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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필드스탭 1호, 문무를 겸비한 프로페셔널 김욱
2011년 02월 3649 702

People

 

국내 필드스탭 1호, 문무를 겸비한 프로페셔널 김욱

 

물에서 연구하고 책에서 고기를 낚는 ‘루어낚시학 교수’

 

이영규 기자

 

 

프로배서 김욱(金旭, 45). 그는 한국 루어낚시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독보적이란 단어는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들다’는 뜻에서 김욱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까 한다. 김욱은 토너먼트를 뛰는 프로가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회나 방송 출연보다 글과 강좌로 낚시인들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했다. 최근엔 경기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의 강사로 출강하고 ‘김욱의 루어낚시 교실’이라는 강좌도 개설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본지에 배스낚시 기사를 연재 중인 김욱씨는 기자들이 흔히 말하는 ‘최고급 필자’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그의 기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낚시인의 궁금증을 정확히 파악한 뒤 ‘원인 지적은 날카롭고 해결책은 친절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욱씨는 글을 잘 쓴다. 그의 원고는 문맥 구성은 물론 맞춤법과 띄어쓰기까지 완벽해 마감이 급할 땐 그냥 넘겨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다.
김욱씨는 배스낚시에만 머무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마노, 썬라인, 피나사의 필드테스터로 활동하면서 농어루어, 무늬오징어 에깅, 부시리지깅, 참돔지깅 같은 바다루어에도 경험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낚시를 레저 이상의 학문적 카테고리로 정리하고자 하는 ‘루어낚시학 교수’ 김욱. 그는 어떤 계기로 이 길을 걷게 됐는가? 그 궁금점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지난 1월 2일 용인에 있는 김욱씨의 집을 찾았다.

피라미낚시용 털바늘이 그가 본 최초의 루어

 김욱씨가 나를 안내한 곳은 그의 ‘낚시방’이었다. 방안의 진열장에는 각종 낚시도구와 낚시서적들이 가득했고 베란다에도 전기모터와 어탐기 등이 뒤엉켜 있었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 위에 배스를 들고 웃고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김욱씨가 처음으로 낚은 5짜 배스라고 한다. 그 사진을 찍었을 때가 청량리 반도낚시에서 활동하던 팀프로배스클럽 시절이다.
서울 청량리에 있던 반도낚시는 ‘1세대 배서 사관학교’라 불린다. 임호기, 박용욱씨도 반도낚시 내 팀프로배스클럽에서 활동하다 독립(?)했고 최석민씨도 반도낚시를 거쳤던 유명 낚시인이다. 김욱씨는 팀프로배스클럽에서 활동했던 그 시절이 가장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97년에 설립된 JB코리아와 KSA에서 8년간 활동하며 토너먼트 프로의 길을 걸었지만 팀프로배스클럽 시절만큼 열정을 갖고 낚시를 탐구하던 시기는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배스낚시를 시작했느냐”고 묻자 고개를 젓는다. 사실 잘못된 질문이다. 김욱씨가 어릴 땐 배스가 지금처럼 퍼지지 않았고 배스낚시 자체가 없었으니까.

 

 

 

김욱씨가 처음 낚시를 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1967년 서울 아현동에서 김용복, 이성례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김욱은 4살 때 할아버지가 계신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7살 때 취학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부친 김용복씨는 방학 때마다 큰아들 욱과 둘째아들 충배를 장흥 탐진강변으로 데려가 천렵을 즐겼다. 그때 장흥읍 순지리가 고향인 한 재일교포가 매년 여름 찾아와 은어낚시를 즐겼는데, 그때 그 재일교포가 사용한 털바늘이 김욱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욱은 그 털바늘로 생전 처음 피라미, 갈겨니를 낚아보게 된다.
“그 털바늘이 내가 경험한 최초의 루어였죠. 나는 물고기보다 털바늘에 끌렸어요. 가짜 미끼에 고기들이 속아서 낚인다는 게 신기했지요. 투박한 대나무낚싯대에 매달린 물고기의 몸부림도 짜릿했구요.”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에는 붕어낚시를 즐겼다. 시외버스를 타고 팔당 양수리나 양평 지평지, 안성 만수터지 등지로 낚시를 다녔는데 친구들과 한창 어울려 놀 나이였지만 그는 아저씨들과 나란히 앉아 찌를 바라보는 게 더 흥미로웠다.   
김욱씨가 배스라는 고기를 알게 된 것은 84년 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낚시잡지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배스낚시 기사를 본 것이다. 그 책이 지금은 폐간된 「월간낚시」 창간호다.
“그때 월간낚시 창간호를 홍보하기 위해 서점마다 포스터를 덕지덕지 붙이는 등 난리였어요. 그래서 눈길이 갔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표지인지 목차인지 몰라도 붕어의 산란과정을 다뤘다는 내용에 혹해 책을 샀지요. 하지만 정작 눈길이 간 것은 붕어 산란 기사가 아니라 배스에 대한 기사였어요.”
잡지에는 외국의 배스낚시 테크닉을 번역한 듯한 기사와 우리나라의 배스낚시 얘기가 실려 있었다. 루어라는 인조 미끼를 보는 순간 어릴 적 피라미를 낚던 털바늘이 떠올랐다.

