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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159)_그리고 그들은 말이 없었다
2010년 01월 830

 

그리고 그들은 말이 없었다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이것이 바로 요번에 A사에서 출시혔다는 최신 릴이여. 이것이 을매나 최신이냐 허문 내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이눔의 릴이 알아서 풀리고 감긴다는 거여.”
총무놈이 낚시가방에서 릴 하나를 꺼내더니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빌어묵을 놈! 그라면 그것이 인공지능 릴이란 겨? 지가 알아서 감기고 풀리게? 이 빌어먹을 놈은 입만 열문 뻥이여.”
씁새가 총무놈의 낚시가방을 발로 차며 말했다.
“그만큼 최신식 릴이다, 이 말이여.”
“장비 좋다구 괴기가 뎀비간? 장비빨이 아니라, 실력이 문제인거여.”
열심히 승합차를 몰아가며 호이장이 말했다.
“예미럴. 그라는 네놈은 지난달에 B사 릴대 하나 샀다구 자랑질을 을매나 해댔간? 그 릴대가 휨새가 을매나 좋은지 새우미끼만 달았는디 손잡이까지 낭창낭창 휘어진담서?”
씁새가 호이장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라는 네놈은? 네놈두 전동릴 샀다구 자랑질 안 했간? 고놈의 전동릴이 을매나 우수헌지 지가 알아서 괴기덜 있는디까지 줄을 풀러내고는 딱 스돕한대미?”
회원놈이 뒷좌석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이 쓰벌눔덜이 아주 야무진 소리만 골라서 해요. 너는 국내 최고가의 구명조끼를 샀대미? 물에 빠지면 온몸이 고스란히 떠 오른다구 안 했간? 오늘 기필코 네놈의 구명조끼 성능을 보기 위해서라두 네놈을 물에 빠트리고 말 껴!”
씁새가 회원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솔직히 장비가 좋다고 고기가 잘 물리는 것은 아니지만, 낚시꾼들의 욕심이라는 게 어린애들 욕심과 같아서 남이 그럴듯한 장비 구했다 싶으면 배알이 뒤틀리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해서든 남이 가지고 있는 장비보다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다. 이것이 요즘 개차반낚시회에 불고 있는 고가 장비 열풍이었다.
빠듯한 살림에 마누라, 애들 눈치 보며 낚시를 다니면서도 비자금 꼬박꼬박 마련해서 장비 사들이는 경쟁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물이 뒤집혔다는디?”
격포항 초입의 낚시점으로 들어갔다 나온 호이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제허구 어제 바람 불고 비 오드만 물이 뒤집혔대여. 시방두 파도가 상당히 높아서 위험하다는디…”
“그라면 왕등도 대신에 위도루 들어가면 우뗘?”
총무놈이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물었다.
“위도라구 위험허덜 않겄어? 여객선은 출항하는디, 작은 고깃배는 움직이기 힘들 거라는디…”
호이장놈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구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잖여?”
씁새가 힘없이 말했다.
“되돌아가기두 그렇구… 다른 곳으루 이동하자니 그렇구… 이왕 왔으니께 격포항 쪽이나 콘도 주변이루 그나마 낚시할 곳이 있는지 다시 물어봐. 예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째 오랜만에 바다낚시 왔는디 하늘이 협조를 안 하는겨?”
호이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낚시가게로 들어갔다.
“신방파제 끄트머리 갯바위 쪽이루 숭어가 나온다는디? 잘만 허문 감생이두 나올 거고. 그짝이루는 파도두 잔잔혀서 낚시를 할 수 있을 거라누먼.”
가게에서 다시 나온 호이장이 말했다.
“그라문 그리루 가자구. 오랜만에 숭어나 썰어 먹든가. 밑밥 줄 필요두 없으니께 돈은 굳겄구먼.”
씁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려… 우쨋든간 낚싯대에 물은 묻혀야 허니께.”
총무놈이 승합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호이장과 총무놈이 미끼를 사서 나온 후 승합차가 출발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파제 끝의 갯바위 쪽으로 가며 바라본 바다는 낚시점 주인의 말대로 하얗게 포말이 일고 있었고, 바람도 센 편이었다. 방파제가 바람을 막아 낚시하기에는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지만, 바닷물 색이 누렇게 뒤집혀 있었다.
“우째 괜헌 짓 허는 것 같은디…”
호이장이 릴대를 펴며 말했다.
“그렇다구 시방 돌아가자는 겨? 잔말 말구 그 손잡이까지 낭창거리는 릴대나 피셔!”
씁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수심도 그런대로 적당하고, 바람도 죽어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누구의 낚싯대에도 소식이 없이 시간만 흘러가기 시작했다.
“밑밥을 안 쳐서 그런가?”
회원놈이 투덜거렸다.
“아예 괴기가 없는 것 아니여? 무신 숭어가 붙고 감생이가 붙는다는 겨? 그 낚시점 주인이 뻥친 거 아니여?”
씁새가 릴을 감으며 말했다.

