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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꽁트 씁새 204 -전설은 살아있다(상)
2013년 10월 745

  낚시 꽁트 씁새  204 

 

 

전설은 살아있다(상)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세상을 녹여 버릴 듯 뜨겁던 계절이 물러나는 것 같다. 그늘로 들어서면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고 아침저녁의 날씨가 싸늘해져 가고 있다. 높아져가는 하늘처럼 씁새의 기분도 한없이 높아지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네놈들이 나를 왕따 시킨다고 내가 낚시를 못 갈 것 같으냐? 씁새님 알기를 개밥에 도토리로 아는디, 좀만놈덜. 네놈들 없이도 이 씁새님께서 낚시를 주구장창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마!’
퇴근하는 길에 들른 박 사장의 낚시점 문을 열며 씁새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월레? 씁새 아녀?”
진열대를 치우던 박 사장이 씁새를 보고는 놀라 물었다.
“왜유? 뒤진 놈이 살아온 것 같어유? 놀래시는 것 보니께 지은 죄가 많으신 것 같구먼유?”
씁새가 테이블에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
“내… 내가… 무신 죄를….”
박 사장이 말을 얼버무렸다. 지난번 개차반 패거리들과 모의하여 씁새를 따돌리고 일행들이 낚시를 떠났다고 거짓말을 하여 하루 종일 씁새가 패거리를 찾아다니게 하고는 급기야는 경찰서로 잡혀 들어가게 만든 미안함과 씁새 녀석에게 복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가심에 손을 얹고 고요히 생각해 보셔유. 인간의 낯짝을 쓰고 태어났으문 인간시럽게 행동허셔야지유. 나잇살이나 주워 드신 양반덜이 사람을 그리 왕따 시킨대유?”
씁새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 그거야… 니놈이 먼저 헌 짓거리가 있으니께 니놈 패거리덜이 정신 좀 차리라고 그리 헌 것이지.”
박 사장이 자판기 커피를 빼서는 공손히 바치며 말했다.

“됐슈! 내를 왕따 시키구 싶다면 그리 허라구 허셔유. 박 사장님두 한 패거리니께 인자 고객 대 손님이루 공적이루 행동헙시다.”

씁새가 내어준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으며 말했다.
“아니… 그것이… 그니께 창수씨허고 호이장, 그러고 총무놈… 그러구 회원놈덜두 지난번에 자네 골려 먹은 것이 미안허다고 그러드만. 그러고 일이 그리 크게 번져서 자네가 경찰서루 끌려갈지 누가 알었겄어? 자네같이 심성 착한 사람이 조폭이라니 경찰덜이 눈알이 삔겨!”
박 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냅둬유! 이미 뒤진 자식 불알 만지기여유. 보자보자 허니께 내를 선술집 젓가락이루 장단 맞추는 찌그러진 밥상이루 아시는 모냥여유?”
씁새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화만 낼 것이 아니라, 에 또… 그니께 창수씨하고 개차반 애덜이 지난번 장난도 사과할 겸혀서 자네허구 이번 주에 청산도루 같이 낚시를 갈 예정이라구 허드만.”
“낚시유? 지랄 말라구 허셔유. 지놈덜 아니문 내가 낚시를 못 가는 중 아는 모냥인디, 지놈덜 없어두 월매든지 낚시 다닐 수 있으니께 지랄 걱정은 개나 주라구 허셔유.”
씁새가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려? 근디 자네는 차가 없는디 우째 혼자서 낚시를 다닐 수 있겄는가? 아닌 말루 짐발이 자전거에 낚시장비 싣고서 대전서 남해루 떠날껴, 동해루 떠날껴? 아니문 버스 타구 서해루 갈껴?”
박 사장이 씁새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놀라 물었다.
“이보셔유, 박 사장님. 지가 누구여유? 바로 고매시런 씁새님이다 이거여유. 이번 주에 청산도 낚시? 지덜찌리 잘 댕겨오라구 허셔유. 이 몸은 모 낚시회서 고매시러운 씁새님과 함께 낚시를 가고자 하오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소서라는 초청장까지 받었구먼유. 이미 선약이 되어 있어서 몹시 바쁘니께 조동바리 처닫고 너나 잘 다녀오셈 이렇게 전해 주셔유.”
씁새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 그려? 그라문 그 모 낚시회가 워디여? 워디루 낚시를 가는디?”
박 사장이 휘둥그레 눈을 뜨며 물었다. 천하의 사고뭉치 씁새를 초청해서 낚시를 가겠다는 낚시회라니… 그 낚시회는 씁새의 소문을 익히 들어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낚시회일 것이 뻔했다.
“아실 것 없구유, 막대찌나 써금써금헌 것이루 내놔봐유. 그라구 원투용 릴대두 내놔봐유.”
씁새가 진열장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씁새가 모 낚시회 초청이루 낚시를 가유? 그 낚시회 미친 거 아녀유?”
호이장놈이 놀라 다시 물었다.
“그렇다니께! 아주 자신만만혀서 ‘조동바리 닥치고 너나 잘 다녀오셈’ 이렇게 전해 달라든디? 엊저녁에 와서는 기고만장허드라니께.”
박 사장이 어제 저녁나절에 들른 씁새놈의 요상한 행동을 호이장과 총무놈, 회원놈에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거… 씁새가 괜시리 우덜 들으라구 쑈 허는 거 아녀? 실상은 워디 갈 곳도 불러주는 곳도 없는디 말여.”
총무놈이 말했다.
“아녀, 아녀. 실지루 씁새가 원투대허구 막대찌, 그러구 릴대두 사가지구 갔는디? 낚시용 소품까정 사간 것으루 봐서는 실지루 낚시를 가는 것이 맞는겨.”
박 사장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요상시럽구만… 차도 없는 놈이 혼자서 낚시 갈 리는 만무허고… 웬만한 낚시회는 씁새놈 악행을 익히 알고 있으니께 같이 가기는커녕, 곁에두 가까이 안 헐 것인디… 그렇다구 마땅히 같이 떠날 친헌 낚시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원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물어봐야 쓰겄네.”
호이장놈이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어이쿠, 이게 누구셔? 사회적인 암적 존재인 왕따를 직접 실행하시는 고매시럽고 유명허신 개차반낚시회의 우두머리 호이장님이 아니신가? 우째 이 불쌍시런 왕따에게 친히 전화를…-
신호음이 가기 무섭게 상대 쪽에서 씁새가 쏘아 붙였다.
“지랄 말구 이번 주에 우덜이 청산도를 가는디, 자네를…”
-아이구, 지같은 왕따를 생각해주시는 그 하해와 같은 마음씨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디? 아주 보살피심이 풍년이구먼유? 고매시런 호이장님, 됐으니께 자네덜이나 청산도를 가던 황산도를 가던 마음대루 허셔. 내는 이미 선약이 있으니께. 그러구 이번 주만 선약이 있는 것이 아니구 다음주, 그 다음주두 약속이루 꽉 차있으니께 바쁜 사람 건드리지 말구 심마니허구 낡으신 창수씨허구 개차반애덜 데불구 너나 잘 다녀오셈! 끊어!-
“야… 야! 씁 씁….”
호이장이 다시 말하려는 찰나에 이미 씁새의 말소리는 사라지고 적막감이 흘렀다.
“뭐여?”
총무놈이 호이장을 보고 물었다.
“이번 달 낚시가 잡혔다는디? 존나 바쁘다는디?”
호이장놈이 정신 나간 놈처럼 중얼거렸다.
“대체 뭔 낚시회가 씁새를 모시구 가겄다는겨? 봉사활동 갈라는겨?”
총무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애초에 사고뭉치인 씁새놈을 골탕 먹이고 지난번 거금도의 땡벌 사건까지 모두 사과 받고, 씁새놈이 정신을 차리게 한 후에 청산도로 같이 고요하게 낚시를 갈 예정이었다.
물론, 지난주에 벌어진 씁새놈의 30만원짜리 조폭 사건은 일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간 것이지만, 그에 대해서도 일행들은 사건을 벌인 당사자들인지라 미안한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차도 없고 변변히 다른 낚시회에 친분이 있다거나 친한 낚시 동료들조차 자신들 외에는 없는 씁새가 낚시를 가기 위해서는 성질을 죽이고 풀 죽은 모습으로 감사히 청산도로 쫓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씁새놈은 아예 기고만장해 있고, 어느 미친 낚시회에선가 씁새를 불러 주었다는 것이 도통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왠지 씁새를 왕따 시켜서 성질을 고쳐 주리라 마음먹었던 자신들이 오히려 우롱당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쩌면 왕따 당한 것은 씁새놈이 아니라 우리들인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서글픔까지 몰려왔던 것이다.

