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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_말레이시아-「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이 되어 롬핀에서 돛새치를 낚다
2018년 11월 60 12052

해외_말레이시아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이 되어

 

 

롬핀에서 돛새치를 낚다

 

 

엄일석 코엑스 아쿠아리움 어류 해설가·팀쏘가리 회원

빌피시(billfish)! 빌피시는 돛새치, 녹새치, 청새치, 황새치 등 긴 부리를 가진 대형 최상위 포식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물고기다. 그런데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성난 파도를 거스르고 상어를 물리치며 빌피시를 낚는 것을 남성성과 낚시인의 완성으로 단정해버렸다. 나는 이것을 두고 빌피시를 낚아보지 못한 모든 낚시인들에 대한 암묵적인 멸시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빌피시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또 헤밍웨이는 얼마나 잘났기에?
삼십 평생을 육지에서 살고 낚시를 가도 두 발을 땅에 딛고 기껏해야 손바닥 크기의 쏘가리를 잡는 내게 거대한 빌피시는, 그리고 빌피시가 호령하는 망망대해는 두렵고 이질적인 무엇이었다. 그렇기에 빌피시 중 거의 유일한 루어 캐스팅 대상어인 돛새치를 낚기 위해 지난 9월 26일 3일간의 낚시일정을 잡고 말레이시아 롬핀(Rompin)으로 향했다.

 

세계적인 돛새치 낚시터, 롬핀
말레이시아 롬핀 원정 루트는 싱가포르에 가서 육로를 이용해 롬핀까지 가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오랜 해외원정낚시 파트너인 마이클 킴, 클라우디오·루시아노 형제와 함께 미리 대절한 승합차를 타고 롬핀으로 향했다. 중앙선조차도 희미한 캄캄한 비포장도로를 두 시간여 달리자 말레이시아 동남쪽 해안의 마을 롬핀에 도착했다. 
롬핀은 돛새치를 낚고 싶어 하는 전 세계 낚시인이 찾는 글로벌 낚시터다. 롬핀이 세계적인 낚시관광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장고라고 불리는 마을 주민의 공이 컸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롬핀은 무명의 어촌 부락에 불과했다고 한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인 장고는 해마다 9월이 되면 대규모의 돛새치 무리가 먹잇감이 풍부한 롬핀 근해를 경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낚싯배 사업을 운영했다. 장고를 도왔던 이들도 점차 독립하여 어선이 늘어나면서 롬핀은 전 세계 낚시인들이 찾는 낚시터로 탈바꿈했다.
롬핀 선장들은 마을 경제에서 낚시 가이드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알기에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며 여타 어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여 결국 자원이 고갈되고 공동체가 파국을 맞이하는 현상)’을 방지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남중국해의 돛새치들은 9월이면 롬핀 앞바다에 몰려들고 있다.

 

