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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춘추 창간 39주년 특집 -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 3편 (1980~1982)
2010년 03월 949 1359

낚시춘추 창간 39주년 특집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

 

 

1980년대

 

 

1970년대가 한국낚시의 태동기라면 1980년대는 한국낚시의 중흥기였다.
동해안에 줄곧 머물던 바다낚시터가 남해안 도서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등장한 크릴미끼의 보급이 갯바위낚시의
열기를 부추겼다. 민물에서는 85년부터 충주호시대가 시작되면서 붕어낚시의 고급화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카본대를 위시한 붕어낚시 장비와 소품에 대한 전반적 혁신이 일어나면서 우리나라 낚시산업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1981년

○영광 불갑지 최초 소개
낚시꾼들의 발길이 뜸한 전남에서 제일 큰 不凍湖-불갑지(1월호)
“불갑지는 지령이 56년이나 된 우리나라 굴지의 고지이면서 비간석지로서 순수한 저수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저수지이다.”
송소석 선생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대형 붕어낚시터로 불갑지를 소개했다. 당시 광주와 목포 등의 해안 도시에 바다낚시 열풍이 불어 많은 붕어낚시인들이 바다낚시로 돌아섰는데 그 때문인지 여름 내내 조황이 좋았는데도 낚시꾼들이 작년보다 많지 않았다는 관리인의 얘기가 눈길을 끈다. 서울과는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해 서울 낚시꾼들은 엄두도 못 내고 광주와 목포 그리고 현지꾼들만이 찾아주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불갑지는 배스낚시터로 변모하였으나 초봄엔 상류 일원에서 붕어들의 산란특수가 매년 전개된다.

 

○장흥 회진 배낚시터 최초공개
아늑하고 조용한 감성돔 낚시의 명소-장흥의 회진 앞바다(5월호)
“배의 대선료나 숙식비가 녹동보다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할 수 있어서 때 묻지 않은 낚시터라고 하겠다.”
본지 대구 모니터 백경찬(白慶燦)씨가 12년 전 우연히 사업상 알게 된 K씨라는 사람으로부터 소개받아 찾아갔던 장흥 회진 앞바다 배낚시터를 최초로 소개했다. 당시 백경찬씨는 멋진 청바지를 입고 배낚시에 나섰다가 45cm급에 이르는 감성돔을 30~40마리나 낚았으나 워낙 많은 감성돔을 낚다보니 수놈 감성돔이 흘린 정액에 바지가 온통 지저분해졌다는 에피소드도 함께 담았다. 당시 회진 앞바다의 감성돔 배낚시는 녹동과 낚시법이 비슷했고 조황도 결코 뒤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또한 녹동이 매년 5월이면 산란감성돔을 낚기 위해 몰려드는 낚시인들 탓에 북새통인 반면 매우 한적하고 비용도 저렴한 실속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백경찬씨는대구의 바다낚시 1세대로서 ‘낚시천국’낚시점을 운영했으며 거문도 돌돔낚시 명수로 이름을 떨쳤다.

○반변천 최초 공개
대형 쏘가리의 산지, 반변천의 물길 80리(6월호)
“대형 쏘가리는 물론 그 수효가 자꾸 줄어가는 상황에서도 쏘가리들이 많이 서식한다고 소문난 곳이 있다.”
경북 영양~청송을 흘러 안동으로(지금은 임하호로) 흘러드는 반변천이 현지 르포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반변천은 태백산맥의 계곡 곳곳에서 흘러내린 옥수가 하천을 이루어 수질이 맑았는데 ‘특징은 수심이 깊은 하류 쪽에 대형급 쏘가리가 많이 사는 다른 하천과 달리 안동시 인근 하류의 소들은 안동시와 농가에서 흘러든 오수 탓에 큰 놈들이 없고 비교적 수심이 얕은 상류 쪽의 영양군의 하천으로 한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사에서 소개한 반변천의 쏘가리낚시터는 청송군 길안면 지례동 일대에서부터 하류 망천동에 이르는 14km 구간. 그리고 지례동에서 약 20km 상류로 더 올라간 영양군 입암면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한 약 20km 구간이다.

