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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조사 명칼럼 - 꿈을 잃지 않은 사람
2010년 04월 75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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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지 않은 사람

 

낚시꾼이 아니기에 낚시꾼의 꿈이 부러워

 

 

| 박두석 |

朴斗錫(1921~1998)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하면서 부산의 문화예술계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부산일보 주필로 일할 당시 낚시를 즐기지 않았음에도 주변에 낚시친구들이 많았던 관계로 낚시춘추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이 글은 선생이 72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박두석 선생은 후일 한국예총 부산지회장과 연극협회 부산지회장, 마산 경남신문 사장, 마산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했다.

 

 

 

 

▲74년 가을의 김해수로

 

 

C군은 세상만사를 관조(觀照)하는 사람은 아니다. 관조는커녕 한번은 사무실에서 보던 신문을 내동댕이치고 벌떡 일어나면서, “세상에 이런 죽일 놈이 있나. 아무리 돈이 탐이 나기로서니 어린이를 유괴해서 질주하는 택시에서 밀쳐내고는 치료비를 우려먹다니, 이런 놈은 그저 죽여야 해”하고 비분강개하는 수도 있었다.
이렇게 정신이 비분강개해지면 만상의 색깔이 짙게 보인다. 조용하게 관조하는 세상의 빛깔은 이렇게 짙을 수가 없고 담담한 회색이나 엷은 분홍빛이 되기 마련이다.
만상의 색깔이 짙게 보이면, 이를 반영한 마음은 다정다감하기 일쑤이고, 그래서 C군은 가끔 주석에 앉게 되면 한이 담긴 유행가를 방이 터지도록 그야말로 방성대가해서 평소에 그를 유순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던 친구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러니까 C군은 50이 되도록 이루지 못한 청운의 꿈에 대한 아쉬움을 엷은 체관(諦觀)으로 감싸고 있다가, 송곳 끝이라도 스치면 그 아쉬움이 터져 나오는 정신 상태에 있다고나 할까.
하기야 C군만이 아니라 중년의 말기에 이르면 남자란 대개 이런 정신생리를 갖게 된다. 그것은 마치 꺼지려는 촛불이 다시 한번 환하게 살아나는 현상과 비슷하기도 하다. 여기 대개의 경우 허무함과 고독이라는 변발증이 겹치는데 묘하게도 C군은 고독감에서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증세가 통 나타나지 않는다. 무슨 묘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나는 C군이 탐닉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고독감만이 아니다. 청운의 꿈을 부화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처자들을 웬만큼이라도 만족하게 살게 해주지도 못했다는 자격지심에서 오는 좌절감에도 시달려야 하는데, C군은 다른 사람과 같이 그 시달림으로 노화가 촉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다는 숙제로 접어두고 구애되지 않는 정신의 탄력성을 잃지 않는다. 나는 C군의 그 탄력성의 원천도 낚시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하고많은 ‘레저’치고 낚시처럼 싱거운 것은 없어 보인다. 휴일이 될라치면 고래라도 잡으러 가는 듯이 가족에게는 새벽부터 수선을 떨지만, 막상 차리고 나서는 몰골은 영락없는 광산꾼이다.
골퍼들이 ‘파리 모드’를 쫓는 허영에 들뜬 여편네들 못지않게 산뜻한 색깔의 스웨터와 슬랙스 등으로 멋있게 몸치장하는 것은 돈쓰는 재미로 사는 그들의 재력의 마술이라고 제쳐두더라도, 젊은 ‘하이카’들은 호주머니는 가벼워도 복장의 다채로운 색조로 그들의 레저를 화려하게 빛내고 있지 않은가? 낚시꾼의 복장은 색감이 너무나 빈곤하다.

 

