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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취재-1938년에 찍은 어탁 찾았다
2009년 09월 1217 1944

 

 

 

발굴취재

 

 

1938년에 찍은 어탁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탁으로 추정
일제 말 최두원씨가 제작한 어탁 16장, 낚시사료적 가치 높아

 

 

서성모 기자 blog.naver.com/mofisher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탁이 발견됐다. 1938년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어탁은 현존하는 어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어탁을 뜬 사람은 최두원으로 기록돼 있다. 자신이 낚은 22.5cm 붕어를 직접어탁 방식으로 떴다. 이 어탁 외에도 최두원씨가 7년간 찍은 어탁 15장이 더 있었다. 이 어탁들은 충주의 한국해양어구박물관 유철수 관장이 소장하고 있다가 공개한 것이다.

어탁을 본 한국어탁회 이상근 회장은 “어탁에 쓰인 내용과 필체 그리고 어탁의 상태를 보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어탁 중 최고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함께 발견된 15장의 어탁엔 당시의 낚시채비와 미끼를 알 수 있어 낚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감정 소감을 밝혔다.


 

 국내 최고(最古) 어탁으로 추정되는 최두원씨의 붕어 어탁. 김포군 양서면 개화리 부평수리조합수로 제방 동편 수문에서 머물러 있다가 칠촌오분(七寸五分, 22.5cm) 붕어를 잡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낚은 날짜인 ‘소화(昭和) 13년’에서 ‘소화’는 일본 소화왕의 재위기간으로서 소화 1년은 1926년을 뜻한다. 그래서 소화 13년은 1938년이다.
 

종전 최고(最古) 어탁은 1957년 작품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어탁으로 알려져 있던 것은 1960년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국낚시연합회 회보집인 ‘조우(釣友)’ 표지에 실렸던 어탁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낚시 관련 간행물인 ‘조우’의 표지에 실린 어탁은 당시 연합회에서 활동하던 문종건씨가 1957년 화성 장안저수지에서 낚은 월척 붕어를 직접법으로 뜬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어탁은 없고 어탁을 찍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최두원씨의 어탁은 한국어탁사를 바꿔놓은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한국어탁회 이상근 회장은 “일본의 어탁사는 150여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의 어탁은 그 역사를 밝혀줄 사료 자체가 없었다. 수묵문화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만큼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어탁의 역사를 가지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어탁의 역사를 재조명해볼 사료가 발견되어 참으로 반갑다”고 말했다.
한국어탁회 초대 회장이었던 원로낚시인 김홍동씨는 저서 <어탁교실>(1981년, 다락원 刊)을 통해 “어탁이란 말은 일본인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지금부터 약 70년 전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어탁이 그들 나라에서만 행해진 것 같이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어탁은 적어도 낚시가 취미로서 행해진 시대부터(특히 닥나무로 종이와 먹을 사용한 나라에서)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략 … 일본에서는 서기 1857년대의 잉어 어탁이 현존하는 최고의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직 옛 조상들의 어탁을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고화에 나오는 조인도(釣人圖)와 백제 때 경중이란 도공이 일본에 가서 그들에게 낚시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더라도 150년 전에 일본에서 행해진 정도의 어탁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하고 서술하고 있다.

 

 

                       두원씨의 어탁을 살펴보고 있는 유철수 한국해양어구박물관장                 

 

 

유철수 한국해양박물관장이 어구 수집 중 구입

 

 

이번에 발견된 붕어 어탁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것으로 모두 16장이다. 이 어탁들은 ‘면정연구(面政硏究)’란 제목의 두꺼운 표지 속에 묶여 있었고 조선면행정연구회가 편찬한 것으로 쓰여 있다. 소장자인 유철수 한국해양어구박물관장은 “해양어구 수집에 관심이 많아 십여 년 전국을 돌며 진귀한 해양어구들을 모아 지금의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어탁은 대구의 한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것인데 어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사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치가 있는 자료일 줄은 몰랐다”면서 놀라워했다.
유관장은 낚시방송을 보던 중 소장하고 있는 어탁이 낚시사료로 가치가 있을지 궁금해 촬영을 의뢰했는데, 그때 어탁 감정을 한 이상근 회장을 통해 국내 최고 어탁으로 밝혀지게 된 것이다. 유철수 관장은 적정한 가격만 제시한다면 뜻있는 낚시인에게 어탁을 판매할 뜻도 비쳤다. 
어탁을 본 한국어탁회 김태근 회원은 “신기하다. 붕어의 등지느러미를 세우고 고기의 형태가 드러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어탁이다”하고 소감을 밝혔다. 이상근 회장은 “이번에 발견된 어탁처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어탁들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혹 이 기사를 본 독자 중에 이보다 더 오래된 어탁을 갖고 계신다면 연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쭗한국어탁회 02-373-7337, 한국해양어구박물관 043-855-9006

 

 

 한국어탁회 이상근 회장(우)과 유철수 한국해양어구박물관장이 어탁을 한 장씩 넘겨가며 낚시 기록을 살피고 있다.


