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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9 주년 대특집 -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 1편 (1971~1974)
2010년 03월 1351 1349

창간 39 주년 대특집

 

낚시춘추 최초공개 기사로 보는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

 

 

낚시춘추의 역사 39년은 곧 우리나라 낚시터 개발의 역사였다.

1971년 창간 당시 전국엔 겨우 50여 만의 낚시인들이 있었고,
알려진 낚시터는 경기도와 충청 일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낚시춘추의 창간을 계기로 경향 각지의 낚시터들이 지면에 등장하면서
서울 낚시인들의 남행이 시작되었고, 부산·대구·광주 등 지방 낚시인들의
개척열기도 고조되어 ‘새로운 꾼의 낙원’을 찾는 탐사의 열정이 전국을 뒤덮었다.

낚시춘추는 창간과 더불어 스포츠피싱의 미래를 지향하며
바다낚시와 루어낚시를 장려했다. 그 결과 북한강과 남한강의 루어낚시터들이
개발되었고, 서울에서 가까운 동해안을 시작으로 바다낚시가 붐을 형성하였다.
70년대 동해안 방파제에서 꽃핀 바다낚시의 열기는 80년대엔
남해안 섬 갯바위낚시로 발전하면서 한국 낚시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게 된다.

낚시춘추 편집부는 우리나라 인기 낚시터의 변화상을 통해
한국낚시의 발전상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코자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낚시춘추 지면을 통해 최초로 소개된 낚시터들을 정리해보았다.
70년대의 파로호와 아산호, 80년대의 충주호 등 한국 낚시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낚시명소들의 명멸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낚시터 개척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1970년대

 

낚시정보의 불모지에 창간한 낚시춘추. 당시 책에 소개된 낚시터들은 굳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 필요가 없을 만큼
모두 처음 공개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수많은 낚시터명을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터. 큰 이슈와 트렌드를 형성한 주요 낚시터 소개 기사들만 보았다.

 

●1971년

 

○추자도 최초 조행기
낚시기행-추자도를 다녀와서(5월호)
“16시발 추자도 경유 목포행 ‘화양호’에 승선하였다. 잔잔한 파도를 헤치며 서북으로 항해한 지 3시간여에 추자본섬에 도착하였다. 제일식당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20시30분에 준비된 어선을 타고 약 30분간을 달려 마침내 목적지인 ‘푸레이’섬에 이르렀다.”
당시 부산낚시회 이종완(李鐘完) 회장의 추자도 원정기가 71년 5월호에 실리면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우리나라 최대의 갯바위낚시터가 처음 지면에 소개되었다. 물론 이종완씨 일행이 추자도를 찾은 최초의 낚시인은 아니며, 60년대부터 소수의 열성 낚시인들이 제주도를 경유하여 추자도를 드나들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기사를 계기로 부산에선 추자도 원정 붐이 일기 시작했고, 추자도는 70년대 초부터 낚시춘추 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바다낚시터가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겨울감성돔의 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추자도는 명실상부한 갯바위낚시의 메카로서 ‘초등감생이’와 ‘영등감생이’란 용어가 이 섬에서 탄생했으며, 전국의 낚시인들과 첨단 낚시기법이 교류하는 장으로서 우리나라 바다낚시의 발전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당시 추자도엔 낚싯배가 없었고 어선을 타고 푸렝이나 다무래미 등 큰 섬으로 들어가 장박낚시를 했다. 낮에는 쉬고 밤에 온 섬을 돌아다니며 민장대로 감성돔을 수십 마리씩 낚아 가마니로 메고 나오던 시절이었다. 이 원정에서 이 회장이 낚은 58cm 감성돔은 71년 부산 기록이 됐다.

 

▲ 부산낚시회 이종완 회장이 투고한 최초의 추자도 기사. 

 

○영동계곡 산천어 보도
긴급정보-우리나라에도 산천어가…(5월호)
“세계로 가는 계류의 여왕! 송어와 비슷하게 생긴 山川魚가 한반도 동해의 십여개 하천에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서울사대 이학부장 최기철 박사로부터 확인되었다.”
일본에서 최고의 계류낚시 어종으로 인정받는 산천어(일본명은 야마메:山女魚)가 우리나라에도 다량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5월호에 최초로 보도되었다. 이후 강원도 삼척 오십천, 양양 남대천과 오색천은 산천어 털바늘낚시터로 개발되어 명성을 떨치게 된다.
故 최기철 박사는 한국 어류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우리나라 토종물고기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낚시춘추에 여러 차례 기고했으며 88년 아산 송악지 64cm 붕어를 직접 감정하여 토종붕어로 확인해주기도 했다.

