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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176)_칸의 눈물(하)
2011년 07월 780

칸의 눈물(하)

 

“스리랑카에서 왔어요. 삼 년 있었어요.”
묻는 말에만 대답하거나 멋쩍게 웃기만 하던 칸이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어두워진 저수지 위로 케미라이트가 빛을 내기 시작할 때였다. 씁새의 옆에서 두 칸 낚싯대로 열심히 낚시를 배우던 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칸 집… 가난해요. 어머니 있어요. 집사람 있어요. 아이들 있어요…”
“그려? 결혼했구먼. 아이들은 몇이나 있는겨?”
씁새가 칸의 낚싯바늘에 떡밥을 뭉쳐 달아주며 물었다.
“딸 두 명 있어요. 아들 한 명 있어요.”
“오호… 칸 닮아서 예쁘겠는 걸?”
“집사람 닮았어요. 집사람 이뻐요. 칸 고향에서 제일 이뻐요.”
칸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지갑을 펼쳤다.
“가족이에요. 어머니, 집사람, 아이들.”
사진 속에서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스리랑카의 전통복장을 입은 여섯 명의 가족이 빛바랜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로 육십 년대 한국의 시골에서 보았을법한 누추한 초가집이 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고, 허리 굽은 노모와 어색한 표정을 한 여인이 칸의 팔을 붙잡고 서 있었다.
“칸 부인이 엄청 미인일세? 우치키 이런 미인을 얻은겨? 칸은 못 생겼잖여?”
어느새 다가온 호이장과 총무놈, 회원놈이 칸을 둘러싸며 물었다.
“칸도 잘 생겼어요.”
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디… 우째서 회사서 나와서 노숙을 한겨?”
총무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사에 불법체류자 단속 왔어요. 사장이 단속 끝날 때까지 나가있으랬어요. 칸이 회사에서 걸리면 사장이 벌금 물어요. 칸이 밖에서 걸리면 사장이 벌금 안 물어요.”
“아… 그러면 걸리더라도 밖에서 걸려라, 이거여? 그거야 우쩌겄어. 사장도 불법체류자를 직원으로 쓸라문 그만한 위험두 감수허야겠지. 그라문 워디 여관이라두 빌려서 잠을 자야지 우짜자고 풀숲에서 노숙을 하는겨?”
“여관 돈 내야 돼요. 돈 아껴야 돼요. 어머니 아파요…”
칸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려…”
씁새가 칸의 어깨를 두드렸다.
“삼 년 전에 한국 왔어요. 가구공장 다녔어요. 두 달 돼서 기계에 손가락 잘렸어요. 사장이 보험료 많이 나온다고 병원 안 보냈어요. 며칠 있다가 손 아파서 일 못한다고 사장이 쫓아냈어요. 다른 공장 갔어요. 사장이 욕하고 때렸어요. 다른 공장 갔어요. 사장이 월급 잘 안 줬어요. 그리고 사장이 도망갔어요. 취업 와서 세 번 공장 옮기면 취업기간 남았어도 만료돼요. 그래서 일 년도 안 돼서 불법체류자 됐어요. 공장 취직하면 불법체류자라서 월급 작아요. 잘 안 줘요. 단속 나오면 도망가야 돼요.”