“거봐라, 무라타 하지메도 생미끼를 썼다잖아”
밤새 설렘으로 인해 떨리는 손가락으로 바늘을 묶으며, 한때 장고의 선원이었던 선장 퐁(Fong)에게 롬핀의 마을 변천사를 듣다 보니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동틀 녘에 맹그로브 습지를 배경으로 출항하여 300마력짜리 쌍발 엔진이 튀기는 물보라를 피해 30분만 몸을 숙이면 어느덧 돛새치가 출몰하는 원양에 다다른다. 돛새치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굳이 ‘눈먼 캐스팅’을 하거나 어군 탐지기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갈매기 떼가 발톱을 세우고 아래를 노려보며 맴돌고 있는 곳으로 배를 몰면 어김없이 돛새치의 칼에 맞은 정어리의 은린이 싸라기눈처럼 우수수 흩날리는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검푸른 돛이 불쑥 수면을 뚫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턱수염 없는 헤밍웨이가 되어 포핑대를 꼬나들고 갑판에 나가 펜슬을 쏘아 올린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되어도 반응이 없다. 돛새치는 여타 물고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안구와 뇌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하여 정온동물의 그것에 필적하는 시력과 반사신경을 확보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조악한 모조품에 쉽사리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반나절 동안 집중력이 소모되자 잡념이 든다. 적도의 태양에 노출된 얼굴이 불덩이처럼 이글거린다. 경쾌하게 파도를 가르던 포퍼가 어느덧 몸을 질질 끌기 시작했다.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비웃음으로 들린다. 정오가 되어 캐스팅을 해보고 싶다는 클라우디오와 루시아노 형제에게 선수를 양보하고 차양을 친 고물에서 생미끼 외줄낚시 채비를 준비했다. 이미 서른 번 넘게 롬핀을 다녀간 경험이 있는 마이클이 “거봐라. 루어로 고집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니까. 작년에 낚시왕 무라타 하지메도 결국에 생미끼를 썼다잖아”하고 말하며 씩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꽝을 치더라도 캐스팅을 계속 해보고 싶었으나 우리가 탄 10m짜리 어선은 갑판이 비좁아 한 번에 두 사람씩 차례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기에 악착같이 달려드는 무늬오징어들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일단은 미끼로 쓸 작은 전갱이와 고등어를 카드채비로 잡는 것이 신선하고 즐거웠다. 운이 좋아 채비를 고기떼 한복판에 투척하면 바늘마다 전부 고기가 걸려들기도 했다. 채비를 해저까지 내리면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잡혀 올라오기도 했다. 더욱이 롬핀의 천해어장에는 돛새치 말고도 루어 대상어종이 즐비하다. 9월은 무늬오징어가 제철이다.
마이클의 제안으로 팁런 에깅을 시도해보자 채비가 바닥에 채 가라앉기도 전에 묵직한 자석 같은 무언가가 에기를 끌어당겼다. 1kg 남짓한 무늬오징어였는데, 그것이 평균 씨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징어가 어찌나 많던지 에기 하나에 두 마리가 악착같이 들러붙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딱 한 번 2kg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대물을 걸었으나, 수면에 채 떠오르기도 전에 별안간 나타난 날새기 떼에게 날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황급히 채비를 바꾸자 이번에는 날새기, 가다랑어 등이 지그를 물고 내달렸다. 마이클과 내가 차지한 고물에서는 숨 가쁜 드랙음이 멎을 틈이 없었다.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거대한 그림자
“스스스스스!”
잡어에 한눈을 팔던 사이 전갱이를 매달아놓고 베일을 젖혀둔 릴에서 줄이 한없이 풀려나가고 있었다. 이미 스풀의 원줄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으나 억지로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돛새치의 부리는 뼈처럼 단단하기 때문에 바늘이 잘 박히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챔질에 승부가 결정된다.
침착하게 하나, 둘, 셋! 저 멀리서 육중함이 줄을 타고 전달되는 동시에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거대한 검푸른 그림자가 시선을 강탈했다. 드랙음이 쩌렁쩌렁 울렸으나, 이윽고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마이클과 라메이라스 형제가 채비를 거두고 내 쪽으로 몰려들어 무언가를 다그쳤으나 귀담을 겨를이 없었다. 검은 그림자가 길길이 날뛰자 낚싯대가 몹시 흔들렸다. 갈수록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거구의 백인에게도 맞도록 설계된 부시리, 방어용 포핑대가 왜소한 내게 몹시 거추장스러웠다. 아예 손잡이를 가랑이에 대고 뒤로 벌렁 드러눕듯 하며 줄에 하중을 실었다.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 지나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낚싯대가 내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려던 즈음, 노련한 상대가 전략을 바꿔 깊은 수심으로 곤두박질했다. 그러나 나는 표층을 지배하는 돛새치에게 심연은 익숙한 영토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돛새치로서는 궁여지책을 쓴 셈이었다. 내심 승리를 장담하며 쾌재를 불렀다. 저린 등과 팔을 다그치며 펌핑을 이어가자 물 밖으로 쇼크리더가 드러난다. 마침내 돛새치가 날개 꺾인 거대한 새처럼 수면을 덮으며 펄럭였다. 좀 전에 어뢰처럼 솟구치던 짙은 갈색의 몸뚱이는 허옇게 바래 있었다. 가이드 제노가 장갑을 낀 양손을 조심스레 부리에 댔지만 돛새치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이겼다! 해냈다!
하나, 둘, 셋! 길이 2.5m, 무게 40kg의 돛새치가 뱃전에 걸터앉은 내 양 무릎 위에 올려졌다. 촬영을 위해 녀석의 검고 매끈한 돛을 활짝 펼치자 금세 파란 반점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친구들의 카메라에서 일제히 셔터 소리가 울렸다. 그 짧은 치욕의 순간만 참으면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돛새치는 주먹만 한 눈알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걱정 말아라. 헤밍웨이는 너를 가지고도 허무한 말년을 보냈지만, 나는 너를 놓아주는 대신 오래오래 추억하며 행복하겠다. 부리를 붙들어 녀석을 바다에 담그고 입 안에 물을 밀어 넣어주자 산소를 회복한 몸이 다시금 검푸른 빛을 띠었다. 마침내 녀석이 갈 준비가 되었다는 듯 몸을 홱 비틀었다. 나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장엄한 생명체가 서서히 바다와 하나 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돛새치의 경이로운 실체에 압도되어 루어로 낚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대어를 낚았다는 성취감도, 고된 일정과 멀미로 인한 피로도 느낄 겨를 없이 첫날 일정을 몽롱한 상태로 마무리했다. 남은 이틀간 우리 일행은 생미끼로 30kg급의 돛새치를 아홉 마리나 더 낚으며 많은 손맛을 즐겼다.   

 

1 말레이시아 롬핀 앞바다에서 낚은 돛새치를 품에 안은 필자. 길이 2.5m, 무게 40kg의 거구다. 이 정도면 롬핀에서 낚이는 돛새치 중 큰 씨알에 속한다.
2 수면에 모습을 드러낸 돛새치.
3 마카오 낚시인 클라우디오가 배스낚시 장비로 30kg급 돛새치와 맞서고 있다. 릴이 200m 권사량만 확보하면 제압하는 데 문제는 없다.
4 롬핀 가이드 퐁이 돛새치를 돌려보내기 전에 산소를 공급해주고 있다.
5 수면 위로 솟구친 돛새치. 싱가포르 낚시인 마이클 킴이 낚싯줄의 장력을 유지하며 돛새치의 바늘털이에 대처하고 있다.
1 돛새치를 돌려보내기 전에 한 컷. 어체의 점액은 산성으로 피부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빨리 씻어내야 한다.
2돛새치 생미끼낚시에 필수품인 옥토퍼스훅.
3 롬빈에서 사용한 돛새치용 루어낚시 장비. 라이트 포핑대와 8천번 스피닝릴, 3호 합사 원줄, 100파운드 모노필라멘트 쇼크리더가 필요하다. 루어는 최대 길이 150mm를 넘지 않는 플러그를 사용해야 하며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싱글훅만을 사용한다.
4 돛새치와 맞서는 중. 보트 밑에서 끌어낼 때는 날카로운 부리를 조심해야 한다.
5 롬핀 항만. 롬핀은 전 세계의 낚시인이 찾는 돛새치 낚시터다.
6 수면 위의 갈매기 떼. 그 아래에 돛새치가 있다.
7에기로 팁런을 시도해 낚은 무늬오징어.
8 롬핀 항만. 여기서 보트를 타고 30분만 나가면 돛새치 낚시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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