 

“이봐. 장 대리. 낚시 준비는 잘 돼가는겨?”
아침 출근길에 복도에서 만난 장 대리를 보고는 씁새가 물었다. 씁새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것이었다. 이제는 정년퇴직을 앞둔 골방 노인네로 전락해서 잘 나가던 총무팀에서 말뿐인 홍보팀으로 이동된 신세인 씁새에게 날아든 희소식이 회사 차원의 전 사원 단합대회 겸 바다낚시대회였던 것이다.
회사 전체가 낚시대회를 겸해서 바다로 야유회를 간 때가 어언 10여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불황과 감원, 명예퇴직 등으로 어수선한 판에 가뜩이나 쪼들리는 회사 입장에서 전 직원 야유회는 언감생심인지라 각 부서 단위로 M.T나 간단한 회식으로 유대감을 꾸려 가는 실정이었다.
더구나 바다낚시라면 죽고 못 살던 부사장이 퇴직한 후에는 너도 나도 낚시를 하겠다며 들러붙던 아부족들도 사라지고 회사에는 변변한 동호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느닷없이 그야말로 10년 만에 전 직원 단합대회라는 결정과 함께 거제도 바다낚시가 실행된 것이었다.
물론, 낚시대회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것일 뿐 전 직원이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이 인사 개편된 직제에 따라 영입된 부사장급인 기획본부장이 낚시광이라는 소문이 돌자 숨죽이고 있던 아부족들이 너도 나도 낚시를 하겠다며 들고 일어서자 거창한 낚시대회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여직원들까지 낚싯대를 손에 들고 다니며 농어 루어낚시가 어쩌니, 루어의 종류가 어떠니 하며 휴게실마다 낚시에 대한 이야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본부장에게 잘 보여야 하고 취미조차도 같아야 살아남는다는 절박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더구나! 바다낚시에 관하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홍보실의 퇴물영감 씁새의 인기까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중이었다. 골방과도 같았던 홍보실에는 연일 낚시기법과 채비를 배우려는 사원들로 문지방이 닳을 지경이었다.
“박 부장님! 안 그래도 최종 기획안을 미리 부장님께 검토 받으려고 이따 들를 예정입니다. 뭐, 물론 이 낚시대회의 일등은 부장님이시겠지만요. 아하하.”
“아하하, 뭐 내가 그 정도 실력이 되어야 말이지. 다만, 낚시경력 40년이라는 기록만 차고 다닐 뿐이지. 아하하!”
씁새가 호탕하게 웃었다. 잘만 하면 본부장과 인연도 쌓을 수 있을 것이고, 번듯한 낚시회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러다가 전 직원들이 본부장에게 연줄을 대려고 모두 낚시회에 가입하면 어쩌지? 씁새가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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