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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생명의 바다, 겨울 추자도
2012년 12월 1285 3349

 

에세이

 

생명의 바다, 겨울 추자도

 

 

허만갑 기자

 

 

“휘이이잉…”
북서풍이 운다.
상추자도 북쪽 목개안다랑으로 쏟아져 들어온 바람은 역캐골짜기를 통과하며 날카로운 피리소리로 울었다. 윤 사장은 어둠 속에서 산양처럼 갯바위를 타고 넘었다.
“서둘러. 밀물이 차기 전에 도착해야 돼.”
밑밥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돌김이 갓 돋아난 갯바위는 미끄럽기 그지없어 쇠침이 박힌 갯바위신발을 신고도 엉금엉금… 삐끗하여 저 파도 속으로 떨어지는 날이면?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땀이 흐른다.
후포만을 벗어나자 길은 염소가 다니는 숲으로 이어졌다. 초승달이 목개끝의 절벽 위에 걸렸다. 수풀을 뚫고 나오자 “그르르르” 발밑의 바위가 울린다. 오싹 소름이 돋게 하는 진동이다. 바위너럭을 타고 넘는 순간,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폭풍이,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포탄은 내 눈과 가슴팍에 박혔다. 칠흑의 바다 위를 미친 듯이 달려온 파도는 내 눈앞에서 허연 머리칼을 풀어헤쳤다. 돌아나가는 파도를 뒤파도가 다시 밀어서 깨고 부서져 소금의 분말로 날아올랐다. 
“겁먹을 것 없어. 이 정도는 파도의 이빨도 서지 않은 거니까.”
윤 사장은 라이프재킷 끈을 조이고 파도가 끓어오르는 홈통으로 내려간다. 추자 감생이는 파도를 타고 온다고 했던가. 너무나도 번쩍이는 은린이기에 백파 속에만 그 빛을 감출 수 있다고 했던가.  
갯바위 틈 옹벽에 몸을 붙이고는 더듬더듬 낚싯줄을 풀어 야광찌를 던졌다. 그러나 찌는 널뛰는 파도에 묻혀 종잡을 수 없다. 귀가 멍할 정도의 파도소리에 겁먹은 나는 민박집의 따뜻한 구들장이 그리울 뿐이다. 밀물을 탄 포말이 발목을 핥고 가기에 깜짝 놀라 물러서는 순간 손목을 망치로 때린 듯한 통증이 왔다. 반사적으로 채 올린 낚싯대는 그러나 다시 고꾸라지며 웅웅 울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왔어요! 걸었어요!”
처음 만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놈이구나! 이놈이 내 운명의 물고기구나!
놈은 사나웠다. 차고 때리고 물고 할퀴었다. 나는 온몸을 웅크린 채 낚싯대만 으스러져라 부여잡았다. 놀람은 두려움으로, 희열로, 까닭 모를 분노로 바뀌었다.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르며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울어대는 낚싯줄이, 내 가슴이 금세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 무시무시한 밤에 나는 격정의 오르가슴에 젖었고 파도 위에 떠오른 은빛의 물고기를 건지기 위해 겁도 없이 뛰어 나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자를 잡고 전사가 된 마사이족의 사내처럼, 나는 추자도의 감성돔을 낚고 갯바위낚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파도가 이는 추자도 갯바위. 북서풍이 불어서 물색이 흐려지면 추자군도 전역은 감성돔 낚시터로 변한다.

 

 

 

