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장바구니 주문배송조회 고객센터
과월호신청
Home> 호황낚시터 > 해외낚시여행기
해외낚시-웨스트파푸아 파푸안배스 조행기 I got a big one!
2014년 11월 3562 5257

해외낚시

 

웨스트파푸아 파푸안배스 조행기

 

I got a big one!

 

 

조홍식 理學博士, 루어낚시 첫걸음 저자

 

낚시인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와 같이 꼭 낚아보고 싶은 그런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그 대상어는 대어이기도 하고 신기한 희귀어이기도 하며 전설에 나올 법한 괴어이기도 하다. 이번 조행기는 나의 낚시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고생 끝에 낚은 그런 이야기이다.
낚시 버킷리스트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고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입시에 몰두하던 시절, 호의인지 악의인지 친구 녀석이 ‘사냥꾼 이야기’라는 책 전질을 내 손에 쥐어주었고, 그 내용은 가뜩이나 낚시 다니느라 공부 안 하던 나를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아프리카가 주 무대인 유명한 엽사 J.A.헌터와 만주벌판을 누비던 바이콥의 이야기며 구한말의 명포수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물가에 나온 동물을 덮쳐 잡아먹는 괴어 타이멘의 이야기도 나와 있었다. 아마도 그때 세계의 특별한 물고기들을 낚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족을 달자면, 그 책은 1970년대 전남일보에 연재되던 번역물을 1980년에 묶어 출판한 것이었다. 또한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든 그 친구는 의사가 되어 환자를 돌보고 있고 어제도 그 친구와 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였다.

 

  ▲뉴기니섬의 인도네시아 영토인 웨스트파푸아의 낚시여정. 강을 따라 오지로 들어가고 있다.

  ▲마지막 날, 마지막 루어로 낚아낸 20kg급 파푸안배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놈과 싸우느라 완전히 탈진했다.

