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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새(172)_ 허당 낚시점
2011년 02월 786

씁 새 (172)

 

 

허당 낚시점

 

 

ㅣ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일러스트-이규성

 

 

 

곳을 낚시점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잡화점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의문이기는 하다. 물론 주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관점이 아니므로, 뭐라고 부르든 주인의 의중과는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러한 업종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그러한 의미조차 초월한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여름…
탑정저수지에 떼고기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봄 포인트인 미루나무 단지에서 타 죽을 듯 무더운 여름날에 4짜 붕어가 피라미 몰리듯 하는 바람에 밤새 낚시하다가 팔에 쥐가 났다느니, 링거를 맞았다느니, 한술 더 떠서 그 엄청난 붕어 떼를 건져내느라 용을 쓰다가 오른쪽이 마비가 오는 바람에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문까지 횡행할 즈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새뱅이 창자 같은 작자들이 밤새 허탕치고는 ‘아나, 나도 꽝 쳤으니까 다른 놈들도 엿먹어봐라’하는 괘씸무쌍한 헛소문을 퍼트린 것이었다. 그래도 그 소문이 부풀리고 부풀려져서는 미루나무 단지 낚시자리가 낚시꾼으로 장사진을 칠 정도였고, 밤새도록 그 모든 낚시꾼들이 팔에 쥐가 나도록, 링거를 맞을 정도로, 반신불수가 되도록 블루길이라는 월남붕어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한창 무더위라 어디 마땅히 출조할 곳도 없고, 출조해봐야 변변한 붕어 얼굴 한번 알현하기도 힘든 시기에 우리 개차반낚시회에게도 그 소문은 그야말로 곗돈 떼먹고 야반도주했던 계주가 제 발로 찾아와 준 것만큼 희소식이었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소문에 앞이 안 보였던 것일까? 주말이 오기를 기다려 부푼 가슴을 부여잡고 탑정지로 득달같이 달려가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미끼를 깜빡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개차반낚시회의 살림을 맡으라고 덜컥 총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씌워줬더니 이놈마저 탑정지 반신불수 사태에 정신이 외출하여 믿고 맡겼던 미끼 공급을 깜빡한 것이었다. 토요일 새벽같이 떠나서 먼동이 부옇게 터올 즈음에 계백장군 묘 입구로 접어들며 그 중차대한 실수를 알게 되었다.
낚시 처음 가는 초짜라는 욕부터 시작해서 지렁이 대신 바늘에 매달아 던져버릴 놈이라는 욕을 지나, 죽은 후에 부관참시 당할 위기에까지 욕을 먹은 총무놈이 울상을 지으며 “씨이발! 내가 원제 총무짓거리를 한다구 헌겨? 씁새, 니놈이 그냥 나더러 니놈이 총무다 그런 거 아녀? 시상에 지나가던 개가 웃을 개차반낚시회는 또 뭐여? 내는 총무 안 헐거니께 니놈덜이나 총무 혀라, 씨바랄들아!”하며 분노로 차있었고, 나머지 패거리들은 총무놈 살을 저며서 지렁이 대신 미끼로 써야겠다는 분노로 가득해 있었다.
논산시내 낚시점을 찾아 미끼를 사서 돌아오기에는 시간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분기탱천하여 좁은 차 안에서 말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낚시꾼인 듯한 사람들을 태운 차량들이 미루나무 단지로 몰려 들어가고 있어 우리들의 마음은 조급증까지 겹치고 있는 중이었다.
“저거… 가게 아녀?”
그 낚시점인 듯, 식료품점인 듯, 음식점이기도 한 ‘허당 낚시점’을 발견한 것은 자신의 살을 내주어 패거리들의 희망찬 낚시를 즐기도록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사명감에 봉착한 총무놈이었다.
길옆으로 아직도 잠에 취해 검게 누운 집들 가운데 단 한 곳만 불이 켜져 있었고, 격자 나무로 된 유리창 사이로 과자봉지들이 내비치고 있었다.
“예미럴, 동네 구멍가게 아녀? 니놈은 새우깡 매달아서 괴기를 잡겄다는 겨?”
“저수지 부근이니께 잘 허문 떡밥이나 지랭이 정도는 팔지 않겄냐? 허탕 치는 셈치고 들어가 보자고.”
어찌되었든, 자신의 살을 내어줄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발동시킨 총무놈 때문에 그 허름한 시골 가게로 들어서게 되었다. 삐걱거리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는 어린 시절에 보아왔던 동네어귀의 구멍가게와 똑같았다.