 

○서귀포 돌돔낚시터 소개
매혹의 磯釣, 서귀포 돌돔낚시의 묘미(7월호)
“돌돔의 진가는 낚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우람한 생김새하며 그 힘찬 용트림은 과연 바다낚시의 왕자답다.”
우리나라 바다낚시 어종 중 가장 먼저 뜬 스타는 감성돔이 아니라 돌돔이었다. 70년대 당시 일본낚시인들이 제주도에 와서 돌돔을 낚아내는 모습이 한국 낚시인들을 자극하여 ‘남자의 취미, 야성의 스포츠’로 돌돔낚시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돌돔낚시의 태동지는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찾았던 서귀포였다. 이 기사에선 蚊島(문섬), 森島(섶섬), 虎島(범섬)의 돌돔 포인트와 낚시방법이 당시 서귀포관광낚시터안내소장 정석호(鄭石鎬)씨에 의해 소개되었다.

 

○북한강 & 임진강 루어낚시터 안내
8월의 루어낚시터-춘천·임진강을 중심으로(8월호)
“청평땜 아래 퇴수로 밑에 연결된 발전실 사이까지 나가려면 콩크리트 바닥이 아주 미끄러우니까 짚신을 신든가 그렇지 않으면 농구화나 운동화 위를 새끼로 잘 감아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낚시춘추 창간과 더불어 활기를 띠기 시작한 장르가 루어낚시였다. 이 기사는 故 박현재(朴賢在) 선생이 8월의 유망 루어터로 청평댐, 춘천댐, 화천댐, 임진강, 어유지리 등의 포인트를 상세히 기술한 것이다. 인용한 기사문은 당시의 루어낚시 장비가 얼마나 열악했는가를 말해준다. 박현재 선생은 대한일보 기자 출신으로 창간 때부터 낚시춘추 필진으로 활약하면서 전국의 쏘가리·끄리·꺽지 루어낚시터들을 개발하였고, 74년엔 서울릴낚시회를 창립하였으며, 루어낚시의 교과서인 <루어낚시입문>을 집필하는 등 한국 루어낚시계의 대부로 추앙받았다. 또한 1985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예총회관에서 일본 플라이낚시의 대부 나까노 고죠(中野辛三)씨를 초청해 국내 최초의 플라이낚시강좌를 여는 등 플라이낚시의 보급에도 힘을 썼다.

 

○부산권 바다낚시터 연재 시작
동해안의 찌낚시와 남해안의 감성돔낚시(12월호)
“다대포 앞바다 수온이 섭씨15도 이하로 내려가면 수심이 얕은 곳인 쥐섬, 가덕도, 거제도 등 연안의 여름 고기들은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겨울 고기인 벵에돔, 볼락, 망상어, 쥐노래미(게르치) 등이 몰려온다.”
71년 12월호부터 부산의 김근희(金根熙) 선생이 부산의 바다낚시기법과 주변 낚시터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 낚시용품과 낚시기법의 수입 교류가 활발하여 서울-동해-제주로 이어지는 투박한 원투낚시와는 다른 민장대 찌낚시 등 다채로운 바다낚시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런 부산의 바다낚시가 당시 부산일보 낚시담당자로 있던 김근희 선생의 유려한 필치에 의해 전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1972년

 

