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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낚시인으로 돌아온 국민 마라토너 이 봉 주
2011년 09월 4178 2204

People

 

낚시인으로 돌아온 국민 마라토너  이 봉 주

 

 

 

“나는 달릴 때 가장 즐거웠다.


그 다음은 낚시할 때다”

 

 

예당지가 오랜 단골낚시터, 전지훈련 갈 때도 낚싯대 챙긴 열혈꾼

 

 

서성모 기자 blog.naver.com/mofisher

 

▲ 용인 신갈지에서 만난 이봉주씨. 포인트로 향하기 전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자 이렇게 멋진 포즈를 잡아주었다.

 

 

한국 마라톤의 간판스타 이봉주(42). 선수생활에서 은퇴했지만 아직도 이봉주씨보다는 이봉주 선수란 호칭이 어울리는 그를 뜻밖에 용인 신갈지에서 만났다. 알고 보니 이봉주씨는 낚시꾼이었다. 어릴 때부터 붕어낚시를 즐겼고 최근에는 루어낚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봉주씨가 낚시인이란 얘기는 논산낚시연합회 장태성 회장에게 들었다. 장 회장은 마라톤 선수 출신으로 이봉주씨의 선배다. 지난 7월 26일 “이봉주 선수와 함께 용인 신갈지에서 배스낚시를 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는 장 회장의 권유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신갈지를 찾았다.

이봉주씨는 2009년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 출전을 마지막으로 20년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세계 최고라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온 그의 마라톤 인생은 우리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2000년 도쿄마라톤대회에서 그가 세운 2시간7분20초의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한국 최고 기록이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 국제마라톤대회 우승에 빛나는 그는 한국 육상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다. 최근 은퇴 후엔 ‘댄싱 위드 더 스타’란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마라토너가 아닌 예능스타로 선수 생활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오전 9시, 약속 장소인 신갈지 상류 관리실에 이봉주씨가 장태성씨와 함께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 본 이봉주씨는 작은 키에 탄탄한 몸매였고 특유의 작고 선한 눈 때문에 친근감이 넘치는 인상이었다. 이봉주씨가 배스낚시를 해보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장태성 회장과의 인연 때문에 8월 8일 열리는 논산시장배 배스낚시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회에 나가서 너무 서툰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아요. 제가 붕어낚시는 좀 하는데 루어낚시는 잘 모릅니다.”
이봉주씨는 천안이 고향으로 예당지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홍성과 아산에서 고등학교 육상부 선수로 뛸 때도 틈나는 대로 낚시터를 찾았던 낚시광이다.
“낚시터에 가면 마음이 편해요. 붕어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죠. 국가대표 선수 시절에도 전지훈련을 떠날 때엔 두칸반짜리 낚싯대 하나는 꼭 챙겨갔습니다.”

 

붕어 마니아 봉달이, 배스낚시에 입문하다

 

 

이날 이봉주씨의 배스낚시 입문을 돕기 위해 한국스포츠피싱협회 임우택 사무총장이 동행했다. 릴 스폴에 라인 감기부터 루어 세팅과 캐스팅 요령까지 익힌 이봉주씨는 “장비가 간단하고 낚시 방법이 쉬워서 아이들이 배우면 더 좋아하겠다”고 배스낚시의 첫 인상을 밝혔다.
신갈지 상류 연안 좌대로 옮겨서 낚시를 시작했다. 릴을 처음 사용해보는 이봉주씨가 루어가 생각만큼 멀리 날아가지 않아 고민하는 모습. 임우택 사무총장의 낚시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캐스팅 요령을 익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잘 먹히는 미끼 훔쳐보는 낚시꾼 모습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이게 타이밍이 중요하군요. 낚싯줄에 걸쳐놓은 손을 언제 떼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하더니 그 뒤로는 루어 캐스팅에 익숙해졌다.
신갈지 배스가 약아 빠져서 그런지 좀처럼 낚이지 않았다. 첫 경험이 중요한 것인데, 입질이 없어 지루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마라톤 선수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아마 가장 엉덩이가 무거울 걸요. 한 번 앉으면 밤을 꼬박 새우죠. 이 정도는 뭐….”
새로운 낚시장르의 테크닉을 익히는 것 자체에 몰두해 있는 그에게서 약간의 오기랄까, 그런 낚시꾼의 특징이 느껴졌다.
“예전에 절 지도했던 오재규 국가대표 감독님도 낚시광이세요. 그분은 마라톤 선수에게 낚시가 정말 좋은 취미라고 강조하시는 분입니다. 오랜 시간 낚시를 하다보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어 힘든 훈련을 이길 수 있었어요. 마라톤에서 제일 중요한 인내와 끈기를 기를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방송촬영을 위한 댄스 연습이 있어 이봉주씨가 낚시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허락된 인터뷰 시간은 4시간. 나는 하는 수 없이 낚시에 몰두한 그의 소매를 끌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 행선지가 방송국이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레 예능프로 출연 쪽으로 넘어갔다.        

