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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187)_봄날의 하루
2012년 05월 766

씁 새 (187)

봄날의 하루

“이젠 성님두 모타보트루 개비할 때 된 거 아녀유? 노바닥 목선에다가 노 젓는 것두 힘에 부칠 것인디?”
씁새가 배 위로 노를 던져 올리는 관리인 김씨를 보며 말했다.
“뗏목 같은 배에다가 뭔 지랄이라구 모타를 붙이겄어? 저수지냐구 손바닥만 헌디 놀면놀면 노저서 가문서 손님 태워 주는 것이 더 편혀.”
김씨가 배에 올라 담뱃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손바닥만 헌 저수지 때미 그라는가유? 성님두 연세가 만만허덜 않으니께 걱정시러워서 그러지유.”
“괜찮여. 안적 저승사자가 눈에 뵈는 나이는 아니니께. 으흐흐.”
관리인 김씨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워디짝 좌대루 달란겨?”
김씨가 저수지 가운데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짝에 배나무 과수원 밑에 수초밭이루 데려다 주셔유.”
호이장놈이 낚시가방을 배에 올리며 말했다. 저수지 연안의 수초밭으로 붙여놓은 좌대들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텅 빈 채 한산해 보였다. 배터 양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가 왠지 쓸쓸해 보였다.


“괴기는 잘 나와유?”
씁새가 물었다.
“사월이라구 봄이라는디, 염병할 날씨가 안적두 한겨울인개벼. 들쭉날쭉허니께 워디구 괴기가 시원허니 올라오간디? 그저 밤새워서 뼘치 붕어루다 댓 마리 가져가는 상태여. 별루 기대허덜 말어.”
“그려두 과수원 밑에 뽀인뜨는 초봄부텀 대박치는 곳인디유? 그짝 좌대는 자리 잡기두 힘들었잖여유?”
씁새가 물었다.
“그것두 예전 얘기여. 원제부텀인지 그놈의 빌어먹을 배슨지 뻐슨지 하는 외국놈 물괴기 유입되구 부텀은 초봄이구 조지구 없어. 붕어새끼 귀경하기가 힘든디 뭐… 그 배슨지 허는 놈이 죄다 주워 처먹으니께 붕어덜이 씨가 말르내벼. 염병! 괴기가 안 나오니께 낚시꾼덜두 뜸해졌어. 이눔의 저수지 호황두 옛날 얘기여.”
김씨가 태우던 담배꽁초를 물로 던졌다. 저수지 한가운데서 물고기 하나가 튀어 올랐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우째 오늘은 두 사람만 낚시를 온겨? 나머지 식구덜은 우쩐 일이여?”
김씨가 호이장놈과 씁새를 보며 물었다.
“총무놈은 일이 있어서 못 오구유… 회원놈이… 겨우 붙잡은 회사서 정년퇴직이라는 소리 듣고는 허탈혀서 도저히 낚싯대를 들 힘이 없다네유.”
씁새가 쩝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회원놈이 발써 정년퇴직이여?”
김씨가 노를 물에 담그며 물었다.
“성님은 우덜이 안적두 이팔 청춘이루 보여유? 머리칼은 반백이루 변허구, 손등에는 검버섯이 만개했는디….”
“회원놈은 그 IMF 때 해고 당하구서는 겨우 겨우 잡은 직장 아녀? 근디 발써 정년이여?”
“그려유… 그때 모진 고생 다하구, 자식새끼 멕여 살린다구 공사판까지 돌아댕겼잖여유? 겨우 들어간 회사두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는디… 우쨌든 정 붙이구 다니다 보니께 정년이라네유. 지눔두 허탈허니께 뭣이든 손에 잡히겄슈? 어제가 그놈 정년퇴직 날이었다드먼유. 다음주부터 갈 곳이 없어진 것이지유.”
씁새가 폭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낚시꾼들을 실어 나르는 작은 목선이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씨의 세월만큼 닳아버린 노가 뱃전에 힘겨운 마찰음을 토해냈다.


