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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9 주년 대특집 -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 2편 (1975~1979년)
2010년 03월 1394 1354

창간 39 주년 대특집

 

낚시춘추 최초공개 기사로 보는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

 

 

●1975년

 

○거문도 최초 탐사보도
거문도 근해의 바다낚시 기행(1월호)
“거문도 등대 밑에 바로 배를 대려 했으나 파도가 너무 높아 실패하고 배를 돌려 반대편 등대 창고 앞에서 하선한 후 약 1km의 산길을 강행군해야만 했다.”
서울 참낚시회 총무 김준남(金俊男)씨에 의한 거문도 탐사조행기가 실렸다. 거문도는 74년 8월호 여수모니터 임부술씨가 여수의 유망낚시터로 간략히 소개한 바는 있으나 본격 현장취재를 통해 소개된 것은 이것이 최초다. 거문도는 당시 부산의 몇몇 낚시인들이 드나들고는 있었으나 그 내막이 언론매체에 알려지진 않았고 서울 갯바위꾼들의 발길은 제주-추자로 편향되어 거문도 기사화가 늦어진 것이다. 74년 11월 29일 거문도로 들어간 김준남씨 팀은 서도 등대 밑에서 벵에돔 52cm, 50cm, 47cm와 35~40cm 2수, 감성돔 33~40cm 3수를 낚았으나 당시 벵에돔은 쳐주지도 않던 시절이라 ‘저조한 실적’이라며 풀이 죽었고, 철수 후 고도 서부방파제에서 밤낚시로 30~35cm 감성돔 15마리를 낚고는 철수하였다. 당시 사용한 채비는 릴찌낚시 유동채비와 고정채비였는데, 구멍찌가 나오지 않았을 무렵이니 막대찌나 고리찌를 쓴 것으로 추측된다.


▲ 거문도 등대 밑에서 감성돔, 벵에돔, 농어를 낚은 참낚시회 회원들.

 

○북제주 갯바위터 소개 시작
제주도 지방 3월의 바다낚시(3월호)
“1~2월에 걸쳐 산북(山北) 해안 일대에서 절정을 이룬 감성돔낚시는 영등맞이를 고비로 퇴조현상을 보일 것이나 일기의 변화를 이용한 적시타를 한다면 의외의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달의 대상어류는 산란을 끝마쳐 허기가 진 농어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감성돔이 되고 녹줄돔과 벵에돔, 그밖에 우럭, 볼락 등 잡어를 노릴 수 있다.”
제주도관광협회 부회장 부창옥(夫昌玉)씨가 새로이 낚시춘추 모니터가 되면서 그간 서귀포 지역에 머물던 제주도 낚시터 소개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우도, 와도, 토끼섬, 사라봉, 원당봉, 중엄, 판포, 영락 등 북제주 해안의 낚시터들이 매달 시즌에 맞춰 소개되면서 낚시천국 제주도 기사가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부창옥씨는 후에 <바다낚시터백과-제주도편>(다락원)과 <제주도 바다낚시여행>(현대정보문화사)을 집필했다.

 

○보령 삽시도 외연도 배낚시 최초 소개
大川 근해의 노래미·우럭 낚시(8월호)
“삽시도, 외연도 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대천 하면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으로 비로 이 근해가 행정구역으로는 보령군에 속하고 대천 서방으로는 도서 해안으로서 충남의 가장 큰 어장으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곳이다.”
서해 배낚시터의 새 유망지로서 대천이 등장했다. 낚시춘추 천안모니터 이우성씨가 우럭·노래미·장대·수조기·도미·농어의 황금어장으로 지목한 삽시도·원산도·불모도·녹도·외연도는 당시 천안에서 처음 발기한 바다낚시친목회의 탐사 결과 놀라운 조황을 쏟아냈다.

 

○통영 근해 갯바위 연재 시작
충무·통영 근해의 낚시터 안내 1 (9월호)
“바다낚시의 보고로 벌써부터 낚시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던 이곳이지만 아직도 우리 낚시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비소(秘所)의 낚시터가 도처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부산·경남 바다낚시의 주무대인 통영 지역 섬낚시터들에 대한 기획연재가 시작되었다. 당시 충무낚시 대표 김성국(金成國)씨가 총 4회에 걸쳐 곤리도·학림도·연대도·비진도·용초도·추암도(추봉도)·장사도·가오도·어유도·매물도·소매물도·대병대도·갈곶도·우도·연화도를 차근차근 훑어나갔다. 필자 김성국씨는 섬 포인트 소개에 그치지 않고 통영지역의 전통 감성돔 배낚시 기법과 최신 갯바위 릴찌낚시 방법까지 다채롭게 소개하여 바다낚시인들의 큰 호평을 얻었다.

