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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강 꺽지에 반한 일본 낚시인 사노 - “한국의 강, 그 풍성함이 정말 부러워”
2009년 08월 1147 1181


경호강 꺽지에 반한 일본 낚시인 사노

 

“한국의 강, 그 풍성함이 정말 부러워”

 

 

조홍식 理博, 루어낚시100문1000답 저자

 

낚시춘추에 1년 넘게 ‘일본낚시일기’를 연재한 미스터 사노(佐野)가 오랜만에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우리나라 강과 계류의 풍부한 수량과 다양한 수중생태계를 무척 동경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꺽지낚시였다.

 

 

▲ 이리저리 포인트를 살피고 있는 사노.

 

▲ 아가미뚜껑에 태극마크가 선명한 꺽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한국 고유종이다.

 


사노 사다오씨가 사는 일본의 큐슈 북부지역은 우리나라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라서 기후가 좀 더 덥기는 하지만 생태계는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흔한 꺽지는 없고 다만 아종인 ‘꺽저기’가 아주 한정된 수역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역시 꺽저기는 서서히 절멸되어 가는 종류로 이제는 탐진강에서만 서식이 확인된다.
모처럼의 내한이라 그에게 좋은 꺽지낚시터를 안내하고 싶었다. 어디로 갈까? 내린천? 동강…? 강원도를 후보로 두고 있었는데, 어허, 이 친구,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부산으로 온단다. 마중하러 부산까지 내려가야 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서울에서는 멀어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함양군의 임천강을 목적지로 삼으니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덩치가 좋은 꺽지를 만나볼 것 같은 예감에 기대가 부풀었다.
그러나 막상 당일은 그 좋던 날씨가 궂어지면서 비가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진주분기점에서 대전통영간고속도로로 올라탔다. 생초IC를 빠져나와 지리산 동쪽자락 임천강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지나서였다.
그럴듯한 장소에서 첫 루어를 던지는데 후드득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속에는 많은 은어가 소상해 바위의 이끼를 훑어먹는 모습이 비쳐 보이는데, 스피너에는 꺽지가 아니라 갈겨니 한 마리가 입질했다. 꺽지 입질이 전혀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류 쪽에서 “깡깡”하는 이상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펴보니 웬 아저씨가 커다란 해머로 바위를 두들겨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열심히 루어를 던지는 자리는 이미 그 큼직한 해머로 손을 본 자리였다. 바위를 두들겨 기절해서 떠오르는 물고기를 바구니에 주워 담는 모습에 놀라 서둘러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하류로 이동해 수심이 조금 있어 보이는 장소에서 다시 루어를 던지자 꺽지가 한 마리 낚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빗줄기가 굵어지고 지나쳐온 공사장에서 토사가 유입되는지 물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곧 어두워질 것 같은 시각에 메기가 두 마리 낚였지만, 빗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기록도 못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사노씨가 돌멩이를 들춰 치어들과 수생곤충을 관찰하고 있다.

 