정보의 부재, 헌책방에서 미국 낚시서적을 뒤지다

김욱씨가 첫 배스를 낚은 건 건국대학교 생물학과 2학년 때 팔당호에서다. 당시에도 팔당호 낚시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지금처럼 심하게 단속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수도조구라는 곳에서 판매한, 5~6개가 한 케이스에 담겨있는 지그스피너를 샀는데 당시 청량리에서 팔당으로 가는 166번 버스 정류장 인근 낚시점에는 어디에나 지그스피너 세트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감기만 하면 드르르르 블레이드를 떨며 끌려오는 루어가 신기했는데 거기에 배스가 걸려드는 거예요. 걸었다 하면 30cm가 넘어 놀랐어요. 손바닥만 한 붕어만 낚다가 30cm가 넘는 월척이 쉽게 낚이니 기분이 너무 좋더군요. 아하~ 이런 낚시가 다 있구나. 그래 앞으로는 이 낚시다!”
자동으로 배스를 낚아주는 지그스피너의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그는 요즘 말하는 소위 시즈널 패턴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됐다.
“붕어낚시를 좀 해본 게 배스 포인트를 찾는 데 도움이 됐어요. 맨바닥에 던지는 것보다 수초가에 던질수록 배스가 잘 물더군요.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어요. 왜 봄에는 4짜급 배스가 잘 낚이는데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잔챙이만 낚일까 하는 거였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김욱씨가 찾은 것은 책이다. 봄에는 산란을 위해 얕은 곳으로 나왔다가 그 후엔 다시 깊은 곳으로 움직인다는 계절에 따른 이동, 즉 시즈널 패턴은 지금에야 기본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조차 얻을 창구가 없었다. 국내에는 배스의 습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책이 없었기에 학구열에 불탄 그는 외국의 배스낚시 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때 청계천의 헌책방을 찾았다가 배스낚시 기법서인 줄 알고 산 책 중엔 배스프로샵의 카탈로그도 있었다.

“책을 사줄 테니 대신 내용을 번역해 와라”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김욱씨는 청량리에 배스낚시 전문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반도낚시를 찾아간다. 당시 반도낚시는 알라스카낚시, 새로나백화점 낚시코너와 더불어 서울의 배스낚시를 선도하던 낚시점 중 한 곳이었다. 카탈로그에서만 보던 다양한 루어들을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김욱씨는 단순히 배스를 많이 낚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왜 봄이 되면 큰 배스가 낚이고 왜 여름, 가을이 되면 특정 포인트에서 배스가 잘 낚이는지 모든 현상에 대해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 클럽 선배 중 한동식씨가 김욱의 이런 학구열에 반해 “내가 너를 위해 책을 사줄 테니 대신 내용을 전부 번역해오라”는 제안을 한다. 학생조사 김욱에게 한동식씨는 첫 스폰서였다. 한동식씨와 함께 동두천 미군기지 앞의 헌책방을 찾아가 배스낚시 관련 책을 30권 정도 사왔다. 그리곤 영어사전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타이핑해가며 기사를 번역했다. 기사 하나를 번역하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번역한 내용을 하나하나 모아 엮으니 책이 되더라구요. 물고기의 생태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외국에서는 이렇게 낚시정보를 모아 책을 만들고 있으니 우리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번역을 했죠. 기초 자료가 없던 당시에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죠. 그렇게 만든 책자를 바탕으로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클럽 회원들과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전업프로에서 낚시 전문 필자로