 

○백도 최초 탐사기
신비의 섬, 백도 기행(10월호)
“거문도 일원과 백도 근해에 대형 어종이 다량으로 잡히고 있다는 소식에 접한 본회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하기휴가를 겸한 8.15 연휴를 택하여 백도에까지 진출코자…. 망망대해의 무인고도로서 다소의 위험을 느끼면서 준비를 해야 했다. 하느님의 보살핌을 마음속으로 빌면서.”
서울참낚시회 김준남(金俊男)씨의 백도 출조기가 최초로 실렸다. 한여름 폭서 속에 거문도의 어선을 타고 상백도 등대섬 옆 바위섬에 상륙하여 70cm 혹돔 한 마리를 낚고 38번 와이어를 두 번이나 끊어먹는 분루에 이어 철수하는 안타까운 광경이 생생한 조행기다. 필자 김준남씨는 이후 한국낚시펜클럽(K.A.P.C) 회원으로, 낚시춘추 필진으로 활약하였고 <바다낚시터백과-명소를 찾아서> 시리즈를 출간했다.

 

○아산호 최초 탐사르포
낚시계에 새바람 일으키는 아산호 탐사(11월호)
“아산호를 일부 조사들은 전차표, 호박씨, 잔챙이 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말인 줄 생각한다. 아산호는 대형 월척, 관이 넘는 잉어에서 바다어종인 숭어, 농어, 전어, 망둥어 등이 공생한다.”
73년 10월에 준공된 아산호가 75년에 완전히 담수로 변하여 새로운 대형 낚시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 상도낚시회 총무 오석환(吳錫煥)씨가 현장답사를 통하여 권관리, 길음리, 신왕리, 원당거리, 궁안교, 백봉리, 백석포수로, 계양수로 등으로 상세구분하여 교통편과 낚시여건을 정리하였다.
기사 게재 후 얼마 안 있어 아산호 러시가 시작된다. 서울 서부역에서 아침 5시25분에 출발하던 장항선 581호 열차를 타면 6시31분에 아산호의 관문인 평택역에 도착, 낚시꾼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오면 당시 평택역은 화물출입구마저 임시 개찰구로 개방하였고 황금시간대를 노려 평택읍의 택시 200여 대 가운데 50%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녹동 근해 갯바위 최초 공개
감성돔의 본고장 녹동을 다녀와서(12월호)
“올 가을부터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한 낚시터가 있다. 바로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 남쪽에 산재해 있는 여러 섬들이다. 이곳들은 최근 주말마다 부산지방의 낚시인들이 끊일 사이 없이 붐비고 있으며 조과 또한 좋은 편이다.”
남해고속도로 개통 직후 부산의 바다낚시인들이 가장 먼저 개발한 곳이 녹동이었다. 부산낚시인들과 현장을 다녀온 한국바다낚시클럽의 배종찬(裵宗燦)씨는 녹동항에서 출항하면 거금도·금당도·허우도·시산도·충도·평일도·섭도·덕우도·황제도·초도·장도까지 최단거리에 아우를 수 있다는 천혜의 지리적 여건임을 기사 속에서 강조했다. 실제로 여수시에 속하는 평도·초도, 완도군에 속하는 덕우·황제도도 녹동배들이 드나드는 녹동권 갯바위가 되었다. 부산·대구꾼들의 출항지로 급성장한 녹동은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중반까지 남해안 최대 출항지로 군림하다가 90년대 중반 완도항의 성장으로 그 세가 꺾이게 된다. 지금은 여수, 회진, 마량, 완도와 남해서부 해역을 분점하는 처지가 되었다.

