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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주년맞이 연속기획 낚시춘추와 나_낚시춘추는 강과 바다로 통하는 창문이었다
2020년 05월 353 13232

창간 50주년맞이 연속기획_낚시춘추와 나

 

낚시춘추는
강과 바다로 통하는 창문이었다

 

명정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

 

 

▲매년 연말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낚시춘추의 한국낚시최대어상을 심사 중인 필자. 이 인연 때문이라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낚시춘추를 방문하고 있다.

 

첫 인연
1960년대에 부산 태종대, 청학동, 다대포, 자갈치시장과 김해수로를 오가면서 배웠던 낚시는 나의 평생 취미이다. 물가에 가는 것 자체가 좋았던 나는 ‘낚시춘추’라는 잡지가 나오고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대학생활이 시작되면서 낚시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기쁜 마음으로 낚시춘추의 독자투고(애독자 살롱)란에 ‘강가에서’ 라는 낙동강 수로 붕어낚시 얘기를 써 보내었다(1975년 6월호).
그 후 대학생활, 군 생활,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부지런히 바닷가와 강가로 다녔다. 그때는 잡지에 나오는 먼 바닷가에는 가보질 못하고 기사로 접하는 정도였다. 그 후 낚시춘추 편집부 김국률(현 예조원 대표) 부장님과의 인연은 1988년, ‘독자 사진 콘테스트’가 계기가 됐다.
직장낚시회(해양낚시회)에서 충남 아산 쌍용지로 납회를 갔을 때로 기억된다. 연구소의 출퇴근용 대형 버스로 출조하던 시기였다. 쌍용지 우측 오목하게 들어간 수초대에서 당시 돌이 채 안 된 딸을 안고 있는 아내가 붕어를 들고 찍은 사진(제목은 조기교육)이 선정(1988년 2월호)되었다. 선택된 사진에 대한 상품은 낚싯대였는데 서울,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직접 가지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안양에 살면서 안산의 해양연구소로 출퇴근할 때인지라 전철을 타고 낚시춘추사를 찾아 갔었다. 편집실에서 상품을 받고서는 김국률 부장님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해양연구소에서 어류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낚시 대상 어종에 대한 소개 원고를 부탁받게 되었고, 낚시춘추에 연재할 어류도감에 대한 얘기도 그때 처음 나누었다.

 

 

▲필자와 낚시춘추와의 첫 인연이 된 ‘애독자 살롱’ 에세이 기고. 낙동강 수로에서의 붕어낚시 얘기를 담은 것으로 낚시춘추 75년 6월호 실렸다.

▲1988년 2월호 독자 사진 콘테스트에 실린 가족 사진. 아내가 돌이 안 된 딸을 안은 채 붕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제목은 조기교육이었다.

 

독자사진 콘테스트 응모 계기로 조어박물지 연재 시작
연재 원고는 <조어박물지>란 이름으로 그 후 100회(1991년 3월~1999년 12월)를 이어가게 되었다. 계속 진행해온 어류도감은 먼 후일 사진들이 어느 정도 모아진 2002년도에 <우리바다 어류도감>이란 이름으로 발간하게 된다.
김국률 부장님과의 그 만남이 있었던 후 낚시춘추 잡지는 우리 집의 한 켠을 차지한 책이 되었다. 조어박물지에서는 낚시를 가서 낚을 수 있는 어종들을 한 종씩 이름, 형태, 생태, 낚시 방법, 기타 먹는 얘기까지 곁들여 소개했으며 물고기를 연구하는 나에게는 원고 준비과정이 전공 공부와 관련 있어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논문이나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없었고 국내에 책자나 자료들이 많이 없었던 관계로 일본, 미국 등 외국 자료들을 뒤져야 했었다.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모으고 복사하고 번역해서 우리나라의 여건에 맞는 원고를 한 편씩 적어나갔다.
95년부터 노르웨이에 1년 간 머물렀던 동안에도 원고는 빠뜨리지 않고 매월 우편으로 낚시춘추사에 보내었다. 그 후 수협 월간지인 ‘우리바다’지에 ‘신자산어보’란 이름으로 수산 어종에 대한 원고를 또 10년간 쓰게 되었다. 그동안 종에 대한 정보들도 모아졌다. 지금은 ‘세밀화로 그린 어류도감’ 작업을 하고 있어 어찌 보면 낚시춘추와 인연을 맺은 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물고기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원고를 쓰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조어박물지에 실린 내용들은 외국 자료를 정리한 부분이 많아서 원고 작업이 끝난 후 단행본으로 묶어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낚시 대상어종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바다 어류도감
나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망상어처럼 새끼를 낳는 태생어도 있다고 선생님께 얘기했다가 묵살된 기억, 중학교 때 부산 영도에서 낚시로 잡은 ‘쫄장어(표준명 그물베도라치)’의 표준명이 알고 싶어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을 뒤지던 안타까운 기억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어류 전공자가 아닌 학생이나 일반인도 쉽게 물고기 이름을 알 수 있는 ‘어류생태도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필자가 저술한 우리바다 어류도감이 2002년에 발간됐다. 수중 사진 전문가 김병일, 이선명, 전길봉 씨 외에 낚시춘추 기자들이 촬영한 어류 사진도 다수 수록됐다(현재는 예조원에서 발행)


