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장바구니 주문배송조회 고객센터
과월호신청
Home> 뉴스&칼럼 > 뉴스&피플
춘천호에서 만난 꾼 - 낚시를 사랑하는 만화가 이두호
2009년 06월 3617 878

춘천호에서 만난 꾼

 

만화가 이두호

 

 

“낚시와 만화, 둘 다 엉덩이로

 

                    세월 보내는 일이긴 마찬가지”

 

서성모 기자 blog.naver.com/mofisher

 

이두호 화백(66). ‘머털도사’, ‘임꺽정’, ‘객주’ 등 수많은 히트작을 그린 우리나라의 대표 만화가이다.
또한 그는 만화만큼 물고기를 좋아하는 낚시인이다. 춘천호 신포리 좌대 위에서 만화가로
살아온 43년의 삶과 낚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상좌대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미소를 짓고 있는 이두호 화백.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이자 물고기를 좋아하는 낚시인이다.

 

이두호 화백과의 동행엔 본지에 만화 ‘아치와 머리’를 연재하고 있는 탁영호씨가 함께 했다. 탁영호씨는 이화백이 아끼는 후배이자 절친한 낚시 동료다. 이두호 화백은 춘천호 신포리가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춘천은 나에게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나는 춘천에서 군대 생활을 했고 낚시를 자주 왔었습니다. 80년대 말인가. 여름에 찾았는데 여기서 내 최고 기록인 38cm 붕어를 잡았어요.”
신록이 반짝이는 춘천호 신포리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이두호씨가 낚싯대를 꺼낸다. 손잡이대에 그려진 낯익은 얼굴이 시선을 끈다. 머털도사다.
이두호 화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머털도사는 80년대 중반에 청소년 잡지에 연재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30~40대라면 너무도 친숙한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다시 제작되어 이젠 10대들도 좋아하는 국민적 캐릭터가 되었다. 얼굴을 반쯤 덮은 머리카락을 쫑긋 세우며 독수리나 지팡이로 변신하는 머털도사의 도술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감탄하고 즐거워했던가. 그래서 이두호 화백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좋아하는 낚시를 만화로 그려볼 생각은 없습니까?”
이두호 화백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사실 낚시만으로는 극화를 만들기 어려워요. 낚시란 게 그렇지 않아요?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면 참 재미있지만 낚시 안 하고 옆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지루합니까. 결국 낚시 외적인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낚시를 일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화는 내 직업이지만 낚시는 스트레스를 푸는 활력소입니다.”
그는 낚시터에 오면 구상하고 있던 작품도 다 잊어버리고 만다고 했다.
“낚시가 그런 것 같아요. 몰두를 해서 낚시터에 다 쏟아 붓고 오는 겁니다. 작품구상이다 뭐다 다 좋은 핑계거리일 뿐이죠.”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낚시만화를 그리지 못해요”

 

◀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이두호 화백의 낚시가방.

 

그는 경북 고령 다산면 상곡동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9살 때 대구 내당동으로 이사를 했다. 대구에서 둘째 형인 이태호씨를 쫓아 감산못, 강당못, 성당못 등지로 낚시를 다녔다. “형님은 정말 낚시를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쓰시던 바느질용 바늘을 구부려서 낚싯바늘을 만들어 썼습니다.”
만화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접했다. 그의 그림 실력을 먼저 알아본 초등학교 선생님이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되어 중학교 3학년 때 ‘피리를 불어라’란 제목의 첫 만화책을 내기도 했다. 그의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홍익대 미술학과에 진학하면서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했는데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생활이 궁핍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간 그는 제대 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복학을 하지 못했다. 당시 만화가협회 회장인 박기정 선생 밑에서 만화를 그리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2년 후 등록금을 마련했지만 학교에서는 복학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받아주지 않았다.

 

1969년 청소년 잡지에 삽화와 만화를 그렸다. 1973년 소년중앙에 ‘폭풍의 그라운드’를 연재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만화에서 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까목이’가 처음 등장한다. 그의 그림 솜씨는 잡지계에서도 소문이 났다. 주문하는 대로 만화와 삽화를 그려오는 그를 두고 “이두호 하나면 잡지 하나는 만들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76년엔 만화가 한희작씨를 만나 그의 화실에서 2년간 미술 공부에만 매진했다. 그가 미술과 만화 사이에서 방황했던 시절이다. 결국 그는 만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1980년 새소년에 ‘벤허’ 연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벤허를 끝으로 그의 만화풍과 내용은 큰 변화를 맞는다. 현대물 대신 사극을 주로 그렸다. 이후 암행허사 허풍대, 객주, 어름산이, 머털도사, 덩더꿍 등을 발표하면서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는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고우영, 방학기씨와 함께 역사만화를 그린 만화가 1세대로 꼽힌다.
1991년부터는 스포츠조선에 이두호 화백의 대표작인 ‘임꺽정’을 연재하면서 성인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 작품은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를 만화로 승화시켰다’란 평가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 전임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때부터 작품활동보다는 후학 양성과 한국만화 발전에 힘썼다.