겨울이 오면 북반구의 동물들은 대이동을 시작한다. 순록의 무리는 초지를 찾아 남하하고 청어 떼와 흰수염고래는 북극해로 올라간다. 이 이동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규칙이 있다. 육지의 동물은 눈보라를 피해 내려오지만 바다의 동물들은 정반대로 폭풍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왜일까?
바다는 차가울수록 오히려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물은 온도가 낮을수록 산소가 많이 녹아든다. 그로 인해 산소를 호흡하는 영양염류가 풍부해지고 그 영양염으로 몸을 구성하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번성한다. 따라서 물고기는 난류보다 한류에 많다. 일정해역이라면 여름보다 겨울에 번성한다. 김, 톳, 미역, 굴이 모두 겨울에 자라고, 청어, 꽁치, 고등어 어군이 겨울에 형성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구 전체를 놓고 봐도 적도해역의 생물군이 가장 빈약하고 베링해나 남극해 등 극지해역이 가장 풍성하다.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극지해역이야말로 ‘바다의 열대우림’이며 바다의 겨울은 곧 육지의 여름인 셈이다. 
한반도의 바다도 겨울에 깨어나기 시작한다. 남해안을 데워온 쿠로시오난류가 약화되고 대신 한류의 세력이 증대한다. 동해에선 오오츠크해에서 리만해류가 내려오고 서해에선 중국 발해만의 찬 연안수가 북서계절풍에 떠밀려 남하해서, 한반도 남해의 쿠로시오 지류인 대마난류, 황해난류와 각각 부딪친다(서해에는 한류가 없고 대신 시베리아기단의 발달에 의한 북서계절풍이 일종의 한류를 만든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은 각종 어군이 몰려드는 황금어장이 되는데, 겨울철 최고의 어장은 황해난류 조경에 만들어지며 그 위치는 진도와 제주도의 중간쯤인 추자도 주변이 된다. 산소를 듬뿍 담은 황해연안수는 한반도 서해안을 끼고 남진하다가 추자도 북쪽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한 줄기는 남해안을 따라 동진하고 한 줄기는 제주도 서쪽으로 남진하다 난류와 섞이면서 소멸한다. 이 해류의 중심에 추자도가 있고, 찬 바다와 따뜻한 바다의 충돌에 의해 ‘겨울 감성돔의 왕국’이 재림한다.

 

 

북서풍은 도시에도 불어온다. 차고 건조한 이 바람은 옛날부터 ‘동장군’이라 불렸다. 회색 빌딩 사이로 한파가 휘몰아치면 바다의 순례자들이 일상의 손을 놓고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그들의 성지에는 지금 돌김이 돋아나고 있을 것이다. 수온이 18~20도 밑으로 떨어져야 갯바위 간조선에 붙기 시작하는 돌김은 순례자들이 경배해마지 않는 거대한 물고기 떼의 주요 먹이가 된다. 바로 저 감성돔이다.
