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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 명칭 고증 연구 - 조선시대 문헌의 이름은 소가리, 눗티, 필암어
2014년 12월 2073 5335

 

어류 명칭 고증 연구

 

 

 

조선시대 문헌의 이름은

 

 

소가리, 눗티, 필암어

 


조성욱 한국전통견지협회 회장

 

 

한국 낚시인들에게 친숙한 강계 어류로 쏘가리, 누치, 피라미를 꼽을 수 있다. 이 세 어종은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고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묵로 이용우(1902~1952) 화백의 어해도(魚蟹圖).

쏘가리는 민화와 어해도에서 벼슬살이의 의미로 해석되어 많은 묵객들이 즐겨 다루던 소재였다.

 

거의 모든 물고기마다 본래의 이름과는 별개로 달리 부르는 이름이 존재하지만 쏘가리와 누치, 피라미처럼 이름이 다양한 물고기도 드물다. 특히 쏘가리는 예부터 범상치 않은 생김새와 환상적인 맛으로 사랑을 받은 덕분에 시인 묵객들로 하여금 시화의 주제로 여겨졌다. 희소가치 때문이라도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게 아닐까 싶다.
전통 견지낚시의 주대상어인 누치 또한 수려한 자태와 당찬 입질을 통해 강렬한 손맛을 선사하는 여울의 신사라서 예로부터 불리는 이름이 쏘가리만큼 다양했다.
그리고 계류를 즐겨 찾는 낚시인들에게 친숙한 피라미도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중 피라미는 생태계의 지표로 또는 먹이사슬의 연결고리를 이루는 주요 매개체임에도 전문 낚시인들로부터는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고증을 바탕으로 강계에서 만날 수 있는 쏘가리, 누치, 피라미 이름에 관한 연원을 알아본다.

 

쏘가리의 옛 이름은 소가리(所加里)

 

쏘가리는 등지느러미의 가시가 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꿰이화위(季花漁), 티엔쯔위(天子漁), 무두위(牧豚漁), 냐오히위(烏何漁), 타이위(臺漁)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고대 중국의 의학자 이시진(李時珍)은 쏘가리 맛이 복어처럼 최고라고 평가하면서 쏘가리에 수돈(水豚)이라는 별칭을 달아주기도 했다. 중국 쏘가리는 모양새는 한국 쏘가리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종으로 구분되므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쏘가리를 반궐(斑鱖)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구분해서 부른다.
일본에서는 고라이케쯔교(コライケツギョ)라 부르는데, 맛이 뛰어나다는 뜻의 케쯔교에 우리말인 고려를 붙여 고라이케쯔교로 부른다.
☞ 일본에는 쏘가리가 없으나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쏘가리를 먹어보고 붙인 이름이다. 현재도 일본에는 관상용 쏘가리밖에 없다.

 

조선 후기까지는 소가리로 불려


조선시대 의약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소가리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 책은 1433년 세종의 명으로 유효통(兪孝通), 권채(權採), 노중례(盧重禮) 등의 의관이 여러 의서를 참고로 발간한 조선시대의 종합 향약의서로 쏘가리의 약효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서유구(1764~1845)는 한문으로 쓴 임원십육지 가운데 가축의 사육, 야생동물 사냥법, 고기 잡는 방법을 담은 3~4권 전어지에서 궐(鱖)이라는 한문 대신에 ‘소갈이’라고 한글로 적어 두었으니 궐어는 쏘가리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1809년(순조 9년) 조선 여성실학자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년~1824)가 부녀자를 위해 엮은 한글로 된 생활지침서 규합총서에서는 쏘가리를 한글로 궐어(鱖魚)라고 적고 있다. 빙허각 이씨는 서유구의 형수이다. 임원경제지와 전어지에서는 몸체 무늬가 그물과 닮았다 해서 계어(喬魚)로도 불렀다.

 

▲ 조선시대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한글로 엮은 규합총서.

쏘가리를 한글로 궐어라고 적고 있다.