 

▲ 이봉주씨가 출연한 ‘댄스 위드 더 스타’ 방송 화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선수 시절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예능 프로에 댄서로 출연,
진한 스킨십 때문에 부인과 트러블도

 

- TV의 ‘댄스 위드 더 스타’를 잘 보고 있다.
그것 때문에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댄스에 투자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다. 댄스라는 게 단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많이 들여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녹화해도 보통 하루에 5~6시간씩 며칠 훈련한다.
- 평생 달리기만 한 운동선수가 춤을 추는 예능프로그램엔 왜 출연했는가?
저는 춤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6개월 전에 방송국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딱 잘라 거절했지만 피디가 몇 달 동안 계속 쫓아 다녔다. 그쪽에서 너무 성의를 보이고 아내도 한번 해보는 게 괜찮겠다고 해서 출연을 결정했다. 댄스도 스포츠이고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에서 벗어날 기회도 될 것 같았다.
- TV를 보니까 커플댄스라서 남녀 간에 진한 스킨십도 많더라. 미모의 댄서와 춤을 출 때의 느낌은 어떤가?
다른 여자분하고 살을 맞대야 하니까 처음엔 진짜 어색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자연스러워지고 재미가 있어서 빠져들게 되었다. 아내와는 그 문제 때문에 처음엔 트러블이 있었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아내가 이해를 많이 해주고 도와준다.
- 마라토너보다 댄서로 더 많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 선수 때보다 지금 더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방송출연 덕에 은퇴 후에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사실이다. 광고 섭외도 틈틈이 들어온다. 최근엔 홍삼 드링크 광고를 했다. 돈보다도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놀랄 때가 많다. 거리에 나가면 자주 사진촬영을 하자고 하고 사인 요청을 해온다. 저의 변화에 대해 사람들은 많이 즐거워하는 것 같다. 솔직히 기쁘다.

 

20년 마라톤 인생, 41회 완주 대기록 세워

 

이봉주는 1970년 충남 천안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공부는 잘 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축구, 태권도 선수를 꿈꾼 적 있고 복싱도 배웠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돈 안 드는 육상을 택했다. 천안농고 육상부에 들어갔다가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찾아 삽교고와 광천고로 옮겨 다녔다.
그가 육상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는 고3때, 전국체전 10km 종목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다. 그 후 서울시청 육상팀에 입단했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봉달이’라는 별명은 이때 생겼다.
“서울시청 오재규 감독님이 붙여주신 이름인데 봉주보다 부르기 편하다며 봉달아 봉달아 하고 부른 게 지금까지 이어져왔어요.” 
1990년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2위에 오르면서 마라톤 선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3년 코오롱 마라톤팀에 입단해 본격적인 마라톤 레이스에 들어간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황영조에 이어 은메달을 땄고, 19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위, 그해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마라톤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2000년 모든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전한 시드니올림픽에서 경기 도중 다른 선수와 부딪혀 넘어지면서 메달권에서 멀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이봉주씨는 그때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회상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저에게 꿈이자 최대의 목표였습니다. 6개월간 올림픽을 바라보며 준비를 했는데 다른 선수와 부딪혀서 넘어져 버렸어요. 어처구니없게 금메달의 꿈이 무산되어 버리니까 속이 상해서 여기서 마라톤을 그만 둘까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몇 달 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1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해 세계적인 육상스타로 떠올랐으며 2009년 선수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마라톤 풀코스 41회를 완주했다. 현역 선수의 41회 완주 기록은 세계 마라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이다. 전국체전을 통해 마라토너가 된 이봉주는 그 마지막 은퇴무대도 전국체전을 택했다. 20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달려온 이봉주의 마지막 레이스에 온 국민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금도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다”

 

 

- 선수 생활 은퇴 후 어떻게 지냈나?
휴식을 위해 6개월간 캐나다에 머물렀다. 마라톤 활성화를 위해 여러 대회에 참가해서 후배들과 함께 달렸다. 지금은 오는 8월 27일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지원하고 있다.
- 하필 고통스런 종목인 마라톤을 택했나?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다. 단거리에는 약하지만 장거리에는 뛰어났다.
- 마흔 살까지 마라토너로 뛰어왔다. 육상선수는 서른 살이 넘어가면 보통 은퇴하지 않나?
저에겐 올림픽 금메달이란 분명한 인생의 목표가 있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마흔 살까지 달리기를 멈추지 못했다. 지금도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 그동안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마라톤은 연습과정이 고되고 힘들다. 1년에 두세 번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데 그 대회를 위해 몇 개월씩 연습을 한다. 연습을 충분히 했는데 결과도 나오지 않았을 때나 소홀히 해서 경기를 망칠 때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특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경기 중 넘어져서 금메달을 포기해야 했는데 그때는 정말 다 접고 싶었다.
- 저 같은 일반인이 건강을 위해 운동 삼아 할 만한 달리기 요령을 알려주신다면.
처음부터 무리해서 달리기를 하면 부상을 당한다. 저처럼 기록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면 오랜 시간 즐긴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달려야 한다. 처음엔 5km 정도를 주기적으로 달리고 일주일마다 1km 정도씩 늘려가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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