다른 때 다른 섬에서는 쉽게 낚기 힘든 도미가 겨울 추자도에는 수 천 수 만 마리씩 떼를 지어 접근한다. 이 엄청난 어군의 진원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진도와 완도의 감성돔들이 추자도까지 내려온다는 설도 있고, 추자도 밖의 심해에 머물다가 겨울에 접근한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한국의 바다낚시인들은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 성찬을 놓치지 않으려고 12월부터 3월까지 추자도로 모인다.
겨울 감성돔 어군이 추자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더 북쪽의 가거도, 태도, 만재도에도 찾아들지만 추자도의 양에 못 미친다. 그 이유는 추자도가 해류의 교차지역일 뿐 아니라 천혜의 감성돔 서식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추자군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의 4개 유인도와 푸렝이, 사자섬 등 38개 무인도가 운집한 한국 최대의 섬 무리다. 각 섬 사이는 20m 미만의 얕은 해저로 연결되어 있어 좁은 해협으로 세찬 조류가 흐른다. 얕은 암초대가 기름진 밭이 되고 강한 조류가 신선한 바람이 되어 다양한 바다생물을 기르는 해저목장의 역할을 하는데 감성돔 외에 돌돔·참돔·농어·볼락·부시리·삼치 등의 어자원도 국내 최정상이다.
12월부터 완도항과 진도 서망항, 해남 땅끝 포구는 전국에서 달려온 낚시인들로 북적거린다. 이 포구들은 추자도 원정의 베이스캠프다. 팔도 사투리가 난무하는 새벽 포구는 인력시장을 방불케 한다. 3~7명씩 구성된 각 팀의 대장은 추자낚시 경험이 많은 고참꾼이나 낚시점주다. 얼마나 많은 감성돔을 낚는가는 그들의 판단에 달렸기에 팀원들은 대장에게 전권을 위임한다. 의사와 농부, 대학교수와 사채업자, 기업체 사장과 세탁소 주인이 한데 엉켜 산더미 같은 짐을 낚싯배에 옮겨 싣는다. 그들 중 유난히 긴장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추자도 초행자다. 20년 전의 나처럼.
한국의 낚시인들만 추자도를 찾는 것이 아니다. 일본, 대만, 홍콩의 낚시인들까지 찾아온다. 일본 낚시잡지 <츠리선데이>의 발행인 고니시 가즈토씨는 “추자도는 아시아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쿠로다이(감성돔) 낚시터”라고 격찬했다.
추자도 단골들이 모이다보니 1년 만에 다시 보는 얼굴도 많다. 그들 모두에게 추자도는 마음의 고향이다. ‘추자계’를 모아 경비를 마련하고 망년회를 추자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추자도에 집을 사놓고 한두 달씩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다. 평생 낚시만 하며 살고 싶어 민박집을 차린 사람들도 있다. 상추자도의 민박집들은 거의 현지민이 운영하지만 하추자도는 12개 낚시민박 중 8개 민박 주인이 육지 출신의 낚시인이다.