그리고 결국에는 낚시춘추사와 인연이 되어 2002년도에 국내 최초의 어류 생태 사진 도감이 발간되었다. 총 334종 800여 컷의 사진이 수록된 <우리바다 어류도감>은 나와 함께 수중생태 조사를 하고 있었던 이선명, 김병일, 전길봉 등 수중사진 전문가이면서 내게는 수중사진 스승이기도 했었던 분들과 함께 만들었고, 낚시춘추사에서도 그동안 취재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추가하였다. 60년대의 나와 같이, 낚은 물고기를 들고 이름을 몰라 궁금해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이 도감이 나온 후에도 나는 어류도감의 증판과 ‘물고기의 관상학’이란 책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최대어 심사 위해 매년 연말이면 서울로
낚시춘추사와의 인연은 원고, 도감 작업 외에도 매년 연말에 열리는 최대어 심사가 이어져있다. 초기에는 민물고기 전문이신 최기철 박사님이 참여하고 계셨는데, 바다고기 심사위원이 필요하다는 낚시춘추사의 권고로 내가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붕어와 감성돔 최대어 기록은 내가 심사를 시작하기 전의 기록이었는데, 아마 이 두 종의 기록은 언젠가 어류학계에서의 공인 인정 과정을 거치는 게 좋을 듯싶다.  가장 최근의 심사는 작년인 2019년도였는데, 첫 심사를 시작할 당시는 월간낚시라는 잡지사가 서울에 있어서 국가적인 공인 최대어 기록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어류전공자가 참여하여 종과 계측 기록에 대한 정확도를 심사한다는 자체는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 미국처럼 세계의 스포츠피싱, 낚시 대상어를 공인해주는 협회(IGFA, The International Game Fish Association)가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을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낚시 인구가 이렇게 많아지고 대상 어종이나 장르도 매우 다양해진 현 시점에서의 한국 낚시계를 본다면 당연히 있어야 할 협회나 기구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흑벵에돔으로 이름 지어질 뻔한 긴꼬리벵에돔
우리나라 물고기의 이름에 대한 얘기이다. 1977년 발간된 ‘한국어도보’(정문기 박사)에 수록된 우리나라 물고기 이름들이 대부분 국명으로 사용되고 왔고 그 후 한국어류대도감(김익수 박사 외, 2005)을 발간할 때 일부 재정리가 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정리할 것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해양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꽤나 많은 미기록 어종들을 채집하여 학계에 발표했었다. 1992년 정부 연구사업으로 제주도 서귀포 연안을 잠수 조사할 당시 물속에서 내가 체크한 전체 어종의 15%가 미기록 어종이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어류 분류 연구가 어시장에 올라온 종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잠수를 해야 볼 수 있는 작은 열대, 아열대 어종들은 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제주도의 자리돔이 한 종인 줄 알았지만, 필자가 물속에서 본 자리돔은 자리돔(Chromis notata)과 연무자리돔(Chromis fumea) 2종이었다. 연무자리돔은 1999년도에 미기록 어종으로 학계에 보고하였다. 그 외 살자리돔, 띠그물가시치, 나가사끼자리돔, 청황베도라치, 다섯줄얼게비늘, 흰꼬리자리돔 등 여러 종들을 학계에 보고하면서 우리 이름을 붙였다.
그 외 기억에 남는 이름에 관련된 얘기는 ‘긴꼬리벵에돔’과 ‘점농어’이다. ‘긴꼬리벵에돔’은 당시 낚시계에서도 벵에돔과 다른 종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이 종을 미기록 어종으로 학회에 발표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류학회 소속 다른 박사가 나보다 먼저 학회에 발표했고 한발 늦었던 나는 발표를 취소하게 되었다.
그 발표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 종의 한국 이름을 무엇으로 제안하느냐고 물었더니 일본명이 ‘구로메지나’이니 ‘흑벵에돔’으로 하려고 한단다. 나는 이 종의 체색이 벵에돔보다 검지 않고 오히려 연하며, 아가미 뚜껑 뒷가장자리가 검다는 점, 꼬리지느러미가 제비 꼬리처럼 날씬한 점이 특징이라 하고 이미 낚시계에서 쓰고 있는 ‘긴꼬리벵에돔’이란 이름을 붙여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었다. 그 전화 한 통으로 ‘긴꼬리벵에돔’이란 이름은 학회지에 실려 표준명으로 인정되었다. 자칫 흑벵에돔이 될 뻔했었던 ‘긴꼬리벵에돔’이란 이름을 낚시꾼이었던 내가 붙여준 셈이 되었다.
또, 학계에서는 80년대까지 농어(Lateolabrax japonicus)는 한 종으로 취급해 오고 있었다. 낚시춘추를 매월 보고 있었던 나는 잡지에 나오는 현장 사진들을 유심히 분석한 결과, 농어라 부르는 종은 두 종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이름을 새로 붙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대학원 과정에 있었던 후배(현재, 한국해양생물자원관 근무하는 K박사)로 하여금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농어과 어류의 분류학적 연구’를 권유하였다. 몇 년 후 ‘점농어(Lateolabrax maculatus)’는 우리나라 표준명이 되었다.
그 외 아직도 학계와 낚시계, 수산계에서 부르는 어류 이름이 다른 경우나 혼돈되는 경우들이 있어 빠른 시일 내 이름에 대한 재검토 과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낚시춘추 한국낚시최대어상 심사에서 떡붕어를 심사 중인 필자.

