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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호, 해빙과 동시에 터졌다!
2011년 03월 9235 680

개막전부터 폭발

 

완도호, 해빙과 동시에 터졌다!

 

ㅣ허만갑 기자ㅣ

 

전남 완도군 완도호(화흥호)의 월척붕어들이 해빙과 동시에 일제히 입을 열었다. 지난 12월 21일의 월척 배출 이후 한 달 보름만의 어신이었다.
1월 내내 완도호가 잔잔해지기만 기다려온 삼공보트낚시클럽 회원들은
2월 2일에 완도호를 찾아 3일부터 5일까지 낚시를 했는데 5일 하루에만
200마리의 월척을 낚았다.

 

 

무자비할 정도로 몰아친 폭풍이 한반도에서 물러난 2월 1일, 남녘 바닷가엔 폭풍전야보다 더 끈끈한 긴장감이 흘렀다. 경기도 광명시 삼공보트낚시클럽 회원들의 안테나는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완도호였다.
지난 12월 21일 경기도 의정부의 민경천씨는 완도호에서 보트낚시로 35~38cm 월척 10여 마리를 낚았다. 그것이 2010년의 마지막 낚시였다. 그 후 무서운 한파가 전국을 휩쓸었다. 12월 말 한파 속에 완도호 출조를 감행한 의정부팀은 폭풍에 갇혀 ‘5일 동안 겨우 1시간’ 낚시하고 철수했다. 1월 말, 마침내 한파가 물러난다는 소식에 의정부와 광명의 보트꾼들은 들떠 올랐다.
1월 30일, 서울의 은지훈씨가 선발대로 출발했다. 그러나 은지훈씨는 낭보 대신 비보를 전했다. 아직 연안은 얼어 있어 보트를 띄우기 어렵고 한낮에 얼음을 깨고 보트를 띄워봤으나 입질을 못 받았다는 것이다. 스탠바이 상태에 있던 꾼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었다. ‘기온이 더 오르면 붕어들이 움직일 거야!’ 1일 밤 11시, 박현철, 김학준, 김황경씨는 광명을 출발해 450km의 장도에 올랐다. 그러나 귀성차량의 중심에 끼어 완도호까지 무려 12시간이 걸렸고 그들이 완도호에 도착했을 땐 2일 오전 11시였다. 오후 2시부터 낚시를 시작했지만 붕어는 낚지 못했다. 은지훈씨는 사흘간 바람통에서 고생만 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는데, 만일 출조일을 설날 이후로 잡았더라면 엄청난 호황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붕어의 마음을 미리 알 수 있으리오.

 

▲ 2월 4일의 보트낚시 조과를 펼쳐보이는 의정부 김학준씨 일행. 서너 마리 빼고 모두 월척이다. 5일엔 소나기 입질이 터져 한 사람이 이 만큼씩 낚았다.

 

 

마름 삭은 2m 수심의 맨바닥에서 잠영

 

3일 설날 아침, 나는 진주의 시골집에 있었다. 차례를 지내고 오전 10시쯤 박현철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직 입질이 없다고 했다. 기대해 마지않았던 완도호 취재마저 물 건너간 것인가? 허탈한 심정으로 있는데 오후 1시에 박현철씨의 전화가 왔다. “방금 연달아 네 번의 입질을 받았는데 모두 월척이에요! 가장 큰 놈은 삼십칠 센티입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날 오후 박현철씨는 월척 3마리를 더 낚았다. 제방에서 50~100m 거리의 2.2m 수심 맨바닥에 월척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드디어 붕어가 움직이는군요.”
“입질이 미약해서 처음엔 입질인 줄 몰랐는데 한 마디 찌올림에 챘더니 모두 월척이었어요.” 
4일 새벽 3시에 나는 완도호로 출발했다. 진주에서 완도호까지는 260km, 2시간 30분 거리였다. 한편 그 시각 수원의 박경환씨와 서울의 김덕기씨도 완도호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날 밤 광주에서, 무안에서, 완도호의 소식을 듣고 낚시인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엔 붕어연구소 황광인 고문도 있었고 낚시춘추의 장재혁 객원기자도 있었다. 장재혁 기자와 나는 다음날 아침 현장에서 마주치고 깜짝 놀랐다. 장 기자는 “일주일 전에 무안낚시인들이 완도호 양수장 앞 샛수로에서 월척을 비롯해 40마리를 낚았다고 해서 불원천리 달려왔는데, 취재장소가 겹치게 됐으니 어떡하냐”고 난감해했다. 대개 보트낚시 취재장소와 연안낚시 취재장소는 구분되게 마련인데 전국이 얼어 있는 지금 오직 완도호에서만 붕어가 낚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객원기자들의 동선을 면밀히 파악하지 않은 내 불찰이다. 그런데 이 날 연안낚시에선 일주일 전과 달리 붕어가 낚이지 않았다. 결국 장재혁씨는 내게 완도호 취재를 양보하고 약산호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붕어를 낚지 못해 강진 용산지와 함평의 둠벙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장정을 거듭한 끝에야 취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고생이 나로 말미암은 것 같아 죄송하기 이를 데 없다.       

