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9)

얼음 밑의 산소 고갈에 의한 어류 폐사

Winter kill

낚시를 다니다 보면 간혹 잔챙이들만 많고 대어는 없는 호수들이 있다. 이 잔챙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한다면 수년 후에는 큰 고기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다음에 가보면 여전히 대어는 없고 잔챙이들만 있다. 대어들이 어업이나 낚시로 잡혀서 감소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 외에 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산소 고갈 사고가 발생하여 큰 고기들이 우선적으로 죽기 때문이다. 농약과 같은 독성물질이 유입하여 어류 폐사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작은 치어가 더 민감하여 먼저 죽지만, 산소 고갈로 물고기가 죽을 때는 큰 고기가 먼저 죽는다. 어류 종에 따라서도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산소 부족에 민감한 계류어가 먼저 죽고 내성이 강한 종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동일한 종이라면 큰 개체가 먼저 피해를 받는다.

산소가 부족하면 큰 고기부터 죽는다
산소(O2)는 모든 동물의 호흡에 필수적인 물질이므로 모든 동물은 산소가 없으면 곧 죽게 되지만, 산소는 대기의 20%를 차지하는 흔한 물질이고 공기분자는 빨리 확산되므로 육상의 동물이 산소 부족으로 죽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산소는 물에 잘 녹지 않는 기체이어서 물속에서 존재량이 적은데다가 수면에서 대기로부터 물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다. 게다가 물분자의 확산운동은 공기분자보다 매우 느리기 때문에 한 곳에서 산소가 너무 많이 소비되면 국지적으로 산소 고갈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산소 소비는 호수 바닥 근처에서 주로 일어나는데 표수층에는 산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표면에서 불과 5m 깊이에 있는 호수 바닥층에서는 산소 고갈이 일어나는 사례들이 흔히 관측된다.

 ▲얼음 밑의 산소고갈로 발생한 미국의 윈터킬 사례. <사진 미국 미네소타 자연보전국>

빙판에 눈 쌓이면 수중산소 줄어든다
산소 고갈은 주로 한여름에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간혹 혹한기를 맞으면 겨울 결빙기에도 발생할 수 있다. 물속에서 산소가 고갈되는 것은 산소의 소비속도가 공급속도보다 더 빠르기 때문인데, 산소 소비가 너무 많거나 산소 공급이 차단되는 경우에 일어난다. 생물은 호흡하면서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동물, 수생식물의 사체, 플랑크톤세포, 미생물 등의 유기물이 많으면 산소 소비량이 많아진다. 하수가 유입하면 산소 소비량이 너무 많아져서 산소 고갈 발생의 원인이 되며, 수생식물의 사체나 낙엽이 너무 많거나 호수가 부영양화되어 플랑크톤이 많이 가라앉아 있으면 산소 고갈이 발생할 수 있다.
물속에 산소가 공급되는 경로는 두 가지이다. 대기로부터 확산해 들어가는 것과 수중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물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호수에 얼음이 얼면 대기로부터의 확산이 차단되고, 이후부터 수중의 산소 공급은 오로지 수중의 광합성에만 의존해야 한다. 겨울을 맞아 처음 만들어지는 얼음은 표면이 매끄럽고 기포가 거의 없어서 맑고 투명하다. 햇빛도 잘 투과하여 얼음 밑에 사는 수생식물과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할 수 있고, 광합성의 결과 산소가 풍부하게 생성된다. 그러나 겨울이 깊어가면서 얼음은 점차 표면이 거칠어지고 기포가 생기기 시작하여 투명도가 낮아지는데, 설상가상 그 위에 눈까지 덮이게 되면 빛이 거의 투과하지 못한다. 얼음 위에 쌓인 눈이 우리 눈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햇빛을 많이 반사한다는 뜻이다. 즉, 수면에 비추어지는 햇빛은 모두 반사되고 얼음 밑은 암흑세계가 된다. 그러면 산소를 공급하는 수생식물과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이 중단되고 산소는 점차 감소하기만 한다. 곧바로 눈이 녹는다면 얼음이 다시 투명해지고 광합성이 다시 시작되겠지만 혹한을 맞이하여 내린 눈이 오랫동안 녹지 않고 덮여 있으면 물속의 산소부족이 장기화된다. 그로 인해 호수 바닥에서 월동하고 있던 물고기가 서서히 산소 고갈로 쇠약해지거나 죽는 것이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고 나면 죽은 어류의 사체가 발견되거나 쇠약한 어류가 병들어 죽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결빙기에 어류폐사가 일어나는 경우에 이를 영어로는 winter kill이라고 부른다.

얕은 습지에서 ‘윈터킬’ 자주 발생

호수에서 winter kill이 잘 일어나는 곳은 수생식물이 밀생한 얕은 호수이다. 그 외에 부영양화로 인하여 녹조현상이 심하게 발생하고 죽은 플랑크톤이 많이 침강한 곳, 하수가 유입되는 곳 등에서 나타난다. 수생식물은 주로 잎이 물밖에 나와 있어서 광합성을 할 때 산소를 대기로 방출하고, 죽은 사체는 물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우포늪과 같이 수생식물이 호수의 절반 이상을 덮는 습지 형태의 호수에서는 대부분 물속의 산소가 부족하거나 고갈되어 있다. 이런 곳에 얼음과 눈이 덮이고 혹한을 맞이하면 산소 고갈은 더욱 심해져 민감한 물고기는 죽고 내성이 강한 붕어와 잉어의 경우에도 큰 개체부터 죽게 된다. 약간 부영양한 곳에서는 맑은 물보다 물고기의 먹이가 많아서 어류의 생산량이 증가하지만 부영양화가 너무 심해지면 산소 고갈이 발생하여 큰 고기가 없어지고 치어만 남아 낚시터로서의 가치가 줄어든다.
결빙기의 산소 고갈은 수심이 얕은 호수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 얕은 호수에서는 수생식물이 많이 살기 때문에 식물의 사체가 많고 플랑크톤도 더 많은 경향이 있다. 산소 소비는 주로 생물 사체가 가라앉은 호수 바닥에서 일어나는데 수심이 얕으면 저수량이 적어서 호수 내에 함유된 산소의 총량이 적기 때문에 산소가 쉽게 고갈된다.

수질개선이 폐사 막는 근본대책
산소 고갈로 물고기가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수질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대책이지만 여의치 않는 경우에는 응급대책으로 호수에 공기펌프를 설치하여 공기를 주입하여 주어야 한다. 산소 고갈이 여름에 발생하는 호수이건 겨울에 발생하는 호수이건 간에 산소 고갈이 일어나는 호수에서는 공기 공급은 꼭 필요하다. 결빙된 호수에서 펌프로 물을 순환시키면 펌프를 설치한 곳에서는 얼음이 녹은 구멍이 생기고 이곳으로 대기 중의 산소가 녹아들어가는 효과도 있다. 소형 연못의 경우에는 얼음 위의 눈을 치워주어 빛이 투과하도록 하고 수중의 광합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산소를 발생시키는 방법도 사용한다. 눈이 덮인 기간이 길어지면 수면 일부의 눈을 치워주어 빛의 투과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제 어류폐사를 막고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산소고갈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류의 서식지를 관리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