○통영 좌사리도 일원 탐사
매혹! 한려수도에 가다(1월호)
“아침 7시 충무 호텔식당에서 돔매운탕으로 식사를 끝내고 호텔전용부두에 대기하고 있는 한려3호에 승선, 첫 목적지인 좌사리도로 향했다. 우측으로 조도등대를, 좌측으로 한산도를 바라보며 잔잔한 바다 위를 달리다 좌사리군도를 한 바퀴 돌아 중간 섬 동쪽에 낚시터를 정했다. 항해시간은 3시간 소요.”
통영 먼 바다 갯바위낚시 탐사대가 71년 11월 30일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통영으로 들어갔다. 당시 탐사대원은 국회부의장 이재학, 국회의원 예춘호, 낚시춘추 주간 박종하씨와 서울낚시인 정성진, 김경섭, 문도상, 배영일, 서창기, 라원달씨 등이었다. 이들은 비록 목표로 삼은 돌돔을 낚지는 못했지만 이때 소개한 연화도, 국도, 좌사리도 등 남해동부 원도들이 새로운 대어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관탈도 최초 조행기
돌돔의 보고 관탈도에 가다(1월호)
“목적지 관탈도는 제주를 기점으로 추자군도와의 중간 해상인 약 28km 지점에 외롭게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무인도인 것이다. 섬의 둘레는 고작 1km, 갈매기의 산란기에는 섬 전체가 갈매기의 알로 덮일 정도이며 여름에는 모기의 극성이 대단한 곳이다.”
낚시춘추가 창간한 이듬해 최초의 관탈도 조행기가 실렸다. 당시 관탈도는 제주시에서 어선으로 4시간이나 가야 하고 조금이라도 풍랑이 일면 접근 불가능한 신비의 섬이었다. 필자 정성진(丁成鎭)씨가 국회부의장 이재학, 국회의원 예춘호 선생과 동행하여 돌돔 8수의 대수확을 거둔 흥분의 여정들이 기사 속에 녹아 있다.

 

○경북 붕어낚시터 연재 시작
내 고장 대구의 낚시터 안내(3월호)
“딱실못은 안강저수지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老池다. 이 낚시터의 특기할 점은 초여름 모내기할 무렵을 전후로 하여 콩미끼에 월척이 잘 낚인다는 점이다. 작년 초여름의 기록으로는 대구의 전모씨가 하루 동안 월척 17수를 낚아 크게 히트한 일이 있다.”
72년 3월호부터 전 경북낚시연합회 서대교(徐大敎) 회장이 연재를 맡아 대구·경북의 저수지들을 지면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경산 문천지, 영천 풍락지, 영천 차당지, 안강 딱실못, 경주 밀구지, 포항 화봉지, 달성 달창지, 고령 중화지, 구미 대원지, 군위 산호지 등이 첫 주자로 소개되었다. 하나같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는 특급 저수지들이다. 이후 대구는 천혜의 소류지 왕국이라는 여건에 힘입어 서울에 이은 제2의 붕어낚시 중심도시로 성장하였고, 90년대에 이르러 새우낚시, 대물낚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대물미끼인 콩이 이미 그때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사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여주, 원주, 홍성 저수지들 최초공개
영동고속도로 주변의 낚시터 안내(3월호)
“서울 원주간 고속도로가 준공되어 72년도엔 이 방면을 찾는 낚시인이 많으리라 예상한 나머지 1월 중순경 직접 원주까지 가서 취재와 자료 수집을 하였다. 낚시터는 편리상 문막 주변, 원주 주변, 여주 주변의 순서로 안내할까 한다.”
1971년에 개통된 영동고속도로는 서울꾼들의 출조권역을 강원 내륙과 동해안으로 확장시켰다. 이후 여주, 이천, 원주, 홍천이 대중적 낚시터가 되었다. 반계·취병·귀래·반곡·삼합·좌운·원부·성호·앙암·개군 등의 저수지와 굴암리샛강·보통리샛강 등이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낚시명소로 떠올랐다.

 

