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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최남단에서 기지개 켜다_마라도의 봄, 긴꼬리벵에돔 戀歌연가
2011년 03월 7047 657

국토 최남단에서 기지개 켜다

 

마라도의 봄, 긴꼬리벵에돔 戀歌연가

 

ㅣ허만갑 기자ㅣ

 

긴꼬리벵에돔의 성지인 국토 남단 마라도가 긴 겨울을 보내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 겨울 사상 유례 없는 13도 수온까지 떨어졌던 마라도. 그 얼음물 속에서도 유영을 멈추지 않은 씩씩한 벵에돔들이 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쌍퉁찬여에 내린 낚시인이 크지 않은 긴꼬리벵에돔을 막 낚아 올렸다.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간조 무렵인데도 파도가 여를 쳐올리고 있다.

 

 

내가 처음 마라도에 갔던 때가 93년 겨울이다. 낚시기자가 되어 두 번째 맞는 겨울이었다. 그때 명당도 아닌, 올란덕 가기 전의 신작로방파제에서 얼추 50cm 되는 벵에돔을 낚았다. 역광에 찌가 묻혀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언가 대끝을 툭툭 치기에 홱 채버렸더니 그 후로는 귀에서 윙윙 바람소리가 들렸을 뿐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생 처음 보는 시커먼 고기가 파도 위에 떴는데 마침 옆에 있던 낚시꾼이 뜰채를 대줘서 무사히 올렸다. 고기한테 혼난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다. 녀석의 괴력에 정말 나는 혼이 나갔던 것이다. 그 길로 나는(감성돔이 최고인 줄로만 알았던) 벵에돔낚시에 미쳐버렸다. 
그때 마라도에 벵에돔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면, 그날 오후 제주도 등대낚시 황태진 사장과 모슬포꾼 송경수씨가 가파도의 어선을 불러 타고 쌍퉁찬여로 들어갔는데 밑밥통 세 개를 벵에돔으로 꽉 채워서 나왔다. 대부분 40cm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나는 벵에돔은 다 그만한 사이즈만 낚이는 줄 알았고, 실제로 그때는 작은 벵에돔은 마라도에서 낚기도 어려웠다. 
당시엔 낚아내는 양보다 터뜨리는 양이 많았다. 목줄을 1.5호 이상 쓰면 물고기가 안 무는 줄 알던 시절이라 5짜 안팎의 벵에돔을 1.5호 줄로 상대했으니 터지는 게 다반사요 낚으면 천운이었다. 그때 모슬포꾼 송경수씨가 2호 목줄을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2호 목줄에도 잦은 입질, 목줄 굵기 상관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 4~5호 목줄을 들고 마라도로 가는 꾼들이 보면 웃을 일이다.

 

▲  제주 낚시인 원영배(왼쪽), 현한수씨가 마라도 선상찌낚시에서 낚은 45cm와 37~38cm 긴꼬리벵에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선상찌낚시 성행 전엔 대마도보다 벵에돔 많았다

 

그런 마라도가 쇠퇴한 것은 내 기억으로는 96년 아니면 97년이었던 것 같다. 그 무렵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 해협에서 선상찌낚시가 대대적으로 유행하여 매일 수십 척의 배가 떴는데 나도 그때 처음으로 선상찌낚시라는 것을 해봤다. 그야말로 일투일획. 35~40cm 긴꼬리벵에돔의 정신없는 입질 속에 물칸에 넣을 시간도 없어 뱃전에 그냥 집어던졌는데 나중엔 갑판이 온통 흑갈색 긴꼬리벵에돔으로 뒤덮였다. 그 고기를 다 찍으면 독자들에게 욕먹을 것 같아서 굵은 씨알만 따로 모아서 촬영했다. 나는 그 해에 가파도와 마라도의 긴꼬리벵에돔 씨가 마르는 줄 알았다. 우리 배만 그렇게 낚은 것이 아니라 20여 척의 배가 다 그만큼 낚았고 그런 조황이 몇 달간 지속되었으니… 그때 본류에 크릴을 흘려서 어군을 모으는 선상찌낚시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장차 이 낚시가 확산되면 갯바위낚시의 종말을 가져오겠다’ 싶었는데 불안감은 현실이 되어 제주발 선상찌낚시는 제일착으로 여수에 상륙하더니 통영, 완도로 확산되어 갯바위 감성돔낚시의 급속한 쇠퇴를 야기하였다.
요즘 낚시인들은 “왜 우리나라엔 남녀군도나 대마도 같은 벵에돔 낚시터가 없을까” 한숨짓지만 내가 90년대 초에 경험한 마라도는 남녀군도는 몰라도 대마도보다는 윗길의 벵에돔 천국이었다.

