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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_낚시꽁트 씁새(269)-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18년 11월 160

연재_낚시꽁트 씁새(26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워메! 증말루 다시 살아난 기분이여. 워메, 워메.”
시계방 김 사장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렇지유? 거 봐유, 진즉에 허셨으면 오죽 좋아유? 그걸 그냥 내비두고 끙끙거렸으니… 참이루 성님두 대단허신 분여유.”
“그렇지? 나두 이 정도인 중 몰랐어. 인생을 새로 사는 기분이여.”
연신 히죽거리며 시계방 김 사장이 대답했다.
“인물두 훤해 보이잖여유? 노바닥 합죽이루 계시다가 인자는 인물이 사는 구먼유.”
씁새도 킬킬거리며 말을 건넸다.
“봐라, 씁새야. 내가 오징어두 뜯어먹는다. 예전에는 오징어 다리 하나 입에 집어 넣으문 한나절이었어. 이눔의 것, 씹덜 못하고 기냥 녹여 먹는겨. 근디, 봐라. 내가 씹는다!”
김 사장이 호기롭게 휴게소에서 산 구운 오징어를 물어뜯었다.
“감축드려유.”
총무놈이 김 사장을 향해 말했다. 흥에 겨워 연신 창밖을 바라보며 들떠있는 김 사장과 개차반낚시회원들을 태우고 승합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김 사장은 씁새네 아파트의 주민이자 아파트 입구의 시계방 사장이었다. 시계방이라고는 해도 그럴듯한 보석상은 아니었고,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는 아주 작은 점포일 뿐이었다. 그저 노년의 시간을 보내는 한가로운 점포였으며, 동네의 노인들이 모여 앉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장소였다.
문제는 김 사장이었는데, 절대로 노인들과 어울릴 나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씁새 패거리들과는 겨우 3살 위였지만, 김 사장의 얼굴이 문제였다. 자신의 말로는 집안 내력이라지만 그의 치아가 나이 60이 되기도 전에 몽땅 빠져 폭삭 늙은 노인의 얼굴처럼 변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 둘 빠져 나가다가 환갑을 전후하여 모두 빠져 버렸다. 이러다보니 씁새패들과 어울려야 할 나이에 동네 어르신들과 합석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꽤나 한량이었던 듯, 낚시꾼으로 맹활약하였다며 씁새 패들과 낚시 한번 같이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은 점포 하나 운영하면서, 그나마 동네 노인들 사랑방으로 전락한 시계방에서 들어오는 수입이라고는 뻔했기에 낚시는커녕 틀니를 사서 끼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시계방의 벽에는 예전에 잘 나가던 낚시꾼이었음을 증명하는 감성돔과 혹돔의 어탁이 붙어있어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웬만허문 틀니 하나 하셔유. 그리 비싸덜두 안헌다는디. 그러고 우덜하고 낚시 한번 가유.”
씁새들이 그렇게 권해도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겨우겨우 먹고 사는 형편에 틀니가 다 뭐여… 그렇다구 자식 새끼두 사는 형편이 똑같은디, 손 벌릴 처지두 아니여….”
말소리가 새는 합죽이 입으로 김 사장이 대답했다. 김 사장으로서는 시간만 나면 낚시를 다니는 씁새패들이 몹시도 부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치아가 다 빠져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어쩌면 얼굴만으로는 중늙은이로 변해버린 그로서는 어디 끼일 자신감도, 희망도 없어졌다. 그저 가끔씩 시계방에 들러 인사를 건네는 씁새패들과 지나간 낚시 무용담이나 건네는 처지였다. 어쩌면 김 사장의 빠져버린 치아로 인한 자신감의 하락도 문제였겠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고, 외동딸인 그의 딸도 팍팍한 살림 때문에 자주 들러 보지 못하는 처지였다. 오래된 5층짜리 서민아파트의 한 골목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전형적인 중년의 모습이 그러할 것이었다.
“아무리 그려두 틀니는 해 넣으셔야지유. 틀니허는데 국가에서 지원두 해주는 것 같더만유. 식사하실 때 불편허지 않어유?”
그렇게 물어봐야 그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무슨 영화를 보겄다구… 하루 세끼 먹는 것두 호강인디… 대충 물 말아먹으면 되어….”
“그려두 틀니 하시문 지금 나이 제대루 나올 것인디. 자신감두 늘구유. 우덜허구 낚시두 댕기문서 즐기셔야지, 원제까지 좁디좁은 점방에만 앉아 계실껴유?”
그러나 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김 사장의 눈에는 빛이 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술이라도 입에 들어갈라치면 침이 튀기도록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쁜 김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추자도! 그려, 추자도. 내가 말여, 때는 1967년도 가을쯤이었을 거여. 추자도루 낚시를 들어갔어! 그때는 자네덜이 쓰는 고급시런 장비도 없었어. 그라스롯드 대에 막대찌만 들구 다녔으니께. 그냥 감생이를 타작을 한겨! 내 가게에 어탁 봤지? 그 감생이가 그때 추자도서 잡은겨. 근디, 그 다음날 태풍이 친겨. 그때는 일기예보두 지대루 안 맞았그덩. 그려서 3박 4일을 추자도 민박집에 갇혀서는… 흐미, 자네덜 십이동파도 가봤는가?”
