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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춘추 창간 49주년 제언_ 낚시춘추 창간 50주년 즈음에 부쳐 “낚시春秋는 우리들 잡지요!”
2020년 03월 261 13093

낚시춘추 창간 49주년 제언

 

낚시춘추 창간 50주년 즈음에 부쳐

 

“낚시春秋는 우리들 잡지요!”

 

김국률 도서출판 예조원 대표


낚시춘추 50년 역사엔 우리나라 낚시 100년사가 함축돼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세연년 이어 온 낚시 선배들이 남긴 전언과
증언이 고스란히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옛 낚시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저장고이자 10년, 50년 후의 우리 낚시 후배들에게 물려줄 유산이기도 하다.

 

낚시춘추 창간 10주년 기념호(1981년 3월호)에서 10년 정기구독자 인터뷰에 응한 홍천 이의원 이동립 원장. 낚시춘추 1981년 3월호 단색 화보에 실린 사진이다.

 

이번 2020년 3월호로 창간 49주년을 맞이한 ‘낚시春秋’가 뜻 깊은 역사를 향해 또 한발 한발 다가간다. 딱 1년 후 2021년 3월호로 창간 50주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기록이요, 우리 낚시계의 자랑거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월간지는 수천 종. 이 가운데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잡지는 여성지와 문학지를 통틀어 불과 10여 종으로 집계된다. 취미 생활 분야로 보면 1967년에 창간된 「월간 바둑」과 1969년 「월간 산」에 이어 3번째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들의 「낚시춘추」다.

 

창간 50년 이상 잡지는 10여 종뿐
초대 발행인 원파(圓波) 한형주(韓炯周·1928~2018) 박사에 의해 1971년 3월호로 첫 선을 보인 낚시춘추가 우리 낚시계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따랐고, 때로는 희열과 환희가 넘쳤다. ‘덜커덩~’ ‘우당탕~’ 시골길 달리고 달려 ‘헐레벌떡’ 들길 헤쳐 가느라 단내 뿜던 그 시절 출조길처럼….
1971년 당시의 우리나라 낚시인구는 불과 40만~50만 명, 회원 모집 출조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시내 낚시점은 80~100여 곳, 낚싯대(글라스 로드) 제조업체는 단 4곳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92달러(2018년 33,434달러), 수출 규모 10억 달러(2018년 6,055억 달러)를 겨우 돌파하던 무렵이다.
낚시춘추가 창간된 이 무렵 7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 낚시계의 큰 전환점이자 도약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공업 제품의 대나무낚싯대에서 유리 섬유 재질의 글라스로드(Glass Rod) 시대로의 전환이다.
순탄하진 않았다. 196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글라스로드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눌려 국내 시판이 허용되지 않았다. 사치품이라는 이유도 따랐다. 이후 상공부로부터 수출품 가운데 일부만 국내 시판을 허용하는 조건 아래 1965년에 이르러 정식 판매가 이루어졌다.
오리엔탈공업(주)과 (주)은성사, 해동산업(주)과 로얄공업(주)에서 차례차례 출시한 글라스로드는 70년대 중반 들어 낚싯대 시장 80%를 점유하게 되면서 수공업 대나무낚싯대는 역사의 유물로 퇴조하였다. 그러나 대나무낚싯대를 밀어낸 글라스로드도 오래 가지 못했다. 10여 년이 지난 1982년 들어 은성사와 해동산업에서 수향(水鄕), 흑기사(黑騎士) 시리즈의 카본 낚싯대를 출시하면서 우리나라 낚시 장르는 민물·바다 분야 모두 더한층 다양화하고 고급화되었다.