○전남 붕어낚시터 연재 시작
광주지방의 붕어낚시터 안내(5월호)
“낚시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광주 근교에선 이름난 그 숱한 낚시터들이 빛을 잃고 이제는 2~3백여리의 원거리 낚시나들이를 떠나는 서글픔을 맛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요즈음의 광주 낚시의 생태이다.”
4월호의 경북에 이어 5월호부터는 전남지방의 붕어낚시터들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당시 광주 전남낚시회 박병규(朴炳奎) 회원의 소개로 광주 왕동지, 나주 화지·송림지, 나주 백룡지, 화순 한천지, 함평 손불지, 장성 함동지가 소개되었다. 필자 박병규씨는 백룡지나 손불지를 ‘원거리터’로 분류했으니 격세지감이다. 한적한 낚시터가 점점 줄어드는데 따른 불안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파로호 첫 특집기사
破虜湖의 철저한 분석(6월호)
“삼팔선 이북의 낚시를 간다면 그것은 하류 화천발전소로부터 상류 양구까지 팔구십리 길게 뻗은 큰 인공호요, 산 협곡을 따라 수정같은 맑은 샘물이 고인 산중 장호(長湖)인 파로호일 것이다.”
70년대 초 최고의 댐낚시터는 파로호였다. 68년에 준공된 경남의 진양호가 있었지만 너무 멀었고, 아직 소양호는 준공되지도 않았을 때다. 5월 중순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상무룡리, 공수리 등 파로호 상류에서 철갑 토종붕어들이 관고기로 쏟아질 시절이다. 필자 최동섭(崔東燮)씨는 서울 신영낚시회 회원으로서 70년대에 낚시춘추의 필진으로 맹활약했다.

 

○예당지 첫 특집기사
특집-예당지의 철저한 분석(7월호)
“이 낚시터는 비가 오나 맑은 날이나, 밤이나 낮이나, 또 초겨울에 눈이 쏟아져도, 이른 봄에 살얼음이 얼어도 여전히 붕어가 잘 낚이는 전 계절을 통한 전천후낚시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조황은 언제나 풍성하다.”
예당지는 우리나라 최대 저수지, 최대의 낚시터로 각광받았다. 기사는 당시 서울 한양낚시회 총무 송소석(宋素石) 선생의 생생한 답사르포로 소개되었다. 송 선생은 예당지의 광활한 수면을 도덕권, 동산권, 대흥권, 응봉권, 노동권으로 크게 구분한 뒤 각 권역의 주요 포인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대작업을 수행했다.
송소석 선생은 70년대에 낚시춘추 필진으로 맹활약하면서 타고난 꾼의 기질과 예리한 필치의 인상적 기사로 명성을 얻었다. 후에 다락원 刊 <붕어낚시교실>을 집필하여 후학들을 위해 붕어낚시이론을 정리하는 업적을 남겼다.

 

○신생 진양호 답사
특집-서부경남의 황금낚시터 진양호에 가다(8월호)
“진양호에 도착하여 초행길 회원들은 다같이 놀랐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방대한 호수 때문만도 아니다. 댐 입구에서부터 1km권내의 관광단지에 설비한 관광시설이 너무도 알뜰하고 규모 있게 꾸몄으며 호수와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어서 그림엽서 안에 우리가 서있는 느낌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 일행들의 남루한 낚시행장이 어설프게만 보였다.”
1968년 준공된 신생 호수낚시터인 진양호에 대한 서울꾼들의 러시가 72년부터 이어졌다. 당시 진양호는 ‘마을 앞이든 밭 언저리든 앉는 곳이 포인트’인 곳이었다. 갈골·신풍·포도원·개구리바위·귀곡 등의 명소들이 엄청난 붕어와 잉어를 쏟아내며 전국의 낚시인들을 끌어들였다. 당시 서부경남의 소도시 진주를 부산 대구와 맞먹는 낚시의 고장으로 만들었던 대형 낚시터 진양호는 80년대 초부터 노회한 조황을 보였고, 1992년 상수원보호지구로 지정, 추억의 낚시터로 물러났다.

 

▲ 사진과 지도를 곁들여 소개한 진양호 분석 기사.

 

●1973년


○군산, 김제지방 저수지들 최초 소개
군산남부지방의 낚시터 개황(4월호)
“준공된 지 2년만인 1971년에 월척붕어와 초어가 낚여 화제에 올랐던 백산저수지는 이제 겨우 4년생인 20여만평에 달하는 낚시터로 가장 잘 낚이는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단풍잎을 방불케 하는 골짜기가 많아 봄낚시터로 일급지이고…”
3월호의 대천남부지역 소개에 이은 후속기사로서 「특별부록-군산남부 낚시터 안내도」 해설기사가 4월호에 실렸다. 이때 미제지(은파지)·옥산지·회현지·능제지·옥구지·백산지 등 전북의 대형지들이 서울 신영낚시회 최동섭(崔東燮)씨에 의해 최초로 정리 소개되었다.
73년엔 특히 전북지방의 낚시터 소개가 활발했는데, 11월호엔 ‘장항 근교의 길산수로’가, 12월호엔 ‘이리(지금의 익산) 근교의 탑천수로’가 소개되었다.