“그려두 그리 고생혀서 애덜 죄다 키웠잖여? 인자 정년퇴직허구서 좋아하는 낚시나 실컷 댕기문 되는 거 아녀?”
호이장놈이 엉덩이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이 든적시런 놈은 터진 입이라구 말은 잘두 씨부려. 니놈은 복덕방질이나 해대니께 정년퇴직이란 게 없어서 그딴 소리하는 겨. 반평생을 처넣은 직장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인 중 아는겨? 아닌 말루 헐 짓 없으문 낚시나 댕긴다구 씨부리는 것이 월매나 시답잖은 소린 중 아는겨?”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그 소리 아녀? 열심히 일했으니께 인자 푹 쉬문서 자기가 허고 싶었던 일허고, 여행두 댕기구, 낚시두 댕기문서 편안히 노후를 보내는 것이 최고 아녀? 그려서 어제두 회원놈헌티 훌훌 털어버리구 맘 편히 낚시나 댕겨오자니께 워디서 벌레 씹은 얼굴루다 ‘맴이 맴 같덜 안 혀… 자네덜이나 댕기와’ 이라드라구.”
호이장놈이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지랄허고 깨춤을 춰요. 낚시라는 것도 그렇고, 여행 댕기구 허는 것도 틈틈이 짬 내서 댕기는 것이지, 노바닥 헐 일 없다고 깨춤추문서 댕기는 것인 중 알어? 열심히 일허고, 쌓였던 스트레스 풀러 바람 쐬고, 그러고 또 기운내서 일하는 것이지. 할 일 없으문 저수지서 아예 텐트 치구 뒤질 때까정 낚시나 하는 것인 중 아는 겨? 이 빌어먹을 놈은 나온 구녕이루 다시 들어가서 정신 채리구 나와야 혀. 회원놈은 자신의 반쪽 인생이 사라진 것이여. 그놈이 낚시구 여행이구 손에 잡히겄는가?”
씁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건 씁새 말이 맞네. 이 저수지루 낚시 오는 양반덜이 자주 허는 말이 뭣인 중 아는가? ‘이런 저수지서 맴 편히 평생 낚시나 허문서 살았으문 좋겄다’ 이라는겨. 실지루 그리 하라문 헐 수 있을 것 같은가?”
김씨가 헛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내두 이 저수지 관리인 되기 전에 죽어라구 기름밥 먹는 공장직원이었다네. 한 달 내내 일해서 월급 가져다가 마누라, 자식새끼 멕여살리구, 어찌 어찌 짬 내서 낚시라두 한 번 다녀올라치면 그리 기분이 좋았지. 그땐 내두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서 뭣하나 싶었지. 모든 것 죄다 때려치고 물 좋고 경치 좋은 저수지서 한가로이 낚싯대나 담그고 살았으면 싶었다네.”


 