 


낚시인으로서의 지난 시간들
나의 어릴 적 꿈은 잠수를 하면서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였다. 스쿠버다이빙 교육기관이나 교육코스가 우리나라에 없었던 시절이지만, 운 좋게 나는 부산수산대학교를 다니던 1977년도 가을에 홍성윤 교수님으로부터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배웠다.
그 후 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양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연구를 목적으로 우리나라 외곽 도서들은 물론 멀리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에서 남미 갈라파고스까지 꽤나 많은 나라의 바다에서 잠수를 통한 연구를 했었다.
물속에서 연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나는 90년대 중반 우리나라 바다목장사업이 시작될 때, 우리나라의 해양목장 모델을 동, 서, 남해, 제주도의  4개 해역별로 만들어 제안하였다. 그 중 ‘어업형(생태형) 바다목장 모델’은 2004년부터 해양목장사업을 시작한 중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해양목장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작년, 중국수산학회의 초청을 받아서 중국 해양목장 전문가들 앞에서 한국형 해양목장에 대한 특별 강연을 한 것으로 개인적인 보람을 느꼈다). 그 중 통영바다목장은 1998년부터 9년간의 연구를 마치고 올해로 23년째 잠수 조사를 통한 사후관리를 계속 해오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으로 바다 속을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로서의 개인적인 꿈은 정년인 올해까지 계속되었다.
바다목장 연구관리, 독도 생태조사, 남태평양 해외기지에서의 수중조사를 위해 과학 잠수를 해오면서 나의 어릴 적 해양생물학자로서의 꿈은 이루었지만, 오랫동안 수중탐사 연구를 해 오면서도 늘 아쉬운 것은 ‘낚시’였다.
언젠가 거문도로 낚시를 간 적이 있었는데 여수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한 당일치기 거문도 갯바위낚시였다. 그날 거문도 갯바위에서 서울에서 내려와 장박을 하고 있다는 장박꾼을 만났다. 열흘이 넘도록 거문도에 민박하면서 물때에 맞추어 낚시를 즐긴다는 그분이 부러웠다. 언젠가 연구원 생활을 은퇴하여 내게 그와 같은 긴 시간이 주어지면 한번 해보고 싶었다.
연구소가 서울, 안산에 있을 때 경기도 안양, 안산, 용인에 거주하면서 지낸 30여 년 동안의 나의 낚시는 수도권 낚시 패턴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휴일 새벽을 틈타 물가로 달려갔다가, 고속도로 교통체증을 생각하면서 짐을 꾸려 집으로 쫓기듯 달려와야 했던 낚시였다.
경기도에 거주할 때의 민물낚시는 유료터가 많았고 바다낚시는 시간을 쪼개어 충남 안면도, 신진도까지 내려가 배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즐기는 장거리낚시였다. 그나마 통영, 여수권 출장이 잡히면 출장을 마치는 휴일에 시간을 내 남해안에서의 낚시를 즐기고는 또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해 경기도로 올라와야 했다.
대마도를 다니기 시작한 것도 경기도에 있을 때였다. 광명역에 가서 새벽 첫 기차로 부산까지 간 후 대마도로 가는 아침 여객선에 오르고, 돌아올 때도 당일 부산역에서 저녁 기차로 돌아왔었다.
80년대 후반부터 매년 3월 1일이면 어김없이 찾아갔던 예당지의 붕어낚시는 떡붕어 유입 후 배스가 들어가면서 열이 식었다. 부들밭의 붕어가 때글때글하던 충남 대호에도 늘 찾던 내 자리가 있었지만 배스가 들어가고는 역시나 열기가 식었다.
몇 년 전에는 용인 집에서 18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영월 동강까지 새벽에 달려갔다가 붕어와 잡어 몇 마리만 낚고 점심 때 돌아오는 장거리 운전 낚시도 몇 번 했었다. 그게 수도권에서의 낚시였다.
2년 전, 부산 영도 동삼동으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이전함에 따라 부산으로 내려온 나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송도 원룸에 자리를 잡았다. 60세를 넘겨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왔고 내가 늘 바라던 곳에 살게 된 것 같다.

