).
낚시꾼들이 쏟아낸 감성돔으로 선착장은 어시장
12월 22일 새벽, 진도 서망항은 활기가 넘쳤다. 가거도 뿐 아니라 태도도 호황이 계속되고 있어 파이넥스호와 덕원호는 만원을 이루었고, 같은 시각 목포에서 가거도로 떠나는 마린익스프레스호도 정원을 꽉 채웠다. 선장들은 주의보에 묶여 있다가 일주일 만에 출항한다고 말했다.
나는 인천에서 동행한 김영문씨와 함께 파이넥스호에 올랐다. 3시간 항해 끝에 가거도 1구 제일민박에 짐을 풀었다. 장박을 하고 있던 신현수 사장이 “오랫동안 낚시를 못해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며 반겨주었다.
아직까지 거센 북서풍 때문에 대다수 꾼들은 바람을 피해 동남쪽 앞면 일대에 몰렸다. 첫날엔 앞면의 윗멀둥개, 동대문, 해상터널, 장갓살 등에서 감성돔이 쏟아졌다. 김영문씨와 함께 아랫멀둥개 안통에 내렸지만 조류의 움직임이 약해서인지 45cm 한 마리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1구 선장에 도착하니 가관이다. 낚시인들이 쏟아낸 감성돔들로 마치 어시장에 와 있는 듯했다. 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2구 쪽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분투한 알토 필드스탭 임성인씨(목포)가 오후 2시경 초썰물에 58cm를 낚아 부러움을 샀다.
둘째 날도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또 앞면 쪽에 낚시꾼들이 몰렸다. 나는 북새통 앞면을 빠져나와 성건여 도하에 파주의 곽형신 사장, 김영문씨와 함께 내렸다. 곽형신씨는 “어제 이 자리에서 4마리의 감성돔을 낚았다”고 했는데 이날은 조류가 원하는 곳으로 흘러주지 않았고 47, 45cm 한 마리씩 낚는데 그쳤다.
이날도 선착장에는 감성돔이 널렸다. 여수에서 온 서종찬씨(62)가 낚은 54cm가 눈에 띄었다. 그는 오후 3시경 우리가 내렸던 반대쪽인 성건여 물걸어간취에서 낚았다고 했다.
▲ “우리도 왕창 손맛 봤습니다.” 한국프로낚시연맹 경북지부 회원들이 앞면 일대에서 낚은 조과. 왼쪽부터 김상순, 박두인, 이창범, 최봉영(뒤쪽).
◀ “이게 가거도 감성돔입니다.” 2구 큰취에서 낚인 5짜 감성돔을 보여주는 목포 국제식당 신현수 사장.
▲ 제일민박 단골꾼들이 감성돔 회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철수 직전 맛본 짜릿한 손맛
입성 3일째, 모처럼 날씨가 화창해 낚싯배들이 전역으로 흩어졌다. 해성호 임세균 선장은 2구 밭면(1구 서쪽, 샛개~목난개 사이를 지칭)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나는 신현수 사장과 큰취에 내렸다. 임세균 선장은 “며칠 전 이곳에서 5짜가 여러 마리 나왔다”고 했다. 이날 오전은 썰물. 3시간 후면 철수해야 하니 마지막 낚시터다.
썰물인데 조류는 거꾸로 성건여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수심은 12m. 철수 30분 전이 되어서야 나에게 먼저 입질이 왔다. 챔질과 동시에 우욱 하며 짼다. 오랜 실랑이 끝에 뜰채를 들이대는 신현수 사장의 외침이 들렸다. “크다! 오짜야 오짜!” 4년 전 맨밑에서 5짜급 네 마리를 낚은 후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가거도 5짜 감성돔이었다.
그 뒤 신현수 사장도 입질을 받았지만 끝내 낚싯대 끝이 하늘로 솟구치고 말았다. 원줄이 발밑 턱에 스쳐 그만 터지고 만 것이다. 아쉬움 속에 해성호가 다가왔다. ‘호황 속에 혼자 손맛을 못보고 있다’며 의기소침하던 김영문씨도 성건여 동굴여에서 45, 47cm 두 마리를 낚아 엄지를 세워보였다. 선장이 기대했던 밭면 일대는 부진한 조과를 보였다.
오구멍여에 내려 있던 광명 신신낚시 전진호씨에게 좀 낚았냐는 신호를 보냈지만 별 대답이 없어 그냥 철수했는데, 나중에 58cm를 포함 15마리(42~53cm)를 타작했다고 실토했다.
취재기간 동안 4짜는 발에 차일 정도였고 5짜도 흔했다. 58cm(2구 노랑바위, 목포 임성인), 54cm(성건여, 여수 서종찬), 53cm(앞면 솥퉁이, 경주 김인수)는 직접 촬영했고 확인 못한 게 훨씬 많았다. 취재 마지막 날 민박집으로 철수했을 때 손님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는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방금 선착장에서 6짜 감성돔을 봤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큰 놈은 처음 봤다. 63cm정도 되더라”고 했다. 나는 즉시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지만 6짜의 행방은 묘연했다. 민박집마다 전화를 걸어 수소문을 해봤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취재협조 목포 신안낚시(061-282-7041), 가거도 제일민박(061-246-3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