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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낚시점주 - 당진낚시할인마트 이홍식 사장 
2009년 07월 6180 916

 

 

당진낚시할인마트 이홍식 사장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이 시한부 선언 같았다”

 

이영규 기자 yklee09@darakwon.co.kr

 

당진낚시할인마트 이홍식(53세) 사장은 당진 토박이다. 스물여덟 살 때 경기도 동두천으로 올라가 8년간 객지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낚시점을 차렸다. 올해로 19년째다. 부인과 아들, 딸, 네 식구가 낚시점을 관리하는 ‘낚시 패밀리’다.

 

▲사진 찍기를 어색해해 촬영 내내 기자를 애먹였던 이홍식 사장. 한 식구 같다는 애완견 ‘엄지’를 안겨주고 나서야 비로써 한 컷 건졌다. 

 

내가 이홍식 사장을 알게 된 데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저 아는 낚시인들과 취재를 다니다 잠시 들러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그가 만든 붕어찌를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이 사장은 “이번에 새로 만든 찌인데 한번 써보라”며 찌 한두 개씩을 주곤 했다. 그가 직접 만들어 팔고 있는 홍작찌다.
혹시 붕어찌 몇 개 얻어 썼다고 우리동네 낚시점주로 이홍식 사장을 소개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오해다. 내가 이홍식 사장을 이달의 인터뷰이로 선정한 것은 나의 궁금증 때문이다. 항상 성실하고 순진하게만 보이는 사람이 자못 거친 이 ‘낚시판’에서 어떻게 사업을 번창시켜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발로 뛰어 모은 조황정보가 돈이 되던 시절

 

1956년생인 이홍식 사장은 신평에서 합덕 나가는 길가인 우강면 세류리가 고향이다. 낚시는 10살 때부터 재미를 붙였다. 당시 당진에는 낚시점이 없었고 체육사에서 바늘과 봉돌, 찌 정도를 팔곤 했다. 그러나 어린 이홍식의 눈에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었던지 그는 합덕까지 걸어가 필요한 것들을 사왔다. 당시 합덕은 당진보다 더 큰 도시였는데 5일장이 설 때마다 낚시용품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합덕에서 연호낚시점을 운영하고 있는 배건수씨다.
40년 전의 당진은 낚시의 천국이었다. 오봉지, 초대리지 같은 곳은 이홍식씨의 어릴 적 주 무대였다. 읍내 수로만 가도 붕어 아가미에 새끼줄을 꿰어 줄줄이 매달고 다녔다.  
집에서 부모님 농사 일을 돕던 이홍식 사장은 26살에 결혼을 했고 2년 후 당진을 떠나 먼 동두천까지 올라가게 된다.
“28살에 아이들을 낳았는데 농사만 갖고는 생활이 어렵더라구요. 또 이 얘기는 안 적었으면 좋겠는데,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과 손장난을 좀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많이 쪼들렸죠. 그때만 해도 시골에 살면서 가볍게 노름 한번 안해 본 남자는 별루 없었지요. 그런데 좀 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그때는 고향과 잠시 멀어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동두천에서 건설업을 하던 선배가 일자리를 알아봐줬죠.”
동두천에 새 둥지를 튼 이홍식 사장은 그곳에서 8년간 일하며 착실히 돈을 모았다. 중간에 회사가 잘못돼 어음이 부도나면서 번 돈을 일부 까먹기도 했지만 작은 가게 하나 차릴 만큼은 모았다. 그 돈을 들고 당진에 내려왔다. 그가 처음 벌인 사업은 식당업. 부대찌개 전문점이었다. 
“동두천에 가서 부대찌개라는 걸 처음 먹어봤는데 참 독특하고 맛있더군요. 그때는 미군부대 뒷구멍으로 나온 미제 햄과 소시지를 재료로 썼기 때문에 국산 재료를 쓰는 요즘과는 맛이 달랐어요. 또 당진엔 그런 음식이 없었기 때문에 금방 손님을 끌 것 같더군요.”


 

▲낚시패밀리’ 이홍식 사장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부인 김연순씨, 이홍식 사장, 아들 회수씨와 딸 회진씨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독특한 메뉴는 당진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았고 단골이 늘어만 갔다. 그는 1년 만에 식당을 넓혀 바로 옆에 낚시점을 오픈했다. 그게 바로 2004년까지 ‘동두천낚시’라는 간판을 달고 운영했던 낚시점이다. 개업 후 10년간 당진의 낚시 경기가 최고일 때여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이후 동두천낚시는 2004년에 서진낚시 체인점을 잠시 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당진읍  길가에 당진낚시할인마트라는 상호를 달고 영업 중이다. 매장 규모도 80평으로 넓혔다).
“낚시점을 처음 오픈했을 땐 1주일에 5일은 낚시터에 나가서 살았죠. 장사는 집사람이 했지만 손님을 불러 모으는 건 제가 수집한 조황 정보였어요. 태안 원북 끄트머리부터 안면도 고남수로까지 들어갔으니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겠어요. 심지어 보트 폴대가 몇 개까지 박히는지도 조사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손님들을 호객하지만 그때는 직접 발로 뛴 조황 정보가 돈이 되던 때였죠.”
당시 당진은 서해안 붕어낚시 출조의 나들목이었다. 아산호방조제와 삽교호방조제를 건너 온 낚시인들은 일단 당진을 거쳐야만 안면도와 서산, 태안으로 갈수 있었고, 대부분 당진의 낚시점에서 조황을 묻고 미끼와 용품을 사갔다.