씁새가 뱃전으로 손을 내밀어 저수지 물을 튕겼다. 아직은 싸늘한 물이 손가락에 아릿하게 전해져 왔다. 저수지를 에워싼 산에는 아직도 거무튀튀한 겨울이 떠나지 않고 음습하게 앉아있었다.
“힘들게 살아가는 남자들의 희망이 그것일 테지. 그런데 어느 날, 회사가 부도가 난 겨. 시상이 주저앉은 기분이었다네. 모아둔 돈은 없지. 애덜은 안적두 공부헐 나이지… 그때두 친구놈덜은 이렇게 얘기허드만. ‘우선 시간을 갖고 좋아하는 낚시 다니문서 재충전허고 천천히 직장을 알아보자’ 그란디 그것이 말처럼 쉽간디?”
김씨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남자라는 것이 집 말고 또 있어야 허는 것이 직장이여. 워디 소속되어 있어야 힘두 나는 법이지. 그리 힘들게 일하고 짬 내서 낚시 다니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겄는가? 친구덜 말대루 며칠인가는 저기 소양호루다가 낚시 가서는 줄창 텐트 치고 낚시하문서 지냈지. 그란디, 그눔의 낚시가 낚시가 아닌 거여. 맴이 편하덜 않으니께 낚시구 뭣이구 죄다 맥 빠지구 재미가 없는겨. 처자식 우찌 멕여살리나 허는 불안감이 아니라 인자는 뭣을 허야 하는가 허는 허탈감인 게지. 낚시짐 싸서 집으루 돌아왔지… 이리저리 힘들게 알아보고는 겨우 직장을 잡으니께 그제야 주말이문 손바닥이 근질거리고, 낚시가 즐거워지기 시작하는겨.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다 싶드만.”
“지 말이 그거여유. 쉬운 말루다가 째진 입이라구 신나게 낚시나 댕기문서 편히 살겄다구 허는디, 남자 헌티서 직장 떨어져 나가봐유. 끈 떨어진 갓 신세지유. 당장 아침에 일어나서 워디 갈 곳이 없다구 혀 봐유. 낚시구 뭣이구 간에 손에 잡히겄는가? 정리해고네, 정년퇴직이네 해서 직장 떠난 사람덜 희희낙락하문서 낚시 댕기겄슈? 심지어는 허탈감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두 있다드먼. 알겄냐? 이 든적시러운 호이장놈아.”
씁새가 호이장을 보고 이죽거렸다. 관리인 김씨의 말처럼 이 저수지도 호황이 지난 것인지, 초봄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빈 좌대들이 가득했다. 어쩌면 예전처럼 붕어가 잡히지 않아 낚시꾼들이 외면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낚시조차 다닐 여유가 사라진 힘든 시기의 사람들이 더 많아진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씁새의 뇌리에 회원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상 입버릇처럼 회사 때려치우고 365일 꼬박 물가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던 녀석은 막상 정년퇴직으로 아침에 나갈 직장이 사라지자 그 좋아하는 낚시마저 갈 기운을 잃은 것이다.
“됐다. 자네덜이나 다녀와라… 낚시 갈 기운도 없다….”
풀죽은 회원놈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그 좋아하는 낚시마저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만큼 녀석의 허탈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제 회원놈은 월요일부터 아침에 일어나 가야할 곳이 사라진 것이다.
“낚시 오면 가장 신나하는 사람덜 보문 죄다 일허는 사람덜이여. 줄창 일하다가 겨우 해방된 기분이겄지. 반면에 시간 많고 딱히 뭣이라두 헐 일이 없이 오는 사람덜은 그런 신나는 기분이 별루 없어. 낚시의 즐거움이란 게 또 그런 해방감 아니겄는가?”
김씨가 껄껄 웃었다.
“회원놈이 맴이 심란헐 것이여. 당분간은 힘들구 손에 잡히는 것도 없을 것이네. 소일거리라두 있어야 기운이 날 것이니께 당분간은 맴이나 달래줘. 그놈두 진정되문 또 힘차게 낚싯대 휘두르겄지.”
김씨가 죄대에 배를 붙이며 말했다.
“진짜 정년퇴직은 낚싯대 들 기운도 없을 때가 정년퇴직인 거여.”
문득 씁새가 내뱉었다.
“그건 또 뭔 개뿔같은 소리여?”
좌대로 올라가 짐을 받으며 호이장놈이 물었다.
“안 그러냐? 이렇게 햇살 좋은 봄날에 시원한 저수지에 나와 앉아있는 지금이 우덜 최고의 날들인 거여. 이런 봄날마저 사라진다면 월매나 쓸쓸허겄냐…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안적 우덜은 정년퇴직이 아니니께 실컷 봄날이나 즐기자고.”
씁새가 마지막 짐을 호이장놈에게 던져 주고는 배위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뭐허는겨? 올라와서 낚시 안 헐거여?”
호이장놈이 아예 배위에 길게 눕다시피 하는 씁새를 보고는 물었다.
“낚시터 정년퇴직하기 전에 봄날 감상이나 더 해볼란다. 이 대낮에 붕어 얼굴 귀경허긴 힘들 것 같고, 김씨 성님허고 뱃놀이나 해볼란다.”
씁새의 말을 듣고는 김씨가 씨익 웃었다. 멍하니 죄대에서 바라보는 호이장놈을 뒤로하고 김씨가 천천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제야 겨울을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봄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가에 솜털을 내미는 버들가지와 검은 듯 보이는 언덕이 푸른 기운으로 물드는 광경. 봄은 그렇게 또다시 다가와 있었다.
다음 주쯤이면 회원놈도 추운 겨울을 훌훌 털어내고 물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정년퇴직은 아직 멀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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