 

▲  살레덕방파제 주변 풍경. 여들이 산재한 벵에돔낚시 명당이다.

 

 

일기예보를 비웃는 모슬포의 바람

 

1월 21일 제주도를 찾았다. “마라도 쌍여(쌍퉁찬여)와 살레덕여에서 중형급 긴꼬리가 마릿수로 낚인다”는 제주 도남낚시 조성호 사장의 품질에 낚였다. 때마침 한파가 수그러들면서 바람도 ‘초속 7~11m에서 6~9m로 약화된다’고 했다.
오전 11시, 제주시 이호동의 낚시점을 출발해 모슬포로 향했다. 평소 마라도 여치기는 오후 1시쯤 출발하는데 최근 여러 낚시점의 포인트 다툼이 심해서 일찍 가서 명당을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황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역시 마라도의 인기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중산간도로변의 억새가 좀 많이 흔들린다 싶더니 모슬포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건 숫제 주의보 바람 아냐? 기상예보를 이따위로 해도 되는 거야!” 그러나 누구를 탓하리오. 제주도에서 북서풍이 가장 세차게 부는 모슬포와 고산은 종종 이처럼 기상예보와 전혀 다른 강풍이 불어재낀다. 마라도의 겨울 벵에돔은 날씨가 낚아준다는 말이 있다. 작은 여에 내려서 본류를 노려야 긴꼬리벵에돔을 낚을 수 있는데 바람이 세면 여에 상륙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인승 보트에 올라 마라도로 출발. 갈 때는 북서풍을 등지고 가지만 나중에 올 때는 이 바람을 고스란히 안고 와야 할 텐데 파도를 덮어쓰며 철수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 아직도 거센 들물 조류가 흐르고 있어서 파도가 약한 가파도 동쪽으로 우회해서 항해했다. 이윽고 마라도 북동쪽에 접근했지만 쌍퉁찬여는 파도를 덮어쓰고 있었다. 쌍여뿐만 아니라 목잘린여, 높은여까지 모두 파도가 쳐 올랐다. 하는 수 없다. 물이 더 빠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는 최남단으로 가서 보트를 묶어놓고 섬에 올라가 라면으로 간단한 요기를 했다. 최남단비 앞에는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이 계속 드나들었다. 모슬포와 송악산 밑에서 여객선과 유람선이 수시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옛날엔 겨울 마라도엔 낚시꾼들밖에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낚시꾼을 보기 힘들다.   
오후 4시쯤 간조에 임박하여 살레덕여에 내렸다. 살레덕방파제와 연결되어 있지만 간조 때가 아니면 건너올 수 없어 주로 보트로 내리는 이 여는 마라도 제일의 썰물 명당 중 하나다. 그런데 조류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조류가 남단 쪽으로 흘러야 하는데 쌍퉁찬여 쪽으로 흘렀다. 사리물때에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오늘 같은 물때엔 썰물 본류에 가장 인접한 작지끝이 명당이다. 그러나 강한 북서풍에 작지끝은 언감생심이다.
다행히 조류가 남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조류에 밑밥을 치고 찌를 흘리자 긴꼬리들이 원줄을 가져간다. 그러나 씨알은 30cm 잔챙이. 자리돔이 너무 먼 거리까지 나가 있었다. 그것은 곧 먼 거리에도 큰 벵에돔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해거름 철수직전에 35cm급 긴꼬리벵에돔 두 마리가 연타로 낚였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편 보트에서 선상찌낚시를 한 꾼들은 45cm와 40cm 긴꼬리벵에돔을 낚았다. 일반 벵에돔은 한 마리도 없었다.

 

 

▲  초들물에 목잘린여에서 40cm 긴꼬리벵에돔을 낚아낸 제주 도남낚시 조성호 사장.

 

목잘린여의 아침 반짝승부

 