대학 졸업 후 5년 뒤, 국내에도 프로배서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97년에 일본의 배스 토너먼트 단체인 JB가 한국에 지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보다 1년 전에 KBF라는 토종 배스낚시 단체가 있었지만 전국 배스클럽의 연맹체였을 뿐 경기단체는 아니었지요. 당시만 해도 일본과 미국의 배스 프로에 대한 동경이 컸던 때라 배서들의 관심과 기대가 대단했어요. 드디어 한국에도 토너먼트 프로로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나 싶었던 거죠.”
김욱씨는 JB에 가입했고 석상민, 박형준씨와 함께 한국 아부가르시아의 프로스탭으로 선정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스탭 지명이다. 비록 지원은 약했지만 김욱씨는 대한민국 낚시계 최초의 프로낚시인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프로 생활 8년 만에 그는 방향을 전환한다. 배스낚시 시장 규모가 작아 충분한 수입을 얻지 못했고, 전업 프로에 대한 각종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체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선언한 그는 독자적인 루트로 직업낚시인의 세계를 개척하게 되는데, 그가 가장 먼저 택한 길은 낚시잡지를 통한 활발한 기고활동이었다.
김욱씨는 95년부터 팀프로배스 회원의 이름으로 「낚시춘추」에 루어별 사용법을, 97년부터는 「월간낚시」에 조행기를 바탕으로 한 패턴 분석을 연재하면서 필명을 높이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탄탄한 이론 위에 현장감이 살아 있는 그의 기사에 감명을 받고 신뢰를 보냈다. 김욱씨는 말한다. “내가 입문할 당시의 배스낚시는 모든 게 벽이었고 깜깜했어요. 내 글을 읽는 독자도 그런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모든 필자가 자신이 낚시를 시작하던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글을 쓰면 독자에게 도움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필명이 알려지면서 배스낚시계를 넘어 전체 낚시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경기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로부터 낚시강사 제의를 받게 된다.

블로그 개설 1년 만에 파워블로거 선정

김욱씨는 4년 전부터 네이버에 ‘마왕 김욱의 스포츠피싱’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 개설 1년 만에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그가 얼마나 대중낚시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루 방문객은 400명 정도로 네이버의 다른 파워블러거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올린 글들은 대부분 1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김욱씨는 “네이버 측에서 이 점을 높이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재작년부터는 강좌를 해달라는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전주, 대전, 익산, 구미 등지로 낚시강좌를 다녔는데 반응은 뜨거웠다. “질문 수순은 초급부터 고급까지 다양했지만 이토록 간단한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없었나 하는 걸 느낄 정도로 아마추어와 프로 간의 괴리가 크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김욱씨는 후배 배서들을 만날 때마다 아마추어들과 잦은 교류를 가질 것을 권유한다. 또 조구업체에도 그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결국 그 사람들이 프로낚시인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용품을 사주는 미래의 소비자가 될 것이니까요.”

“낚시도 학문의 영역까지 오를 수 있다”

