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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탐험의 역사여, 다시 깨어나라
2010년 03월 487 536

 

 

 

 

도전과 탐험의 역사여, 다시 깨어나라

 

 

"현장에 도착되고 보니 심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캠프 설치도 못한 채 커다란 비닐 속에 갇히어 1시간 정도 기다리니 비는 멎었다. 3개 조로 분리, 1조는 C, 2조는 B, 3조는 A지점에 분산 배치되었다. 밤 9시경 A지점에서 첫 번째 소동이 일어났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한 3조는 계속되는 어신의 위협에 눌리어 불발의 연속이었다.”


1977년 7월, 서울 미도파낚시회 회원들은 장대비 속에서 대삼부도에 상륙하여 악전고투를 벌입니다. 대삼부도 탐사팀을 이끈 김준남 선생이 쓴 이 글에는 흡사 히말라야 원정대가 정상 정복에 나선 듯한 흥분과 긴장감이 넘쳐흐릅니다.
낚시춘추 창간 39주년 특집기사 「한국 낚시터 개척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저는 무한한 패기와 정열로 미지의 낚시터를 찾아 나선 옛 낚시인들의 투지에 매료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를 거친 한국낚시 개척시대의 탐사기록은, 정비된 도로망도 없고, 쾌속선도 없던 시절, 맨땅에 헤딩하듯 고행의 길을 자청했던 1세대 선배 조사들의 역정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특집기사 송고를 마쳤을 때, 과연 우리는 모든 낚시여건이 열악했던 시절의 그분들보다 더 나은 낚시를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들었습니다.    

 

“물결에 흐르듯 물위에 뜬 듯 맑은 날 마치 신기루처럼 떠있는 대한반도 최서남단 그 그림자 같은 섬들, 어떻게 보면 두 개 세 개, 어떻게 보면 또 한 개의 긴 섬으로 보이는 그 아득한 곳을 보아온 지 수 년, 나는 저 신기루의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영글기 시작했다.”


1980년 12월, 병풍도에 최초로 발을 디딘 故 심정우씨의 이 조행기를 읽으면서 저는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한 낚시인이 “앞바다에서도 감성돔이 잘 낚이는데 왜 원도까지 돈과 시간을 들여서 가느냐”고 따지듯 물었을 때 저는 마뜩찮았으나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답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먼 바다에 도전하여 낚고자 한 것은 더 많은 감성돔이 아니라 미지(未知)의 감성돔이란 것입니다. 거제도의 감성돔과 가거도의 감성돔은 같지만 또 다른 물고기란 것입니다.  
한국낚시의 발전은 개척의 열기가 이끌었고, 더 이상 개발할 낚시터가 없다고 여길 때 한국낚시는 쇠퇴할 것입니다. 낚시인들의 심장에 깊이 잠재된 욕구는 ‘쉽고 안락한 낚시’가 아니라 ‘도전과 탐험의 낚시’임을 수십 년 전 선배조사들은 생생한 기록으로 일깨우고 있습니다. 
1977년 2월, 사수도에 최초 상륙하여 감성돔 대군과 맞닥뜨렸던 당시 낚시춘추 대구 모니터 김판수씨는 그 날의 감동을 이렇게 썼습니다.


“상공에는 이름 모를 새떼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닌다. 맑고 깨끗한 물, 자그마한 바다게들이 날렵한 동작으로 바위틈을 기어 다닌다. 내가 돌이 될 수 있다면 영원토록 낚시나 하면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 내 몸에 날개라도 달렸으면 저 멀리 수평선까지 날아가서 은파도를 타며 감성돔, 자바리, 고래를 낚고 싶다….”


 

저도 그런 섬에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십니까? 


낚시춘추 편집장 허만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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