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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149)_하늘 낚시
2009년 03월 858

 

하늘 낚시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누군가 흔들어대는 바람에 곤한 잠에서 깨어난다. 방안은 어둠이 깊이 내려앉았고, 창밖에서도 어둠은 물러날 줄 모르고 기웃거리는 중이다. 불을 켜자 따가운 백열등 불빛이 눈으로 파고든다.
“가자. 시간 됐다.”
이미 준비를 마친 당신께서 재촉하신다. 모처럼의 일요일, 그리고 곤한 단잠을 깨운 것에 대한 짜증이 밀려온다. 주섬주섬 옷을 꿰어 입는 나의 모습을 보시며 당신께서는 연신 마루의 벽시계를 쳐다보신다.
“들어라.”
이미 세수를 하기에는 시간이 늦은 상태다. 눈 주위에 몰려 붙은 눈곱을 떼면서 대나무 바구니를 챙겨든다. 방의 불을 끄고 마루로 나선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몰려오고 초봄의 냉기가 어린 몸을 휘어 감는다. 어두운 집안에는 당신과 어린 나의 숨소리만 가득하다.
“조심해서 다녀와요.”
안방에서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많이는 안 늦을 거야.”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당신께서 한마디 남기시고는 거침없이 마당으로 나선다. 이미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선 나는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한 대나무 바구니를 질질 끌듯이 어깨에 둘러멘다. 지금도 따뜻한 이불속에 파묻혀 곤한 잠을 자고 있는 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과 아직도 시커멓게 잠들어 있는 집들로 골목길은 을씨년스럽다.
통금이 막 해제된 터라 길로 나서도 큰 도로가 텅 비어있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떠나지 않는 졸음과 잠도 못자고 이 새벽에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어린 나는 짜증만 가득 올라있다. 어두운 길을 걷고 걸어 일요일 새벽이면 늘 가야하는 시장통의 가게에 다다른다. 무엇이 좋은지 어른들이 둘셋씩 서서 웃으며 이야기 중이다. 무거운 대나무 바구니를 둘러메고 나타난 나를 보고는 귀엽고 대견하다는 표정을 가득 담고 말을 건넨다.
“어이구, 우리 꼬마가 또 나서셨네.”
“기특한 자식. 이놈은 잠도 없는 모양이구나?”
빌어먹을… 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잠을 빼앗긴 중이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어른들은 연신 가게 안을 들락거리며 분주하기만 하다. 가게 앞에 검게 웅크리고 있는 버스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버스 기사도 가게 안에 앉아서 떠들기에 여념이 없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얼른 문을 열어줘야 들어가서 잠을 잘 것 아닌가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이제 다섯 살배기 꼬마는 짜증과 졸음으로 벌써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
무거운 대나무 바구니는 이제 어깨를 아프도록 짓누른다. 그래도 대나무 바구니를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당신께서는 절대로 바구니를 내려놓거나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선 채로 꼬박꼬박 조는 사이에 어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진다.
“갑시다. 얼른 떠나야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어이, 우리 꼬마는 여기 앉아라.”
근 일 년 간 얼굴을 익힌 털투성이 운전기사가 운전석 옆으로 튀어 올라온 엔진통을 가리킨다. 가장 따뜻한 장소다. 버스 안은 냉기가 가득했기 때문에 따뜻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이 엔진통 뿐이었고 그래서 최고의 명당이었다. 대나무 바구니를 가슴에 품고 엔진통에 쪼그려 앉는다. 이내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카바이트 냄새가 물씬 풍겨 올라오고 깊은 잠 속으로 파고든다.
“다 왔다. 내리자.”
아직도 부족한 잠을 쫓아내며 비몽사몽간에 버스에서 내린다. 누가 신호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점잖던 어른들이 불이라도 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엄청나게 넓은 저수지 둑 위로 몇 대의 버스가 이미 도착해 있고 우리 버스 뒤로도 다른 버스들이 저수지로 올라오는 중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당신의 뒤를 따라 뛰어야만 한다.
그렇게 뛰고 서고 주위를 살피고 또 뛰고 하기를 몇 번 거친 후 당신께서 자리를 잡으신다. 그제야 먼 산 너머로 희미한 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준비를 하는 당신의 등 뒤, 논 둑 위에 몸을 눕힌다. 나는 할 것이 없다. 카바이트 불빛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드시는 당신을 쳐다보다 또다시 쪼그린 채 잠이 든다.
“잡았다. 크다. 봐라, 너 얼굴만 하구나. 아하하하.”
얼핏 눈을 뜨자 꽤 큰 붕어를 들고 웃고 계신 당신의 얼굴이 들어온다. 먹다만 지렁이가 붕어의 입가에 늘어져있고 큼직한 바늘이 붕어의 윗입술을 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일요일이면 저 비린내 풀풀 나는 붕어나 잡겠다고 새벽부터 잠자는 아들놈 깨워서 고생시키는 당신을… 왜 또 그렇게 붕어는 잘 잡으시는지… 붕어로 가득 차 무거워진 대바구니를 안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스럽다.

