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장바구니 주문배송조회 고객센터
과월호신청
Home> 뉴스&칼럼 > 뉴스&피플
낚시가수 ‘두칸반’ 최영규_“전 국민이 따라하는 낚시노래를 부르는 것이 꿈입니다”
2012년 07월 3776 2940

People

 

낚시가수 ‘두칸반’ 최영규

 

“전 국민이 따라하는 낚시노래를 부르는 것이 꿈입니다”

 

 

김진현 기자 kjh@darakwon.co.kr

 


언제부턴가 낚시대회나 낚시관련 행사장에 자주 보이는 가수가 나타났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출조일기’ ‘입질이 왔어’ 같은 희한한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그 가수의 이름은 ‘두칸반’! 예명치고는 특이하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골수낚시인이었다. 가수 두칸반의 꿈은 더 독특하다.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노래를 통해 제가 사랑하는 낚시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요. 가장 큰 꿈은 전 국민이 따라하는 낚시캠페인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낚시터에서 만난 최영규씨. 낚싯대와 기타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낚시가요를 부르는 가수다. 그의 꿈은 전 국민이 따라하는 낚시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가수 두칸반의 본명은 최영규다. 1966년 7월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꿈이 가수였다. 중1때 기타를 잡았고 대학 졸업 후 가수 오디션에 여러 번 도전했다. 결국 오디션에 합격해 1990년 유명 통기타 그룹  「엄지와 검지」의 6기 멤버로 활동했다.
엄지와 검지 멤버로 3년간 활동하면서 ‘사슴소녀’ ‘그대’ ‘당신은 왜’가 인기를 얻었고 KBS FM2 라디오 ‘고현정의 인기가요’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에 불기 시작한 댄스음악의 열풍으로 통기타 음반 판매는 타격을 입었다. 3년의 활동을 끝으로 엄지와 검지는 해체했다.
가수활동을 접은 후 최영규씨는 KBS 열린음악회에서 작가와 음악자문으로 일했다. 그가 일한 시기는 KBS 열린음악회 방송 초기였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한 콘서트 음악방송으로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방송이었는데, 그는 방송녹화에 들어가기 전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라가 관객들과 함께 미리 방송에서 녹화할 노래를 불러보는 ‘싱어롱(sing along)’을 담당했다. 지금 방송녹화 전에 쉽게 볼 수 있는 싱어롱 국내 1호가 최영규씨다.

 

 

“아들의 완치를 하나님께 빌며 30개국 자선 공연을 했어요”

 
95년에 최영규씨는 BMG라는 외국직배 음반회사에 가요 마케팅 담당으로 입사했다. 김건모 영어 앨범, 이휘재 앨범을 발매하고 마케팅을 맡았다. 음반 판매는 순조로웠다. 1999년엔 와와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이사로 스카우트되었다. 와와엔터테인먼트는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투자한 음반판매회사로 HOT, 서태지(울트라매니아), 플라이 투 더 스타이, 신성우 등의 음반 판매를 맡은 회사다.
그러나 최영규씨는 허전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낚시로 달랬다. “대학에 입학한 후 스무살 때부터 낚시를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배웠죠. 가수를 할 땐 낚시를 못했지만 BMG에 입사한 후엔 정말 미친 듯이 낚시를 다녔습니다. 그때 민물보트도 구입했고 정말 많은 곳을 다녔죠.”
낚시에 마음을 쏟으면서도 가수활동에 대한 욕심은 버릴 수 없었다.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노래를 할 곳이 없었다. 설상가상 아들이 급성백혈병에 걸렸다. 아들은 힘든 치료를 견뎌야 했다. 그는 신앙에 빠져들었고 청소년 봉사단체 공연팀에 합류해 세계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 공연을 하기로 결심한다.
“강과 산이라는 통기타 그룹에서 활동했습니다. 세계 곳곳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공연하는 단체였어요. 고아, 극빈자, 마약중독자 등 세계 곳곳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 노래를 했습니다. 세계 30개국을 돌며 공연했는데, 수입은 전혀 없었어요.”
아들의 완치를 바라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노래했다. 아들의 병은 상당히 호전되어갔다. 그런데 2005년 병이 재발했다. 경제적 타격도 컸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더 컸다. 그러나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공연에 더 매진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떤 날엔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은 아들을 봐야 했고 어떤 날엔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살이 쪄있는 아들을 안아야 했다.

 

 

 

최영규씨가 2005년 9월 케냐에서 자선 공연을 하면서 촬영한 사진.

 

“두칸반은 낚시계에서 가장 빨리 유명해진 사람”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이 최영규씨를 성장시켰고 2010년 아들의 병은 완치되었다. 최영규씨는 마침내 늘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2011년 8월에 세 곡의 노래가 실린 싱글 앨범을 출시했다. ‘출조일기’는 이미 10년 전에 낚시에 미쳤을 때 만들어 놓았던 곡이었고 ‘입질이왔어’와 ‘무심’은 안정효의 소설 ‘미늘’과 이외수의 소설 ‘황금비늘’을 읽고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예명이 왜 하필 두칸반이냐구요? 세칸반은 너무 길고 세칸이 되기에는 내가 아직 모자란 것 같아서요. 실제로 두칸반대로 낚시를 즐겨합니다.” 
CD를 발매하고 낚시인 가수가 되리라 꿈에 부풀어 낚시인들 앞에 섰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낚시행사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니 ‘낚시대회에서 무슨 노래냐’며 문전박대 당했다. 어쩌다 무대에 서도 출연료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노래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낚시대회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CD를 단돈 천원에 팔았지만 낚시인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했다. 두칸반의 음반 발매사인 싱싱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두칸반이다. 매니저도 없다. 작사 작곡도 혼자 다 했다.
“냉담한 반응이 오리라고 각오하고 시작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수치스러울 것도 없었습니다.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무대를 마련해 줄땐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싸늘했던 반응은 서서히 좋아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최영규씨는 일 년 동안 전국의 낚시행사를 쫓아다녔다. 그랬더니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출연료도 받게 되었고 FTV 제작위원 이갑철씨의 제안으로 「못말리는 챌린저」에 게스트로 출연할 수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두칸반은 낚시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갑철씨는 “두칸반은 낚시계에서 대중에게 가장 빠른 시간에 알려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갑철 FTV 제작위원과 함께. 최영규씨는 이갑철씨가 진행하는 ‘못말리는 챌린저’에 게스트로 출현하며 대중들에게 좀 더 빨리 알려질 수 있었다.

 

 

“노래를 통해 대중에게 낚시의 세계를 알릴 겁니다”

 

 

하지만 낚시행사 출연료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그는 요즘 조구업체나 유료낚시터의 CM송을 제작하고 있다. 반응이 좋다. 그리고 앨범에 수록된 노래와 직접 작곡한 곡으로 고유 컬러링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낚시터를 다니며 조황정보를 인터넷에 게재하고 자신의 홍보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처음엔 사실 막막했지만 지금은 많은 비전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낚시노래를 원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꿈은 신곡을 만들어 히트시키는 것입니다. 곧 정식앨범을 발표할 텐데 대표곡인 ‘강태공이 되어’는 디스코 트로트 장르로 아주 경쾌한 곡입니다. 내년 중반쯤엔 공중파 방송 출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낚시인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낚시계의 유명한 가수라는 타이틀만 얻는다면 공중파 방송 출연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대중에게 제가 사랑하는 낚시를 알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꿈이라면 전 국민이 좋아하고 따라하는 낚시 캠페인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두칸반 블로그  blog.naver.com/singsingent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