이튿날, 오전 들물을 보기 위해 새벽출조를 나섰다. 새벽출조는 드문 일이지만 “촬영거리를 낚아야 한다. 들물에 쌍퉁찬여에 내릴 수 있으면 조황은 따논 당상 아니냐”고 조성호 사장에게 떼를 써서 보트를 띄웠다. 그러나 모슬포에 도착해보니 빌어먹을 바람이 여전히 세다.
쌍퉁찬여에는 내리기 힘든 여건이라 바로 뒤쪽의 목잘린여에 내렸다. 이곳도 들물 포인트로서 쌍여에 낚시인이 없으면 목잘린여에서 밑밥으로 긴꼬리벵에돔을 유인할 수 있다. 초들물의 조류가 은근하게 흐르고 있었다. 느낌이 좋다. 
첫 흘림에 강명필씨가 큰 입질을 받았다. 찍찍 드랙이 풀리더니 여에 박혀 버렸다. “벵에돔 같은데…” 혹시나 녀석이 빠져나올까 기다려봤지만 요지부동. 결국을 목줄을 끊었다. 두 번째 입질도 강명필씨가 받았다. 드랙이 사정없이 풀려나가자 “부시리 같다”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내 질주를 멈추고 쿡쿡 처박는 모양이 부시리는 아니다. 대형 벵에돔이 틀림없다며 이를 악물고 끌어냈는데 녀석을 보는 순간 맥이 풀렸다. 50cm가 넘는 자줏빛 혹돔이었다. 그렇다면 처음 입질도?
그때 조성호 사장의 대가 휘었다. “이건 긴꼬리야!” 찌가 쏜살같이 사라지면서 세차게 줄을 차고 나가는 건 긴꼬리벵에돔의 전형적 입질이다. 조 사장은 드랙 방출 하나 없이 쌍여 쪽으로 내달리는 녀석을 강제집행으로 잡아 돌렸다. 두어 번 내리박다가 40cm 긴꼬리벵에돔이 수면으로 이끌렸다. 굵은 목줄(4호 목줄을 사용했다)을 써서 속전속결로 무자비하게 처리하는 것이 조성호씨의 스타일이다. 물론 드랙을 활용한 지구전을 펼치면 가는 목줄로도 낚아낼 수는 있다. 그런 조마조마한 낚시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을 뿐이다.      
그 후 조류가 세지면서 입질은 끝나버렸다. “10물의 조류가 왜 이렇게 센 거야? 역시 마라도는 사리물때는 피해야 돼.” 강명필씨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급류가 터지면서 잡어 입질도 사라졌다. 물색도 감성돔 물빛처럼 흐려졌다. 조성호 사장은 “올 겨울은 잔잔한 날이 열흘에 겨우 하루 꼴이니 하늘 원망하다 일찍 늙겠다”고 푸념했다.

 

▲  둘째 날 아침 살레덕여에서 중소형 긴꼬리벵에돔으로 마릿수 재미를 본 채규만씨. 먹음스런 부시리도 낚았다.  

 

 

설 연휴 이후의 상황

 

마라도의 조황은 설 연휴기간에 급상승했다. 한파가 끝나고 바다가 평온해지면서 긴꼬리벵에돔의 마릿수 조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갯바위에선 씨알이 평균 30cm급으로 잘았고 어쩌다가 40cm 넘는 씨알이 한 마리씩 낚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선상낚시에선 5짜에 육박하는 긴꼬리벵에돔이 많이 낚였고 그런 대물이 하루에 10마리 이상 낚인 날도 있었다. 가파도는 여전히 부진세를 보이고 있으나 독개만큼은 굵은 벵에돔과 참돔이 곧잘 낚이고 있다.
그런데 올 겨울 제주도 수온은 사상 유례 없이 낮다. 2월 초 현재 북제주의 수온이 11도까지 떨어졌고 마라도 해역도 13도까지 떨어졌다. 예년보다 평균 2도나 낮은 수온이다. 저수온 탓에 멸치 어군이 형성되지 않아 어부들도 울상이다. 도남낚시 조성호 사장은 “올 겨울의 저수온은 냉수대 유입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쿠로시오 본류 자체의 수온이 낮아서 장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수온이 가장 낮고 3월 중순을 넘어서면 수온이 점차 오르는 법인데 올해는 1월 말과 2월 초에 최저수온으로 떨어져서 향후 수온이 어떻게 변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행히 저수온에 비하면 긴꼬리벵에돔 조황이 고마울 정도로 유지되는 편이다. 바다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아무튼 예년의 경험과 데이터를 가지고 시즌을 재단하는 것은 이제 힘든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제 한파는 끝났다. 바람은 서풍에서 점차 동풍 계열로 돌아서고 있다. 봄바람인 동풍은 모슬포와 가파·마라도에서 잔잔한 순풍이다. 마라도 쌍여와 작지끝에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고, 지금껏 공략 불가능했던 가파도 악근여와 자장코지는 바람의 의지통이 된다. 지난 연말에 긴꼬리 떼를 쏟아냈으나 그 후 내내 ‘그림의 떡’이었던 홀애미여도 상륙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이 사상 최악이었기에 제주도의 봄은 반등의 희망으로 설레고 있다.  
▒ 출조문의 제주 도남낚시 064-743-6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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