 

 

추자도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놀란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이렇게 큰 섬이 있었나 하고. 추자도는 주민이 3000여 명이나 되고 조기잡이로 고수익을 올리는 부자섬이다. 추자도 유자망 어선 60여 척이 제주 근해와 동중국해에서 잡아들이는 참조기는 연간 약2800톤, 국내 참조기 생산량의 30%가 넘는다. 그 조기의 90%는 영광으로 반출되어 법성포에서 건조, 영광굴비의 상표를 달고 나간다. 영광굴비의 대부분이 사실은 추자도산인 것이다. 그래서 낚시인들은 선도가 뛰어난 추자산 굴비를 현지에서 구입한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는 74억원을 들여 추자도에 참조기 건조가공단지를 설립하고 특상품의 ‘추자굴비’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까지만 해도 추자도는 가난한 낙도였다. 그때는 낚시인들의 돈이 추자도 경제의 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한 해에 추자도를 찾는 낚시인구는 1만5천~2만 명(경제 불황으로 많이 줄었다. 90년대엔 겨울에만 1만 명이 넘게 찾았다). 한 사람이 50만~100만원 안팎으로 쓰고 가니까 낚시객 유치로 얻는 소득만 연간 100억~200억이 되는 셈이다.
아직도 겨울만큼은 추자도는 여전히 ‘낚시공화국’이다. 민박집과 식당은 새 벽지를 도배하고 대서리(추자면소재지)의 술집과 다방에는 육지에서 아가씨들이 충원된다. 낚시인들로 인해 한 계절이 흥청거리는 섬은 추자도가 유일하다.    
추자도에선 낚시만 할 줄 알면 금세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사교의 장은 민박집의 저녁식탁이다. 추자 특산물인 참조기와 멸치젓에 보말조림, 톳나물 등으로 상다리가 휘어진다. 안주인이 해녀라면 소라 회에 문어 데침도 추가된다. 그러나 메인 디시는 역시 낚시인이 건져 올린 싱싱한 감성돔 회다.
감성돔을 낚지 못한 이들도 있지만 많이 낚은 팀이 민박집의 낚시인들이 충분히 먹을 만한 양으로 몇 마리를 내놓는다. 그것이 추자도의 관례다. 얻어먹은 팀은 다음날 그런 식으로 갚으면 된다. 못 갚아도 뭐라는 사람 없다.
감성돔이라고 다 같은 맛이 아니다. 지방을 많이 축적한 겨울감생이라야 제 맛을 낸다. 작거나 너무 큰 것보다 45cm 안팎의 것이 가장 맛있다. 살이 매끄럽고 투명하며 무지갯빛이 감돌면 최상품이다. 감성돔 회는 민박집에서 떠주기도 하지만 대개 각 팀마다 요리사 뺨치는 ‘칼잡이’가 있어서 낚시인들이 직접 뜬다. 감생이는 육질이 단단한 흰 살 생선이라 칼을 단숨에 당겨서 얇게 썰어야 한다. 추자도에선 횟집에서처럼 예쁘게 썰다가는 칼을 뺏긴다. 침 삼키는 소리가 누적되기 전에 다량의 회를 단시간에 처리하는 속도가 생명이며 그럼에도 먹음직스럽게 썰어내야 한다.
돔 회에 양주 꺼내면 갓 쓰고 구두 찾는 촌놈 취급 받는다. 소주가 제격이며 그 중에서도 ‘전라도 소주’인 보해가 최고다. 텃밭에서 뽑아온 섬배추(육지 것보다 작고 한층 고소하다)에 감생이 살점을 푸짐하게 얹고 고추냉이(와사비)와 된장을 찍어 올린 다음 한입 물고 크게 씹으면, 행복한 신음소리와 더불어 절로 술잔이 돌아간다. 건배 제의 구호 중 요즘 인기 있는 것은 울산낚시인들이 퍼뜨린 ‘할’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핥으라는 의미의 할이란다.
겨울 추자도만큼 다양한 고장,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추자에서 재력(財力), 조력(釣歷), 낚시실력, 세 가지는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내 기억에 추자도에서 대기업 회장을 본 적은 없지만(장기전의 원도낚시는 ‘바쁜 부자’들이 즐기기는 어렵다)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큰손들은 많이 거쳐 갔다. 그들은 주민에게 배를 사주거나 자녀들이 육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주기도 한다. 그로 인해 뭇 낚시인들로부터 ‘순박했던 섬사람들이 이제 낚시인을 돈으로만 평가하니 갈수록 인심이 사나워진다’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그런 부자가 아니어도 낚시인은 낙도주민에게 반가운 손님이다. 각자의 전공을 살려 보일러를 고쳐주거나 차량을 손봐주거나 법률상담을 해준다. 서울의 한 낚시회는 추자중학교 아이들에게 단체로 서울구경을 시켜주었다. 물론 좋은 낚시인만 있는 건 아니다. 섬사람들이라고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 자, 술 먹고 행패 부리는 건달, 과부해녀 등쳐먹고 달아난 제비, 사기도박판을 벌리는 타짜도 있다.
온갖 군상이 모여 얽히고설키는 추자도의 밤. 그러나 날이 밝으면 모두 진지한 사냥꾼의 모습으로 돌아와 황파(荒波)가 이는 갯바위로 나선다.     

