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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마지막 한선(韓船) 편수 손낙기 옹(翁) “전통 낚거루 제작의 맥이 끊겨 한스러울 뿐”
2013년 03월 2608 3562

피플

 

마지막 한선(韓船) 편수 손낙기 옹(翁) 

 

“전통 낚거루 제작의 맥이 끊겨 한스러울 뿐”     

 

 

조성욱 한국민속전통견지협회 회장   

 

 

전통 한선(韓船) 제작의 편수(編首)인 손낙기 翁(82)이 노령으로 일손을 놓았다.
편수란 공장이나 작업장의 최고 우두머리를 뜻한다. 한강의 전통 배 편수였던 손낙기 옹이
변변한 수제자 한 명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섬에 따라
낚거루를 비롯한 전통 한선 제작의 맥은 끊기게 되었다.

 

▲지난 2008년 충주 목개에서 열린 사슬낚 시연회에서 손낙기 옹이 노을 저으며 잉어를 노리고 있다.

 

평생 조선의 전통 배인 한선을 만들며 살아온 손낙기 옹. 과거 한강의 뚝섬과 광나루, 팔당 등지에서 배견지낚시가 성행할 때 한강을 떠다니던 수많은 배들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경기도에서 충청도,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나루터마다 보이던 거룻배 또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배가 없었다.
손낙기 옹이 처음 배를 만든 시기는 1956년, 6.25에 참전하여 특무상사로 제대한 27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을 때다. 손 옹은 부친과 함께 목상(木商)인 할아버지로부터 나무를 받아서 운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 무렵 한강의 배들은 배알미(하남시 팔당댐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의 같은 마을에 사는 박성문씨(작고)가 주로 만들었는데, 손 옹은 박씨가 배를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배 짓는 일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기능을 전수한다든가 기술을 물려주는 개념이 없었지. 단지 배 만드는 일이 품삯이 좋아서 시작한 거야. 먹고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거든.”
그렇게 시작한 일이 평생의 업이 되어 57년간 한선 만드는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강의 어선과 낚싯배를 만들던 장소인 밤섬이 1968년 여의도 개발과 함께 사라지면서부터는 하남 배알미의 조선소 일이 더욱 바빠졌다. 손 옹은 당시 한강의 풍경을 이렇게 회상한다. 
“장삿배들이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서풍인 하늬바람을 타고 올라갔고, 반대로 내려 올 때는 동풍인 높새바람을 등에 지고 내려왔어. 바람이 없을 때는 배에서 줄을 길게 연결해서 땅으로 보낸 후, 사람이 끌어당기고 배에서는 삿대질을 했지. 마포에서 새우젓과 소금, 건어물을 싣고 여주강, 목계, 단양을 거쳐 강원도로 가서 목재와 숯 또는 곡물과 교환해서 서울로 실어 날랐어.”

 

80년대 한강개발사업 이후 전통 배 사라져

손 옹이 직접 운영해왔던 ‘한국 고전선박 제작소’는 팔당댐이 생기면서 한강의 물길이 막히고 80년대부터 시작된 한강 개발의 미명 아래 한강의 배들이 쫓겨나면서 주문이 끊기고 말았다. 이후 사무실도 직원도 없이 줄곧 혼자서 꾸려왔다. 한 달에 예닐곱 척씩 주문이 들어오던 낚싯배 주문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기점으로 완전히 끊겼다. 6,26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심한 난청이 되어 평생 고생했지만 손 옹은 참전용사 기장과 훈장 두 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다.


