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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 (209)_늙은 낚시꾼의 노래 (상)
2014년 03월 828

씁 새 (209)

 

 

늙은 낚시꾼의 노래 (상)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잠시 3칸 대의 찌가 움직이는 듯했다. 어쩌면 잔물결의 환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햇살에 묻어 온 바람일지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굵은 고사목이 3칸 대의 옆으로 발을 물에 담근 채 서있다. 물에 드리운 고사목의 그림자가 죽은 세월처럼 검다.
“문득 돌아보면 말여.”
밭은 기침을 뱉어내고는 그가 말했다. 담배를 꺼내는 그의 손이 조그맣게 흔들린다. 바늘에 지렁이라도 끼울라 치면 서너 번은 미끄러져서야 겨우 끼운다. 그것도 누벼꿰기가 아닌 몸통에 대충 끼우는 것인데도 말이다.
“언제 여기에 앉아있었지 하는 의아심이 드는겨.”
그가 의자를 고쳐 앉는다. 겨우 엉덩이 한쪽만 걸칠 듯한 옹색한 낚시의자에 그의 세월만큼의 빛바램이 묻어있다. 어쩌면 그도 저 고사목처럼 많은 시간을 지낸 후 죽은 세월처럼 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께 여기에 앉아있는 거라.”
어쩌면 정말로 3칸 대의 찌가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이 저수지는 터가 세기로 유명하다. 일 년 중에 어느 한 날, 때가 맞으면 미친 듯이 월척을 쏟아내기도 하고, 몇 달 동안을 붕어 비늘 하나 보여주지 않으면서 낚시꾼들의 애를 태우기도 한다. 입질조차도 향어 입질처럼 반 마디만 깔짝거린다. 3칸 대를 들어 올리고 싶어진다. 그의 입에서 담배연기가 벚꽃잎처럼 흩날린다. 저수지는 그의 담배향기로 덮어진다.
“어린 시절도, 황금기라는 청년시절도 안정기라는 중년 시절도 없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여기 앉아 있었던 것 같단 말이지.”
그의 손가락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빨갛게 불이 타들어간다.

“그냥 이렇게 어느 순간에 여기 나타나서는… 앉아 있는 게지.”
이번에는 2칸 대의 찌가 움직이는 것 같다. 확실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이 저수지의 붕어들은 어느 저수지의 붕어들보다 예민하다. 그래서 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꾼들이 입질이 와도 모르고 한 마리 잡지 못했다며 터가 세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반 마디만 더 올려주길 바란다. 그러나 야속한 찌는 바람에 몸을 기울였다 일어설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찌맞춤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예민한 찌맞춤보다 조금은 묵직한 찌맞춤을 좋아하는 자신을 책망도 해본다. 지금이라도 낚싯대를 거두어 봉돌을 약간 깎아내 볼까 생각한다.
바람이 등 뒤의 미루나무 잎을 훑고 지나간다. 푸르르르르, 호이장 녀석은 언젠가 미루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과부가 뀌는 실방구 소리와 같다고 했다.
녀석이 어디에서 과부의 방귀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른다. 천성이 유약스러운지라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도 동구 밖의 장승처럼 멋대가리 없이 뻘쭘하게 앉아있다 오는 놈이 과부의 실방귀 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다고 확신해본다.
3칸 대와 2칸 대를 꺼내 미끼를 다시 갈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조급한데 내 손은 그저 속절없이 떡밥만 주무를 뿐이다.
피라미가 한 마리 튀어 올라 몇 번인가 수면을 튕기고는 사라진다.
끄리라도 뒤에 붙은 모양이다.