 

 

                        "

씨이발! 내가 원제 총무짓거리를 한다구 헌겨?

씁쌔, 니놈이 그냥 나더러 니놈이 총무다 그런 거 아녀?

시상에 지나가던 개가 웃을 개차반낚시회는 또 뭐여?

내는 총무 한 헐거니께 니놈덜이나 총무 혀라,

씨바랄들아!

                       

 

부옇게 먼지가 앉은 과자봉지들, 얼기설기 짜놓은 선반에 올라앉은 소주병들, 플라스틱 바구니에 쌓여있는 잡동사니들, 가게의 바닥은 울퉁불퉁한 흙바닥이었다. 그리고 빈 공간에는 낡은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낡은 주전자와 금간 플라스틱 컵이 댓 개 놓여있었다.
가게의 안채인 듯한 방문 앞, 작은 툇마루에 앉아있던 백발의 노인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았다.
“저기… 그라니까유…”
도무지 낚시용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낚시용품조차도 팔지 않는 촌동네의 구멍가게의 모습인지라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지경이었다.
“떡밥? 야광? 지랭이? 뭐여?”
“예?”
“떡밥 사는 겨? 야광 사는 겨? 지랭이두 살 껴?”
“에… 그게… 떡밥유. 떡밥허구 지랭이두 사야 허는디유?”
얼떨결에 대답을 하자 노인이 툇마루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총무놈의 안색이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노인이 꺼낸 칙칙한 붉은색 플라스틱 통에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떡밥 봉지와 접힌 신문지, 그리고 노란색 포장지조차도 반가운 케미라이트가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지랭이는 뒷간서 손주놈이 잡은 겨. 실혀. 괴기덜이 이 지랭이 먹으문 돼지괴기 먹는 기분일 껴.”
노인이 신문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 고맙구먼유. 우덜이 낚시를 왔는디, 어느 칠칠치 못헌 인간이 미끼를 안 가져와서 그놈 살을 포 떠서 미끼루 헐 생각이었구먼유.”
“그라문 괴기덜이 쇠괴기 먹는 기분일 것인디?”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떡밥, 지랭이, 케미까정 월매씩 파신대유?”
지렁이가 담긴 신문지를 눌러보며 물었다. 신문지를 통해 건강하게 꿈틀대는 지렁이의 움직임이 전해져왔다.
“시내는 월매씩 파는 겨? 시내서 사는 대루 가져가.”
노인이 무신경하게 말했다.
“그것두 팔라구 파는 것두 아녀. 댁들 마냥 잊어버리구 오는 사람덜이 가끔 찾아오니께 대충 들여놓은 겨. 낚시꾼덜이 하두 딱허니께 아들놈헌티 시내서 퇴근허는 김에 사서 가져오래서 파는 겨. 월매씩에 아들놈이 사오는지두 몰러. 찾는 사람이 가끔 있어서 이것저것 들여놓다 보니께 별별 것 다 팔어. 시골동네서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인디….”
노인이 가게의 구석진 곳을 손짓했다. 가게의 구석진 빈 공간에 대충 세워둔 낚싯대들과 살림망, 낚시의자, 파라솔에 색 바랜 찌들까지 보였다. 그리고 생뚱맞게 우두커니 서있는 바다낚시용 뜰채까지.
“웬, 바다낚시 뜰채까정 있대유?”
“몰러. 우치키 허다 보니께 그것두 있드라고. 거기 있는 것들은 팔리덜두 안혀. 낭중에 하다하다 안 팔리문 어디 써먹을 곳이 있겄지.”
노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식전인가?”
노인이 떡밥과 케미라이트, 지렁이를 담는 우리를 향해 물었다.
“안적 아침은 못 먹었는디, 낚시터서 대충 먹을라는구먼유.”
“먹구 가. 뭔 식전 댓바람부텀 염병헐 일이 났다구, 배 곯아 가문서 낚시질이여? 그리 새빠지게 낚시터루 달려 가문서 괴기 잡은 사람은 못 봤구먼.”
노인이 툇마루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게… 저기 미루나무 단지서 붕어가 엄청 잡힌다구 허드만유? 낚시꾼덜이 그 소문 듣고 어마어마허니 쏟아져 들어오잖여유?”
“팔랑귀 같은 인간덜이 많으니께 오뉴월 가랑비에 깨춤 추는 겨. 저기 의자에 앉아 아침이나 먹구 가.”
“그게 뭔 말이대유?”
“귀가 얇은 사람덜이 오뉴월에 가랑비만 와두 장마진다구 요란 떤다는 말여.”
노인이 가게에서 안채로 통하는 쪽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노인장 얘기가 뭐여?”
“괴기 좀 잽힌다니께 낚시꾼덜이 중구난방이루 모여든다는 소리 아녀?”
어서 낚시터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아직 미끼 값도 안 치른 상태인지라 구석 빈공간의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금방 아침 내올 껴. 짠지허구 된장찌개뿐이니께 맛 없더라두 먹구들 가. 배가 든든혀야 낚시질이라두 헐 거 아녀?”
노인이 다시 툇마루에 앉으며 말했다.
“그게… 어르신. 그냥 지덜은 낚시터서 라면이라두 대충 끓여 먹을라구 혔는디유?”