 

●1976년

 

○금강 하류 강낚시터 최초 소개
강경지방의 강낚시터(10월호)
부여지방의 강낚시터(11월호)
“지난달의 강경 지역에 이어 이달은 충남지방의 낚시꾼이면 누구나 붕어, 잉어낚시에 대종을 이루는 부여 지역의 낚시터를 소개할까 한다.”
그동안 충남 현지꾼들의 독무대였던 금강 하류의 강낚시터가 낚시춘추 대전모니터 윤기진씨에 의해 두 달에 걸친 집중적인 소개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금강 하류는 가을철 붕어와 함께 대형 잉어가 많이 낚이는 곳이었다.

 

○금호도 & 소안도 최초 공개
진도·완도의 겨울 감성돔낚시(12월호)
“목포에서 소안도를 갈려면 모도 못 가서 맹선리에서 내려 거룻배로 10분 가량 가면 소진리에 도착한다. 이곳에 가면 이미송씨라는 분이 살고 있는데 이씨의 말이 창을 들고 물속을 헤엄쳐 다니면 다른 고기는 창으로 잡을 수 있는데 감성돔만은 떼 지어 다니는 걸 보고도 어떻게 빠른지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년간 목포 근해의 바다낚시터를 연재해온 낚시춘추 목포모니터 윤재봉(尹在奉)씨가 진도 금호도와 완도 소안도를 겨울 감성돔 유망낚시터로 지면에 실었다. 소안도의 경우 지금은 완도항에서 진입하지만 당시엔 완도에 갯바위낚시선이 없어서 이 글에서 보듯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1977년

 

○사수도 최초 상륙
감성돔 풍년-사수도(4월호)
“미끼가 땅에 닿기도 전에 계속 입질이 들어온다. 주로 30에서 40cm급이 낚이는데 20여 마리 낚고 나니 이젠 힘이 빠져 기진맥진한다. Y씨에게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니 응답이 없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전지를 비추면서 찾아가보니 낚은 고기를 뒤편 웅덩이에다 수북하게 쌓아두고 그로키 상태가 되어서 바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쉬고 있다. 권투 선수는 링 위에서 KO를 당하는데 Y씨는 고기한테 KO를 당해 갯바위에 쓰러진 꼴이 되고 말았다.”
본지 대구모니터 김판수씨가 77년 2월 4일 추자도로 출조했다가 예기치 않게 돌김 채취작업을 하러 사수도로 떠나는 해녀들과 동반하였다. 그 일행 3명이 2박3일 동안 낚은 감성돔이 물경 138마리! 낮에 김 채취작업을 한 포인트를 노려 밤에 전지찌낚채비로 어부적 조과를 걷어 올렸다. 기사엔 억세고도 순박한 추자해녀들의 모습도 잘 묘사돼 있어 마치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 필자 김판수씨가 김무수(왼쪽), 김태국씨와 함께 사수도에서 낚은 감성돔들.

 

○안동댐 최초 르포
현지르포-안동댐의 철저한 분석(7월호)
본지 특별취재반은 이 댐의 수많은 완곡, 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거리, 상하류를 선편으로 수차례 주파해야 하는 교통의 불편함 등 많은 애로에도 불구하고 직접 답사, 현지 낚시인들의 증언, 연락선 기사들의 협조 등으로 미약하나마 이 댐의 상당 포인트들을 분석할 수 있었다.”
1976년 10월에 안동댐이 완공되었다. 이 기사는 그 이듬해 6월에 취재한 안동댐의 포인트 답사기다. 안동시 일부와 안동군 와룡면, 임동면, 예안면, 도산면, 월곡면 등 5개 면이 수몰된 안동댐은 호수가 너무나 길고 그 골이 깊고 복잡하여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 표현되었다. 기사는 주요 포인트로 미질동, 배나들, 주진동, 방잠리, 조천동, 천전동, 선양동, 구예안 등 18개 권역을 지목하고 일일이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하는 대작업을 수행했다.
이후 안동호는 70년대 말 붕어낚시터로, 80년대엔 향어낚시터로 명성을 떨치다가 지금은 배스낚시의 메카로 변모하였다.