칸이 고개를 들어 저수지의 어둠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다.
총무놈이 이야기를 듣다 말고 부스스 일어나 언덕위의 텐트 쪽으로 걸어갔다. 뒤이어 호이장도 총무놈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어머니 아파요. 집사람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 보고 싶어요…”
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쳐다보는 칸의 눈에 고향의 가족들이 비치는 듯 했다.
“그려… 시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다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여.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께. 그 악덕사장들 대신혀서 내가 미안허다고 빌고 싶구먼.”
회원놈이 칸의 어깨를 보듬으며 말했다.
“어여 올라와. 매운탕이 잘 끓었으니께.”
언덕위로 올라간 호이장과 총무놈이 그들을 불렀다.
“칸, 일어나. 쓴 소주라도 한 잔 하문 기분도 풀어질 것이여.”
씁새가 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괴기두 못 잡았는디, 우치키 매운탕을 끓인겨? 접때처럼 도마뱀 잡아넣고 끓인 거 아녀?”
씁새가 언덕을 올라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옘병! 몸보신 헐 도마뱀두 보이덜 않는디 무신. 참치 캔 넣고서 맵게 끓인겨. 대충 뱃속이루 잡아넣으면 되는 것이여.”
호이장놈이 키득거렸다.
“옘병이 뭐예요?”
칸이 씁새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주 썩어 문드러질 드러운 욕이여. 칸은 배우면 안되는겨.”
씁새가 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라문 칸… 언제까지 도망 다니문서 불법체류자가 될껴? 단속에 걸려서 추방당할 때까정 타국에서 떠돌아댕길 수는 없잖여?”
총무놈이 칸에게 소주잔을 건네며 물었다.
“그려. 칸… 조금 야속한 얘긴지는 모르겄어. 허지만, 자네가 타국에서 손가락 잘리고, 이리저리 공장 떠돌고… 갖은 수모 겪으며 지내는 거, 고향에 있는 가족덜이 알문 월매나 슬플껴. 자네가 보내주는 돈이루 가족들이 당장은 큰돈이라 먹고 살기 편헐지두 몰러. 허지만, 가족은 모여 있을 때가 제일루 행복헌겨.”
씁새가 칸의 소줏잔을 채우며 말했다.
“가족 보고 싶어요. 어머니, 아이들, 집사람… 다들 보고 싶어요.”
칸이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칸… 스리랑카루 돌아가. 그려서 가족들 만나고, 그담이 다시 한국으루 정정당당히 찾아와. 그라문 우리라도 나서서 제대루 된 직장허고, 좋은 사장헌티 취업시켜 줄라니께. 범법자가 되어서 남의 나라에서 숨어 지내고, 가족 걱정에 눈물 흘리문서 뭔 행복을 찾겠다는겨? 지금 칸의 모습을 본다면 가족덜이 자네가 보내오는 돈이루 행복할 거 같어?”
칸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지금 자네 모습이 꼭 우리나라 한국의 육십 년대 모습이여. 한국이 이렇게 살게 된 것도 얼마 되덜 안혀. 한국도 예전에는 남의 나라에서 고생허문서 가난을 벗어날라구 발버둥을 친 적이 있었어. 개구리가 올챙잇적 생각 못 헌다고, 원제부텀 우리가 잘 살았다고 가난한 나라 사람 업신여기는지 모르겄지만… 그래두 한국에 좋은 사람덜 많어. 칸이 다시 돌아와서 좋은 사람덜 많이 만났으문 좋겄구먼.”
씁새가 칸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형님들 말대로 해요. 칸 고향 가요. 형님들 좋은 사람들예요. 한국 사람들 많이 좋아요.”
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 봐! 칸이 나더러 좋은 사람이래잖여. 그란디 니놈덜은 우째 나만 보문 쥑일놈이라는겨?”
씁새가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랄 말어. 씁새가 천하에 고약시런 놈이란 거 만천하가 다 아니께.”
총무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별똥별 하나가 지나갔다.
“잘 배운겨? 잊어먹덜 말어. 칸 고향에 저수지는 없어두 넓은 둠벙은 있다니께 내가 일러준대루 허문 낚시를 헐 수 있을껴.”
씁새가 낚싯대와 채비들을 가방에 담으며 말했다. 날이 밝고 해는 중천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낚시를 끝내고 칸과 함께 떠나온 호이장의 승합차가 읍내에 주차해 있었다.
“칸 혼자만 낚시허문 되겄어? 아이들두 있다는디, 대여섯 개는 더 필요헐껴. 내 낚싯대두 몇 대 줄라니께 아이들과 같이 혀.”
총무놈도 낚싯대와 채비를 꺼내며 말했다.
“니놈덜만 천사표여? 내 낚싯대두 스리랑카 물 좀 먹으라고 허야겠다.”
회원놈과 호이장놈도 자신의 낚싯대를 꺼내며 말했다.
“그러고 말여. 밤새도록 괴기 한 마리 못 잡았다고 우덜을 낚시 초보자로 생각허덜 말어. 원래는 낚시를 기가 맥히게 잘 허는 고수들이여. 다만, 낚시터가 젬병이라서 멋진 솜씨를 뵈줄 기회를 잡덜 못헌겨.”
씁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미럴. 개 풀 뜯는 소리허구 있네. 원제 우덜이 낚시고수였는가? 피라미 새끼 한 마리 잡지 못헌 날이 부지기수구먼.”
총무놈이 빈 살림망을 칸에게 줄 낚시가방에 매달며 말했다.
“개눔의 자식!”
씁새가 총무놈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칸. 자네 휴대폰에 우덜 전화번호 다 있지? 다시 한국 오면 전화혀. 아니다. 스리랑카서두 전화혀. 낚시허다가 잘 모르겠으면 전화허고. 가끔 안부 전화두 허고.”
“씁새가 외국에까지 제자를 심어 놓는구먼. 글로벌 제자여.”
총무놈이 킬킬대며 말했다.
“형님들 감사합니다. 칸, 자주 전화하고 한국 다시 오면 형님들 전화해요. 형님들 만나서 즐거워요.”
일행을 향해 인사하는 칸의 얼굴에 웃음과 함께 눈물이 얼핏 비쳤다.
“그려. 인자 단속 끝났다구 허니까 어여 회사루 들어가 봐.”
아침나절에 칸의 친구로부터 칸에게 단속이 끝났으니 들어와도 좋다는 연락이 온 터였다.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떠나는 칸을 보며 일행들의 마음에 뭉클한 무엇인가가 솟아올랐다. 씁새패들이 선물한 낚시가방을 멘 칸의 모습이 공장들이 밀집한 읍내의 골목길로 사라졌다.
“증말루 고향이루 돌아갈라나?”
호이장이 칸이 사라진 골목길을 한없이 쳐다보며 물었다.
“돌아갈지, 안 돌아갈지는 자신의 문제여. 다만, 칸이 우리나라에서 당헌 일들로 한국에 대한 생각만 나빠지덜 안 했으면 좋겄구먼.”
씁새가 대답했다.
“외국에서 온 근로자덜이 문제두 많이 일으킨다지만 저렇게 가족들 부양헐라고 남의 나라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으니께 마음이 쓰리구먼.”
호이장이 승합차의 시동을 걸며 말했다.
“증말루 칸이 고향이루 돌아갔으문 좋겠구먼. 고향이서 아이들과 낚시를 허고… 칸의 집사람허고 어머님허고, 칸하고 아이들이 낚시허는 모습을 보며 언덕에서 점심을 만들고…”
씁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쓰벌눔아! 니놈부텀 제수씨 데리구 낚시나 댕기문서 그런 소리를 혀! 배라먹을 시키, 우덜 모두 다 마누라 주말과부 맹길문서 뭔 잡소리여! 어여 출발혀!”
총무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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