 

“낚시점만으로는 이제 살기 어려워요”

 

식당과 낚시점을 하면서 돈이 모이자 이사장은 욕심을 내 사업을 확장했다. 우선 식당을 정리했다. 식당은 돈은 되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서 다른 사업을 해볼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2000년엔 낚시점을 병행하면서 몇 번 활어장사에 손을 댔다가 실패했다. 붕어를 그물로 잡거나 양식해 낚시터에 공급하려던 계획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고생은 되지만 마진이 크다’는 얘기에 주문진에서 산오징어를 떼어다가 시내 음식점에 공급하는 일도 해봤지만 역시 경험 부족으로 그만뒀다.
여기에 최고의 난관이 닥쳤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산·태안으로 가는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전 국민의 환호 속에 개통한 서해안고속도로의 등장이 우리에겐 시한부 인생 선고나 마찬가지였죠.”
낚시점 매출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호 대산수로권을 찾던 낚시인들은 송악IC로 빠졌고, 풍전지와 수룡지를 찾는 낚시인들은 서산IC로 빠졌다, 산수지, 고북지, 대사리지를 찾는 낚시인들은 해미IC로  빠져버렸다. 졸지에 당진읍내 낚시점들은 ‘동네장사’로 전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당진 낚시점들을 먹여살려주던 대호의 수질마저 급속히 나빠지고 육식어인 배스가 창궐하며 붕어자원이 줄어들었다. 
이 사장은 갈등했다. 이참에 낚시점을 접고 다른 사업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매장을 키워 정면 돌파를 시도해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18년간 장사했던 ‘당진 낚시점거리’를 벗어나 지금의 시곡리 외곽도로변에 대형 매장을 오픈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존의 규모로는 동네 장사밖엔 안 되겠더군요. 가격을 후려쳐대는 인터넷 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구색을 갖춘 초대형 매장이 아니면 손님들 관심을 끌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모험을 하기로 했지요.”
당진IC에서 읍내로 들어오는 외곽도로 초입에 있는 그의 대형 매장은 안쪽으로 쏙 들어가 있어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을 연지 1년도 안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당진과 서산의 소규모 낚시점에서는 구하기 힘든 다양한 구색 덕분이었다.

-지금껏 낚시점을 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소신이나 신조가 있다면?
“사람간의 신뢰죠. 낚시가게를 하면서 선배에게 빚보증을 섰다가 5천만원을 날린 적도 있어요. 지금은 연락도 안 되지만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거래에 있어 기본적인 신뢰만 지켜진다면 낚시장사도 매우 재미있는 사업이에요. 다행히 그동안 나를 믿고 밀어준 분들이 많아서 어려운 상황을 넘길 수 있었죠.”  

-매장에 물건은 많은데 몇몇 유명 메이커의 제품은 보이지 않는다.
“유명 메이커라도 덤핑을 일삼는 업체의 물건은 들여놓지 않습니다. 힘없는 소매점을 어렵게 만드는 업체하고는 일체 거래를 트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현찰이 너무 급해 ‘기존 공급가의 절반에 찌를 넘겨줄 테니 소매점에 공급할 때는 원래 가격을 지켜 달라’고 약속한 거래가 있었는데 결국 도매상의 장난으로 그 피해를 내가 다 본 적 있습니다. 그 이후로 덤핑이야말로 독약이구나 싶었어요.”

 

-금전적인 어려움 외에 가장 힘들었던 경우는 언제인가?
“역시 사람 상대하는 일이죠. 지역 장사를 하다 보니 낚시회도 만들어보곤 했는데 회원과 점주가 서로를 바라보는 입장이 많이 다르다보니 갈등만 커지더라구요. 좋은 사람들과 얼굴 붉히는 게 싫어 낚시회를 없앴고 지금도 미련은 없어요. 다만 내가 너무 성격이 직선적이다보니 한발 물러섰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상황이 종종 떠오르곤 해요.”      

-이제 막 낚시점을 시작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길목 장사라면 몰라도 예전처럼 일반 매장을 시내에 차리는 것은 말리고 싶어요. 낚시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마트 형태의 대형매장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비록 나는 몇 차례나 실패했지만 정 낚시가 좋아 낚시점을 차린다면 재투자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업 아이템 하나 정도를 생각해둘 것을 권합니다.”        

당진낚시할인마트는 가족 경영체제다. 부인 김연순씨는 물론 아들 회수씨(29)와 시집간 딸 회진씨(28)까지 모두 가게로 나와 일을 본다. 아들 회수씨는 중층낚시에 빠졌다가 지금은 배스낚시에도 심취해 배스 관련 품목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도 미스로 보이는 아기엄마 회진씨는 남자 손님들의 짓궂은 농담도 유쾌하게 받아 넘길 정도로 능구렁이가 다 됐다. 
언제까지 낚시점을 운영할 생각이냐고 묻자 “2~3년 뒤엔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내와 낚시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하는 사업에 일절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와준 부인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찌 작업실에서 칠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이홍식 사장. 홍작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수제찌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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