  ▲원주민 마을의 여인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원주민 촌장(가운데)이 탐사팀의 대장 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개발의 오지, 뉴기니 섬 인도네시아령으로
실은 작년 가을에 웨스트파푸아 지역으로 낚시를 가기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주 북쪽 인도양에 위치하는 뉴기니 섬은 절반이 나뉘어서 동쪽은 파푸아뉴기니이고 서쪽 절반은 인도네시아에 속한다. 그래서 뉴기니 섬의 인도네시아령 쪽을 웨스트파푸아라고도 부른다. 2년 전부터 국경에 인접한 강으로 개척 탐사낚시를 떠나는 팀이 만들어졌고 참가의뢰가 들어왔다. 그 장소는 낚시인이 들어간 적이 없고 현지 부족 사람들도 백인을 처음 보았다는 믿기 힘든 정보와 1970년대까지는 식인종이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오지 중의 오지로 20년 전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족 - 높은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는 풍습이 있는 부족 - 도 처음 발견된 그런 장소이기도 하다. 당연히 참가하려 했지만, 개인적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힘든 기회를 흘려보내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금년 이른 봄에 또다시 참가의뢰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작년의 그 포인트에서 상류지역을 탐사한다는 정보였다. 작년에는 강의 하구 기수역과 중류에 걸쳐 탐사해, 미터급의 바라만디가 다수 낚였고 상류지역은 대형 파푸안배스가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자세하게 알아볼 것도 없이 바로 예약을 하고 비용도 완불해 버렸다. 파푸안배스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파푸안배스는 언젠가 꼭 낚아보고픈 그런 버킷리스트의 하나이자 담수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동급최강의 물고기가 아닌가!
파푸안배스를 낚기 위해 파푸아뉴기니가 아니라 인도네시아로 간다는 사실이 의외였지만, 어쨌든 장소는 같은 뉴기니 섬이다. 또한 2013년 IGFA의 세계최대 기록어에 대한 인기투표가 있었던 모양인데 여기서 최고 인기어로 등극한 것이 파푸안배스라는 사실도 내 마음을 펌프질하기에 충분했다.
예약을 하자마자 태클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낚싯대. 전용 로드가 개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한 번도 낚아보지 못한 물고기라 적절한 감을 잡는 것이 과제였다.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수집하자 역시 정글의 강에서 좁은 스트럭처를 노리는 바라만디 태클을 극대로 강화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파푸안배스는 그 힘이 상상을 초월하고 20kg급이 출몰한다는 것. 유사한 어종인 맹그로브잭이나 바다의 레드스내퍼를 낚아본 경험을 살려 이에 대응할 낚싯대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결국 지깅로드용의 블랭크를 구해 길이 5.5피트, 1&H로 휴대가 편리한 강력한 낚싯대를 완성했다.
다음은 릴. 베이트캐스팅릴을 사용하는데 문제는 드랙의 파워. 드랙이 강한 지깅용은 캐스팅에 난점이 있어 탈락. 캐스팅용으로 드랙이 최대 10kg 이상 나오는 릴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폭 5m, 수심 5m에서 순간적으로 장애물로 돌진하는 20kg의 괴물을 강제 집행할 그런 릴이 필요했다. 캐스팅용은 드랙이 보통 5~7kg 수준이라 모두 사용불가였는데, 미국 버전의 일부 릴 중 머스키(대형 파이크)낚시용 릴이 최대 드랙 10kg의 모델이 있어서 주저 않고 구입했다.
루어의 선택은 파푸안배스 낚시를 자주 가는 일본과 싱가포르 낚시인들이 선택하는 루어 정보를 모아 빅베이트와 같은 대형 플러그 위주로 준비를 마쳤다. 또한 부착되어 있는 바늘과 스플릿링을 모두 한두 단계 더 크고 강력한 것으로 모두 교체하였다. 나중에 현장 상황이 달라져 주역으로 생각한 루어는 모두 불필요한 잉여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릴에는 PE 5호를 감고 100파운드의 나일론 쇼크리더를 조금 길게 2m 정도 PR노트로 연결하였다. 레벨와인더에 걸림 없이 통과시키기에는 매듭이 없는 마찰계 연결법이 필요했다. 더구나 도구(보빙)를 사용하는 PR노트 외에는 만족할 만한 강도를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남은 것은 열대정글의 오지로 가는 만큼 각종 서바이벌 필수품.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그 의사친구에게 말라리아 예방약을 처방받아 들고서 출발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번 조행이 나의 낚시인생에서 가장 힘든 여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번 탐사조행 참가자는 총 4명. 기획자는 호주의 나가하라, 일본에서 온 30세의 이토(伊藤), 나, 그리고 가이드 역할의 레오(Leo)였다. 레오는 인도네시아어, 영어, 스페인어가 능통한 프랑스인으로 낚시가 좋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뉴기니 섬의 강은 물론 주변 섬들을 이미 통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참가자 4명과 배를 모는 선장, 조리 담당인 그의 조수까지 해서 총 6명이 우리 일행이었다.

 