 

한국낚시의 역사, 낚시춘추가 함께하다
이 과정에 낚시춘추가 있었다. 다양한 낚시 제품 출현에 낚시춘추가 손발을 맞췄고 때로는 계기를 부여하였다. 창간 당시 단조롭기 짝이 없던 낚시 장르를 다양화하고, 새로운 낚시 기법을 소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새로운 낚시 대상어종을 찾아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붕어 얼음낚시를 수도권은 물론 대구·광주 지역으로까지 확산시켰고, 멸치낚시라 조롱하던 빙어낚시를 겨울낚시 장르로 정착시키며 가족 동반 나들이를 한껏 부추겼다. 무지개송어와 배스 등 새로운 루어 대상어종을 찾아 강·계곡·호수를 누볐다. 플라이, 트롤링낚시 장르를 정착시키기 위해 과도한 지면을 꾸미기까지 했다.
5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낚시인구는 700만 명으로 회자된다. 시즌이 따로 없다. 낚시로 못 잡을 고기가 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맛있는 고기를 직접 낚아 손수 요리해 먹을 수 있을 만큼 다방면의 낚시 장비가 고루 발달하였고 낚시 방법도 한결 수월해졌다.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추억도 많다. 꽃샘추위 속에 시작해 한 해 낚시를 마무리하던 늦가을 납회(納會) 행사가 사라졌는가 하면, 한 해 낚시를 시작한다는 취지의 시조회(始釣會) 행사 의미도 퇴색하였다. 안쓰럽게 불리던 ‘일요과부’란 유행어도 사라져 낚시꾼 가장들의 억울함 또한 저절로 풀렸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샘이 깊은 물처럼 낚시춘추 50년 책갈피엔 숱한 정보와 사연들이 신화처럼 담겨 있다. 우리나라 낚시에 대한 자료, 여기에 다 있다. 이것이 최초·최고·최대·최다 … 온갖 기록이 다 담겨 있고, 흥미진진한 사건·사고를 다 파헤쳐 볼 수 있고, 온갖 궁금증 다 풀어볼 수 있다.

 

50년 낚시춘추는 우리 낚시계의 자랑거리다
오래 전, 낚시춘추 창간 10주년 기념호(1981년 3월호)에 의미심장한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개업의를 하며 지역 낚시회 활동을 선도하던 이동립 원장. 당시 10년 정기구독자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기자(심용섭 부장)에게 이 원장은 생뚱맞은(?) 답변을 했다. ‘어떤 점이 좋아 낚시춘추를 10년이나 계속 정기구독하고 계시냐?’는 요지의 첫 질문에 전월호 잡지를 손에 든 그가 “낚시춘추는 내 잡지요!”하고 일갈한 것이다. 창간 10주년… ‘자랑과 함께 그만큼의 사명감도 가져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고인이 되셨을 그 분의 말씀이 창간 50주년을 앞둔 지금에 이르러 새삼 떠오르는 것은 ‘50년 낚시춘추는 이제 낚시춘추 관계자들만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우리 낚시계가 함께 뒷받침해 온 자랑거리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창간 이래 여러 임직원들의 노고에 수많은 독자들이 성원을 보냈고, 수많은 낚시업체들이 물심양면의 지원을 보냈기에 오늘의 50년 역사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낚시동호인들이, 우리 낚시산업체들이 “낚시춘추는 내 잡지요!” “낚시춘추는 우리들 잡지요!” 하고 합장해도 되지 않을까. 오래, 오래도록….
거듭 의미를 부여하거니와, 낚시춘추 50년 역사엔 우리나라 낚시 100년사가 함축돼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세연년 이어 온 낚시 선배들이 남긴 전언과 증언이 고스란히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옛 낚시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저장고이자 10년, 50년 후의 우리 낚시 후배들에게 물려줄 유산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낚시춘추에 근무한 적 있는 나는 이즈음 큰일(?) 하나를 벌이고 있다. 1971년 3월 창간호 이래 2020년 2월호까지 583권의 낚시춘추를 하나하나 탐독하며 여태껏 나름 열심히 정리해 온 자료를 재분류해 ‘키워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름 하여 ‘낚시춘추 사용설명서’-. 우리나라 낚시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고, 듣도 보도 못한 사건·사고와 온갖 흥밋거리까지 덤으로 건져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낚시춘추 출퇴근부에 마지막 체크인을 하고 나온 지 이미 10년. 또 한 번 나는 열심히 외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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