치아가 빠져 힘이 없어진 입술 사이로 맥주를 흘리며 김 사장은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았다. 김 사장의 마음은 헤아리고도 남았다. 별다른 희망도 꿈도 사라진 중년의 나이에 그로서는 자신이 가장 빛나던 시기의 낚시가 얼마나 그리웠을 것인가.
“낚시장비도 참 많았었는디… 마누라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니께… 뭐… 손에 안 잽히드라구… 아마 그때부터 이빨이 더 잘 빠져 나간 것 같어. 좌우간 인생이 허무해지드라구. 그려서 어느 날 집에 있던 낚시장비들을 죄다 분질렀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겄는디… 그렇게 손에서 낚시를 놔 버렸지. 그래두 안적까지는 완전히 놓덜 못 했는개벼. 가게 벽에 어탁은 그대루 있으니 말이여.”
그렇게 과거를 이야기하는 김 사장의 말은 가을처럼 몹시도 쓸쓸했다.

왠지 모르게 낚시를 다녀올 때면 씁새들의 조과를 기웃거리는 김 사장이 눈에 밟혔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던 여름날이었다. 그래도 조금 산다 하는 총무놈이 김 사장에게 틀니를 선물한 것이었다. 물론 대놓고 총무놈이 틀니를 해주겠다고 하면 김 사장이 받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총무놈이 아파트 부녀회장과 몇몇 사람들과 마을의 치과의사와 합작하여 국가에서 틀니를 무료로 해준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는 덜컥 김 사장에게 틀니를 선물한 것이었다.
국가의 지원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님에도 무료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는 김 사장을 앞세워 치과에서 본을 뜨고 며칠 후 김 사장에게 딱 맞는 틀니가 생겼다. 틀니를 낀 김 사장의 얼굴은 제 나이에 딱 맞게 변형이 되었고, 온 몸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말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았고, 그의 나이를 70중반의 늙은이로 알고 있던 마을의 어르신들도 그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드디어 김 사장이 그리도 가고 싶었던 낚시를 가게 되었다.
“낚시장비는 낚시가게에서 대여해 주니께 걱정할 것 없어유. 봉돌허구 채비들은 우덜헌티 있으니께 인자 성님은 옛날 실력 그대루 광어만 타작허시문 되유.”
총무놈이 뒷좌석에 앉아 신이 나 있는 김 사장을 보며 말했다.
“암만! 인자 우리나라 바다의 괴기덜은 긴장해야 할 것이여. 좌우지간, 나만 떴다 허문 전국의 선장덜이 죄다 낚시귀신이 떴다구 난리였으니께. 광어낚시는 우덜이 낚시라고 치덜두 안혔어. 감생이나 돌돔 정도를 낚시라구 혔지.”
김 사장이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인자 우덜허구 낚시 같이 댕기문서 소일허셔유. 가을 되문 주꾸미 낚시두 댕기구, 농어낚시두 댕기구, 혼자서 점방 지키는 노친네루 살덜 마셔유.”
회원놈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려, 그려. 자네덜헌티 참이루 고맙네. 무리혀서 틀니를 할라면 딸내미헌티 우치키 해서든 졸라서 틀니를 혔겄지. 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여? 근디 국가에서 이리 좋은 틀니를 해주니께 증말로 사는 보람이 느껴지는구먼. 새로 태어난 기분이여. 어제는 대박부동산 사장이 삼겹살을 사 주드라구. 옛말에 치아가 오복 중에 하나라구 혔는디, 그 말이 딱 맞는겨. 쐬주 한 잔에 삼겹살 한 점! 들구 씹는디, 증말루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어.”
김 사장의 눈에 눈물이 얼핏 비쳤다.
“그렇지유. 인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셔유.”
호이장놈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서천까지 길은 멀었고, 늦여름의 태양은 뜨거웠다. 그리고 우리의 김 사장은 너무도 들떠있었다.
“내가 말여, 광어를 잡으문 내가 그 자리에서 회를 칠껴, 내가. 내가 말여, 일본 낚시꾼 고바야시보담 더 회를 잘 떠!”
고바야시는 젊은 시절 추자도에서 만난 일본의 낚시꾼이라고 하는데 회 뜨는 솜씨가 긴자의 유명 횟집 주방장을 뺨친다고 했다.
“내가 말여, 광어회를 잘게 썰덜 안 할껴. 그냥 통째로 막 뜯어버릴껴. 이빨로 마구 뜯을껴.”
신이 난 김 사장이 계속해서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연신 말을 쏟아내는 김 사장의 얼굴이 어느덧 붉어지기 시작했고, 15년 된 고물 승합차의 에어컨 바람이 시덥지 않았던 김 사장이 승합차의 창문을 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허이! 좋구나. 어허이, 세상이 이리도 좋은 걸.”
열린 창문으로 바깥을 보며 김 사장이 소리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씁새와 호이장, 총무놈, 회원놈 모두 작은 감동이 밀려오고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갑자기 김 사장이 소리쳤다.
아마도 제2의 인생을 살도록 틀니를 선물해준 국가에 대한 고마움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
우리는 아마도 저 만세소리가 삼창은 외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세는 삼창이니까. 그러나 김 사장의 만세는 이창으로 끝났다. 무슨 일인가 모두들 김 사장을 쳐다보았을 때 김 사장의 얼굴은 어느새 틀니를 하기 전, 합죽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틀니가 그만,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출조하는 낚싯배에 김 사장은 끝내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광어낚시가 끝난 후, 마량포구의 끝자락에 홀로 앉아있던,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노인 한 사람을 태우고 돌아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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