 

●1978년

 

○구마고속도로변 낚시터 소개
르뽀-한국판 서부, 구마고속도로를 타다(4월호)
“대구에서 마산까지 운행시간은 종전 3시간 20분에서 1시간 20분으로 단축되었다. 이러한 구마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한국낚시터의 서부라고 할 수 있는 대구~마산간의 수많은 미답지가 벌써부터 많은 동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77년 12월 17일 대구와 마산을 잇는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개통된 구마고속도로는 대구-달성-창녕-함안-창원-마산을 잇는 84.5km의 도로로서 그 전장은 짧으나 경북과 경남을 잇는 동맥 역할을 함으로써 영남 낚시인들의 출조길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 특히 기사에서 ‘韓國版 西部’라 칭했을 만큼 이 구간은 개척의 여지가 많은 미답의 낚시권역이었다. 구마고속도로 개통으로 현풍-창녕-영산-부곡-밀양-남지-창원 등지의 낙동강변의 늪지와 수로, 평지형 소류지들이 대거 개발되었다. 달창지, 진촌늪, 낙질못, 번개늪, 장척지, 초동지, 대곡늪, 유어수로, 신전늪 등이 구마고속도로변의 대표적 낚시명소였고, 지금도 영남의 대어산지로 사랑받고 있다.
구마고속도로는 2004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완공됨에 따라 그 연장선에 편입되어 ‘邱馬’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성호 분석르뽀
르뽀-장섬댐 60리 집중분석(7월호)
“해금되고부터 약 한 달 동안 장성지방의 많은 조사들과 타지방의 낚시회에서 단체출조가 있었는데, 그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댐이 건설되기 전의 황룡강 자체가 손색없는 낚시터였었다는 점 외에도 10여개 부락, 전답 등이 수몰되면서 물 밑에는 짚더미, 퇴비, 잡초 등 고기의 서식에 도움 되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서 고기의 번식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76년 건설된 후 2년간 보호수면으로 묶여 있던 장성호가 78년 4월 해금됨에 따라 경향 각지의 낚시인들이 장성호에 선망의 눈길을 보내게 되자 낚시춘추는 장성호 특별취재반을 구성하여 현지에 파견했다. 장성호는 영산강유역 개발사업의 제1단계 사업으로 나주호, 광주호, 담양호와 함께 4대호 중의 하나로 건설되었다. 이후 장성호는 붕어낚시터와 향어낚시터로 명성을 떨치다 현재는 배스낚시의 천국이 되었다. 지금도 봄에는 산란붕어들의 산발적 호황을 만날 수 있다.

 

○남한강 상류 강낚시터 최초 답사
新踏! 남한강 상류낚시터, 양수리에서 앙덕리까지를 가다(9월호)
“댐의 건설과 더불어 광범위한 지역이 침수되고 물흐름이 정체되자 남한강 상류는 서울 일원에서는 최대의 담수낚시터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강 양안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경관의 수려함은 금상첨화격으로 남한강 일대를 돋보이게 한다.”
73년 12월 팔당댐의 준공으로 남한강 수계는 큰 변화를 맞는다. 물살이 급해 쏘가리, 꺽지 등이 주로 낚이던 남한강 상류의 유속이 완화되면서 붕어 잉어 대낚시터가 생겨난 것이다. 그로 인해 양평~여주 구간의 강낚시터를 향한 서울 개인플레이어들의 발길이 꾸준히 늘어났는데 그간 이 일대의 낚시터를 체계적으로 보도한 기사는 없었다. 양수리, 신원리, 반장리, 국수리, 양평, 신내천, 앙덕리, 병산리로 이어지는 강변의 주요 대낚시 포인트들을 답사하고 낚시여건을 소개하였다.

 

●1979년

 

○동해안 낚시터 완전 답사 정리
-500리 동해고속도로변의 낚시터 완전답사
대망! 동해고속도로 개통(1월호)

“동해안을 즐겨 찾는 조사들은 광활하게 트인 대해를 향해 멀리 낚시를 던지는 멋과,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힘찬 고기의 요동을 감지하는 황홀감에 연연해서 빈번한 출조를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추상적인 감이 있다. 동해안이 숱한 조사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우리나라 바다낚시터의 절반량에 상당하는 무수한 황금낚시터를 갖고 있으며 그 조건이 훌륭하다는 데 있다.”
75년 9월에 착공되어 79년 2월에 개통하게 되는 동해고속도로 개통을 목전에 두고 강릉-삼척-울진-영덕-포항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의 유수 명소들을 다시 짚어보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기사 인용문에 나타나 있듯이 당시 우리나라 바다낚시는 남해안이나 서해안보다 동해안 중심으로 성행하던 시절이었기에 동해고속도로 개통에 대한 바다낚시인들의 관심은 지대하였다.

