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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새 (210)_늙은 낚시꾼의 노래 (하)
2014년 04월 816

낚시 꽁트 씁새 (210)

 

 

늙은 낚시꾼의 노래(하)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어느 옛적에 이곳 이 자리에 어느 늙은 낚시꾼이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지나간 날보다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음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죽었을 것이고, 우리가 또다시 이 자리에 앉아있다.
변하는 것은 없다. 이 자리에는 수 세월을 낚시꾼이 앉아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잡아낸 붕어들보다는 추억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다. 낚시꾼이 늙었다고 자각하는 때는 고기에 대한 욕심보다 추억에 매달릴 때이다.
“하늘나라에도 저수지가 있을라나?”
그가 묻는다.
“지랄…”
내 오른쪽 버들가지 무더기 너머에서 회원놈의 비아냥이 들려온다.
“낚시꾼 아내로 산 세월두 지긋지긋헐 것인디, 하늘나라에서조차 저수지를 봐야 쓰겄냐? 우덜같은 낚시꾼덜이 무더기루 진치고 있을 것인디.”
우리는 하늘나라에 대해 이 저수지 물 속 만큼이나 모른다. 땅거미가 스며들고 한기가 파고든다. 어두운 저수지 위에는 케미라이트가 켜졌다. 중국의 경공이 신하인 재상 안영의 아내가 늙고 추함을 보고 말했다.
“그대의 아내는 늙고 못났다. 과인의 딸이 젊고 아름다우니, 그대에게 주리라.”
그러자 안영이 말한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남자를 섬기는 마음은 다음날 보기 싫어지더라도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믿음입니다. 신의 아내가 비록 늙고 보기 싫으나 이미 신은 아내에게 그런 부탁과 믿음을 약속하였습니다. 이제 와서 동고동락한 아내를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문득 생각한다. 과연 내 앞에 놓여있는 낚싯대의 손잡이만큼 우리 아내의 손을 잡아보았을까? 언제 그렇게 힘차게 잡아보았을까? 낚시꾼이 늙어간다는 것은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무엇이든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이 있었던 일이건, 아니건. 그러나 이젠 기억력이 쇠퇴해 간다. 그리고 곧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기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 정도의 수온에서는 떡밥조차 풀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새 떡밥으로 갈아 끼우지 않는다. 그저 낚싯대는 하염없이 하얀 서리를 쓰고는 드리워져 있다.

“처음엔…”
그가 무료함을 깨고 말을 던진다.
“곧잘 낚시를 따라 댕기드만… 그려서 여기 출조 왔을 적에 그… 청혼을 했단 말이지. 괴기는 안 잽히고… 우찌 된 심판인지 피라미두 안 잽히는겨. 옛다 모르겄다… 기냥 청혼을 했단 말이지.”
그가 아내의 유골을 들고 이곳을 찾은 이유일 것이다. 아침에는 많은 친구들이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점심 무렵이면 어느새 많은 친구들이 사라진 것을 본다. 그리고 저녁이면 어느덧 혼자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언젠가는 우리들 중의 누군가 혼자서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 해도 또다시 우리가 모르는 낚시꾼이 앉아 있을 것이다.

 