 

낚시춘추란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나는 철저한 ‘잡어낚시꾼’이면서 ‘계절낚시꾼(계절마다 다른 어종을 노리는 꾼)’이다. 이런 내게 부산은 낚시천국이다. 새벽에 볼락을 잡으려면 민물대 하나 들고 10분 만에 바닷가에 앉는다. 겨울과 봄에는 새벽 3~4시쯤 일어나 날이 밝아올 때까지 집 앞에서 짬낚시를 즐기면서 볼락, 망상어, 전갱이, 쏨뱅이들을 만날 수 있다.
물속이 생각나면, 밝아오는 아침에 집에서 가볍게 잠수복을 입고서 수경과 핀만 들고 나가면 송도 바다 속을 산책하고, 맛보기용 작은 고둥(보말고둥, 방석고둥)들을 몇 개 따서 집으로 그냥 올라오면 된다.
언젠가 가족들과 갔었던 하와이의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보다 내게는 부산이 더 맞다. 집에서 30분 내 거리에서 낚싯배를 타고 참돔, 열기, 전갱이부터 심해어 홍감펭까지 잡으러 다닐 수 있다.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온 1년 동안은 참돔 타이라바낚시, 열기 외줄낚시, 선상 벵에돔낚시, 방파제 구멍치기, 새벽 볼락낚시, 여름철 방파제낚시, 선상 갈치낚시, 겨울철 대마도 벵에돔낚시 등 다양한 낚시들을 즐겼다. 낚시천국인 부산에서 다양한 낚시를 1년 안에 모두 해 본 셈이다.
부산은 가까운 거리에 남해의 해양환경을 모두 가진 곳이다. 대마난류와 연안수, 연안 암반과 사패질 바닥, 연중 다양한 어종이 넘치는 태종대 앞바다에서 수심 100m가 넘는 대수심 낚시터도 불과 1시간 안에 있다. 그야말로 부산은 연중 다양한 낚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다.
올해 봄에는 붕어낚시 생각에 작년에 봐두었던 함안, 고성 근처의 저수지로 다녀왔다. 경기도에서 산란기에 만나던 덩치급 떡붕어는 아니지만 5~8치의 붕어 구경을 하고 봄 경치를 즐기는 재미로 다녀왔었다. 대학시절에 하던 낚시 패턴으로 돌아간 것이다.
붕어낚시는 따뜻한 봄철에 잠깐하고 바다로 간다. 대낚싯대와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메고 형님과 함께 새벽에 집을 나서던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다. 
지난 30여 년간 집에서 낚시춘추를 거의 매일 뒤적이면서 눈으로 간접 경험을 해오던 낚시들을 부산으로 내려온 후에는 현장에서 즐기고 있다. 그래서 내겐 낚시춘추가 고맙다. 80년 중반부터 바다에서 연구를 하는 연구원 생활을 해왔지만, 낚시춘추가 없었다면 매우 갑갑했을 수도 있었던 수도권에서의 직장생활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낚시춘추는 내게 바다로 통하는 창문과 같았다. 낚시춘추는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서 살던 내게 ‘마음만 먹으면 시공간을 뛰어 넘어 그리운 물가로 내가 날아갈 수 있도록 늘 열려있는 창문’이었다.
낚시춘추 창간 50년을 기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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