 

○천수만 창리 감성돔 배낚시터 발굴
새로 발굴된 서해 감성돔낚시터-창리(8월호)
“현재 천수만 가운데에서도 감성돔낚시가 이루어지는 지역의 행정구역은 서산군 부석면 창리이다. 쉽게 말하자면 천수만 내륙으로 향한 제일 끝단이라 할 수 있다.”
홍성에서 안면도로 향하는 천수만 A, B지구 방조제의 중간에 있는 창리 앞바다가 천수만의 새로운 감성돔 배낚시터로 소개됐다. 지금은 바다좌대낚시터가 밀집돼 있고 감성돔 배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없지만 당시엔 서울에서 3시간 30분 거리인 창리 앞바다에서 감성돔이 무수히 낚였다. 배낚시 뿐 아니라 창리 선착장 앞 20분 거리의 토끼섬과 용구녕섬에서는 갯바위 원투낚시로도 감성돔이 낚였다.
그러나 창리는 84년 완공된 천수만 A, B지구 방조제가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담수의 물길을 끊으면서 이 지역에서 산란하던 감성돔이 발길을 돌림에 따라 추억의 감성돔 출항지로 사라졌다.


●1982년

○가거도 최초 답사르포
화제의 현장-낚시천국 소흑산도 탐사기(1월호)
“일제 카본 릴낚싯대가 죽으라고 곤두박질하더니 5m 벼랑 아래로 불쑥 감성돔이 치솟았다. 팽팽해진 낚싯줄을 거머쥐는 순간 5호 목줄이 따-악 하고 끊어졌다. 어어? 어-억? 말로만 비명을 지를 뿐…”
바다낚시인들의 로망이자 남해서부 감성돔낚시의 최고 오지 가거도에 대한 장기일정의 르포기사가 최초로 실렸다. 그 전에 가거도에 관해 간략히 언급한 글이 몇 차례 실리긴 했었다. 본지 김국률 기자와 유주방씨 일행이 들어간 가거도 탐사는 고행과 난관의 연속이었다. 81년 11월 24일 서울에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목포로 내려간 취재팀은 이튿날 오전 객선을 타고 2시간여 걸려 대흑산도로 들어간 뒤 대흑산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오전 다시 광순호로 갈아타고 4시간 30분 만에 가거도에 도착했다. 도착 첫날부터 일행 선원일씨가 종선에 올라타다 손가락 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가거도에는 1톤도 안 되는 통통배가 종선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선착장이 없어 파도가 몰아치는 자갈밭 해안에서 배를 띄워야 했다니 고속 낚싯배가 즐비한 지금의 가거도와는 격세지감 그 자체다. 당시 가거도는 낚시인들이 적잖이 들어와 있었는데 진주바다낚시회 장문규씨 일행이 두령여와 산탁개 일대에서 50~60수 감성돔을 하루에 낚았다는 내용이 당시 가거도의 감성돔 자원을 대변하고 있다. 취재팀은 철수 이틀 전인 29일과 30일, 산탁개 일원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감성돔 손맛을 봤는데 ‘5호 목줄이 끊어져 8호로 바꿨다’는 얘기만으로도 당시의 우직스러운 가거도 감성돔낚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꾼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던 가거도의 갯바위 포인트들이 이때 지면에 정리됨으로써 이후 가거도 원정꾼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 바다낚시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가거도 답사기.

 

○외모군도 최초 공개
완도의 처녀지 탐조기-소안군도·외모군도를 찾다(2월호)
“재래식 배낚시만을 낚시라 하고 갯바위에서의 낚시는 뭍낚시라 해서 낚시로 쳐주지도 않는다. 낚시의 처녀지가 바로 이런 곳들이다.”
대구의 이일섭 선생이 소안군도와 외모군도를 완도의 처녀지로 소개했다. 당시 이일섭씨는 소안군도를 청산도, 거문도, 추자도, 소흑산도에 버금가는 겨울낚시터로 칭송했을 정도인데 잘 발달된 양식장 덕분에 참돔 감성돔 농어 우럭 볼락 등의 다양한 어종이 낚이는 황금어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외모군도는 여름과 가을철의 참돔낚시터가 잘되는 곳으로 소개했다. 외모군도에 속한 대·소원정도, 대·소장구도, 조도, 어룡도, 강원서, 외모도, 죽굴도 등에서 참돔과 볼락, 농어 등이 잘 낚인다는 사실이 이때 최초로 소개됐다.

