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장바구니 주문배송조회 고객센터
과월호신청
Home> 뉴스&칼럼 > 뉴스&피플
[추모사] ‘먼저 떠난 사모님 만나셨는지요?’
2020년 11월 509 13769

추모사

 

‘먼저 떠난 사모님 만나셨는지요?’

 

김국률 예조원 대표·전 낚시춘추 전무이사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14일 12시경, 안부 전화를 드렸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랬듯, 스무 살 아래 후배에게 변함없는 존칭과 경어로 응답하셨다.
“그래요, 김전무님! 하는 일 잘 되시죠? … 그런데 내가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요. 오래 갈 거 같지는 않은데…. 그래요, 다음에 또 통화하기로 해요….”
심하게 느껴지는 천식 증세에 중간 중간 기침 소리까지 겹쳐 얘기를 오래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선 보름여가 지난 추석날, 더 이상 전화가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셨다. ‘다음’이란 기약은 연세 많은 분들께 허투루 던져서는 안 될, 부질없는 인사치레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하는 부음(訃音)이었다.

 

 

▲경남 밀양강에서 은어를 낚아 올리고 있는 주천환 선생님(낚시춘추 1990년 7월호).

 

‘선계(仙界)가 어디메뇨, 은어낚시가 아니련가!’
향년 89세로 세상을 하직한 주천환(朱天煥) 선생님. 참 인자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열정적이면서도 언제나 침착하고 강직하셨다. 40년 세월 지내 온 동안 남 험담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고, 고함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다.
서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무렵. 그때 선생께선 자갈치시장 가까운 남포동 대로변에서 부산낚시점을 운영하면서 평화낚시회와 부산낚시회 활동과 함께 부산 지역 낚시단체(부산낚시연합회)의 대소사를 맡아 언제나 분주하셨고, 나는 월간 낚시춘추 취재기자로 지방 출장을 밥 먹듯 할 때였다. 서울 다음 가는 독자층을 고려해 특히 부산 출장은 그 어느 지역보다 우선이었다.
한 달 두 달, 주 선생을 만나고부터는 부산 출장이 더 잦아졌다. 취재 주제와 현장을 정해두고 내려갈 필요도 없었다. 부산 낚시인들의 발길을 계절 따라 뚫고 계셨고, 그 주역(취재원)들 또한 꿰고 있어 낚시점에 도착해 선생과 한두 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취재 일정이 저절로 잡혔다. 사무실 탁상머리 편집회의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낚시는 왜 현장감이 최우선이어야 하는지를 절로 깨닫는 나날들이었다.
선생의 조언과 소개를 토대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분들을 만났다. 나무·형제섬의 볼락·망상어낚시, 홍도 벤자리낚시, 해운대 보리멸낚시 등등을 두루 거쳐 ‘추석밥 먹으면 머리를 남쪽으로 돌린다’는 감성돔 따라 가을~겨울 갯바위낚시는 녹동·완도로까지 확대되어 더욱 먼 바다로 이어졌다. 그러다 봄이 되면 선생을 비롯한 부산 꾼들의 감성돔낚시는 뚝! 새봄 붕어낚시로의 국면 전환! 봄철 산란기 감성돔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알감생이 포획 금지’ 운동은 이미 이 무렵 부산 꾼들의 공통된 목소리였고, 주 선생 또한 기자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선생의 낚시는 여러 분야의 바다낚시와 민물 붕어낚시에 그치지 않았다. 7~8월 폭염기면 신선놀음을 즐겼다. 당시는 물론 아직도 인구가 극소수에 불과한 은어 놀림낚시. 같은 평화낚시회 소속의 김근희 선생과 함께 손발을 맞추던 두 분의 전유물 같은 장르였다. ‘선계(仙界)가 어디메뇨, 은어낚시가 아니련가!’ 하고 노래하던 섬진강·보성강·밀양강 등지는 물론, 합천댐이 가동되기 직전의 ‘마지막 황강 은어낚시’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입 안에 맴돌고 가슴이 두근댄다. 해거름 강변 조약돌밭에 둘러앉아 호호 불어 먹던 은어 숯불구이와 덮밥. 어느 한 곳 선생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 없었다.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 날도 난 참 나쁜 녀석이었다. 그저 먹기만 했다. 게다가 설거지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와 뜻밖의 눈호강마저 나 혼자 즐겼다. 인근 마을에서 사뿐사뿐 목욕 나온 전라(全裸)의 선녀들을 숨죽여 바라보며 혼자 몰래 꼴깍꼴깍 침을 삼키기까지 했다.

