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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낚시점주 - 음성 오성낚시 오성근 사장
2009년 04월 2850 862

 

음성 오성낚시 오성근 사장

 

“원남지가 날 살리고 인터넷이

                            

                             날개를 달아주었죠”

 

서성모 기자 blog.naver.com/mofisher

 

오성낚시는 음성에서 가장 오래된 낚시점이다. 충주호와 원남지의 관문인 중부고속도로 음성I.C 입구에서 19년째 낚시점을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낚시인들이 이 길을 드나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충북 민물낚시터의 관문인 음성, 낚시점간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음성에서 20년 가까이 명성을 유지해온 오성근 사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조황 답사를 위해 음성 원남지를 찾은 오성근 사장. 충북 붕어낚시의 관문인 음성톨게이트 앞에서 19년째 오성낚시를 운영해온 그는 음성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낚시점주다.


충주호, 원남지, 맹동지, 초평지 등 충북의 내로라하는 명낚시터들로 갈 수 있는 음성I.C는 낚시인의 출입이 빈번한 교통요지다. 그 길목에 20년 가까이 있었으니 웬만한 낚시인들은 오성근 사장(56)의 얼굴이 낯익을 수밖에 없다.   
음성톨게이트 앞 82번 도로변에 오성낚시점이 있다. 오성근 사장이 나를 보자마자 함께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동행할 것을 권한다. 원남지에서 월척 몇 마리가 낚였다는 소식이 왔다는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원남지로 향하는 차안에서 시작됐다.

 

잘 나가던 사업, 충주호에 미쳐 때려치우고

 

오성근씨의 고향은 충북 진천군 광혜원이다. 3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농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마포구의 친척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공고를 다니며 전기공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라디오 회로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거기서 꽤 실력 있는 기술자로 인정받았고 군대를 갔다 온 후에는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1979년 직원 5명을 두고 오락기계를 만들어 납품하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오성전자라고 지었다.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조로웠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도 한 달에 100만원 정도가 순수익으로 남았다. 당시 서울의 집 한 채 값이 사오백 만원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중매를 통해 부인 한성춘씨와 만났고 한 달 만에 결혼했다. “당시는 뭘 해도 잘 됐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던 때였어요. 수금을 나서면 가방에 지폐를 수북하게 채워서 돌아왔었습니다.” 당시 나이 34세, 부러울 것 없던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마냥 순탄할 것 같던 사업은 난항에 봉착하고 만다. 바로 낚시 때문이었다. 그에게 낚시는 처음에는 머리나 식힐 겸 다니는 소일꺼리였으나 충주호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딴 사람이 되었다. 84년부터 붕어가 낚이기 시작한 충주호는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인 조황을 보였다. 충주호 붕어에 미친 오성근씨는 업무는 뒷전이고 주중에도 2회씩 낚시를 떠났고 주말엔 또 휴일이라고 충주호로 향했다. 일주일에 4~5일씩 낚시를 가다보니 사세는 눈에 띄게 기울기 시작했다.
“충주호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었어요. 찌가 아른거려서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사장이니까 눈치 볼 것도 없어서 마음껏 낚시를 다녔죠.” 

 

쓰러져가는 낚시점을 원남지가 구원하다 

 

89년 늦봄, 충주호 하류 미라실에서 낚시를 하던 그는 문득 ‘낚시를 해서 돈 벌 일은 없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라실의 좌대낚시터를 인수할 계획을 세웠지만 뜻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낙담하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에게 음성군 대소읍내의 빈 가게가 보였고, 그 자리에서 낚시점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한 달 만에 10년 동안 운영해온 공장을 정리하고 대소읍으로 내려왔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그런 결정을 어찌 그렇게 쉽게 내렸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충주호에 미쳐서”라고 짧게 답했다. 부인 한성춘씨는 남편의 뜻을 순순히 따랐다고 한다.
대소읍의 낚시가게는 일단 아내에게 맡겨놓고 오성근씨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활어차 세 대를 구입해서 향어유통에 손을 댔다. 당시 서울에선 향어 실내낚시터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낚시터마다 고기를 제때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서울 변두리에 축양장을 만들어놓고 안동댐에서 향어를 떼어다 팔았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향어유통사업은 4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만다.
“방송에서 실내낚시터의 비위생적인 향어요리를 문제 삼자 대대적인 낚시터 단속이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수금도 못한 채 사업을 접어야 했죠. 그때 돈을 많이 까먹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새 원남지 입구인 조촌교에 이르렀다. 그런데 창밖의 풍경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상류 진입로의 장군바위가 사라졌고 그 자리엔 도로작업이 한창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원남지 좌안 상류에 생태공원이 들어선다고 합디다. 장군바위, 인삼밭, 경운기 포인트까지 모두 트랙터로 싹 밀어버렸어요. 음성의 낚시점 대부분은 음성톨게이트에서 원남지로 이르는 도로변에 몰려 있어요. 원남지가 사실 음성의 낚시점들을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이 앞섭니다. 공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올 봄낚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런지….”