 

“라면 끓여줘? 그건 돈 받는 거인디? 낚시꾼덜이 드나들문서 뭐 요기헐 것 좀 달라구 혀서 라면두 끓여주고, 쇠주두 팔구 그려. 근디 아침나절에 먹는 밥은 돈 안 받어. 식전부텀 배고픈 사람헌티 돈 받는 거 아니그던. 쌀은 농사 지으니께 공짜루 대접허지만, 라면은 우덜두 사와야 허니께 공짜루는 못줘.”

 

 

노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려두… 아침마다 밥을 공짜루 주문 가게가 이문이 남겄슈?”
“돈 벌자구 가게허간? 예전에 이 저수지가 괴기가 가득했을 때였어. 동네에 가게두 없었지. 그란디 어느 순간부터 낚시꾼덜이 괴기 잡으러 와서는 밥을 해달라는 겨. 모질게 밥 파는 집 아니라고 가라고 헐 수 있나? 그려서 이 집 마당에다가 평상 내놓고 해달랄 때마다 밥을 해줬거든. 그러다가 낚시용품 찾는 사람들두 오구 혀서 이 모냥새루 가게 하나 짜서 문을 연 겨.”

어느새 우리들 앞에는 후덕하게 생긴 며느리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과 강된장으로 끓인 찌개와 김치 등을 내려놓고 있었다.
“돈 벌자구 헌 것두 아니구, 시골 노인네가 뭐 할 일이 있간디? 놀러 온 낚시꾼덜허구 이 얘기 저 얘기 허문서 시간 보내는 낙이루 헌거여. 그럭저럭 십 수 년이 흘렀구먼. 그때는 그래두 낚시꾼덜이 자주 들르고, 안면 있는 낚시꾼덜두 들루구 혔는디, 인자는 낚시꾼덜두 별반 안와. 다들 시내서 낚시재료 다 사서 오니께. 그러구 시상이 좋아져서 굳이 밥집 안 가두 라면두 끓여 먹구, 그 자리서 끓여먹는 밥두 있구 허니께. 들고 댕기는 그릇두 있잖여? 가끔 예전 생각이 나서 들러주는 낚시꾼덜이 우리집서 매운탕두 끓여먹고, 쇠주 한 잔 마시고 시상 얘기 허다 가는 거지. 시방두 자네덜허구 얘기라두 나누니께 좀 좋은가.”
어느 한 순간,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과거로 간 듯싶었다.
모질게 꽝을 치고, 노인이 말한 가랑비에 깨춤 춘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다음날 아침에 철수하며 다시 노인의 가게에 들렀건만, 웬일인지 가게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고 노인의 간판도 없는 가게에 들를 기회도 없었다. 이제는 노인의 가게가 있던 비포장도로도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양 옆의 집들도 사라졌다. 그저 우리들이 대충 붙여놓은 ‘허당 낚시점’이라는 별명만 우리의 가슴에 남은 채.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든, 기억하지 못하든… 우리에게 추억을 안겨주었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거나 잊혀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련해질 때가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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