 

 

추자도의 새벽바다는 포성 없는 전쟁터다. 섬이 42개나 있지만 최근 호황터는 몇몇 섬으로 한정되게 마련. 갯바위에 순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먼저 상륙하면 임자이기 때문에 추자도의 낚싯배들은 거친 파도 속을 전속으로 항진한다.
낚시인들이 서로 내리려고 다투는 섬들은 상추자권에선 다무래미, 직구도, 소머리섬, 납덕이가, 하추자권에선 사자섬, 푸렝이, 밖미역섬, 절명여 등이 꼽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섬에서 잭팟이 터지기도 한다. 노다지를 캐낸 이들은 다음날 또 내리기 위해 그 장소를 숨기려 하고 허탕 친 이들은 그런 곳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에 낚싯배 사이에 치열한 첩보전이 펼쳐진다.
바다에 와서까지 사람과 경쟁하는 게 싫은 낚시인들은 무인도에 텐트를 친다. 추자도의 야영낚시꾼 하면 기억나는 사람이 가수 오기택씨다. 그는 아무도 없는 소머리섬이나 염섬에 낚시움막을 짓고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즐겼다.
1963년 스물한 살에 ‘영등포의 밤’으로 데뷔해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등을 히트시키며 인기정상의 연예인으로 살았지만 무대 뒤의 비정함을 견디지 못해 서른 살부터 갯바위낚시에 의지했다.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얻는 낚시에서 대자연의 섭리를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면 귓가를 두드리는 파도소리와 갈매기소리는 갯바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웅장하고 고요한 음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1997년 1월 2일에 뜻밖의 사고를 겪는다. 폭풍으로 염섬에 고립된 지 사흘째, 밥을 안치다가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비탈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소나무 가지가 그의 발에 걸렸다. 솔가지를 붙잡고 눈보라 속에서 버티기를 24시간, 낚싯배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이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핸드폰만 가져갔어도 일찍 구조됐을 것인데, 완전히 해방되고 싶어 두고 갔었죠. 이제 다시는 갈 수 없는 추자도의 바다가 정말 그립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오기택씨는 지금까지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 92년 겨울 추자도 염섬에서 만난 ‘고향무정’의 가수 오기택씨. 그는 늘 무인도에 세 동의 텐트를 쳐놓고 장기 야영낚시를 즐겼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의 건강한 모습이다.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이 바다에만 오면 가슴이 뛴다. 목개에서 첫 감성돔을 만나던 그 날처럼. 찌를 고르고 릴을 세팅한다. 이제 감성돔을 낚는 마지막 역할은 가이드와 선장을 거쳐 낚시인에게 넘어왔다.
명당에 내렸다고 해서 감성돔이 절로 낚이는 것은 아니다. 파도가 솟구치는 곳보다 가라앉는 곳, 조류가 모이는 곳, 집어를 위해 뿌리는 크릴이 흘러가다 서서히 맴도는 곳을 간파해야 한다. 그러나 변화는 물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바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초썰물과 중썰물의 조류가 달라지고 북서풍과 정서풍의 파도가 달라진다. 찌매듭의 높이를 몇 미터에 잡아야 하나? 어디쯤 던져서 어디까지 흘려야 하나?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낚시에 법칙이 있다면 법칙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찌를 던지고 낚싯줄을 푼다. 줄을 통해 조류의 속도를 손으로 감지하며 밑밥과 미끼의 동조(同調)지점을 연상한다. 망망대해 속으로 흘러가는 수 천 조각의 크릴…, 깊이 잠영하던 어체가 강철 같은 지느러미를 곧추세우는 상상의 찰나에 줄이 튕겨나간다. “쨍”하고 울리는 파열음!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린다. 숨은 단숨에 턱밑까지 차오른다. 낚싯줄은 섬광처럼 파도를 잘라댄다. 언제나 그리워했지만 언제나 두려운 싸움. 내 피 속에 내재된 원시의 세포가 와르르 일어선다. 이 쾌감에 미쳐 인생을 버린 사람들도 있다. 평생을 바다에서 떠돌다 노른여의 파도에 스러진 J 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추자바다에 자신의 뼛가루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간 전설의 갯바위꾼 P 형의 웃음도 들린다. 죽기 살기로 감아 들인 줄이 다시 수중여 사이로 파고든다 싶을 때, 퓨즈가 나간 듯 갑자기 모든 음향이 증발해버렸다. 끊어진 줄이 시체처럼 떠오른다. 놈은 살았고, 내 빈약한 심장은 관성으로 헉헉대며 공회전한다.

 

 

서울에는 오늘 비가 내렸다. 겨울에 남풍이 불면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면 폭풍이 터진다. 기상청 예보보다 정확한 자연의 순환이다. 때마침 달은 보름으로 차오르고 있다. 폭풍 뒤끝의 사리물때(음력 보름 전후와 그믐 전후, 간조와 만조의 낙차가 커서 조류가 센 물때)는 아침 밀물에 추자 감생이들이 엿등을 타고 오른다는 찬스다. 또 한 떼의 낚시인들이 바다를 건널 것이고 그 속에 나도 섞일 것이다.
어제 수원에 사는 이순(耳順)의 낚시인이 전화를 해서 추자도 출조 계획을 논의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살 날이 많다 싶었는데 문득 추자도 초등감생이(초겨울에 붙는 첫 감성돔 무리)를 만날 기회가 열 번도 안 남았다 생각하니 심란해지지 뭔가.” 
내가 들은 가장 무상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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