 

○운암호 최초 르포
운암댐의 특별 리포트(5월호)
“월척은 없고 준척이 각각 40수에 20cm 이상의 붕어를 1.6m 길이 살림망에 가득, 36cm 바구니에 가득, 그리고 그릇이 모자라 동리 소년을 보고 양철제 다랭이를 빌려와 거기에 또 가득, 그래서 짐작으로 약 30kg의 붕어를 만일주야(滿一晝夜)에 올려서 동리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전북 임실군의 운암호(옥정호)는 ‘양산(量産) 한국제일의 낚시터’라 불리며 진양호와 함께 꿈의 원정낚시터로 각광받았다. 낚시춘추 편집위원 신영보(申永保)씨의 비린내 물씬한 르포기사로 운암호의 정황과 포인트들이 세록되었다.

 

▲ 1971년 7월 3일 운암호에서 벌어진 최초의 밤낚시 대회. 무려 1천명이 몰렸다.

 

○새 저수지 발굴기사 연재 시작
신연재-전국의 새로운 낚시터 순례(7월호)
“서천의 종천저수지는 지방에서 개북다리로 알려져 있다. 서울엔 원거리이고 교통편도 좋지 않아 이제까지 베일 속에 묻혀 있었지만 이제 그 윤곽이 본지 답사반에 의해 밝혀졌다.”
73년 7월호부터 낚시춘추는 전국의 필진들을 동원하여 각지의 신생 저수지나 신 개척지를 소개하는 연재물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그 첫 주자로 서천 종천지, 고창 중앙지(옥동지), 경주 안계지·강릉 장현지가 소개되었다. 이후 이 코너를 통해 전국에 숨어 있던  낚시터들이 속속 알려지게 된다.

 

○초평지 & 백곡지 최초 기사화
특집-진천지방의 명낚시터, 초평지·백곡지(9월호)
“충북에서도 손꼽히는 이 낚시터는 크기도 맘모스급에 속하지만 다양한 어종과 힘찬 붕어의 힘은 전국을 통틀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충북의 낚시명소 초평지가 최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명성에 비해 낚시춘추엔 비교적 늦게 소개된 셈이다. 필자 김원식씨는 당시 초평지에서 15년이나 낚시한 현지 낚시인으로 그가 터득한 초평지의 명당과 낚시노하우를 사진을 통해 아낌없이 공개했다. 그리고 최동섭씨가 초평지 세밀지도를 그려 붙였다.
한편 초평지와 쌍벽을 이룬 백곡지도 함께 소개됐다. 그 해 7월 1일 백곡지에서는 33수의 월척이 일시에 배출돼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백곡지 포인트들은 송소석 선생이 정리하였다.

 

○소양호 10월 준공!
화제의 초점, 昭陽湖 꿈의 낚시터(11월호)
“완공된 소양호는 조용하기만 하다. 물속에 드리운 산그림자와 핏빛같이 불타는 단풍이 산을 불태우다 못해 물속까지 태우고 있다. 이따금 고요를 깨듯 통통선이 수면을 가르며 가고 온다. 숱한 전설과 역사의 현장을 잉태한 채 소양호는 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73년 10월 15일 동양최대의 다목적댐 소양호가 6년 6개월 만에 완공되어 낚시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파로호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댐낚시터가 탄생하였으니 그 관심의 규모가 어떠했겠는가. 홍형일 낚시춘추 편집장이 현장을 둘러보고 ‘낚시는 2년 후부터 호조를 보일 것이며 물로리와 관대리가 유망한 낚시터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이후 소양호는 80년대에 향어낚시터로 댐향어낚시의 전성기를 이끌다 향어 가두리 철수와 함께 빛을 잃게 된다.
73년엔 소양호 뿐 아니라 10월에 아산호가 준공되었고, 12월엔 팔당호가 준공되어 대형 호수낚시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1974년