“뒤를 돌아보니께… 아무것도 생각이 나덜 않는겨… 아무 기억도….”
그가 피우던 담배를 조그만 나무상자에 비벼 끈다. 그가 20여년을 애지중지하던 지렁이통이다. 지금의 허접한 비닐 지렁이통 이전에 쓰였던 나무통이다. 이제는 그의 휴대용 재떨이로 변모했지만, 결단코 그의 낚시 보물 1호일 것이다.
문득 나의 낚시 보물 1호는 무엇인가 생각한다. 없다. 그저 나도 그처럼 돌아보면 어느 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어느 순간에 이렇게 눈을 뜨고 보니 물가에 앉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의 어떤 시인이 썼던 시가 떠오른다. 입이 닳도록 외웠건만 지금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기억이다.
다시 바람이 미루나무를 스치며 과부의 실방귀 소리를 훑어낸다.
“그저 어찌 하다 보니께 이리 되었던 게지.”
그가 고개를 숙인다. 그의 어깨에 고사목만큼의 짙은 짐이 얹어져있다.
“우리가 초평지를 갔었던가, 아니면 보길도에 갔었던가? 아니여. 그냥 여기 있었던 거여. 움직이지도 않고… 내처 여기에 있었던 거여.”
그가 낚싯대 손잡이로 손을 뻗는다. 그도 찌가 움직인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그의 손은 손잡이만 건드렸을 뿐이다. 그저 손잡이를 한 바퀴 돌렸을 뿐이다.
그래도 그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세월이 더할수록 우리는 부자연스러워진다. 젊은 얼굴로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늙어 친구를 만나는 것이 부자연스럽듯 세월은 우리를 세상에 친숙하게 하지는 않는다.
“임어당이 쓴 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네.”
문득 내가 이야기한다.
“인생의 황금시대는 흘러가버린 무지한 젊은 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미래에 있다.”
고사목의 짙은 그림자가 서서히 다른 쪽으로 기운다. 여지없이 시간은 흐르고 세월이 흘렀다.
“황금을 쫓다가 뒤지는겨.”
그가 나의 말에 반박한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늙어가는 것이 황금시대라면 어째서 우리의 미래는 이다지 힘든 것인가. 등 뒤로 낚시꾼들이 지나간다. 여지없이 좀 나오남유? 뭣이가 잽혀유? 뽀인뜨는 워디래유 등등의 물음이 우리 옆으로 떨어진다.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안다. 그들의 물음에 정답은 없으며 그저 꾼들의 인사치레이고 싱거운 대화일 뿐이라는 것을. 낚시꾼은 그 장소로 떠나는 순간 해답을 안다. 어디가 포인트이며 미끼는 무엇을 쓰고 어느 정도의 조황은 있을 것이라는 해답 말이다. 낚시꾼은 해답을 손에 들고 해답을 찾아 헤매는 매우 어리석은 무리들이다. 그래서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렇게 우리들처럼 물가에 앉아 있던가, 갯바위 끝에 서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는 게지. 내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침에 일어났는지… 저녁에 일어났는지조차도… 그냥 눈을 떠 보니께 내 앞에 물이 있고, 낚싯대가 있더라는겨….”
그가 깊은 숨을 내쉰다. 그에게 종이컵 가득 쓴 소주를 부어준다. 맑은 액체가 찰랑이고 순간, 나는 그 액체에 비친 미루나무를 본다. 그가 마시는 것은 미루나무다. 우리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았을 큰 미루나무다.
“보고… 싶은 게냐?”
내가 묻는다. 그가 대답 없이 나를 돌아보며 슬프게 웃는다.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리운 게지.”
그가 눈을 돌려 하늘을 본다.

“이제는 정말로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에도 없는 그 시절이 그리운 거여. 기억이 나덜 않어. 아침에 일어나면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사람이 사라지니께, 이제는 정말로 그 사람이 내 옆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덜 않어. 없었는데도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인지, 실제로는 내 옆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있었다고 고집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의 아내가 죽었다. 우리가 저수지에 드리운 낚싯대의 숫자만큼 세월은 지나갔다. 그는 그의 아내를 고삼저수지에서 만났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고삼저수지로 출조했다가 놀러온 여대생을 낚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낚시 한 건 했다고 놀림을 받았고, 녀석은 커다란 나이 차만큼 아내를 아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가난한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리느라 이 일 저 일을 해내다가 쓰러졌다.
세상의 모든 낚시꾼의 아내들은 빈처(貧妻)이다. 현진건의 소설 속 가난한 아내이다. 우리가 물가에 쏟아 부은 시간만큼, 낚시꾼의 아내들은 가난해진다. 돈으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인생만큼의 가난이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앉아있다. 더 이상 가난해질 수도 없고, 더 이상 시간을 훔쳐갈 아내도 없다.
그의 아내를 화장한 후, 그가 아내의 유골함을 들고 찾은 곳이 이 저수지다. 어째서 그들이 처음 만난 고삼저수지가 아니고 이 저수지인지는 모른다. 고사목처럼 우리도 가슴에 어두운 그늘이 져 있는 것이리라.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외국 시인의 시가 가물거린다. 낚시꾼의 노래였던가? 제목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럴 줄 알았어. 지덜이 제우(겨우) 간다는 곳이 여기 뿐인겨? 예미럴.”
등 뒤에서 조용히 키득거린다. 총무놈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슬프게 웃는 그는 개차반낚시회의 호이장이다.
어째서 미루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과부의 실방귀 소리인지, 과연 들어 보기는 한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아무 말 없이 총무놈의 옆에 나타난 놈은 회원놈이다. 태어나서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양 옆으로 자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한 해의 낚시계절은 아직 이르다. 밤이면 저수지 가장자리로 살얼음이 덮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밤에도 앉아 있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문득 눈을 뜨면 이렇게 물가에 앉아 있는 낚시꾼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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