 

○육령지, 사정지, 백야지 최초소개
신생 3형제 낚시터 금왕지 분석(5월호)
“수질과 환경 및 인심의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곳, 씨알은 크지 않지만 마릿수로는 팔이 아플 정도, 봄이면 진달래 꽃향기가 수면에 흘러 퍼지는 경치 좋은 낚시터…”
‘신생 3형제’란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 79년 갓 축조된 육령, 사정, 백야저수지를 표현한 말이다. 금왕읍과 가까운 이유로 통칭해서 금왕지라고 불렀다. 또 3개 저수지가 하나의 지하수로로 물길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문은 유일하게 백야지에만 달려있어서 백야지가 방류를 하면 세 곳 모두의 수위가 줄고 반대로 닫으면 세 곳 모두 똑같이 유지된다. 과거 이 세 곳은 산간협곡의 농토였다가 79년 3월에 제방이 완공되어 본격적인 담수에 들어갔다. 이후 2년 만인 81년경부터 지역민들이 쏠쏠한 재미를 보면서 서울의 낚시회들까지 단체 출조를 오는 유명 낚시터로 성장했다. 지금은 모두 유료터로 관리되고 배스가 들어가 과거의 명성만큼은 못하지만 지금도 육령, 사정, 백야 하면 ‘아~ 그 삼형제낚시터!’ 하고 80년대의 추억을 되살리는 꾼들이 많다.

 

○해남 삼마도 최초공개
최초로 공개되는 삼마도의 감성돔낚시(6월호)
“이때의 삼마도 일대는 나지막한 산비탈에 유채꽃이 만발하는 시기이다. 즉 삼마도의 유채꽃 소식과 함께 감성돔의 어신도 무르익는 것이다.”
해남 근해의 대표적인 감성돔낚시터 삼마도의 감성돔낚시가 처음으로 지면에 소개됐다. 삼마도는 진도와 해남 사이를 거쳐 목포 쪽으로 이동하는 감성돔을 노리는 낚시터라는 이미지가 강한 곳인데 4월 말~5월 초순이면 시즌이 열려 청보리밭이 누렇게 익어갈 무렵인 6월 초순경이 씨알도 최고라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당시 해남 지역에서는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감성돔 포인트로 현지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지금도 매년 6월경이면 삼마도를 찾는 꾼들의 발길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화원만의 감성돔낚시터 발굴
새로이 드러난 화원반도의 감성돔낚시터(7월호)
“미개척 낚시터 중에는 목포 근해에서 서쪽으로 영광군을 포함하여 군산에 이르는 서해남부 지방을 들 수 있다. 여기 소개하는 화원만도 역시 미개척 낚시터의 하나로 82년 봄부터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방조제로 막혀 민물 호수가 되어버린 화원만이 한때는 50cm급 감성돔이 속출하는 명낚시터였다는 사실이 소개돼 있다. 당시 서울에서 국제낚시를 운영하던 유주방 선생이 4월 하순 이후 총 6회에 걸쳐 서울에서 원정출조를 하면서 알게 된 포인트들을 소개했는데 만 입구인 화원면 별암리와 산이면의 신흥리 중간에 있는 금호도 등이 명낚시터로 손꼽혔다. 당시 유주방 선생은 ‘소흑산도 근해에서 북상하는 감성돔의 무리가 제일 먼저 찾아드는 곳이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가을철 별암방조제에서는 살감생이낚시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대청호 상류 안남 쏘가리터 최초공개
화제의 쏘가리낚시터 안남의 루어낚시터(8월호)
“대청호의 광활한 수면이 어자원의 공급처가 되어 쏘가리 자원이 어느 곳보다 풍부한 지역으로, 급기야는 증가하는 루어낚시 인구를 더욱 부채질한 곳이라는데…”
너무 유명하다 못해 지금은 한 물 간 쏘가리낚시터로까지 불리는 충북 옥천군 안남의 루어터가 처음으로 상세하게 소개됐다. 원로 루어낚시인 김홍동, 박현재, 송이석씨와 동행 취재에 나선 김국률 기자가 5월 26~27일간 취재한 것으로 당시엔 계속되는 가뭄으로 강수위가 낮아져 보도에 문제가 생기자 단순 화보로만 소개했다가 강우량이 예상되는 8월호에 포인트 세밀지도를 곁들여 소개했다. 동락정 아래, 지수리 방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눈에 띈다.