원주민 촌장의 환대
그런데 예정대로라면 티미카에서 동쪽 국경 방향으로 가야 하건만 우리들은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 이유는 작년에 탐사한 장소의 상류를 올 봄에 레오가 다시 답사하였지만 파푸안배스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뉴기니 섬에서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호주 북부에 다른 어종은 다 똑같이 서식하면서 파푸안배스만 없는데, 국경 부근의 수계가 마치 호주 북부와 동일한 생태계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예정과 다른 장소이건만 동쪽이나 서쪽 모두 미지의 세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현장까지의 여정은 이렇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카르타까지 8시간 반의 비행, 자카르타에서 반나절 대기하고 티미카(Timika)까지 6시간의 비행이다. 티미카는 뉴기니 섬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다국적 기업이 소유한 금광개발 기지이다. 작지만 제법 활기찬 그런 장소이다. 여기서 일박하고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자동차로 한 시간 이동, 이름도 없는 작은 항구에서 인도네시아식 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길쭉한 보트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6시간을 또 가는 것이다. 옆으로 앉으면 발을 겨우 뻗을 정도 공간의 배에 짐을 모두 싣고 파도를 헤치며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6시간을 항해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끔씩 내리는 소나기에 우비를 입었지만 그대로 푹 젖어 버린다. 허리와 엉덩이의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를 즈음에 목적지인 강의 하구가 보였다.
이름도 모르는 강의 하구에는 마치 텐트촌과 같은 원주민의 부락이 있었고 우리들은 그곳에 상륙했다. 알고 보니 강 중류에 마을이 있는데 일부가 이곳 강 하구 모래톱에 나와 살고 있다고 한다. 도착과 동시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방인을 환경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래봐야 모래밭에 자리를 깔고 어른들만 둘러앉아 우리들이 선물한 담배를 피우고 - 원주민들의 최고 기호품은 담배와 설탕이다. - 그들이 만들어주는 매우 달디 단 커피 한 양동이를 다 비울 때까지였지만 말이다. 다음으로는 강을 30분 정도 거슬러 올라 마을로 이동, 먼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촌장님께 방문의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만일 이방인이 함부로 숙영을 하거나 자연물을 훼손하면 그것은 정말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다. 실제 세계 어디를 가도 대자연은 원주민의 소유물로 되어 있다. 이방인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의식은 전통적으로 뿌리가 깊기 때문에 허락은 필수과정이다.
하구에서 몇 사람을 배에 태우고 같이 촌장을 찾아간 우리는, 팀의 대장인 레오가 나서 이곳에 온 경위와 물고기를 잡다가 돌아가겠다는 허락을 구했다. 물론 담배, 설탕, 의약품 등의 선물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촌장은 캠핑을 하지 말고 집을 내줄테니 그곳을 이용하라는 극진한 대접을 해 주었다. 이후로도 촌장은 이 집 앞에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며 24시간 경비를 서게 하는 것은 물론, 낚시에 쓸 만한 작은 배도 빌려주었다. 아침이면 우리를 찾아와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이며 어디가 좋은지를 레오와 한참 의논하기도 했다. 더욱이 조수를 두 명 붙여주었는데, 이 두 청년은 배를 모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뭇가지에 걸린 루어를 손수 떼어주는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

