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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_100년 전 여울견지 사진 최초 발견 어린이가 미끼 깡통 맨 ‘아동어조(兒童魚釣)’ 사진엽서
2019년 02월 585 12185

사료

 

100년 전 여울견지 사진 최초 발견

 

어린이가 미끼 깡통 맨 ‘아동어조(兒童魚釣)’ 사진엽서

 

조성욱 한국전통견지협회 회장

 

 

 

 

 

 

 

 

일본의 최대 옥션인 J옥션의 분류에 의하면 대한제국 시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의 여러 풍속을 담아 발행한 사진엽서의 종류는 5,000여 종에 달한다. 이 시기에 발행한 조선풍속엽서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다. 일본인들이 조선 개화를 치적으로 삼기 위해 ‘조선의 미개한 일상 증빙용’으로 남길 의도였다는 평가와, 그와 관계없이 단순 기록용일 것이라는 설이다. 그 판단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기고, 일단 그림과 글로만 기록되어 오던 조선 풍속을 생생한 사진으로 남겼다는 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가 발행한 조선풍속엽서 시리즈
5,000여 종의 조선풍속엽서 시리즈 중 낚시를 주제로 한 엽서도 제법 많다. 민물과 바다낚시는 물론 전통 견지낚시도 포함돼 있으며 특히 얼음판 위에서의 삼봉견지낚시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이 사진엽서 덕분에 당시의 생활상, 채비의 변화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우리 고유의 낚시가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견지낚시의 경우 한강과 대동강을 중심으로 행해졌기에 엽서 하단의 장소 표기는 대부분 한강(漢江)과 대동강(大同江)으로 표기 되어있다.
이 당시 조선 낚시인들은 맹추위로 산하가 꽁꽁 얼어붙으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삼봉낚시 채비를 챙겨 강으로 향했다. 삼봉낚시용 바늘은 강선을 휘어서 만든 세 개의 바늘을 납추에 박아 만든다. 바늘 사이 각도가 120도여서 어느 방향으로 채든 물고기 몸통에 바늘이 꽂히게 돼는 과학적인 원리를 지니고 있다. 겨울철 물고기는 강바닥에 패인 골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는데 바로 이 이동로에 삼봉바늘을 가라앉히고 찌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어신이 왔을 때 낚아채는 게 삼봉낚시의 핵심이다. 혹자는 삼봉낚시 기법에 대해 훌치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누치가리나 숭어가리(가리=산란) 때 어신도 보지 않고 마구 훌쳐내는 단순 훌치기와는 바늘 모양과 기능, 기법에 많은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 여울견지 모습이 찍힌 유일한 사진
조선풍속엽서 가운데 내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던 엽서가 있다. 100년 전 대동강에서 어린이들이 여울견지낚시를 하는 모습이 찍힌 아동어조(兒童魚釣)라는 제목의 사진엽서이다. 이 엽서엔 미끼가 든 깡통을 목에 걸고 바지춤을 걷어 올린 채 견지채를 드리운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마치 보물찾기하듯 견지낚시 관련 엽서와 유물을 수집한 지 20여 년 만에 발견한 진귀한 기록이다. 이전까지 ‘왜 그 시절 풍속엽서엔 여울에서 견지낚시를 하는 사진이 없을까? 그때는 배견지만 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남아있었는데 이 사진엽서 덕분에 그런 의문을 단박에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발견한 또 다른 사진엽서는 종전에 접했던 그림들과는 색다른 흥미요소가 있었다. 대동강에서 삼봉낚을 하고 있는 낚시인 주위에서 장부썰매를 멘 두 낚시인이 구경하고 있는 사진이다. 장부썰매는 휴대와 이동이 용이하게끔 조립식으로 만든, 깔개를 겸하는 썰매이다. 지금껏 봐온 삼봉낚시 사진들은 낚시인들의 모습 자체만 부각시켰는데, 뒤늦게 도착한 낚시인들이 다른 낚시인들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를 숙고하는 광경은 사진의 구도와 내용에서 새롭고 흥미로웠다.
