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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 바다낚시인 현봉훈 타계
2020년 03월 278 13090

謹弔

 

바다낚시인 현봉훈 타계

 

이영규 기자

 

 

충북 청주시 하나장례식장에 마련한 현봉훈 씨의 빈소.

생전에 현봉훈 씨와 우정을 쌓아온 전 인천피싱클럽 대표 정창범 씨가 상주인 둘째 아들 현호의 씨를 위로하고 있다.

 

바다낚시인이자 전유동낚시의 달인으로 불려온 현봉훈 씨가 지난 2월 4일 밤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57세. 사망 원인은 위암이며 병세가 악화되면서 그 밖의 합병증이 더해진 것 으로 알려진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를 아는 많은 낚시인들은 슬픔에 잠겼다. 현봉훈 씨와 친한 몇몇 지인은 그의 투병을 2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 외의 사람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가족의 말에 의하면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긴 했으나 임종 한 달 전까지도 낚시인들과 통화도 하고 전국으로 여행을 다니는 등 외형상으로는 징후가 없었다고 한다.
1963년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에서 태어난 현봉훈 씨는 일찌감치 구멍찌낚시에 심취했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 무렵, 성산포 우도를 무대로 벵에돔 전유동낚시의 달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찌매듭을 쓰지 않는 전유동낚시로 벵에돔을 요리하는 낚시 실력에 반한 낚시인들이 그의 낚시를 배우고 싶어 전국에서 제주도로 날아왔다.
1994년에는 전남 진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듬해 완도로 이사해 완도권에 전유동낚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감성돔을 전유동으로 낚아내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의 활약이 낚시춘추를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완도가 전국적인 감성돔낚시터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했으며, 1999년에는 한일 고수들이 총출동한 제3회 코리아오픈에서 우승하며 토너먼터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2010년 무렵에는 전북 부안의 격포로 이사해 선장으로 변신한다. 그러나 점차 건강이 악화되자 충북 청주에서 가족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유족으로는 제주도의 양친과 부인 박명숙(57) 씨, 현의(36), 현호(26)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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