 

○안면대교 농어낚시터 발굴
특종 르뽀-안면교 부근에 숨은 농어낚시터(9월호)
“대형 감성돔 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창리 부근에 대형의 농어 낚시터가 있었다. 낚였다 하면 크게는 보통 60~70cm급, 크게는 1m짜리까지가 선을 보였다.”
서울과 현지의 극소수 낚시꾼만이 파먹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본지 이근원 기자가 잠입(?)해 현장을 소개했다. 화제의 장소는 서산군(현재는 태안군) 안면면 안면교였다. 이곳이 농어낚시터로 알려진 것은 81년 4월부터인데 서울의 김석주씨가 루어 캐스팅낚시를 다년간 즐겨오던 터에 어느 수석 채집가로부터 안면교 일대에 농어 자원이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농어낚시를 시도해 조과를 거둔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소개한 세밀지도는 지금 들고 찾아가도 될 만큼 정교한데 당시 김석주씨가 사용한 스푼루어 사용법, 포인트 공략법 등이 함께 소개됐다.

 

○강화도 숭어낚시터 최초소개
강화도의 이색낚시터-갯바위에서 숭어낚시를(9월호)
“갯바위에서 숭어를 낚는다. 그것도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남짓한 거리, 강화도 양도면 하일리가 그곳이다.”
강화도의 명물인 숭어낚시가 처음으로 실렸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를 유독 강조한 이 기사는 당시 강화도 양도면 하일리 일대가 서울 낚시인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매력적인 낚시터임을 강조하고 있다. 굳이 전날 또는 새벽에 움직이지 않아도 3~4물때 만조 시간만 맞춰 가면 되기 때문이다. 당시 해조구락부(당시까지만 해도 클럽을 일본식 발음인 구락부로 표기) 이환씨의 안내로 찾아간 하일리의 숭어낚시는 일반 찌낚시가 아닌 처넣기 방식이었는데 1m가 넘는 강화도산 갯지렁이에 놀란 취재팀의 표정이 눈에 선한 기사다.

 

○제주도 붕어낚시터 최초공개
탐라에서의 붕어낚시(11월호)
“머나먼 제주도까지 와서 바다낚시는 않고 민물낚시를 하다니… 누가 보면 미쳐도 보통 미친 사람들이 아니라고 웃을 거라는 소리들을 해가며 우리는 ‘올라온다’를 연발하며 붕어와 잉어를 올려댔다.”
한국낚시펜클럽(A.P.C) 회원이었던 조능식(趙能植) 화백이 82년 9월 21일 제주도로 낚시를 떠났다가 붕어낚시를 즐긴 조행기다. 당시 일행은 어탁가 김홍동, 이중식씨 등이 동행했는데 원래는 서귀포 숲섬에서 돌돔을 노릴 생각이었으나 태풍의 영향으로 기상이 좋지 않자 붕어낚시로 선회했다. 당시 제주도에는 민물낚시 전문점이나 미끼를 파는 곳도 없었고 낚시터에 대한 정보를 알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모슬포 부근 보성리 남문 앞 웅덩이, 성산포 일출봉 가는 길의 둠벙, 성산포의 이름 모를 물통 등에서 붕어낚시를 즐겼다. 특히 ‘성산읍 수산2리의 물통은 생김새도 이쁘고 환경이 깨끗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의외로 제주도의 붕어낚시터는 수질이 나쁘고 물이 없는 곳들이 많아 조능식씨 일행을 실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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