임천강 대신 산청읍내 경호강으로

비에 젖은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 산청읍내로 철수, 일단 방을 잡았다. 시골이라 너무 늦으면 식당들이 문을 닫을 것 같아 젖은 옷을 바꿔 입지도 못한 채 일단 식당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노씨를 위해 고춧가루를 아주 조금만 넣어달라고 특별히 부탁한 돼지두루치기에 소주를 한잔 곁들이자 피로가 몰려왔다. 새벽에 서울을 출발해 부산으로 지리산으로 종일 운전을 하고 비를 맞아가며 낚시를 했더니 소주 한 병으로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모텔방에 누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도로 지리산 계곡을 타고 올라야 하나? 포기하고 읍내 앞 경호강에서 그냥 해볼까? 이러저러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사노의 코고는 소리에 선잠을 깨어보니 새벽 5시반, “오하이오.”(일본의 아침인사) 사노를 깨웠다. 창밖에는 안개비가 조금씩 흩뿌리고 먹구름은 언제 빗줄기가 다시 굵어질지 모를 상황. 폭우라도 내리면 계곡은 별로라는 생각에 아직 잠들어 고요한, 푹 젖어있는 산청읍내를 가로질러 강변으로 나갔다. 이제는 작더라도 마릿수가 우선이란 생각이었는데, 첫 투에 실한 꺽지가 낚였다. 자리를 사노에게 양보하고 조금 깊은 곳으로 롱 캐스팅, 내가 항상 좋아라하고 사용하는 30년 된 구식 릴에 나일론 0.8호 줄, 생각보다 멀리 루어가 날아갔다. 릴이 아무리 낡아도 불안한 점도 없고 오히려 빈티지패션이 ‘낚시는 미학(美學)’이라는 명제에 아주 잘 어울리지 않나? 다음에는 낚싯대도 대나무낚싯대를 사용해 볼까하고 궁리를 해 보는데 ‘달달달’하는 손맛, 다시 꺽지가 낚였다.
사노가 너무 조용해 돌아보니 포인트를 읽어내기는 하는데 꺽지의 습성에 아직 익숙해지지는 않은 듯했다. 그래서 한번 어드바이스. 캐스팅 위치를 지시하고 꺽지가 있을 것 같은 장소로 루어의 이동궤적을 유도하면서 빠른 릴링속도를 좀 더 느리게 하라고 지시하는 순간 바로 입질이 들어왔다. 아주 실한 한 뼘이 훌쩍 넘는 꺽지였다. 낚아낸 사노는 이렇게 큰 크기는 처음 봤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읍내 한복판에서 씨알 좋은 꺽지가 잘도 낚였다. 여울에서도 소에서도 마릿수도 크기도 아주 좋았다. 읍내 사람들이 낚시를 그동안 하지 않았을 리도 없는데 큰 씨알이 잘 낚여 올라오는 것이 밤새 내린 비의 덕택인지도 모르지만, 실로 오랜만에 경호강의 잠재력에 감탄했다. 멀리 가지 않고 이곳을 선택한 것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현해탄을 건너 또 대한해협을 건너 멀리서 찾아 온 친구이기에 이 한 마리로 내심 안도감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 경호강 꺽지 사냥에 나선 필자(좌)와 사노씨.

 

‘꺽지 치어 가져가고 싶다’는 말에 말리느라 진땀

상의를 축축이 적시며 내리던 안개비가 멈추고 서서히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사노는 잠시 쉬면서 강가의 돌을 뒤집어보며 작은 치어들과 수생곤충을 관찰하고 있었다. 복잡한 바위지대에 물이 흐르지 않는 장소라면 납자루 종류며 각종 어류의 치어들이 바글대고 수많은 갑각류와 곤충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익숙한 우리나라 강변이건만, 그에게는 이질적이었나 보다. 갑자기 큼직한 종개를 한 마리 건져내더니 “이 강에는 물고기가 몇 종류나 있나?”하고 물어왔다. 경호강에 서식하는 어류의 종류를 내 어찌 다 알랴마는 마침 며칠 전 뉴스에서 ‘한강의 수질이 좋아져 어류의 종류가 80년대 20여종에서 최근 70여종으로 늘어났다’는 뉴스가 기억났다. 이를 알려주자 사노는 역시 한국의 내수면은 대단하다며 감탄하더니 지리산을 가리켰다. 어릴 적 벌거숭이산에 나무 심기가 우리나라의 큰 과제였던 기억이 새롭다. 풍요로운 숲이 풍요로운 강을 만든다. 아직 모자라지만, 산림이 풍요롭고 경사가 완만한 우리네 강은 역시 ‘생명의 보고’이다. 이제는 계속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일본은 산이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에 식물 다양성이 떨어지다 보니 경사가 가파르고 또 짧은 일본의 강은 물은 맑되 생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고운 모래가 깔린 돌 틈을 작은 뜰채로 뒤적이니 뜰채 안으로 깨알 크기의 물고기가 여러 마리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꺽지의 축소판 아닌가? 경호강의 꺽지는 이미 산란을 마친 것만이 아니라 부화되어 다음 세대가 활동하고 있었다.
사노가 이 치어들을 일본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 될 말. 꺽지는 우리나라의 고유종으로 ‘야생 동식물보호법 제41조’에 의거, 국외 반출 시에는 승인을 얻어야 하는 생물자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혹시 가져가 방류한다면, 일본의 강이 생태교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어가며 낚시를 통해 한일 문화교류로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점심을 훌쩍 지나 허기에 지쳐갈 때쯤, 그만 슬슬 낚시를 접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여울을 노려 루어를 던져봤다. “짜르륵”하고 드랙이 풀리며 낚싯대가 휘청! 여울 속에서 물의 수압을 받아 더욱 묵직한 것이 씨알 좋은 꺽지였다. 사노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크기를 꺼내 사이좋게 한 마리씩, 경호강의 여운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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