 

 

▲ 수원낚시인 박경환씨가 월척붕어를 걸어 뜰채에 담고 있다. 2.2m 수심의 중앙부 맨바닥에서 월척이 솟구쳤다.

 

 

▲ "쇄빙선이 따로 없네요." 살얼음을 깨며 노를 저어 들어가고 있다.

 

3일, 4일엔 월척 30마리, 그리고 ‘경악의 5일’

 

이른 아침엔 입질이 없더라는 말에 느긋하게 보트를 펴고 들어간 시각이 오전 9시 20분. 어제 7마리를 낚은 제방권 하류(지도의 A지역)에 들어가자마자 박현철씨가 월척 2마리를 연달아 끌어낸다. 김덕기씨는 호수 중앙의 2m 수심대로 들어가서 월척 2마리를 낚았다. 10시쯤 내게도 첫 입질이 왔다. 찌톱 두 마디가 살짝 솟는 것을 보고 챘는데 33cm 월척이었다. 오전 11시엔 찌가 몸통까지 솟는 선명한 입질을 채서 37cm 월척을 낚았다. 걸면 모조리 월척이었고 대호 붕어만큼 체고가 높았다.
낮 12시, 붕어연구소 황광인 고문이 전화로 “제방 반대편 연안 부들밭에서 직공낚시를 하는 보트꾼들이 연신 붕어를 뽑아내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 말에 놀라서 돌아보니 아스라이 건너편 연안(지도의 ④번 지역)에 8척의 보트가 촘촘히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붕어들이 부들 속에 더 많이 들어있는 것인가?’ 얼른 직공낚싯대로 교체하여 양수장 쪽 부들밭(지도의 ①번 지역)으로 이동해보았으나 입질이 없었다. 두 부들밭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④번 지역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보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다시 중앙부로 돌아가서 스윙낚시를 했는데 어제와 달리 이날은 오후 입질이 부진했다. 오후 5시에 나와 조황을 점검해보니 박현철, 김학준, 김황경씨가 5마리씩 낚았고 김덕기씨가 4마리, 나와 박경환씨가 각각 3마리씩 낚았다. 어제 낚은 9마리까지 합쳐서 펼쳐놓으니 월척만 30마리가 넘는다. 물낚시 첫 출조에 기대 이상의 호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튿날의 초대박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 "완도호 월척 정말 멋지네요." 37, 38cm 붕어를 자랑하는 박경환씨.

 

▲ 연안의 갈대수초를 공략하는 보트. 수초대에선 약간 잔 씨알의 붕어가 낚였다.

 

“수 천 마리 붕어들이 끓어오르는 보일링 목격”

 