 

 

“아자씨덜 낚시하는 개비다.” 씁새의 화난 목소리가 끝나기 전에 등 뒤쪽에서 웬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격포항에 사는 아이인 듯, 평상복 차림의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씁새 패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레? 니두 낚시 할라고 왔냐?”
씁새가 녀석의 손에 들린 투박하고 오래된 민물 릴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려유. 지는 조짝이서 할께유.”
녀석이 생글생글 웃더니 갯바위 맨 끝에 서 있는 총무놈의 옆자리로 폴짝 뛰어갔다.
“괴기라고는 씨가 마른 모냥인디, 뭔 낚시여? 집이 가서 숙제나 혀.”
총무놈이 키들거리며 말했다.
“안 잽히남유?”
녀석이 능숙한 솜씨로 릴대를 펴고는 카드채비를 하며 물었다.
“발써 두 시간이 지났는디, 잽힌 거라고는 놀래미 새끼 한 마리밖엔 없어. 괴기가 안 들어 온 모냥이여.”
“그류?”
녀석이 총무놈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고는 릴대를 휘둘렀다. 어차피 되지도 않는 낚시에 어린 녀석이 무엇을 어쩌랴 싶어 다들 자신의 낚싯대 쪽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였다.
“오예! 한 마리.”
녀석의 힘찬 목소리에 다들 눈이 돌아갔다. 어느새 녀석은 무식하게 큰 민물 릴을 우악스럽게 감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보기에도 실한 숭어 한 마리가 녀석의 바늘에 걸려 있었다.
“얼레? 이건 뭔 개수작이여? 숭어가 붙은 겨?”
다들 넋이 나가 녀석의 행동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녀석은 신기에 가깝게 ‘오예’ 소리를 연발하며 단시간에 숭어 3마리를 끌어냈다. 그리고는 녀석이 잡은 숭어를 비닐봉지에 담고는 쪼르르 갯바위를 올라가는 것이었다.
“가냐?”
총무놈이 갑자기 화색이 돌며 물었다.
“좀 있다가 올라구유.”
대충 대답을 던진 녀석이 또 쪼르르 방파제를 달려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총무놈의 릴이 녀석이 낚시하던 포인트로 날아갔다.
“여기가 명당인 모냥이여. 요 자리가 숭어가 몰린 개벼.”
총무놈이 키득거리며 말하자 씁새와 호이장, 그리고 회원놈까지 우르르 총무놈의 자리로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칫하면 엉킬 정도로 아까 사내아이가 숭어를 잡아내던 자리로 찌들이 몰렸지만 어느 누구 하나 입질을 받아내지 못했다.
“이건 뭔 숭어가 곡을 할 노릇이여? 아까 그 숭어는 다 워디 간 겨?”
“이 자리에 숭어가 딱 3마리만 있었던 거 아녀? 그놈이 다 잡아내구 가버린 거 아니여?”
저마다 황당한 표정으로 떠들 때였다.
“숭어가 제대루 들어 온 모냥이다.”
“새우 낀 거여? 갯지렁이여?”
갑자기 왁자한 소리가 나더니 아까의 녀석을 앞세우고 대여섯 명의 고만고만한 사내 녀석들이 갯바위를 내려오는 중이었다. 아마도 제 놈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것 같았다.
녀석들은 씁새 패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싶었다. 대충 아무 자리나 버티고 서더니 단체로 구입한 듯한 싸구려 민물 릴대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놈들의 황당한 숭어 타작이 시작되었다. 녀석들이 낚시를 하는 자리는 분명히 아까 씁새와 호이장, 총무놈, 회원놈이 하던 자리였다.
그렇게 미동도 없던 곳에서 꼬마 녀석들의 스티로폼 찌가 던지는 대로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씁새패들은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태에 그저 손을 놓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녀석들은 순식간에 한 놈당 여섯일곱 마리씩 잡아내고는 약속이나 한 듯, 검은 비닐봉지에 숭어를 담고는 우르르 갯바위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가냐?”
그저 황당하게 바라만 보던 씁새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숭어덜이 죄다 빠져 나갔슈! 인자 낚시 안돼유!”
녀석들이 킬킬거리며 소리치고는 신방파제 위로 올라서더니 사라졌다.
“뭐여…? 뭔 일이 벌어졌던 겨?”
호이장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옌장… 최고급 장비가 막장 민물 릴대에게 당했구먼… 장비빨은 개뿔이나…”
씁새가 갯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예미럴… 은제 우덜이 제대루 괴기나 잡았간디? 세계 최고급 장비를 우리에게 갖다 주고 괴기가 지천인 곳에 데려다줘두 우덜은 평생 괴기 한 마리 못잡을껴. 씨벌…”
총무놈도 갯바위에 따라 앉으며 말했다.
“참이루 요상헌 일이여. 낚시경력 삼사십 년이라는 놈덜이 낚시만 가면 개죽을 쑨다니께… 뭔, 귀신 붙은 놈덜두 아니고…”
회원놈이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하늘은 화창하게 맑았고, 위도 여객선이 격포항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제는 낚시고 뭐고 기운 다 빠진 처량한 낚시꾼 4명이 갯바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하릴없이 여객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그토록 자랑을 해대던 낚싯대와 릴, 구명조끼 등등이 주인 잘못 만난 죄로 내동댕이쳐진 듯 뒹굴고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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