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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_낚시 꽁트-씁새(248)-경주 가는 길
2017년 03월 695

연재_낚시 꽁트-씁새

 

 

경주 가는 길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무엇인지 이상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뻐근하고 아팠으며, 눈도 떠지지 않았다. 그리고 씁새의 귀에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들이 스쳐가는 중이었다.
“…뽀로로… 토마스…”
“변신 로봇… 엄마… 안 된대.”
“고양이가… 집에 왔는데… 또 갔대.”
엄청난 숙취가 씁새의 머리를 찔러댔다.
-뭐여? 뭔 일이여?
아무리 눈을 뜨려 해도 눈은 천근만근이었고, 온몸이 결박이라도 당한 듯 꼼짝하기가 어려웠다.
-납치? 왜? 내가 왜 뭔… 잘못을 한겨?
그러나 납치 따위를 떠올리기에는 더 이상했다.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덩치 우람한 사나이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병아리들처럼 빽빽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뭐여… 소인국에라도 떨어진 거여? 소인국 애덜이 나를… 묶은겨?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을 깨우려 애쓰며 씁새는 그간의 일들을 떠올리려 애셨다. 낚시, 우럭, 관광버스! 그랬다. 분명히 우럭 침선낚시를 갔었다. 관광버스를 대절한 낚시동호회와 함께였다. 모처럼의 겨울 배낚시에 신이 났었고… 몇 마리의 큼지막한 우럭들이 올라왔고… 그리고. 그 다음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스박스에 들어찬 우럭들. 김 선장의 웃음소리. 개차반낚시회 놈들의 호기로운 헛소리들.
-근디… 내가 우찌… 이라고 있는겨?
“쌤! 아저씨 일어났나 봐요!”
갑자기 아이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씁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워미… 이게 뭣이여?”
씁새가 눈을 뜨며 소리쳤다. 그의 앞에는 의자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모여 있었다. 대충… 유치원생들이었다!
“니… 니들… 뭣이여?”
씁새가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바로 앞의 아이를 보며 물었다.
“기사님! 뒤에 아저씨 일어 나셨대요!”
중간 자리쯤에서 젊은 아가씨의 소리가 들려왔다. 영문을 모르겠는 씁새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광버스 안, 그리고 빼곡하게 앉아있는 5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아이들의 인솔자로 보이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선생 둘, 창밖으로는 드문드문 시골 풍경들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이게 뭔 일이래유?”
씁새가 맨 뒷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월레? 아저씨 인자 깨나신겨유? 뭔 술을 그리 마시고 씨러지셨대유?”
열심히 운전을 하던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술? 씨… 씨러져?
씁새는 계속해서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계속해서 극심한 숙취만 올라오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우째, 술을 심히 드시라구유. 친구분덜이 그리 말리는디, 뭔 일이 있었는지 마시는 게 아니구 들이붓드만유.”
기사가 열심히 운전을 하며 말했다.
-좋은 일… 아이스박스!
또 다시 기억의 한 조각이 생각났다. 동호회의 배낚시가 끝나고… 경품추첨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다! 있었다. 그리고 씁새가 경품 중에 하나인 대형 갈치용 아이스박스를 탄 것이다.
“워미! 내 아이스박스!”
그리고 드디어 씁새의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거 워디 가는겨유?”
씁새가 기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씁새의 앞자리에서 단발머리의 꼬마 여자애가 뒤돌아 일어서더니 대답했다.
“경주 가요.”
여자애가 생글생글 웃으며 씁새를 쳐다보았다.
“겨… 경주! 대전 안 가유?”
“대전에서 온 건데….”
“경주에 갔다가 이따가, 이따가 대전에 가요.”
다른 남자애들이 여자애처럼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대… 대전이루 가는 거 아녀? 다른 사람덜은?”
씁새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우리 경주에 놀러 가는데요. 아침에 대전에서 와서, 지금 경주 가는데요?”
여전히 돌아앉아 씁새를 보며 여자애가 대답했다.
“그 아자씨가 어제 낚시 끝나구서니 뭣인지 기분이 좋다문서 그 맨 끝자리에 앉아서니 사람덜이 술을 주는 대루 죄다 받아마시구서니, 노래허구 난리 났잖여유?”
기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 어제유? 어제 밤에유?”
씁새가 놀라 소리쳤다.
“그려유. 그려서 같이 갔던 친구분덜허구, 낚시꾼덜 죄다 취해서니 인사불성이드만유. 그려서 대전 뿌리공원에 도착했는디, 다덜 내리셨는디… 아자씨는 낭중에 버스 청소 할라구 보니께 그 뒷자리에 씨러져서 아무리 깨워두 정신을 놨드만유.”
이제야 씁새의 기억이 모두 되돌아오고 있었다.
“우리 친구덜은유?”
“가셨쥬. 모두 떠난 담에 아자씨를 발견헌겨유. 아무리 깨워두 안 일어나서니, 조금 재워드리구 아침에 정신이 들겠거니 허구서니, 지두 바빠서 아자씨 깨워 드리는 거 깜빡 했지유. 우쩌겄어유. 애덜 유치원서 경주루 가는디, 늦을깨비 부랴부랴 애덜 태우러 가니라 아자씨 생각을 깜빡 했지유.”
-예미! 좃됐다!
그랬다. 씁새의 기억은 버스에 올라오고, 뒷좌석에 우르르 모여서 그간의 무용담과 예전의 낚시 실수담을 떠들어대며 술을 퍼마신 기억에서 끊어진 것이다. 그렇게 술에 떡이 되어 버리고 씁새가 정신줄을 놓아 버린 사이에 사태가 진행된 것이었다.
“우리는 기사님 조수분이 피곤해서 주무시나 해서 안 깨워 드렸는데?”
유치원생들 인솔교사인 여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 그라문… 지는 우째유?”
씁새가 울상이 되어 물었다.
“우쩌겄어유. 우찌 됐거나… 경주 다 와가는디… 경주 가서 생각해야지유. 아자씨 때문에 차를 되돌릴 수도 없구유. 그냥 이대루 애덜허구 경주 구경허구 오후에 대전이루 가는 수  밖에 없구먼유. 아니문… 경주 도착혀서 대전 가는 차루 바꿔 타서 올라가셔야지유.”
기사가 난처한 듯 말했다. 씁새가 부랴부랴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진동으로 되어있는 휴대폰에는 수없이 많은 메시지와 전화들이 떠 있었다.