김욱을 종종 무라타 하지메와 비슷한 길을 갈 스타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 둘 다 토너먼트를 뛰지 않고도 정상의 인기스타가 된 배서이기 때문인 듯하다.
하하하 말도 안된다. 그는 실력을 초월해 존재하는 세계적인 스타 낚시인이다. 비교 자체만으로 영광스런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은 가지 않을 것이다. 그걸 원했다면 아마도 글을 쓰지 않고 방송국을 기웃거렸을 것이다. 그게 빠르니까. 하지만 그건 내 스타일과도 안 맞고 최종 목표도 아니다. 나의 꿈이라면 배스낚시 박물관을 만들고 그곳에서 인재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또 그런 인재를 지원할 사회 각계 인사를 연결시키고 싶다. 지금 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는 것도 그런 길을 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배서들이 전업프로를 꿈꾸고 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일단 상금으로만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시장 규모가 큰 일본에서도 직업 없이 상금으로만 먹고사는 프로배서는 세 명이 못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미국 역시 전체 프로낚시인의 극소수만 상금으로 먹고 산다. 간혹 도전 정신만 앞세워 토너먼트에 모든 걸 걸겠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문제다. 지금은 내가 토너먼트를 뛰던 시절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한때 나도 ‘진짜 센 놈하고 붙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토너먼트 진출을 꿈꾸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성공한 일본 프로들의 자료를 구해본 적 있는데 현실을 들여다보고 포기했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쓰는 돈이 1억5천만원에 이르고 그 돈을 몇 년간 더 쓰고 바닥을 다져야 그 다음부터 성적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또 금전적 문제는 후원을 받거나 열심히 일해서 해결하면 되지만 과연 내가 낚시만 하고 먹고살 만큼의 실력이 되는가도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꿈을 갖는 건 좋지만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프로에겐 다양한 길이 있다고 본다. 토너먼트를 뛰면서 꼭 상금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매스컴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인지도를 넓혀가는 매스컴 프로, 입문자나 초행자들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가이드 프로, 짧은 시간 내 실력을 키워줄 지름길을 찾아주는 레슨 프로 등 다양한 길이 열려있다고 본다. 그중 나는 레슨 프로라고 할 수 있다. 실례로 FTV에 출연 중인 이정구, 강한승씨 등은 토너먼터가 아니면서도 프로 토너먼터 못지않은 명성으로 대중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중 어떤 분야를 선택해 성공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 노력에 달려있다.
낚시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집안에서는 반대가 없었나?
대학 졸업 후 낚시가 내 갈 길이라고 어머님께 말씀드리자 처음에는 싫어하셨지만 반대는 안하셨다. 워낙 쿨한 성격이시라 ‘니 갈 길 니가 개척하라’고 하셨다. 사실 내가 낚시로 벌어들이는 돈은 사람들의 예상만큼 많지 않다. 원고료와 후원업체의 후원금을 모두 합해도 월 이백만원이 조금 못 된다. 주 수입은 의정부에 있는 건물 임대료다. 지금은 그 건물에 고시원을 만들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이 없었다면 낚시를 직업으로 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엄한 성격이었고 살가운 표현을 잘 하지 않으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아버지 드리려고 내가 잡은 붕어를 직접 손질해서 어머니께 드렸다. 그 붕어 매운탕을 아버지는 맛있게 드시며 즐거워하셨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해드렸던 유일한 효도였다.       
후원업체인 시마노, 썬라인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마노 인스트럭터, 썬라인 필스테스터라는 타이틀을 받고 공식 후원을 받게 된 지는 4년 되었다. 그러나 인연은 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배스낚시인들 사이에서 좀 알려지고, 이후 JB 프로로 뛴 첫 대회 때 3위에 입상하자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때 윤성조구의 이용주 상무(당시 차장)님과 자주 마주쳤는데 상무님은 나만 보면 국내 배스낚시 시장 규모와 비전을 묻곤 했다. 그리곤 날 잘 봐주셨는지 어느 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피싱쇼에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다. 300만원이 넘는 경비를 제공하며 피싱쇼에 동행하자는 호의에 깜짝 놀랐다. 그 뒤에는 동경피싱쇼도 함께 다녀왔다. 그때의 인연이 이어져 지금의 필드스탭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배스낚시 선진국인 미국 피싱쇼에 다녀와본 느낌은 어땠나?
깜짝 놀랐다. 일종의 문화충격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배스낚시 산업은 이미 공룡 수준이었고 낚시 관련 각종 서적과 비디오테이프로 넘쳐났다. 그때도 나의 최대 관심사는 책이었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배스낚시 책자가 많아서 여비를 몽땅 털어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사왔다. 이후 외국을 나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가방 대신 꼭 배낭을 가져갔다. 그래야만 더 많은 책을 갖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은 족히 1년은 나의 장난감이 되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외국의 낚시정보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당시 책을 통해 접한 정보와 요즘의 인터넷 정보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내가 외국의 낚시서적을 번역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논리에 대한 검증이 매우 과학적이고 납득할만한 근거가 꼭 제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심증은 있지만 입증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이러이러하지만 이유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나는 낚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증 과정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시간이라는 신속성을 앞세운 인터넷 정보에는 이런 검증 과정이 없거나 부족하다. 또 정보를 올린 이의 경험의 깊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정보를 무작정 퍼서 옮기고, 심지어 그런 내용이 대중이 보는 인쇄물로 찍혀 나와 황당할 때가 많다. 내가 배스낚시를 배울 때는 자료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자료가 범람해 옥석을 가리는 것이 더 힘들다.    
경기대학교에서 스포츠피싱 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다. 낚시라는 과목으로 교수가 될 수도 있는가?
레저스포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종목의 하나로서 낚시를 가리키고 있다. 단순 오락으로서의 낚시가 아니라 정식 체육 종목으로 가리키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기 잘 낚는 기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작년에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아시다시피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고 해서 곧바로 정식 교수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교수님 호칭을 들으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 낚시는 스포츠 단계까지는 발전했지만 학문의 영역까지는 오르지 못했는데 내가 그 길을 뚫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에 박사 논문이 통과되면 대한민국 최초의 낚시논문이 되는 셈이다.
유난히 따르는 후배 낚시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후배들에게 인기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진짜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들과 소통하는 선배가 되려고 늘 노력한다. 대중과 친해지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후배들과 친해지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어렵지 않은 형이 되려 하고 서로 존중하려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낚시방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김욱씨가 거실의 서재로 안내했다. “낚시장비는 돈만 있으면 다 사는 건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대신 낚시책들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세요. 여기엔 내가 지난 20년간 사 모은 500여 권의 책이 있어요. 내가 자랑할 건 이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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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학교 학생들에게 배스낚시를 강의하고 있는 김욱씨.
거실 서재 앞에 선 김욱씨. 지난 20년간 사 모은 500여권에 달하는 책들은 그의 실력을 키워준 밑바탕이다.
2010년 가을, 구미 대성지에서 골드웜네루어낚시 회원들을 대상으로 루어낚시 강좌를 하고 있다.
김욱씨의 낚시방. 각종 낚시용품과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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