 

 ▲수상좌대 위의 두 만화가. 아침에 어신을 기다리고있다            ▲ “저거 입질 같은데요.” 탁영호씨의 한 마디에 이두호

                                                                                          화백이 찌를 응시하고 있다.

 

세종대 정년퇴임 후 만화 한국사 작업에 전념

 

작년 8월 세종대에서 정년퇴임했다. 지금은 평소 소망이었던 한국사 만화작업에만 전념해오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10권의 책에 담는 일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펜 대신 붓으로만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2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작업 기간이 너무 모자랍니다.”
오랜만에 물가에 온 때문인지 이두호 화백의 표정이 너무 밝다. 그는 낚시를 세 번 정도 끊어 보려고 했다고 한다. “한 달에 보름씩 낚시를 다니다 보니 그 중독성에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낚시터에 갈 때 아예 이젤과 물감을 들고 가서 그림만 그렸던 적도 있다. 이곳 신포리도 화폭에 담은 낚시터 중 한 곳이다.
“낚시와 만화는 둘 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하나는 펜을 잡고 하나는 낚싯대를 잡았다 뿐이지 둘 다 엉덩이로 하는 일인 건 마찬가지 같아요.”
이튿날 아침, 소동이 벌어졌다. 물고기가 이 화백의 낚싯대를 차고 나가버린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기가 수초를 감아 멀리 가지는 않았다. 배를 타고 지나가던 좌대 관리인이 고기를 꺼내주었다. 녀석의 정체는 누치. 이두호 화백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잡지 말걸. 놓친 고기가 4짜쯤 됐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 편하잖아.”하면서 껄껄 웃었다. “오늘은 거의 꽝이나 다름없으니까 언제 한 번 심수회 회원들과 함께 복수전이라도 할 겸 와야겠습니다.”
심수회(心水會)는 만화가들의 낚시회다. 70년대 말에 이두호, 신문수씨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는데 고인이 된 고우영씨를 비롯해, 박수동, 신문수, 윤승운, 지성훈, 오성섭, 허어, 김원빈, 김삼씨가 회원이다.
“함께 낚시를 간 지 5~6년 된 것 같아요. 심수회 회원들과 올 여름에 한 번 낚시를 가야겠어요. 여름엔 늘 파로호 좌대를 타곤 했는데 한 번 초청하겠습니다.”
이두호 화백의 약속이다.

 

 

 

 


 

낚시터에 오면…

 

“어복 많고 정 많던 고우영 선배 생각 나”

 

만화 한국사 작업에 전념하고 계신데 요즘 하루 일과는?
-나는 새벽에 가장 일이 잘 됩니다. 그래서 늘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그림을 그립니다. 아침에 가볍게 산책을 한 뒤 서울 군자동의 작업실에 가서 일을 합니다. 정년퇴임을 했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세종대학교로 출강을 나가고 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만화를 그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덩더꿍’을 가장 좋아합니다. 조선 세조 때의 악명 높았던 폭정가 홍윤성을 주인공인 독대와 그를 따르는 민초들이 응징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사료에 따르면 온갖 악행을 저지른 홍윤성은 별 탈 없이 살다 죽습니다. 그런 사람은 원래 벌을 받아야 옳죠. 당시 임금인 세조도 못한 일을 제가 대신 한 셈입니다. 만화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만화가로서 가장 많이 벌 때는 언제이고 얼마나 버셨습니까?
-스포츠조선에 임꺽정을 연재했던 90년대 초일 겁니다. 매일 매일 만화를 연재했습니다. 당시엔 신문 말고도 주간 만화잡지 두 곳 정도에 연재를 했었는데 월 천오백만원 정도의 수입이 들어왔습니다.

 

만화가 중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입니까?
-김경언, 고우영 선배가 기억납니다. 김경언, 고우영 선배는 제가 보기엔 타고난 천재 같아요. 김경언 선배는 낚시춘추나 다른 매체를 통해 컷 만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해서 볼 때마다 놀라곤 했어요. 미국으로 건너간 뒤엔 소식이 끊어져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고우영 선배는 그림체와 극 전개 그리고 연출에 있어서 대단한 순발력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따라올 사람이 없어요. 고우영 선배는 심우회 회원이었는데 낚시가면 어복 많고 정 많던 선배 생각이 많이 납니다.

 

‘타짜’처럼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 많은 만화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그린 만화 중 ‘바람소리’가 88년대 말인가 드라마로 제작된 적이 있습니다. 허영만씨는 친한 후배인데 그가 그린 만화 타짜는 원작품도 유명하지만 영화화되어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요즘 같이 만화산업의 불황기엔 허영만씨와 같은 스타가 더 많이 등장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만화작가는 누구입니까?
-‘닌자 사스케’를 그린 시라도 산베이를 좋아합니다. 시라도 산베이는 아톰을 그린 데스카 오사무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입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만화를 보면 ‘아 일본을 그린 만화구나’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일본적입니다. 만화 역시 작가가 살고 있는 사회, 문화, 역사를 담아내는 예술입니다. 자기 나라 것을 가장 잘 그리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 이두호, 탁영호 두 만화가가 배를 타고 수상좌대로 향하고 있다.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