나는 부산서 C군을 따라서 딱 한 번 낚시하러 간 일이 있었다. 김해 대저면으로 간다기에 호숫가에 집이 늘어서고 기다란 버드나무가 거울 같은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 호수라고 속단했었다. 그 호수라면 나도 그곳을 무대로 해서 ‘수향’이라는 시나리오를 써볼까도 구상한 일이 있었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그러나 C군이 가는 곳은 그 호수가 아니었다. 가까이 나무 한 그루도 없고 못가에 앉았으면 하늘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따분한 곳. 하필이면 골라서 이런 곳을 찾아온단 말인가.
“여기는 내만이 아는 ‘포인트’가 있다.”
얼씨구! 마젤란이 남아메리카주 남단의 마젤란해협이나 발견한 듯한 의기양양한 말투다.
이윽고 물속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가에 웅크리고 앉았다. 5월의 솜구름의 그림자가 물속을 미끄러져 가고 풀 향기가 향긋하게 코를 어루만지는 것이 뱃속을 간지럽게 한다. 특히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걱정이 좋다.
“하하, 이런 맛으로 낚시하러 오는구나.”
내 딴에는 낚시꾼의 심정을 이제야 안 성 싶어서 C군에게 말을 하려는데 그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발언을 금지시킨다. 그 엄숙한 눈빛은 천근의 무게가 깃들고 있는데, 괴이한 것은 그의 눈이 한시도 찌를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수상한 아내의 행적을 살피는 의처증의 남편의 눈과 같이.
“찌의 움직임과 눈싸움하는 것이 낚시의 요체로구나.”
나는 C군의 말없는 거동에서 이러한 원리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찌와 눈씨름을 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20분이나 됐을까, 나의 눈에는 찌는 물론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잠이 든 것이다.
그날 나는 물고기가 바늘을 물어 낚싯대를 잡아챌 때에 팔에 전달되는 야릇한 전율감을 몇 번 느끼고 네댓 치의 붕어 서너 마리를 잡았다. 그것은 뱃속이 후련해지는 쾌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쾌감과 몇 마리의 물고기를 얻기 위해서 견뎌야 할 고통. 새벽잠을 거르고 버스에 시달리고 더구나 답답한 곳에서 거의 하루를 보내야 하는 따분함을 참기란 무언가 잃는 것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C군, 뭣 때문에 낚시를 하는가?” 뒷날 이렇게 묻는 나의 질문에 “물고기와 말 없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답했다.
물고기와의 ‘말 없는 대화’란  ‘대화 있는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만 역시 낚시의 묘미는 그런 깊은 곳에 있는 성싶다.

 

 

“남북 간에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자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네.” 이 경천동지할 큰 뉴스에 대해서 “그래?”하고
송사리가 입질할 때의 찌의 움직임만큼이나 경미한 반응을 나타내던 C군이
“지난 일요일에 송파못에 가서 이렇게 큰 놈을 세 마리나 올렸다”고 할 때에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뚝을 불쑥 내밀어 물고기의 크기를 형용하며
여느 때의 그답지 않게 말은 흥분하고 거동은 과장되는 것이다.

 

현대인은 고독감에 시달린다. 군중 속에 있다고 해서 고독감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그것은 개성이 발달하여 현대인은 자꾸 자기 속에 침잠하기 때문이고, 핵가족 형태가 발달해서 사랑하는 아내나 애인은 자기의 반쪽처럼 절실한 것이 되어지는 그만큼 애정에 파탄이 일어났을 때의 정신적 타격이 커서 이런 것들이 현대인의 고독감을 가중시킨다.
‘물고기와의 말 없는 대화’를 수시로 교환할 수 있는 C군은 자기가 고독의 심연에 깊이 빠져들기 전에 이 말 없는 대화로써 스스로의 심연에의 추락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남북 간에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자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네.”
이 경천동지할 큰 뉴스에 대해서 “그래?”하고 송사리가 입질할 때의 찌의 움직임만큼이나 경미한 반응을 나타내던 C군이 “지난 일요일에 송파못에 가서 이렇게 큰 놈을 세 마리나 올렸다”고 할 때에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뚝을 불쑥 내밀어 물고기의 크기를 형용하며 여느 때의 그답지 않게 말은 흥분하고 거동은 과장되는 것이다.
“큰 물고기를 잡은 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그의 신나는 표정에 대헤서 나는 곧 이러한 회의가 고개를 치켜들고, 또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려고도 한다. 그것은 물고기를 낚았다는 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나의 회의의 일단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C군의 낚시에 대해서 나는 도락이라든가 레저라든가 하는 평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느끼고는 모든 일에 대해서 우선 회의를 품어보는 내 버릇을 발동할 수 없게 된다.
요즘도 휴일이면 서울 근처의 어느 낚시터를 찾아서 진종일 아니 때로는 밤을 새우며 찌의 미동을 통해서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는 C군은, 어차피 걱정을 안 해도 제대로 되고 말 신변의 사소한 일들을 잊고 자연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런 경지에서 노니는 사람에게 옷차림의 초라함이 문제가 될 턱이 없다.
그의 대화가 물고기와의 그것이 아니고 어쩌면 자기 스스로와의 대화일 수도 있겠으나 대화 있는 곳에 변화가 있고 변화 있는 곳에 정신의 정체는 구원되는 것이다.
짜릿한 전율과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고기를 낚아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C군의 모습. 그는 그것으로 언젠가 월척을 낚는 것이 가능한 것과 같이 청운의 꿈이 또한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할 것이다. 그 희망은 평생토록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도 언제부터인가 머릿속에서 낚시질을 하게 된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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