 

  ▲웨스트파푸아 강변 마을의 한가로운 풍경.

  ▲나가하라가 낚은 맹그로브잭.

  ▲가슴 뛰는 첫 낚시. 괴물급 파푸안배스를 낚을 꿈에 부풀었다.

  ▲4일째 날, 강의 최상류 정글수로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일본 낚시인 이토가 낚은 바라만디.

  ▲괴력의 소유자 GT. 그러나 파푸안배스 낚시에선 GT도 잡어에 불과했다.

  ▲우리가 묵었던 하늘색 숙소.

  ▲바다의 간조시간에 수로 뱃길이 끊겨 할 수 없이 해안을 걸어 철수하는 도중에 한 컷.

  ▲모든 낚시를 마치고 철수하는 길. 이 작은 보트로 폭우를 뚫고 6시간 항해했다.

  ▲감성돔을 닮은 브림(미나미 구로다이).

 

파푸안배스 낚시에선 GT도 잡어
낚시가 시작되었다. 열대우림 지역의 좁고 복잡한 강은 양 옆이 거의 대부분 맹그로브 숲으로 크로커다일 악어가 튀어나올 것 같은 장소들이 널렸다. 물속에 쓰러진 고목 주변이 특급 포인트로 보트를 가까이 붙이고 가벼운 캐스팅이나 피칭으로 루어를 장애물에 타이트하게 운용하면 입질이 오는 그런 형태이다. 립이 크고 긴 딥다이빙 미노우나 크랭크베이트가 필요한 상황이 대부분이었는데 지참한 루어 중 적합한 것이 다섯 개밖에 안 되는 실정이었다. 현장 정보를 얻지 못한 것도 있지만 ‘대어=큰 루어’의 공식에 너무 몰두한 결과였다. 긴 일정에 루어가 모자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아무튼 첫날 40cm가 채 안 되는 파푸안배스를 낚아 감동을 받았지만, 그 이후 벌어지는 일은 솔직히 감당이 되지 않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바라만디가 곧잘 낚였는데 그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었다. 레오는 바라만디 시즌이 아직 아니라서 작은 것만 낚인다지만 평균이 80cm급으로 제일 작은 게 70cm가 넘었다. 호주 케언즈에서 40cm급이면 씨알 좋다고 하던 기억과 50cm를 낚아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던 때가 허무해졌다. 눈앞에서 점프하는 대형 바라만디는 사흘째부터는 탄성도 지르지 않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하류지역이나 바다의 밀물 영향이 강한 장소에서 낚이는 능성어 종류나 맹그로브잭과 같은 어종은 잡어가 되었고, 70cm가 넘는 타폰의 바늘털이도 그저 그렇게 되었다. 기수역에서 나가하라씨가 낚은 27kg 정도 되는 GT도 목표를 어긋나버리니 감동을 주지 못했다.
GT전문의 내가 GT가 낚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솔직히 이번이 처음이었다. 초강력 입질과 배를 끌고 나가는 그 힘에 처음에는 세계기록 파푸안배스라는 착각을 모두가 했었나보다. 어딘가로 처박히지 않고 모래밭으로 나가는 순간 뭔가 다르다는 느낌, 한참 만에 올라온 GT를 보고 시간만 뺏겼다는 허탈감은 컸다.
다른 어종과는 다른 묘한 매력이 파푸안배스에게는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 단단한 낚싯대가 고꾸라지고 작은 배가 뒤집어질 것 같은 저항은 소름이 돋았다. 릴의 드랙을 더 이상 돌릴 수 없을 만큼 조여 놔도 스풀은 헛돌고 아무리 힘으로 버텨도 1m만 움직이면 수중의 나무를 감아버리거나 처박혀 그것으로 끝이었다. 너무 굵지 않냐 하던 100파운드 쇼크리더가 모두 끊어져 나가고 50kg 강도를 자랑한다는 스냅은 입질 한방에 구부러져버렸다. 루어가 부서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참가자 전원이 모두 두 차례 이상 쇼크리더가 끊어지거나 바늘이 망가져 괴물급 파푸안배스는 얼굴도 보질 못했다. 작은 파푸안배스를 두 마리 낚은 내가 마지막 날까지 유일한 성공이었다.
4일째 날은 강의 최상류 정글수로를 비집고 들어가 몇 시간에 걸쳐 다른 강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원주민들도 거의 가본 적이 없다는 장소라고 해서 낚시에 미친 우리 모두는 기대에 차 있었으나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예상보다 수량이 적었고 바다의 간조시간이 되자 급격히 줄어드는 강의 수위에 상류의 수로가 없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저녁 만조 시간은 당연히 수위가 높지 않을 테니 다음날 아침 만조를 기다려야 할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강의 하구로 나가 바다를 통해 돌아가자는 의견에 하구까지 나갔지만 해안의 높은 파도를 넘지 못하는 조각배가 전복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곳에서 죽는다면 오랜 기간 아무도 모를 것이기에 생명을 건 모험은 포기. 마을 청년의 말을 따라서 해안을 걸어가기로 했다. 결국 하루 종일 뉴기니 섬의 해안을 낚싯대를 든 거지꼴이 되어 걷고 또 걸었다.

 