 

 

▲2016년 한국국국제낚시박람회장의 낚시춘추 부스 앞에서 주천환(좌) 선생님과 함께.

▲2019년 부산에서 열린 한국국제낚시박람회장에서. 좌로부터 필자, 주천환 선생님, 주식회사 만어 안승근 회장님, 한국낚시협회 김정구 회장님, 은어낚시교실 저자 김근희 선생님.

 

천생의 낚시꾼, 장티푸스 환자로 낚시대회 출전까지
이삿날 낚시를 떠나 집을 못 찾은 행각으로 생전의 사모님 입방아에 자주 오른 낚시꾼 주천환 선생. 한형주·김경언·송소석·박현재·이일섭·김근희 선생 등 우리나라 경향각지의 원로 낚시인들이 그러했듯 주 선생 또한 이북 함경도 출신이다. 실향민으로서 온갖 고초와 고뇌를 낚시로 달래고 이겨냈을 것이다. 게다가 심심풀이 낚시가 아닌, 거명한 분들 모두가 요즘으로 치면 ‘프로 낚시인’에 꼽힐 정도의 고수들이다.
주 선생의 낚시 솜씨 또한 걸출했다. 1963년 그가 창립 멤버로 활동한 부산 평화낚시회의 각종 대회 수상 성적이 입증한다. 1968년 6월 16일 개최된 제1회 부산시장기쟁탈 전국낚시대회(붕어낚시 단체전)에서 중앙낚시회에 이어 중량 부문 준우승을 차지한 평화낚시회는 이듬해 2회 대회에서 전체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70년 3회째 대회 들어 2연승의 전의를 불태웠다. 이때 주 선생은 중환자 상태. 1팀 7명 선수 출전에 결코 빠질 수 없어 고열의 장티푸스를 앓고 난 직후의 주 선생은 심한 오한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낚싯대를 휘둘렀다. 그러나 7명 단체 중량 70g 차이로 위수회에 우승을 뺏기고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1968년에 시작해 최소한 2017년 제50회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된 것으로 기억하는 부산낚시연합회 주최의 ‘부산시장기쟁탈 전국단체민물낚시대회’. 그리고 2017년 제40회까지 치러진 것으로 기억하는 ‘부산시장기쟁탈 전국바다낚시대회’ 모두 우리나라 낚시계의 기념비적인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역사적인 기록을 축적하는 데 직·간접적 역할을 한 분이 또 주천환 선생이기도 하다. 1975년 부산낚시연합회 ‘재무’ 직을 맡은 이래 간사장, 사무국장, 자문위원 직을 수행하며 부산낚시연합회의 온갖 대소사를 정리하였다.
조용하면서도 흥이 많아 노래 좋아하고 춤도 잘 추셨다. 하지만 일상 규범으로부터 일탈하는 법 없었다. 80년대 후반 어느 날, 출장길에 피로를 느낀 나는 주 선생의 가게(부산낚시점) 다락방에 누워 혼자 곰곰 생각한 적 있다. ‘사모님 먼저 보내시고 혼자 가게 지키는 주 선생님,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실까. 내색 한 번 없이….’
그렇지만 입으로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주 선생님, 어떠세요. 먼저 떠난 사모님 만나셨는지요? 혹시 먼 길 못 찾아올까봐 사모님께서 마중 안 나오셨던가요? 생전의 근심걱정 모두 잊으시고 편히 지내세요….’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