○호남고속도로 개통과 호남 저수지 집중조명
특집-호남지방의 낚시터 안내(3월호)
“이제 호남과 남해의 고속도로가 시원히 뚫렸다. 낚시의 보고로 불리는 호남지구와 남해연안의 무수히 많은 저수지와 수로가 서울에 있는 낚시인들에게도 그림의 떡을 벗어나서 어느 때나 달려갈 수가 있게 되었으니 그 고장의 낚시사정이 궁금하다.”
73년 11월 14일 전장 358km의 호남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낚시춘추 발행인 한형주(韓炯周) 박사가 직접 남행하여 호남매일신문 정치부장을 역임한 낚시춘추 목포모니터 정우혁(鄭宇赫), 광주중앙의과원장 정광준(鄭光準), 함평읍 조광의원 정용호(鄭鏞昊) 박사 등과 함께 취재한 낚시터들을 18쪽에 걸쳐 방대하게 실었다. 이때 엄선하여 실은 저수지들은 백포지·목단지·둔전지·함동지·월천지·금호지·불갑지·궁산지·임천지·월남지 등 지금도 최고의 대어산지로 꼽히는 명소들이다.

 

○남해고속도로 개통과 경남 저수지 집중조명
특집-남해고속도로 주변의 낚시터(4월호)
“지난호의 호남고속도로 주변의 낚시터 소개에 이어 이달에는 부산-순천간 177km의 남해고속도로 주변을 따라 미지의 낚시터들을 찾아보는 작업을 계속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한두 번의 기획으로 호남, 남해고속도로 주변의 낚시터를 전부 알 수는 없는 일. 이제 낚시꾼의 발길은 겨우 그 첫걸음을 디딘데 지나지 않는다.”
남해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진주까지 3시간씩 걸려 찾아가던 부산낚시인들은 순천까지 2시간 20분에 주파하게 되었다. 남해고속도로는 부산의 민물낚시뿐 아니라 바다낚시 출조길도 단축하여 부산낚시의 활성화에 날개가 되었다. 마산모니터 이복성(李福成), 부산남항국교교사 신소언(辛素彦), 여수중앙낚시점 임부술씨가 이때 소개한 낚시터는 창원의 춘산지(주남지)·산남지·우곡지·가음정지·용지, 사천의 대곡지·서택지, 여수의 죽림지·대포지였다.

 

○삼천포 바다낚시터 최초 소개
삼천포의 봄볼락낚시(4월호)
“삼천포를 기점으로 하여 눈에 보이는 섬들은 물론이고, 가까이 남해도와 노량, 통영 등의 낚시터들, 멀리는 추도 욕지도 연화도 등에 이르기까지 남해바다의 황금어장들을 눈앞에 두고 있어 어느 곳보다 바다낚시가 성행하고 있다.”
볼락낚시의 메카 삼천포는 부산에 이어 70년대부터 바다낚시가 활성화된 곳으로, 통영, 여수보다 일찍 갯바위낚시가 발전했으며 지금까지도 서부경남 바다낚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삼천포 형제낚시점 이여성씨가 남일대, 늑도, 창선도, 신수도의 볼락낚시터와 삼천포식 볼락 민장대낚시 기법을 소개했다.

 

○울릉도 최초 탐사기
바다낚시기행-신비의 섬 울릉도(10월호)
“그처럼 오랫동안 갈망했던 울릉도 낚시를 가게 됐다. 소풍 가기 전날의 아동처럼 며칠을 들뜬 기분으로 지낸 우리 일행-최무룡 회장, 조영종씨, 김종원 총무, 필자-는 9월 3일 오후 1시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갔다.”
영화배우 최무룡씨가 회장으로 있던 한국관광낚시회에서 국내 최초의 울릉도 탐사낚시를 떠났다. 그들은 울릉도의 비경을 즐기며 삼선암에서 방어를 무더기로 낚았고, 특히 최무룡 회장 덕에 주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당시 저동방파제에서 민장대로 3년생 벵에돔과 돌돔을 무수히 낚았다는 기록도 적혀 있다. 조행기는 한국관광낚시회 간사장 황일환(黃一煥)씨의 구수한 필치로 엮어졌다. 황일환씨는 낚시춘추 필진으로 활약하며 우리나라 갯바위낚시 초창기 탐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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