“엉덩이가 시려워.”
호이장놈이 중얼거린다.
“차에 들어가 자빠져 자던가.”
총무놈이 내지르듯 말한다.
“불이나 때. 개눔의 종자야.”
호이장놈이 신경질을 벌컥 낸다. 수 십 년을 저따위 욕설을 내뱉으며 살았다.
“차라리 예당이루 갈 걸….”
회원놈이 내뱉었다가 흠칫 놀란다. 어둠속에서도 호이장의 표정을 살피는 녀석의 눈빛이 보인다. 우리는 아내를 잃은 호이장의 마음을 살피러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깜빡 잊는다. 낚시조차도 습관이 되어버린다.
“이 개눔헌티 밤새도록 군불이나 지피라고 혀.”
총무놈이 회원놈의 어깨를 두들긴다. 어둠속에서 회원놈이 나뭇가지를 줍는 모습이 보인다.
누가 윽박지르지 않았어도 녀석은 자신의 실수를 벌충할 모양이다. 또다시 여느 때처럼 추운 몸을 녹이려 불가에 모여 앉는다.
더 이상 우리가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니다. 기억해야 할 많은 것을 위하여 추억을 따른다. 어느 해인가 남해 쪽으로 바다낚시를 갔었다.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즈음, 포구 안의 배에서 술을 마시던 늙은 어부를 보았다. 혼자 자작하며 힘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그 늙은 어부의 뒷모습이 어찌 그리 처량하였던가.
망부석처럼 뱃전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그 어부의 모습은 우리의 황혼일지도 모른다. 그가 바라보았던 것은 과연 바다였을까?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거나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일수도 있다.
그 모습을 두고 호이장은 ‘그저 술이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뜬금없는 오바질은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늙어간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가를 떠나올 즈음에 살림망에 담겨있는 것은 물고기보다 추억이 더 많아진다. 사위는 어둡고 물속의 고사목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살얼음이 잡혔을 것이다.
“여긴 터가 쎄.”
호이장이 빈 잔을 입에서 떼며 말한다.
“어딘 안 그려?”
“안즉 겨울이니께 더 그렇지.”
“산란기에는 고사목 주변이루 괴기가 좀 붙을껴.”
“몇 년 전에 초평이루 가서 산란기 붕어 타작허든거 생각 나남?”
“초평 미루나무밭이서 타작헌 게 대박이였다니께.”
“지랄 말어. 봄이문 예당이 최고여.”
말은 많지만 공허하다. 누구도 비어있는 호이장의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다만 우리가 아직 옆에 있다는 것뿐이다. 슬픔은 어디에나 있다. 또다시 호이장에게 어째서 미루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과부의 실방귀 소리인지, 과연 들어 보기는 한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용운동 창수 성님이 녹동이루 마늘쫑 캐러 가자든디?”
회원놈이 뜬금없이 말한다. 이번에는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다. 어색하게 침묵이 흐른다. 총무놈이 사위어가는 모닥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몇 개 더 넣는다.
“우리 말여… 이대루… 늙어가다가는 노래방에서 처량하게 마이웨이나 부르는 아저씨로 변하는 거 아니여?”
그러나 이미 아저씨에서도 멀어져 간다. 이제는 그저 우리들도 세월을 곱씹으며 물가에 나앉은 늙은 낚시꾼들이다. 그래도 그만큼 우리의 기억할 것이 더 많아졌기를 소망한다. 더 이상 반추할 것도 기억할 것도 사라지지 않기를. 우리가 물속에 던져 넣은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겠지만, 그저 담담하기를 소망한다. 낚싯대를 휘두를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걷어야 하는 거 아녀?”
어느새 동이 튼다. 술을 이기지 못한 총무놈은 낚시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술 몇 병과 마른안주 몇 개로 밤을 보냈다. 이렇게 호이장의 아내에 대한 우리의 추모가 끝난다. 물속의 고사목이 하얗게 빛난다.
서리를 뒤집어 쓴 낚싯대가 반짝인다. 낚시꾼들만큼 우매한 사람들은 없다. 다시는 이 저수지에 오지 않으리라고 악다구니를 퍼붓고는 다시 그곳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낚시꾼이다. 학습되지 않는 인생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냈고, 또 누군가를 떠나보낼 것이다. 우매하고 어리석은 낚시꾼이기에 그 기억을 반추하기 위해 물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상처일 수도 있을 것이고 기억하기 싫은 추억일 수도 있겠지만, 낚시꾼은 다시 그 기억의 자리에 주저앉는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의 곁에서 맴돈다.
“담주에는 거제도 한번 안 갈텨?”
호이장이 낚시가방을 메며 묻는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스했으니께 감생이 좀 붙겄는디?”
총무놈이 잔불을 정리하며 대답한다. 호이장의 얼굴에서 추억이 하나 더 늘었음을 읽는다. 아직은 더 많은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추억할 것보다 추억해야 할 것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늙은 낚시꾼들이다. 앞으로의 어느 날 저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이다.
“호이장아! 니놈은 우치키 미루나무 이파리의 소리가 과부의 실방귀 소리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겨?”
결국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들어 봤으니께.”
호이장놈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운제 들은겨? 네놈! 바람 폈냐? 원제 과부하고 바람이 난겨?”
“개눔! 제수씨헌티 미안허지도 않은겨?”
“이런 쳐 쥑일눔 ! 이눔을 여기 수장시키고 가야 혀!”
또다시 저수지에 욕설이 난무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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