 

 


-뭐여? 뒤진겨? 워디서 뒤진겨?(총무놈)
-워디여? 집이 안 왔다는디?(호이장놈)
-이눔이 바다에 빠진겨? 같이 버스 탔는디… 연락혀. (회원놈)
-다들 집에 왔다는데, 어디루 샌겨? 또 낚시장비 저당 잽히구 술 마시는겨? (마님)
“그라문… 시방… 그니께… 이 버스가 경주루… 가는….”
씁새가 울상이 되어 되물었다.
“우아! 아저씨 술 냄새!”
앞자리의 아이가 코를 막으며 돌아섰다.
“자, 우리 노래하면서 가요.”
중간쯤의 자리에 앉아있던 여선생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갑자기 버스 안이 아이들의 노래 소리로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두 노래해요.”
앞자리의 남자아이가 뒤돌아보며 씁새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왜 술 먹어요?”
“아저씨도 경주 가요?”
“아저씨는 경주 왜 가요?”
“아저씨는 회사 안 가요?”
아이들의 노래 소리 속에서 그래도 이 행색 이상하고 부스스한 씁새에게 흥미를 느낀 아이들의 물음이 쏟아졌다.
“집이 가구 싶어….”
씁새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경주를 상징하는 커다란 왕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이제 경주에 도착했어요.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지요?”
여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불국사요!”
아이들의 합창이 쏟아졌다.
“대전이요….”
씁새도 자그맣게 대답했다.
-얼레? 너 워디여? 워서 술 처 마시구 뒤진 중 알았는디? 왜 이렇게 시끄러운겨?
휴대폰 너머로 호이장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주.”
-뭔 개소리여? 웬 경주? 경주루 낚시간겨?
“나 줌… 데려가라. 주머니에 돈두 없구… 이대루 경주 불국사 구경허게 생겼다.”
-이눔이 안적두 술이 안 깬겨? 당장 집이루 들어가. 제수씨 독이 올라서 난리여!
“여기 경주라니께. 애덜이 버스에 잔뜩혀. 애덜허구 노래 불러야 혀!”
-지랄을 무데기루 싸지르고 자빠졌네. 지랄 말구 언능 집이루 먼저 가.
“진짠디… 경주.”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버스 안에 가득했고, 창밖으로는 불국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지나갔다.
“예미… 낚시를 허다허다… 인자는 경주 관광까정 하는구먼. 돈두 없구… 낚시인생… 징허다….”
씁새가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파묻혀 낚시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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