종료 두 시간 전 망가진 루어에 찾아온 입질
매일 비가 왔다. 그것도 꼭 폭우가 밤에 내렸다. 물론 낮에도 한두 차례 비가 왔는데 열대우림 기후라는 것이 이런 것 같았다. 건기와 우기로 나뉘지 않고 일 년 내내 이렇다고 한다. 덕분이랄까? 예상외로 모기가 없었다. 아마도 비에 다 씻겨 내려가 버리는 모양이었다. 과거 비슷한 환경의 호주 북부를 찾아갔을 때는 모기와 샌드플라이의 공격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해 강력한 모기 기피제도 가져왔건만, 이곳 정글은 의외로 쾌적했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노숙자 모습이 되어 갔다. 강물은 맑지 않고 흙탕물이라 물보라를 맞으면 다 진흙얼룩이 된다.
현지 생활은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낚시를 나간다. 어둑해지면 돌아와 하루 한 번 마을의 우물에서 물 한두 바가지로 씻는다. 한 마리 키핑해온 바라만디로 요리를 해 인도네시아식 볶음밥이나 인스턴트 라면과 함께 배를 채운다. 간이침대에 모기장을 치고 누우면 전원 10분 안에 코를 골게 된다.
파도가 높아지는 걸 걱정하던 선장이 서둘러 티미카로 돌아가자는 의견을 내 일정을 하루 당기기로 했다. 마지막 날, 이토군에게 쓸 만한 루어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가져온 루어가 모두 큰 나와 반대로 모두 작은 것이 문제였다. 나가하라씨가 최후의 한 개를 빌려주기로 했다. 이걸 잃어버리면 파푸안배스는 물 건너가게 된다. 나 역시 2개밖에 남지 않은 딥다이빙 루어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마지막 날은 지금까지 파푸안배스 입질을 받았던 장소만을 돌아보기로 했다.
나가하라씨가 루어를 부숴가며 파푸안배스를 한 마리 올렸다. 18kg 정도 되는 크기였다. 모두가 감동을 받았지만 나도 이토군도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며칠간의 경험으로 입질이 잦은 루어의 크기와 색상을 알았지만, 이에 해당하는 루어는 이미 반파된 상태로 태클박스 안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잠시 그늘에 배를 고정하고 쉬면서 점심을 먹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푸안배스의 우악스런 이빨에 구멍 나고 부서진 루어를 꺼내 구멍을 순간접착제로 보수하고 반쯤 짓눌린 립을 칼로 다듬었다. 구부러진 라인 아이를 잘 폈지만 한 번 더 충격을 받으면 뽑혀나가거나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이 루어로 승부를 걸 수밖에는 없었다. 바늘을 다른 루어에서 떼어 달고 던지자 역시 이 루어에 입질이 왔다. 루어를 문 파푸안배스는 쟁반만 한 사이즈였는데 낚았다고 생각한 순간 입에서 루어가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바늘이 입에 박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흡입하는 입질이 아니라 완전히 씹는 입질을 하는 파푸안배스는 루어의 두께보다 한참 더 큰 바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부착한 바늘도 순정품보다 크지만 더 큰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앞 바늘만 더 큰 것으로 교체했다. 플로팅 루어가 슬로우 싱킹이 될 정도가 됐지만 다행히 충분히 액션은 했다. 이 루어의 튜닝이 적중한 것이다.
바늘 교체 후 첫 캐스팅에서 ‘쾅’하는 충격적인 입질이 들어왔다. 불안정한 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몸을 낮추고 반쯤 쭈그려 앉은 상태에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어딘가로 들어가려는 괴물을 완력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몇 번쯤 크게 챔질을 했다. 그 힘에 거부감을 느꼈을까? 파푸안배스가 방향을 바꾸면서 꿈틀댔고 그 순간에 잡아끌어 파푸안배스의 머리를 들었다. ‘우두둑’하는 느낌, 파푸안배스가 입을 벌려 아마도 바늘이 하나 빠졌거나 루어가 부서진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한 번 수면에 모습을 보인 파푸안배스는 낚싯대를 부러뜨릴 기세로 배 밑을 파고들었다. 또다시 버티기. 이후 두 번 더 배 밑을 파고들었지만 이미 배는 장애물에서 벗어난 곳까지 이동해 있었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비늘을 가진 파푸안배스는 염분 스트레스를 받아 벌겋게 변색되어 있었고 아무리 작게 봐도 20kg은 넘어보였다.

 

파푸안배스 세계기록을 그냥 놔주었나?
일순간의 카타르시스! 이것을 느끼고자 고행을 감수했구나 하는 감격에 젖어들었다. 사진을 찍고 놔주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에 역시 터프한 물고기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이토군 차례였다. 이상하게도 이토군에게만 파푸안배스의 입질이 없었는데 빌린 최후의 루어로 연속 두 마리를 낚는 기염을 토했다. 나나 이토군의 파푸안배스는 낚시 종료 2시간을 남겨두고 벌어진 드라마였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마을로 돌아가면서 파푸안배스의 IGFA 세계기록이 50파운드(22.68kg)인 것을 기억해냈다. 혹시 이거 세계기록을 세운 것은 아닌지 계측을 철저히 할 걸 그랬나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지만, 기록경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기에 그냥 그렇다고 해두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에 기상하여 파도와 폭우를 뚫고 6시간을 항해한 우리 일행은 티미카의 허름한 호텔에서 죽은 듯이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자카르타를 경유하여 야간비행 끝에 인천에 도착한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다가 좌석 손잡이 끝에 바지가 걸려 속옷이 드러나도록 찢어지는 불상사를 맞았다. 온몸은 몸살 나기 직전에다 거지꼴인 내가 그 정도로 공항철도를 못 탈 것도 아니었다.  

 

 


※호주 케언즈, 웨이퍼, 다윈 등 퀸즐랜드 및 노던테리토리의 낚시,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빅게임, 파푸아뉴기니 등의 낚시 정보 (영어, 일본어 대응) Outdoors Web Australia co. (웹사이트 www.fishing-outdoors,net) 담당 : Mr. Nagahara Hitoshi

※기사에 게재된 사진의 저작권은 저자 및 Outdoors Web Australia co.에 있음을 알립니다.
copyright(c)2014 All rights reserved by 조홍식 & Outdoors Web Australia co.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