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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붕어낚시연구』의 저자 원로낚시인 최운권 선생 타계
2017년 02월 1259 10603

謹弔

 

『붕어낚시연구』의 저자 

 

 

원로낚시인 최운권 선생 타계

 

 

허만갑 기자

 

 

원로낚시인 최운권(崔雲權) 선생이 지난 12월 31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6세. 선생은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붕어낚시 기법서인 ‘붕어낚시연구’를 출간하였고, 그해 창간한 낚시춘추의 필진으로 활약하며 우리나라 낚시의 과학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최운권 선생의 ‘붕어낚시연구’는 고 송소석 선생이 쓴 ‘붕어낚시교실’과 더불어 70~80년대에 낚시에 입문한 이들에게 바이블과도 같았다.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선생은 당시 <월간영어사> 발행인으로서 낚시춘추 제작에 참여하여 71년부터 97년까지 27년간 80여 편의 글을 실었다. 이것은 낚시춘추의 역대 필자 중 최장 최다 기고이다. 많은 기사와 저술, 강의를 통해 선생이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낚시의 과학화’다. 최운권 선생은 전공인 생물학 외에도 어류학, 물리학, 호소학, 미생물학의 다양한 지식을 낚시에 접목하여 물고기가 낚이는 원리와 낚시채비가 작동하는 최선의 조건을 찾고자 하였다. 또한 선생은 영미와 일본의 낚시관련 자료들을 탐독하여 그중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것들을 붕어낚시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최운권 선생은 생전에 “낚시춘추는 우리나라 낚시의 구심점”이라고 강조하면서 “낚시춘추 창간의 가장 큰 의미는 비로소 낚시인들의 사랑방, 토론장, 터미널, 휴게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도출되고 어떤 글들이 잡지에 실렸는지는 부차적 의미다. 낚시인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고 뜻을 발표할 장을 마련하였다는 게 중요한 것이며, 그로 인해 낚시산업과 낚시문화가 꽃피울 터전이 마련되었다”고 말하였다. 

 

▲서울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빈소에 안치된 최운권 선생의 영정.

 

 

한국낚시펜클럽과 한국낚시진흥회 창립 기여
최운권 선생은 1930년 경기도 평택에서 최상노(崔尙魯)와 오화근(吳和根)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평택에서 이름난 한의사였고 외가는 안성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뛰어나게 공부를 잘한 선생은 당시 시골학생으로서는 하늘의 별따기 격인 서울의 중앙고보에 합격했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그 해 6월 25일 전쟁이 터지면서 선생의 삶은 예기치 않은 격랑에 휩싸이고 말았다. 선생의 부친은 북한군에 잡혀 인민재판장에 끌려가는 고초를 치른 뒤 재산을 몰수당했고 선생은 1.4후퇴 때 제2국민병에 소집되어 전선으로 끌려갔다가 공군 대령으로 있던 친척이 사천공군부대 법무감실로 빼내어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된 선생은 복학을 포기하고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 입사하였고 간호사였던 정금순씨를 만나 결혼하였다. 1956년 선생은 3년 동안 근무한 미국 대사관을 나와 「잉글리시 위클리」라는 주간신문사를 차렸다. 그로부터 5년 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박정희가 이끄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신문에 대한 대대적 정리를 단행하면서 「잉글리시 위클리」는 월간지로 바꾸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당시 「시사영어」와 쌍벽을 이루었던 「월간영어」다. 어학잡지와 어학교재출판을 병행하면서 사세는 확장되었으나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월간영어」는 예기치 않은 철퇴를 맞아 폐간의 아픔을 겪는다. 잡지의 권두언으로 실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문 중 ‘엘리트 계층이 각성하고 있어야 독재정권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신군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이후 선생은 더 이상의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산천을 주유하며 낚시를 즐기는 삶을 보냈다.
최운권 선생은 낚시춘추 초대 발행인 한형주 박사와 함께 한국낚시펜클럽의 창단 주역으로서 한국낚시진흥회 창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지난 2011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선생은 “내 책이 낚시여명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다. 낚시인으로 살았다는 게 행복할 뿐 아무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인 정금순(丁錦順) 여사와 장남 최병학씨를 비롯한 4남매와 손자 손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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