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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 ‘에기박물관’ 탐방기 - 에기(餌木)는 세계 최초의 루어였다?
2009년 01월 778 893

일본 가고시마 ‘에기박물관’ 탐방기

 

에기(餌木)는 세계 최초의 루어였다?

 

 

에도시대 무사들이 오징어낚시 경기를 즐기면서 발전

에기를 루어로 인정한다면 서양의 스푼보다 앞선 것일 수도

 

 

조홍식 理博, 루어낚시100문1000답 저자

 

 

▲ 뮤지엄치란 

 

▲ 뮤지엄치란에 전시된 에기보관상자.

 

성격상 무슨 일을 접할 때 그 원리나 기원을 찾아내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배겨내지 못하는 변태인지라, ‘루어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이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쭉 이어져오고 있었다. 흔히들 ‘과거의 유럽, 한 호수에서 떨어뜨린 스푼을 송어가 물었다. 그것을 보고 루어를 고안해냈다’는 설화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구전된 이야기다보니 호기심에 대한 충분한 답변으로는 부족했다.
몇 년 전인가? 일본의 한 잡지에서 요즘 한창 인기 높은 흰오징어(무늬오징어)낚시용 에기(餌木)의 기원을 찾아간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은 에기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에 있는 한 박물관에 실제 유물이 전시돼 있다는 것이었다. 읽는 자리에서 바로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에기(餌木)는 일본 어부들의 어로도구다. 조사해보니 가고시마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오래된 에기가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과 지금도 현지에서는 어부들이 작은 배를 타고 흰오징어를 낚는 전통이 뿌리내려 있다는 것이었다. 또 이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오카다 키이치(岡田喜一)박사의 ‘薩摩烏賊餌木考’라는 책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미 절판되어 구입할 수는 없었다. 남은 것은 실물을 전시하고 있다는 박물관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박물관은 두 군데,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가고시마현 역사자료센터’와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는 ‘뮤지엄 치란(知覽)’이었다. 속 시원히 가보기로 했다.

 

▲ 에기의 원형이라고 전하는 黑魚型 에기. 

 

초기의 에기는 새우형이 아닌 물고기형

먼저 찾아간 곳은 치란(知覽)이라는 마을에 있는 ‘뮤지엄 치란’인데 이곳은 조금 신경 쓰이는 장소였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말, 오키나와를 함락한 미연합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출격한 자살 특공대의 기지가 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뮤지엄 치란의 바로 옆 건물은 ‘치란특공평화회관’이란 곳인데 입장권이 공동이어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코이즈미 전 수상이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더불어 이곳을 찾아 눈물을 흘렸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평일임에도 관람객이 많았다. 아마도 지방 관광코스의 하나로 되어있는 듯한데, 관람객에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만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내부에는 당시의 전투기 잔해들과 가미카제 특공대로 어이없게 죽은 젊은 조종사들의 사진이 빽빽하다.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다시는 이러지 말자는 교훈을 나타내기보다는 그저 죽은 그들을 신격화하는 오류의 장소였다. 전투기 조종사라고 하면 당시나 현재나 한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다. 그들이 모두 죽자 결국 조종사가 없어 14살의 소년병들을 출격시켰다고 적어놓은 것을 보니 ‘평화’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군국주의시대를 청산치 못한 그들의 한 단면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일본사람들 중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신격화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다. 전부가 하나같지는 않으니 오해는 말아야겠지만 유럽의 예와는 달리 왜 과거를 청산하지 않을까? 국민성? 일당독재가 지속되는 정치현실? 글쎄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가 옆으로 흘러가고 말았는데 뮤지엄 치란에는 실제로 오래된 에기가 전시되고 있었다. ‘總黑燒き黑型餌木’라고 불리는 물고기형의 에기다. 요즘 시판되는 헝겊을 뒤집어쓴 알록달록한 새우형의 에기와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벵에돔을 연상시키는 모습의 목제인데 표면을 그을려 검게 만든 에기였다. 옛날 어느 어부가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에기를 잔뜩 담아 놓은 수납상자도 이채로웠다.
다음으로 찾아간 장소는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가고시마현 역사자료센터 여명관. 이곳에는 민속자료로서 많은 전통 어로도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 에기가 있었다. 물고기형 에기에도 3가지의 조금씩 다른 것이 있어서 좀 더 자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 뮤지엄치란에 전시된 전통 에기들. 

▲ 그을음을 입힌 초기의 에기. 

가고시마 사무라이들의 오징어낚시 내기로 에기 발전

일본의 에기는 남서제도(南西諸島, 일본 남서부 먼 바다의 섬지방)에서 발생해 300여 년 전에 가고시마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에기는 평평하고 등이 높은 물고기 형태로 나타나 새우형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또 검게 그을린 모습에서 반점 형태를 거쳐 그을음을 묻히지 않은 형태가 되고, 다시 에나멜을 칠한 형태를 거쳐 헝겊을 씌운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 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과거의 에기에 그을음을 묻힌 이유는 시각적인 이유 외에도 향목(香木)을 태운 그을음을 이용한 향기로 흰오징어의 입질을 좋게 하는데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에기가 왜 이렇게 다양하게 발전을 거듭했나? 그곳에서 의미 있는 대답을 들었다. 시대는 임진왜란 이후쯤이 될 것 같다. 일본이 여러 개의 나라로 나뉘어 전쟁을 일삼던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끝나자, 전쟁이 직업이던 사무라이, 즉 무사계급들이 할 일이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이들이 낚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지방에서는 지역적 특성상 습지의 수로에서 대낚시가 발달하기 시작해 납자루와 같은 아주 작은 물고기를 섬세하게 낚아내는 방법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어업이 아닌 취미로서 낚시의 발전이었다. 한편 일본의 서쪽 끝인 사쓰마(薩摩, 지금의 가고시마) 지방에서는 귀족인 그들이 직접 흰오징어를 낚기보다는 어부들을 시켜 편을 가르고 오징어낚시 내기를 개최해 일종의 축제로 즐겼다는 것이다. 해답이 나왔다. 어느 쪽이 더 흰오징어를 잘 낚는 에기를 만드는가가 승패를 갈랐을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물고기와 해산물을 근본적으로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라? 그렇다면 일본에는 스포츠 피싱, 토너먼트 피싱이 그때부터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나? 그야 어쨌든, ‘루어’를 정의할 때 어로도구를 포함해 물고기를 낚는 가짜미끼 전부로 볼 것인가, 아니면 취미로서 낚시에 사용하는 가짜미끼에만 국한할 것인가? 전자라면, 실물이 남아있는 세계 최초의 루어는 에기라는 얘기가 된다.
호기심이 풀려서 시원해지기는커녕, ‘에기가 루어일까 아닐까?’ 오히려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겨버리고야 말았다.

 

▲ 가고시마현 역사자료센터의 전통어구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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