내 어린 기억 속의 아버지의 모습은 그랬다. 일요일이면 늘 졸음 가득한 아들놈 옆에 끼고 물가에 계셨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꼬마조사가 나타났느니, 아버지 따라 낚시를 하러왔다느니 대견하다는 투로 칭찬을 하셨지만, 언제나 나는 짜증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낚싯대라고는 잡아보지도 못한 채 늘 아버지의 낚시하는 모습만 무료하게 지켜보든가, 애꿎은 개구리만 잡아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드디어 아버지가 낚싯대를 장만해 주셨다. 그제야 당당하게 낚싯대를 휘두르고 속칭 전차표라는 붕어 새끼들을 잡아내며 낚시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이 반백이 되어 부쩍 병색이 가득해진 아버지를 뵐 때마다 “언제 한 번 낚시 가셔야지요”라고 말씀드리면 아버지는 얼굴 가득히 웃음만 보이실 뿐이었다. 그 초등학교 시절 외에 또 당신을 따라 줄기차게 낚시를 가본 기억이 있었던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로 올라가며 간간이 같이 떠나던 낚시여행도 대학 졸업 후 취직한 회사 때문에 대전으로 분가를 하고는 아버지와의 출조 약속은 그저 헛약속으로, 그저 오가며 아버지께 드리는 인사치레로 변했을 뿐이다. 그저 아버지와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출조하면서 전화로 어느 곳이 어떻고 이번 출조 때 조황은 어떻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또다시 인사치레로 “다음엔 아버지와 그 저수지 꼭 가요”라는 헛약속을 남발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갔을 때, 이미 아버지는 앙상한 뼈만 남은 채 가쁜 숨만 몰아쉬고 계셨다. 언제 이렇게 늙어버리신 것인지… 언제부터 이토록 깊은 병마와 싸우고 계셨던 것인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으로 온 몸을 비트실 때마다 그저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들이라는 놈이 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아버지… 일어나셔야지요. 이번엔 정말 같이 출조 한번 하셔야지요.”
이제는 눈을 뜨실 기력조차 없는 아버지의 귓가에 대고 했던 말이다. 그 옛날… 어린 아들놈이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면 낚시가방을 진 몸으로 아들을 번쩍 안아들고 논둑을 씩씩하게 내달리시던 분이 내 앞에서 솜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가쁜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뜨실 때마다 평생 불효만 저지른 아들놈을 보고는 희미하게 웃으신다. 어쩌면 아버지도 나처럼 그 어려운 시기에 새벽마다 나의 손을 잡고 떠나던 낚시여행을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
1월 18일, 아버지는 고단했던 몸과 병마를 훌훌 털어버리고 하늘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방안에는 손때 묻은 낚싯대들만 외로이 서 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낚싯바늘들, 규격대로 정리된 봉돌들, 벗겨진 칠 위에 매니큐어로 덧칠해놓은 찌들… 이제 다시는 아버지와 출조를 할 수 없으리라. 헛약속일지라도 출조를 말하지도 못할 것이다.
할아버지와 두 분이 북에서 피난 내려와 일가친척 없이 힘들게 살아온 당신은 그토록 혈육이 그리워서 채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큰아들놈의 손을 잡고 저수지를 누비셨을 것이다. 유독 서울 북쪽의 저수지만 고집하셨던 이유도 그럴 것이고. 이제 당신은 그토록 그리시던 이북의 어머님과 형제 누이들을 만나셨을 테지…. 어쩌면 또다시 그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계시지는 않을지. 부디 하늘나라에도 굵은 붕어들이 우글거리는 멋진 저수지가 있어서 이승의 힘든 일을 모두 잊고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계시기만 빌 뿐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불효한 아들놈이 당신 곁으로 가는 날, 헛약속이 아닌 정말로 출조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아버지… 그때까지 멋진 포인트 만들어 두시고 들깻묵 가득 뿌려놓아 주세요. 아버지… 저는 지금도 차갑고 어두운 새벽, 무섭고 졸리다고 칭얼대는 아들놈을 업고 칸델라 불빛에 반짝이는 야광찌를 바라보던 당신의 한없이 따뜻하고 넓은 등이 그립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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