소가리와 쏘가리의 발음에 대해서 당시 조선총독부 식산국 수산과에 적을 두었던 근대 어류학자 정문기 박사(1898~1995)는 동아일보 1938년 7월 29일자 기사에 “남선(南鮮) 지방에서는 쏘가리라고 부른다. ‘소’는 ‘쏘’의 진화된 어음이라 쏘가리라는 명칭이 몬저 생기엇으리라고 본다”라고 발표했지만 문헌자료의 표기를 보면 오히려 조선 후기까지 소가리라고 부르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쏘가리로 지칭된 것을 볼 수 있다.(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조선을 南鮮과 北鮮으로 불렀다)
이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시대에 살았던 허균(1569~1618)이 그가 먹어본 음식을 열거해서 기록한 음식품평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쏘가리를 일컬어 금린어(錦鱗魚)로 불렀으며 “금린어는 양근(楊根) 것이 가장 맛이 좋다”라고 기록했다. 양근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을 말한다. 또한 궐어는 한양 인근에서 많이 나는데 “백성들은 속칭 염만어(廉鰻魚)라고 부른다” 라고 기록했다.
쏘가리를 금린어로 부르기 이전엔 준수한 생김새와 민물고기의 왕자로 최고의 맛을 지닌 물고기라는 뜻에서 천자어(天子魚)로 불렀으나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 사람 동월(1430~1502)이 먹어보고는 맛이 좋아서 생선 이름을 물으니 감히 생선에 ‘천자’ 운운할 수 없어서 역관이 얼떨결에 금린어(錦鱗魚)라고 통역을 했다고 한다.
쏘가리를 두고 예부터 불렸던 이름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가리(所加里), 천자어(天子魚), 자어(滋魚), 금린어(錦鱗魚), 대어(臺魚), 석계어(石桂魚), 궐어(鱖魚), 계어(喬魚), 거위근어(居衛切魚), 염만어(廉鰻魚), 금문어(錦文魚), 맛 잉어, 수돈(水豚), 궐돈(鱖豚), 천잉어.
쏘가리는 화가와 묵객들에 의해 민화와 어해도 등의 많은 작품에 남겨졌으며 궐어(鱖魚)의 궐자가 왕실을 뜻하는 표기라서 입신양명을 바라는 의미와 귀한 값어치를 담았던 이유로 도자기나 접시, 합죽선, 병풍, 자수 어탑 등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2014년 9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전교구에서 치러지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충청남도를 방문했을 때도 쏘가리가 그려진 '철화분청사기어문병‘을 선물하기도 했다.

 

▲ 2014년 9월에 충청남도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충청남도가 선물한 철화분청사기 어문병.

 

눌어(訥魚)와 누치

 

