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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148)_신년 낚시유감
2009년 02월 907

신년 낚시유감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드셔유!” 얼굴에 개기름을 처바른 가이드가 또다시 맥주가 가득 담긴 종이컵을 씁새에게 내밀었다. “안 마신다니께유. 지는 신경 쓰지 마시구 어여 다른 사람들에게 가보셔유.”
이젠 짜증이 밀려오는 씁새가 잔을 밀치며 말했다.
“에이, 그려두 함께 가시는디 우째 매몰차게 그런대유?”
“지금 나는 낚시 가는 거라니께 왜 그려유? 지는 지금 거제도루 낚시를 간다구유!”
거의 울상이 된 씁새가 애원하듯 말했다. 그와 동시에 옆자리의 여인네가 배시시 웃음을 베어 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서너 잔의 음주로 홍시처럼 붉어진 것이 보였다.
지금 씁새에게 벌어진 이 황당한 사태가 결코 씁새가 일부러 저질렀다던가, 아니면 음흉한 호기심에 의해 벌어진 사태가 아니란 점을 십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저 씁새는 먼저 거제도로 떠난 개차반낚시회 패거리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날름 이 요상스러운 버스에 올라탄 것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씁새란 놈이 10여 년 전, 대청댐 호반도로에서 비닐 쪼가리를 귀신으로 오인하고 제 놈의 자가용을 과수원에 쑤셔 박은 뒤로 별 수 없이 뚜벅이로 나돌아 다녔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요상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버스에 올라타지도 않았을 것이고, 제 놈의 자가용으로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개차반낚시회 패거리들하고 함께 떠나지 않고 홀로 외로이 왕따 당한 모양새로 이 얄궂은 버스에 탔느냐고? 그건 또 할 말 많다.
1월 1일이 목요일로 올라앉는 바람에 3일, 4일의 휴일 앞에 금요일이라는 복병이 낯짝 뜨겁게 중간에 버티고 섰던 것은 독자님들도 가슴팍 터지도록 슬픈 사실로 알고 계실 것이다.
애초에는 회원놈이나 거시기놈이 빌어먹을 금요일에 시무식을 한다며 모처럼 황금연휴 날아 간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바람에, 모처럼의 신년 바다낚시가 토요일로 미루어졌었다. 그 바람에 씁새도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했던 것인데, 이 빌어먹을 놈들의 회사에서 느닷없이 징검다리 연휴네, 회사 사정이 안 좋네 하면서 하필 씁새가 서울로 올라간 사이에 금요일도 휴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씁새로서는 황당할 노릇이지만 어쩌겠는가? 예정대로 토요일에 가자고 박박 우겨댔지만, 솔직히 낚시꾼치고 이런 황금연휴에 손바닥 긁으며 객지 떠난 친구 오기를 기다려 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 씁새를 제외한 전원이 금요일에 거제도로 떠난 것이다. 이제 외로이 홀로 남겨진 씁새가 토요일이 되어 거제도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게 이 해괴망측한 사태가 벌어진 전말 되겠다.
하루 전에 떠난 놈들이 감생이 얼굴을 알현했네, 고등어가 방어만 하네 하면서 놀려대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신문에서 그 빌어먹을 광고만 보지 않았어도…. 하지만 이미 씁새는 지랄맞은 여인네들과 음흉스런 낯짝을 번득이는 놈팽이로 가득한 버스에 올라탄 뒤였다. 이미 후회해도 때는 늦은 것이다.

“에이, 보니께 완전 선수신데 뭘 그러신대유?”
개기름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걸판지게 노래를 불러 제친 뒤에 다시 씁새에게로 다가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뭣이가 선수라는겨유?”
“에이, 왜 그려유? 다 아시문서. 오붓허니 홀로 관광가시문서 집에다가 ‘내가 묻지마 관광 다녀올라니께’ 이라구 말허는 사람 있간디유? 대충 ‘낚시 댕기올게’ 이라구 말허지유?”
“워메 환장허겄네! 지금 지가 입고 있는 구명조끼 안 보여유? 그러구 내가 들고 온 낚시가방이 안 보여유?”
씁새가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말했다.
“허이구, 그니께 선수지유. 낚시 댕기온다구 허구 나오셨으니께 낚시복장허구 낚시가방 챙겼지, 그라문 등산장비 울러메구 낚시 댕기온다구 했겄슈? 그렇게 완전 낚시꾼이루 변장하고 나섰으니께 선수라는 겨유.”
개기름 가이드가 비실비실 웃으며 말했다.
“그건 가이드님 말씸이 맞구먼유. 저 뒤짝에 남자 두 양반두 등산차림이잖여유. 저 두 양반덜은 매주 가는개벼. 자주 뵙네.”
옆자리의 여인네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예미… 증말루 지는 낚시갈라구 나왔구유, 거제도 신선전망대 앞이루 먼저 가있는 놈덜이 데불러 나온다구 했구먼유.”
씁새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떻게든 거제도로 갈 방법을 찾던 씁새가 오늘 아침에 받아본 신문에 그 방법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거제도 관광 당일코스 : 회비 3만원, 아침 9시 출발>
눈이 번쩍 뜨인 씁새가 그놈의 거제도 관광버스가 떠난다는 장소로 부리나케 뛰어왔고, 관광버스가 도는 코스인 신선대 전망대에서 호이장놈과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잘못이라면 씁새란 놈이 그놈의 관광버스가 속칭 ‘묻지마 관광버스’란 것을 몰랐다는 것에 있었다. 냉큼 올라타고 보니 영 분위기 심상치 않았고, 버스 출발하자마자 술잔 돌기 시작했고, 고속도로 올라서자마자 식전 댓바람부터 풍악소리에 맞춰 좁은 버스 통로에서 부벼대기 시작 했을 뿐이다.