겨울 삼봉낚시에서 중요한 것은 ‘낚바탕’으로 불리는 자리 선정과 혹한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방한복장이다. 그 현장감 넘치는 당시의 모습이 이 사진엽서에 잘 묘사돼 있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삼봉낚, 사슬낚, 쪽견지
옛 기록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과거로의 낚시여행을 떠나는 것도 실제 낚시 못잖게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의 엽서들은 용케 보존된 채로 살아남아 말을 하고 있다. 까마득한 옛날 낚시인들의 삶과 애환과 지혜를 보여주며 후대의 낚시인들로 하여금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생각하게 한다. 
조선풍속엽서는 현재 서울 인사동에서 소량 거래되고 있고 대부분은 일본 내 여러 옥션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일본 J옥션의 경우 5,400여 점의 조선엽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았는데 소장자가 일본인들이다보니 구입에 애를 먹을 때가 많다. 선택을 하고 거래를 할 때 전화로 상의도 해야 하고 송금 및 수수료 문제 같은 것도 외국이다 보니 번거로운 게 한둘이 아니다. 또 어쩌다 눈이 번쩍 뜨이는 자료를 발견해 거래를 신청해보면 이미 개인 소장으로 넘어간 것도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사진엽서 속의 전통 낚시기법들이 지금은 모두 사멸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강과 대동강 얼음판을 하얗게 수놓던 삼봉낚시인들의 모습도, 강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힘차게 외노를 저어 강바닥의 물고기를 낚아채던 사슬낚시인들과 낚싯배도, 저수지 덕에 앉아 여유롭게 견지채비를 드리웠던 쪽견지 낚시인도 이제는 엽서 속의 사진으로만 남았기 때문이다.
삼봉낚과 사슬낚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강수계에서 활발하게 행해졌었다. 그러나  80년대 한강개발 사업에 밀려 상류 팔당부터 광나루, 뚝섬, 잠실, 용산, 한남동 강가에 떠 있던 1천여 척의 낚거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승할 기회도 없이 우리 낚시인들은 낚바탕을 포함한 소중한 전통문화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셈이다. 그나마 누구나 배우기 쉽고 간편한 여울견지낚시만 남아서 전통낚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이 역시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건설되는 댐과 수중보로 인해 낚시터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도 남한강, 북한강 줄기의 수많은 여울이 잠기고 사라져가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살아서 이어져 오던 전통낚시문화를 앗아간 것은 단지 세월일까? 사라진 전통 낚시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은 남아있는 낚시인들의 몫이라서 이제라도 남아 있는 우리의 전통 견지낚시를 보존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1 꽁꽁 언 한강에서 삼봉낚시로 잉어를 노리고 있는 낚시인. 엽서 하단에 1900년에 한강을 찾은 조선인들의 잉어 빙상낚시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2 대동강 여울에서 어린 아이들이 견지낚시를 하는 모습이 담긴‘아동어조(兒童魚釣)’ 사진엽서.(1930년대 촬영)
3 대동강 청류벽 목단대 앞에서 마상이를 타고 사슬낚을 즐기고 있는 모습. 사진엽서에 1919년 2월 8일 소인이 찍힌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에 촬영된 사진으로 추정된다.
4 삼봉낚시바늘. 잉어가 삼봉낚 위를 지나가며 낚싯줄을 건드는 순간에 맞춰 강하게 챔질해 걸어내는 원리다.
5 1910년대에 촬영한 대동강 얼음판 위의 삼봉낚시인들.
6 꽁꽁 언 한강에서 삼봉낚시를 즐기는 노조사.(1910년대 촬영)
7 대동강으로 출조한 평양의 삼봉낚시인들이 먼저 온 낚시인의 낚시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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