누치는 잉어목, 잉어과, 누치속으로 분류되며 한국과 중국, 일본에 서식한다. 흔히 눈치로도 부르는 한강 수계의 우점종이다.
누치는 쏘가리와는 달리 씨알 별로 이름이 다른 게 특색 있다. 보통 누치로 부르지만 30cm 이하는 적비, 50cm이하는 대적비, 50cm이상은 멍짜로 부르고 있다.
누치는 만 1년에 체장 7cm, 2년에 12cm, 3년에 17cm가 되며 그 후 21cm, 25cm, 28cm, 31cm, 35cm, 38cm로 성장하고 70cm 이상의 큰 개체도 있다.
어릴 땐 깊은 곳에서 군집을 이뤄 돌에 붙은 이끼 등을 먹이로 삼아 성장하다가 3년 차 17cm 이상이 되면 비로소 생미끼를 먹기 시작한다. 견지낚시에서 생미끼인 구더기를 써보면 20cm 이하의 잔 누치를 여간해서 낚기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1448년 조선팔도총도에서 누치 첫 소개
누치의 이름은 매우 다양해 유희(1773~ 1837)의 물명고에는 취사어, 사매어, 눗치, 눈치, 금리어, 접비, 모랭이, 마재기,매재기, 소무기, 쇠누치, 독노리, 젯비, 쇠제기, 대갈장군, 맹자갱이, 접부, 적비 등이 한글로 부기되었다.
이밖에 방언으로는 놋치, 눈치, 눌치, 눗치, 느치, 는치, 늣치, 몰거지, 몰고지, 운치로 불렀으며 경기권에서는 접비, 모랭이, 눈치. 행주나루 인근에서는 마디고기, 젯비, 쇠제기, 눈치. 경기 여주강 일원에서는 대갈장군, 맹자갱이로 불렀다. 밀양강에서는 눈치, 부눈치. 평안북도에서는 금리어. 평양에서는 마재기 또는 매재기로 불렸다.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조선 땅을 둘러보고 난 뒤 1448년에 편찬한 견문록 조선팔도총도(朝鮮八道總圖) 가운데 연경제전집(硏經濟全集)의 조선부(朝鮮賦)에서 ‘누치를 일컬어 조선중순어(朝鮮重脣魚)라고 기록했고 방언은 눌어(訥魚)라 한다’ 라고 한 것이 지금까지 누치를 소개한 최초의 고서 기록이다.
그로부터 약 80년 뒤 1530년(중종 25) 이행, 윤은보 등이 공동으로 집필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서명응(1716∼1787)의 고사신서, 한치윤(1765~ 1814)의 해동역사, 서유구(1764~ 1845)의 난호어목지와 전어지, 유희(柳僖, 1773~1837)의 물명고(物名考)에서는 눌어(訥魚)로 소개된다.
명종 12년인 1557년 단양군수 황준량이 조정의 가혹한 지방과세를 견디다 못해 임금에게 올린 민폐10조의 상소문에 “궁중에서 젓갈용으로 쓸 눌어의 배당이 100마리인데 물이 맑고 차서 큰 것이 없으므로 먼 곳에서 사다가 바치는 게 폐단”이라고 했을 만큼 주요 진상 품목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요리로도 각광
조선시대 궁중요리를 위해 진상하던 민물생선 6종(누치, 잉어, 빙어, 웅어, 은어, 붕어) 가운데 한자리를 차지할 만큼 지명도가 있었고 1592년(선조25년) 정경운(1556~ ?)이 쓴 기록 고대일록에는 누치(눌어) 89마리를 그물로 잡아 온 마을 사람들이 회로 즐겼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1779년(정조 3년) 조선왕조 승정원일기에는 왕실의 천신 제수용으로 올린 누치가 크기가 작고 조기는 부패했다 하여 관찰사를 파직하고 담당자는 의금부로 끌려가 혼쭐이 났다는 기록도 있다.
해동역사와 물명고에는 ‘눕치와 눗치’라는 방언이 기록되어 있고 난호어목지와 전어지에 “누치는 머리가 숭어와 비슷하고 대형종이며 몸이 노란색이다. 살에 가시가 많고 곡우를 전후로 해서 수컷이 주둥이로 돌에 붙은 물때를 떼어 내면 암컷이 그 뒤를 따르며 물때를 삼키면서 새끼를 친다”고 했으며 누치라는 명칭을 사투리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 표준어로 불리는 누치가 옛적엔 사투리 또는 이명으로 불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피라미와 필암어(畢巖魚)

 

피라미는 체구는 작지만 엄연한 잉어목 잉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다. 남한, 북한,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 서식하며 일본에서는 오이카와(オイカワ)로 부른다.
피라미는 남한에 서식하고 있는 민물고기 150종 가운데서 출현 빈도 1위로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지방마다 워낙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고 방대해서 민물고기 가운데 최다 이름을 지닌 물고기가 바로 피라미다.
☞ 피라미를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 : 가래, 가리, 간다리, 갈라리, 개리, 개피리, 꽃가리, 꽃갈, 날피리, 먹지, 불가라지, 불가리, 불가지, 불갈라지, 불개리, 불거리, 불거지, 불걱지, 불고지, 불괘리, 불구치, 불러지, 붉거지, 붉어지, 브러지, 비단피리, 색피리, 세비, 송사리, 술메기, 적도지, 지우리, 참피리, 챙피리, 청피리, 피라지, 피래미, 피랭이, 피리, 피리미, 홍가래.