 

◀ 오성근 사장이 원남지에서 낚인 월척 붕어를 계측하고 있다. 전국구 대물터로 떠오른 원남지 덕분에 지금까지 낚시점을 운영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원남지는 그에게 특별한 낚시터다. 향어유통사업에서 보기 좋게 실패하고 대소읍내의 20평 남짓한 낚시가게로 돌아왔을 때 불같던 충주호 조황도 점차 하락세로 돌아섰다. 충주호 열기가 식으면서 낚시점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충주호 제천 지역의 연론리나 내사리 조황을 바라보고 얻은 가게였는데 조황이 부진하니까 손님들이 확실히 줄더군요. 향어사업이 망한 뒤 많이 위축된 상태였는데 낚시점마저 안 되는 것 같아 속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구세주가 나타났다. 93년부터 원남지에 월척들이 낚이고 대물터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낚시인들이 다시 음성I.C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재빨리 대소읍에서 음성 톨게이트 앞쪽으로 가게를 옮겼다. 그리고 이왕 시작한 낚시점이라면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일찌감치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가게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3시에도 벨을 누르면 일어나서 지렁이와 떡밥을 팔았다. ‘손님이 찾을 때 낚시점 문은 열려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서 낚시점주가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게 그의 영업방침이다.
원남지에 이어 또 하나의 원군이 나타났다. 바로 웹진 입큰붕어 얘기다. 오성근씨에게 원남지가 재기의 발판이 됐다면 입큰붕어는 성장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국내에서 인터넷 조황 안내를 가장 먼저 시작한 낚시점주가 바로 오성근 사장이다. 그는 웹진 입큰붕어 1호 모니터다. 2000년 초부터 그는 원남지를 비롯한 음성 지역의 조황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가장 바쁜 낚시점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2~3회씩 음성 지역 내의 낚시터를 돌면서 조황을 올리고 있다.
“2000년이었던가, 원남지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한 낚시인이 찾아와서 인터넷 속보 얘기를 꺼냈는데 그가 김씨라는 닉네임을 쓰는 당시 입큰붕어 운영자 김영씨였습니다. 실시간으로 조황정보를 올려주면 인터넷을 즐겨 보는 낚시인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을 거란 얘기였습니다. 원래 기계 쪽이 전공인 터라 디지털 카메라도 그리 낯설지 않더군요. 막상 인터넷에 조황을 올리니까 그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조황정보, 서비스, 싱싱한 미끼가 생명”        

 

인터넷에 오성낚시가 뜨기 시작하면서 매출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원남지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최고의 호황을 보였다. 마릿수 월척이 낚이고 4짜 출현도 빈번했다. 수천 명의 낚시인들이 원남지를 찾으면서 음성I.C 주변의 낚시점들이 호경기를 누렸는데 그중 최고 매출은 오성낚시의 차지였다. “일주일이면 신장떡밥 천봉지가 넘게 나갔어요. 그렇게 올린 한 달 매출이 7천만원이 넘고 그랬어요.”
하지만 이러한 호황은 낚시점간 과열경쟁을 부추겼고 점주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다. 손님을 끌기 위해 과장 조황을 올리기도 하고 포인트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급기야 ‘원남지에서 낚인 붕어가 중국붕어가 아니냐’는 토종붕어 논란이 일면서 원남지는 차츰 낚시인들의 눈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원남지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손님도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낚시점간 경쟁이야 피할 수 없는 거지만 원남지를 보고 장사하는 거니까 서로 지켜야 할 룰 정도만 정했어도 문제는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오성낚시의 경기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극심한 불경기는 그의 낚시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거기에다 음성 지역 낚시터들이 붕어 자원이 줄고 있어 출조객 수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단골손님이 많아서 그래도 타격이 적은 편 아니냐고 묻자 오성근 사장은 “나처럼 길목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 단골손님은 없다고 생각하고 장사를 해야 돼요. 어차피 가는 길에 어느 낚시점을 들리냐는 것은 손님 마음이니까 오백원 천원 차이로 손님이 늘거나 주는 게 이쪽 장사입니다.”하고 말했다.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영업 전략을 묻자 그는 조황정보, 서비스, 싱싱한 미끼 세 가지를 꼽았다.
“어려울수록 조황 정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해요. 부지런히 조황을 올리고 그 정보가 정확하다면 낚시인들은 내 가게를 찾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점주를 통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면 가게는 24시간 항상 열려 있어야 해요. 언제 가도 양질의 새우나 지렁이 같은 미끼가 준비돼 있는 낚시점이라면 낚시인들은 점주 얼굴이 보기 싫어도 찾게 되어 있습니다.”  

 

▲ 오성근·한성춘씨 부부가 매장을 찾은 손님에게 낚싯대를 보여주고 있다. 오성낚시는 93년부터 지금까지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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