영문을 모르는 씁새로서는 대충 어느 친목계에서 단체 신년관광이라도 떠나는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건네주는 술잔, 아침 공복에 두어 잔 쓸어 넣고 웬 여인네가 잡아끌기에 엉거주춤 일어나 꿍따리 뽕짝에 맞춰 엉덩이 두서너 번 흔들고 주저앉은 것이 다였거늘, 웬걸? 바로 옆자리에 처음 알현하는 여인네가 날름 앉아버린 것이었다.
그놈의 꿍따리 뽕짝이 아마도 사랑의 짝짓기라도 하는 순서였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눈빛 못 맞춘 몇몇 남녀들이 버스 통로에서 거의 몸부림에 가까운 용트림 중이었고, 개기름 가이드는 연신 없는 짝 맺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술잔을 나르는 중이었다.
“워디 사신대유?”
잘 익은 홍시 얼굴의 옆자리 여인네가 배시시 웃으며 씁새에게 물었다.
“워디 사는 건 뭣때미 물어유? 지는유 순수헌 낚시꾼이니께 묻지마를 헐라문 다른 남자를 찍으셔유.”
씁새가 불퉁맞게 내지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없슈!”
갑자기 여인네가 씁새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흐미! 시방 남의 귓때기에 대고 뭔 짓이래유?”
화들짝 놀란 씁새가 자신의 귓구멍을 후벼 파며 말했다.
“없다구유.”
“없긴 뭣이가 없대유? 워미… 귓구녕이 간질거리네…”
“지는유, 남편이 없슈.”
또다시 여인네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려유? 지는유, 자식덜두 있구, 마누라두 물론 있슈. 됐슈?”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미 혼잡하던 버스 통로가 비어버렸고, 사랑의 작대기가 끝난 것인지 버스 안이 조용해져 있었다.
“뭣이여? 언놈은 마누라허구 새끼덜 없어서 이라는중 아는개벼? 관광 처음 가는 사람도 아닌 거 같은디, 조용히 갑시다.”
뒤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니께 낚시꾼이루 위장까지 했구만. 묻지마 초짜두 아닌 거 같은디, 선수들끼리 이러지 맙시다. 대충 자리에 앉았으면 고요히 관광하문 되는디 말여…”
분명히 뒷좌석에 앉은 등산객으로 위장한 놈들일 것이었다.
“씨이벌… 진짠디….”
씁새가 얼른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드실래유?”
또 다시 옆자리의 여인네가 씁새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물었다. 잘 익은 홍시냄새가 훅 풍겨왔다.
“으헉! 자꾸 왜 이래유?”
놀란 씁새가 돌아보자 종이컵에 담긴 소주와 오징어 다리를 들고 있는 여인네가 보였다.
“그냥 갈라문 심심허잖유. 관광인디…”
아… 썩을… 씁새의 가슴속으로 휑하니 찬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이봐유, 아줌씨. 지는유… 그니께 실지루 낚시를 가는 거구유, 신선전망대 앞이서 내릴 거구유. 묻지마 할라구 이 버스 탄 거 아니구유…”
“지두 내리는디… 어차피 워디서 내리든지 간에 저녁에는 버스가 데불러 오그던유… 신선전망대서 지두 내려유?”
씁새가 내민 잔은 거들떠도 안 보자 자신이 대신 마셔버리고는 오징어 다리를 질겅이며 여인네가 말했다.
“아줌씨가 왜 내린대유? 아줌씨두 낚시하러 가는겨유?”
“지두 낚시 잘 허는디… 남편이랑 낚시두 갔는디…”
씹던 오징어를 부득 뜯어내며 여인네가 말했다.
“남편이 없다매유?”
씁새가 노려보며 말하자 또다시 여인네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에또, 실지루 소원인디유. 지는 고요히 가고 싶구먼유. 그러구 실지루 우덜 친구놈이 신선전망대서 기달리구 있구유. 증말루 낚시를 가는 사람이니께 다른 사람 찾아보시구유, 지는 그만 고요히 내버려둬유. 소원이여유.”
씁새가 고통에 찬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얘! 그만해라. 얼굴이 곱상해서 괜찮은 남잔가 했더니 낯짝 무지 가린다. 너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이리 와라! 이것저것 따질라면 뭐할라구 묻지마를 탔대? 캬바레나 갈 것이지!”
갑자기 중간 좌석에서 한 여자가 일어서더니 여인네에게 소리쳤다.
순식간에 버스 안이 싸해지고 홍시 여인이 부스스 일어서더니 친구인 듯한 여자에게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선수끼리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파트너가 못 생겼어두 묻지마 예의상 하루쯤은 봉사하는게 예의인데…”
씁새의 등 뒤로 비난이 몰려왔다.
“씨이벌… 진짠디… 저 놈덜은 뭔 신년벽두부터 발정난 놈들마냥 지랄이여…”
씁새가 안타까운 눈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문득 씁새의 눈에 집에서 지금쯤 집안 청소하느라 정신없을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려두 울 마님께선 이따위 묻지마 관광이네 뭡네 하는 정신 나간 짓거리는 허덜 않으니께 고맙지 뭐… 그게… 월레? 그러구 보니께.…지난달에 계룡산 등산 갔다 왔다구 했는디… 설마?’
씁새의 가슴으로 찬바람이 다시 휩쓸고 지나갔다. 마침내 제 짝을 찾은 홍시 여인의 목소리가 뒷좌석에서 조용히 들려왔다.
“없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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