 

○신안 홍도 개척
현지르뽀-절경의 고도 홍도낚시터 분석(8월호)
“홍도, 흑산도는 돔이 서식치 않고 있다는 단정이 출조를 주춤하게 해왔었다는 데서도 지연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취재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홍도나 흑산도는 그 불투명한 단정을 뒤엎고 오히려 돔의 보고라는 것이 드러났다.”
대형 갯바위 개척의 발길이 마침내 신안 흑산면의 홍도에까지 이르렀다. 이 탐사가 기획된 배경엔 종래 6시간이나 소요되던 홍도 뱃길이 쾌속선 한일호 취항에 의해 2시간 20분으로 대폭 단축되었다는 교통편의 발달이 있다. 기사엔 ‘참돔, 돌돔, 혹돔이 대량 서식하고 있는데 다만 감성돔만은 희귀해서 별로 걸려들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여름철에 취재를 했기에 감성돔을 낚기는 어려웠나보다. 당초 홍도만 취재할 계획이었으나 경유지인 흑산도의 다물도, 대장도, 영산도 등도 훌륭한 갯바위낚시 여건을 갖추고 있음을 기사에서 주지시키고 있다.

 

○삽교호 준공 답사르포
르뽀-삽교호의 수로들, 새로운 황금낚시터(12월호)
“2천17정보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호의 본류 수면은 지난 9월 이미 치어를 방류, 보호수면으로 지정되어 당분간 낚시는 금지되어 있으나 삽교호에 흘러드는 삽교천, 무한천, 곡교천 등 3대 하천이 수위가 안정됨에 따라 하루아침에 최상급의 낚시터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79년 10월 26일 삽교천 방조제가 완공됨에 따라 삽교호라는 거대수면이 탄생하였다. 그로 인해 삽교천, 무한천, 곡교천에선 경이로운 조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대다수 낚시회가 납회를 끝낸 상황에서 11월 초부터 곡교천 신달2리와 해암리에서 뼘치 붕어가 관고기로 낚이자 11월 첫 주에 무려 15개 낚시회가 집중출조하는 법석을 떨기에 이르렀다. 이후 삽교호는 사철 마릿수터로 명성을 떨쳤고, 온양, 신례원, 합덕의 낚시점들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수질 악화와 어자원 감소로 명성은 많이 퇴색하였고 지금은 떡붕어낚시터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산도 최초 소개
완도 권덕리의 감성돔, 혹돔(12월호)
“이 지방 사람들도 권덕리를 가장 고기가 많은 곳으로 손꼽는다. 4~6월 사이에 산란하기 위해 완도 본섬 근처에서 회유하던 돔들이 찬바람이 불어 수온이 내려가면 청산도 쪽으로 무리지어 이동한다. 9월 말경부터 붙기 시작한 돔들이 12월이 되면 청산도 전역에 퍼져 서식하게 된다.”
당시 완도모니터 김수현씨가 청산도의 명당으로 권덕리 갯바위를 소개하였다. 김수현씨가 ‘첫눈이 내리는 12월 초 이 지방 사람들은 첨대라 부르는 장대를 걸머지고 갯바위에 서서 하루 종일 낚시한다. 잘 잡는 사람들은 하루에 30~40cm급 감성돔과 돌돔을 2백여 수 정도는 거뜬히 잡으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라고 열변했지만, 이상하게도 청산도는 이후로도 한동안 겨울 감성돔낚시터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완도를 찾는 낚시인들이 겨울이면 여서도나 황제도를 더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청산도가 겨울 감성돔터로 뜬 것은 95년 2월 13일부터 목섬 남쪽 벼락바위 부근에서 40~45m급 떼감성돔이 터지기 시작해(혼자 60마리 낚은 꾼도 있었다) 4월 중순까지 무려 두 달간이나 대호황을 보이면서 그해 겨울 전국의 감성돔꾼들을 싹쓸이한 후부터다. 마침내 개봉된 청산도의 겨울 감성돔 자원은 상상을 초월하였고, 96년 겨울까지 이어진 2년간의 청산도 호황은 완도항이 녹동항을 제치고 신흥 출항지로 급부상하고,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지방에 수많은 바다낚시꾼을 만들어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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