최두원씨의 어탁으로 살펴본 1938~1945년 낚시

 

 

이번에 공개된 어탁은 어탁사 뿐만 아니라 낚시사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귀중한 자료다. 어탁엔 낚은 붕어의 크기 외에 낚은 날짜와 장소, 미끼, 채비 등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16장의 어탁은 최두원씨의 1938년부터 1945년까지 7년간의 주요 출조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최두원씨가 1938년~1945년 7년간 제작한 어탁 16장은 ‘면정연구’란 겉표지로 한 데 묶여 있었다. 

 

 

□어탁의 주인공 최두원씨는 명필가이자 열성 낚시꾼
최두원씨의 어탁은 조선면행정연구회가 편찬한 ‘면정연구’란 겉표지로 묶여 있었다. 최두원씨가 당시 공무원의 신분으로 ‘생태조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여 제작한 어탁인지, 아니면 겉표지만 이것을 사용했는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어탁 상태와 어탁에 기록한 붓글씨를 본 이상근 회장은 “최두원씨는 붓글씨를 잘 쓰고 낚시 열정이 대단한 낚시꾼인 것 같다. 어탁의 붓글씨들은 모두 세필로서 보통 실력이 아니다. 또 낚은 물고기를 이처럼 어탁으로 남길 생각을 했다면 상당한 낚시꾼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기차를 타고 낚시를 다니다              
1940년 제작한 어탁을 보면 “나는 1940년 6월 15일 경인선을 타고 주안역에서 내려 14.5cm 붕어를 낚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그가 어탁에 기록한 낚시터를 보면 보령 지역의 낚시터가 많다. “1939년 보령군 주포면 진죽리(송암)에 가서 21cm 붕어를 낚았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진죽리(송암)’는 지금의 진죽지를 말한다. 송암은 진죽지 상류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진죽지는 장항선 청소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1940년 16.5cm  붕어 어탁. 경인선을 이용해 부안역에서 내려 낚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새우와 지렁이를 미끼로 붕어를 낚다
어탁엔 미끼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1944년에 제작한 어탁엔 “고잔의 길전저수지에서 백하를 사용해 27cm 붕어를 낚았다”고 밝히고 있다. 백하(白鰕)는 새우를 뜻한다. 그때 이미 새우를 미끼로 붕어를 낚았음을 알 수 있다. 또 1938년 제작한 어탁을 보면 “김포군 고촌면 고촌수로에서 구인을 사용해 22.5cm 붕어를 낚았다”고 쓰여 있다. 여기서 구인()은 지

렁이를 뜻한다.  

 

 

1938년 22.5cm 붕어 어탁. 김포 고촌수로에서 지렁이 미끼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의문의 표기, ‘구(鉤) 육(六)’과 ‘도사(道絲) 이(二)’
1940년 어탁을 보면 ‘구(鉤) 육(六)’과 ‘도사(道絲) 이(二)’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구는 바늘을 의미하고 도사는 줄을 뜻한다. 바늘의 6이란 숫자는 바늘의 개수를 적은 것으로 해석됐다. 유철수 관장이 당시 어탁과 함께 구입한 자새에 여섯바늘채비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늘이 여섯 개인 채비는 지금도 잉어낚시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줄의 2란 숫자는 아리송하다. “혹시 2호 줄이란 호수를 적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나일론이 낚싯줄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1958년이므로 1940년에 ‘2호 줄’이란 상품이 유통됐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2합사를 뜻하는 것인가?”하는 의문도 제기됐다. 어쨌든 1940년에 어떤 바늘과 줄을 썼는지 어탁에 표기했다는 것은 이미 그때부터 낚시인들 사이에 다양하고 규격화된 채비가 쓰였음을 말해준다. 

 

 

 1940년 보령 영보리지 27cm 붕어 어탁. 바늘채비. 목줄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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