나는 촉박한 마감일정에 쫓겨 4일 저녁에 완도호에서 철수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불운이었는지는 다음날 알았다. 2월 5일 내가 편집실에서 완도호의 꾼들과 통화한 내용이다.
오전 9시 : “오늘은 아침부터 붕어가 낚이는데 입질도 시원시원해요.”(김덕기)
오전 11시 : “제방권에서 더 올라와서 정중앙으로 옮겼는데 옮기자마자 소나기 입질을 받아 12마리를 뽑았어요. 하루만 더 있다 갔으면 손맛 제대로 봤을 텐데….”(박현철)
오후 3시 : “오늘은 정신없이 나와! 스무 마리 채우고 허 부장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제 막 스물한 마리째 낚았어. 약 올라서 어떡하냐?”(박경환)
오후 6시 : “해가 거의 저물었는데 지금까지도 꾸역꾸역 낚이고 있어요. 내가 낚은 월척만 서른 마리가 넘고 다들 스무 마리 넘게 낚았어요. 살림망이 무거워 이동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박현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조황이었다. 이 날 완도호에는 50여 척의 보트가 떴는데 평균 20마리씩, 줄잡아 1000여 마리의 월척이 쏟아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삼공보트클럽의 8명이 낚은 월척만 200마리였다. 이 날 낮에는 붕어 수천 마리가 마치 바다의 삼치 떼처럼 수면에서 부글부글 끊는 보일현상도 나타났다. 박현철씨는 “이런 장관은 처음 본다! 붕어들이 참붕어를 집단으로 사냥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날 참붕어가 수면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채집망을 담그니 바글바글 들어오더라고 했다. 그러나 참붕어를 미끼로 쓴 낚시인은 없었다. 지렁이에도 월척만 낚이니 굳이 참붕어를 쓸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밤낚시를 시도한 꾼들도 더러 있었지만 밤에는 4치~7치 붕어가 낱마리로 낚였다고 한다.
그런데 2월 6일, 갑자기 입질이 끊겼다. ‘어떤 호황도 3일을 못 넘긴다’는 속설이 여기서도 재현된 것일까? 이미 살림망을 가득 채운 낚시인들은 총총히 철수했고 한 발 늦게 온 낚시인들은 땅을 쳤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7일엔 다시 입질이 살아나 평균 10여 마리씩의 호황을 거두었다. 하지만 씨알은 현격히 잘아져 7~8치가 많이 섞였고 월척은 31~32cm대로 축소되었다. 
완도호의 호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조만간 붕어들이 산란하기 위해 연안 수초대로 올라붙으면 연안낚시에서도 대박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 2000년 겨울에 월척 조황이 알려지면서 낚시터로 데뷔한 신성 완도호, 아무래도 올해에 큰 바람을 일으킬 듯하다.    

 

 

완도호(화흥호)
●면적 47만평 ●준공 1992년

 

완도군 완도읍 화흥리에 있는 대형 간척호다. 화흥호, 혹은 화흥포수로라고도 불린다. 92년 봄부터 담수를 시작했으나 염분이 희석된 후인 2000년부터 낚시가 이뤄졌다. 그 해 겨울에 보트낚시에 마릿수 호황이 펼쳐지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연안에서도 굵은 붕어들이 잘 낚인다. 외래어종이 없고 붕어의 체형이 예뻐서 완도호에 매료되는 낚시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제 시즌은 겨울이다. 가을부터 붕어 입질이 증가하다가 초겨울 낮낚시에 절정의 조과를 선보이고 2월 하순부터 봄 호황이 시작되곤 했다. 봄~가을엔 밤낚시도 잘 되지만 씨알이 잘다. 연안을 따라 수초대가 잘 발달해 있어 짧은 대가 효과적인 곳이 많다. 새우와 참붕어가 많이 자생하지만 그보다 지렁이가 잘 먹히고 하절기에는 떡밥낚시도 잘 된다.

연안낚시 포인트

전 연안에 갈대, 부들, 줄풀, 뗏장이 자라 있어 스윙낚시와 수초치기를 병행할 수 있다. 여름엔 말풀이 무성해진다. ①번 양수장 앞의 샛수로가 1급 포인트다. 최근 물낚시에 호황이 터진 곳이다. 군데군데 부들과 뗏장이 자라 있으며 앉을자리도 편하다. 양수장 앞에서 20m 가량 내려가면 보이는 부들밭도 좋다.
제방 좌측인 ②는 석축 포인트라 받침틀이 필수다. 말풀이 자라며 떡밥낚시가 잘 된다. 지렁이엔 망둥어 성화가 있지만 9치 이상 굵은 씨알이 낚인다. ③은 갈대밭이 펼쳐진 레미콘공장 앞으로 씨알이 굵은 포인트다. ④는 상류다. 이곳 부들밭에서 보트낚시에 준월척이 마릿수로 낚였다. 수심이 얕고 늦가을 밤낚시에 호황을 보이는 곳이다. ⑤번 공원 바로 옆 수문 인근과 제방은 수심이 깊어서 떡밥낚시가 잘 된다.

▒ 가는 길  해남에서 완도 방면 13번 국도를 타고 완도대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난 해안도로를 타고 15km 가량 가면 화흥포호와 화흥포항에 이른다. 내비게이션엔 ‘화흥포’를 치면 된다. 화흥포항에선 ‘노화·보길도’행 철부선이 수시로 떠서 일정이 넉넉하면 섬붕어 낚시도 즐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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