 

◀지난해 9월 단양 다누리 낚시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한 손낙기 옹. 견지낚시 발전을 위해 공헌한 공로로 단양군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손 옹은 남다른 기억력을 바탕으로 틈날 적마다 기록해둔 한선에 관한 자료를 엮어 책으로도 남겼다. 그의 저서 <편수의 거룻배 짓는 격식>엔 한선 건조에 대한 귀한 자료들이 수록돼 있다.
<편수의 거룻배 짓는 격식> 저술
책에 의하면 조선 배는 소나무로 만드는데, 소나무도 춘양목, 적송, 해송, 무송으로 나뉘고 그중에서 춘양목을 제일로 치며 수령은 60~100년 이상 되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손 옹은 “물속에 오래도록 가라앉혀 놓은 나무를 수상목(水上木)이라 해서 배를 짓거나 집을 지을 때 최상품으로 쳤지. 전통 한선은 낚거루 외에도 시선, 당두리선, 시회선, 참운선, 운염선, 대변선, 시노선, 광선으로 나뉘는데 이들 배의 특징들이 각각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서 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조선 배 장인이다”라고 말한다.
한동안 놓았던 연장을 다시 잡을 일도 몇 번 있었다. 2000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용 황포돛배의 주문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한국민속촌에서도 똑같은 배를 주문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는 낚싯배와 거룻배의 주문이 끊긴 상황에서 기껏 전시품으로 쓰일 선박을 만들어야 했던 손 옹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고 한다. 한 시절 한강을 수놓았던 많은 배들이 자취를 감추고 잊혀간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고 서운했다.
그러다가 편수 손낙기 옹의 한선 제조 솜씨를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2002년 MBC에서 드라마 <어사 박문수>의 황포돛배와 KBS 드라마 <토지>에 사용할 전통 배 두 척을 주문한 것이다. 2003년엔 여주군청에서도 조포나루에 띄울 황포돛배와 임진강의 돛배 두 척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건 손 옹의 기술과 솜씨에 관련한 자문뿐이라서 하남시 배알미에 있는 연장을 모두 현장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날일을 하다시피 했기에 공사 외형에 비해 큰 수입이 되지는 못했다.

 

한강의 전통 낚싯배, 이젠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어

 

견지낚시협회가 손낙기 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으로, 견지낚시협회에서 전통 낚거루 제작을 손 옹에게 의뢰하면서다. 어릴 적부터 팔당의 강을 휘저으며 사슬낚과 흘림견지를 했고 겨울철 잉어잡이로 유명했던 팔당 12바탕 잉어몰이를 꿰듯이 알고 있는 그가 후학들의 전통 견지낚시 계승에 힘을 더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 손낙기 옹은 원로 견지낚시인 서병원 선생과 함께 견지협회 학술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강의 어로와 전통낚시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해주었고 후학들에게 삼봉낚시 이론과 기술, 봉판 제작, 전통낚싯대 제작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현재 단양 낚시박물관 전통견지낚시 전시실에 진열된 낚시유물의 상당수도 서병원, 손낙기 두 분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다. 두 분은 어한기인 겨울철엔 옛적 그물 뜨던 솜씨로 견지낚시용 설망을 만들어서 후학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손낙기 옹은 한때 서울시에서 추진했던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전해 듣고 “오페라하우스도 좋지만 한강의 전통 낚거루와 석빙고를 재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잊혀가는 한강의 전통 문화에 애착을 보였다.
작년 가을, 손낙기 옹은 평생의 가업이었던 배 건조 일을 접고 당신이 사용하던 한선 건조 연장을 모두 단양에 있는 한국민속전통견지협회 연수원에 가져다주었다. 안타깝지만 이로써 편수 손낙기 옹의 전통 한선 제작 기능은 맥이 끊겼다. 거의 독보적이었던 그의 한선 제작 능력이 문명에 밀려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이제 한강의 전통 낚싯배는 박물관 외에는 볼 수 없게 됐다. 이따금 단양 민속전통견지협회 연수원에 들러서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후학들과 마음을 나누는 전통 낚싯배 장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후배들의 마음이 송구스럽고 편치 않다.
2004년 5월, 견지낚시인들의 성금으로 잠실 수중보에서 복원 진수했던 마지막 낚거루는 현재 충북 단양의 낚시박물관에 영구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다.  

 

좌)2004년 5월 잠실 수중보 북단 둔치에서 열린 낚거루 복원 진수식에 참가한 손낙기(우측) 옹. 왼쪽은 원로 견지낚시인 서병원 선생이다.
우)손낙기 옹이 2005년 10월에 진수한 나주 영산포 황포돛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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