 

1798년 재물보에 피라미를 ‘필이미’로 표기
1798년(정조 22년) 이만영이 편찬한 재물보(才物譜)에 피라미를 가리켜 ‘필이미’라고 적고 있으며 한자로는 조어(鰷魚)로 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강호(江湖) 중의 소어(小魚)이다. 길이는 겨우 수촌이며 모양은 버들잎 같다. 결백하고 사랑스럽다. 떼를 지어 회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별명으로 백조(白鯈), 찬어(䱗魚), 수어(鮂魚) 등이 있다”라고 기록했다.
조선 영조 때인 1820년경에 서유구가 펴낸 난호어목지에는 참피리(鰷), 날피리(飛鱓魚), 불거지(赤鰓魚)로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비늘은 백색이고 등은 검고 청색을 띠고 있다. 눈에는 붉은 점이 있다. 배는 조금 둥글고 꼬리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빨아서(가늘어져) 언도(偃刀 중국식 칼) 모양과 같다. 네 개의 아가미가 턱 밑에 있고 두 개의 지느러미가 등 위와 배 밑에 있다. 꼬리는 갈라져 제비 꽁지와 같다. 큰 것은 3촌에서 4촌이다. 산란기에 미적색의 혼인색을 띤 수컷을 불거지 즉 적새어(赤鰓魚)로 부르며 일명 필암어(畢巖魚)라고 한다.”
불거지는 온몸이 붉고 파란 무늬가 있으며 지느러미도 붉은색을 띠고 있다. 주둥이의 아래쪽에 사마귀돌기가 있어서 좁쌀이 빽빽하게 붙은 것처럼 보인다.(여기에서 서유구가 사마귀돌기라고 한 것은 산란철 주둥이에 추성이 돋은 걸 말한다.)
조선시대 시인이자 산문가인 이학규(李學逵 1770~1835)가 24년 동안의 유배지인 김해에서 지은 한시에서는 피라미를 뜻하는 률어(篥魚)를 시제로 읊은 걸 볼 수 있다.

 

篥魚

火酒新甞薦野蔬 田蠡曳水涴帬裾
早來始識南烹好 恰有盈盤篳篥魚
소주를 새로 맛보며 야채도 바치더니
농사꾼이 옷자락 적시며 물속에 들어갔네.
남녘의 맛있는 물고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네.
소반에 가득 피라미를 담아왔네.

 

1823년(순조 23) 한진호(1792-1844)가 남한강 수계를 거슬러 올라가며 지은 도담행정기(島潭行程記)에는 피라미를 두고 다음과 같이 표현한 기록이 보인다.

 

강어(江漁)에는 금문어(錦文魚)는 쏘가리와 같으면서 몸이 둥글고, 이항어(飴項魚)는 피라미(畢巖魚)와 같고, 중순어(重脣魚)는 중국의 붉은 눈을 가진 송어와 같은데 입술이 말코와 같은 것이 맛이 좋다.

 

조선 후기의 문인 최영년(崔永年)이 1925년 저술한 우리나라의 풍속유희와 명절풍속과 음식명물을 비롯 전래 음식에 관해 유래와 전승지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해동죽지(海東竹枝) 129쪽에 피라미 요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川獵湯

水原名産也 每夏節 獵小鯈魚和粉煎油 轉入鷄湯和蔈茸葱薑 再烹 味甚甘膩
천렵탕(川獵湯)은 수원의 이름난 산물이다. 매년 여름철에 작은 조어(鯈魚, 피라미)들을 잡아 밀가루에 기름으로 부치고, 이것을 닭국에 넣고 표고버섯, 파, 생강 등과 함께 다시 끓이면 맛이 매우 달콤하고 기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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