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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의인 손철 박사 타계
2009년 09월 2398 945

낚시와 음악과 자유를 노래한 로맨티스트

 

광주의 의인 손철 박사 타계

 


 

 

 

우리나라 소아과 전문의 2호

 

우리나라 소아(小兒)의학계의 원로이자, 낚시계의 원로인 빙하(氷下) 손철(孫澈) 박사가 지난 7월 27일(월) 오전 11시 40분,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163-8(성하아파트 406호)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20년 1월 9일(음력) 황해도 서흥(瑞興)에서 손영(孫英) 판사의 차남으로 출생한 그는 선친이 법관으로 재직하던 전남 장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흥소학교 시절부터 붕어낚시를 시작한 이래, 한평생 조도(釣道)와 의도(醫道)에서 희로애락을 찾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겼다. 서울제1고보(京畿中)를 거쳐 중국 청도의전(靑島醫專)을 졸업한 이후 의사가 되었다. 일제 때 일본인들에게 머리 숙이며 살기 싫어서였다. 해방 후 1946년 11월, 전남의대 전신인 광주의대 소아과 강사로 재직한 이래, 1985년 2월 전남대 의대 교수로 정년퇴임하기까지, 6·25 군의관 시절과 영국 유학 및 파월(派越) 기간을 제외한 모든 세월을 전남대병원 소아과 의사로 봉직했다.
우리나라 소아과 전문의 2호로 꼽히는 손박사는 60~70년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한 유행성 뇌염과 파상풍 퇴치에 크게 공헌했다. 세계적으로 뇌염 환자를 가장 많이 돌본 의사로 공인할 정도의 업적을 인정받아 후일(1985년 2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상했지만, 뇌염이 창궐하던 당시엔 어이없는 압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70년대 중반의 군사정권 시절, ‘뇌염 소문이 나면 외국 무역이 안 된다’고 하여 뇌염 발발 함구령을 강요받은 것이다. 그러나 고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못 사는 나라의 아이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뇌염을 널리 알리고 합심하여 막아야 한다’고 버텼다. 훗날 손박사는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나는 그것이 천명(天命)이라고 믿었다. 나의 정의감이라기보다는 휴머니즘일 뿐이었다.”
이렇듯 평생을 광주에 살며 광주의 양심을 대변한 고인은 광주의 의인(醫人)의자 의인(義人)이었다.

 

유어선매… 곡간진천 윤명창공

 

“인생을 돌이켜 보면 ‘방황’이란 생각이 들어요. 낚시란 것도 따지고 보면 방황입니다. 어신을 좇아 자연을 좇아 새소리·물소리를 좇아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는 방황인 셈이지요. 한평생 낚시를 즐긴 뒤 남는 게 무엇입니까? 재물이 축적됩니까, 명성을 쌓게 됩니까? … 낚시가 좋은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와 평등입니다. 낚시터에서만큼은 박사도 의사도 없고, 상관도 부하도 없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도 없습니다. 그저 낚시꾼일 뿐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낚시관을 이렇게 밝힌 고인은 1970년대 초반, 낚시春秋 창간 시절부터 필진으로 참여해 우리나라 낚시계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일찍이 광주 중앙낚시회 회장(1968년)을 맡아 지역 낚시문화 발전의 중심에 있었고, 이후 전국낚시문필가협회(APC)·한국낚시진흥회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각지의 원로 낚시인들과 교류했다. 고인의 연세 만 80세 되던 해인 2000년 9월 2일, 장흥 지정지에서 한형주 박사와 최운권·송소석·이일섭씨 등 경향각지의 낚시벗들을 불러 자신의 팔순잔치를 낚시로 대신한 일은 고인의 인간적 체취를 느끼게 한 일화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남녀노소 폭넓은 교류와 뛰어난 유머, 때로는 매서운 독설가이기도 했던 고인이 생전에 즐겨 고백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유어선매(遊魚先賣). 가난한 농부가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판다는 뜻의 입도선매(立稻先賣)에서 차용한 말로, 잡힐지 안 잡힐지도 모르는 붕어를 후원자(고인의 제자 또는 개업의)들에게 미리 팔아치운 자금으로 출조비를 마련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음악 애호가, 문필가로 폭넓은 활동을 한 고인이 낚시의 오르가슴을 즐겨 표현한 대목으로 ‘곡간진천 윤명창공(曲竿震天 綸鳴蒼空)’이란 구절이 있다. ‘휘어진 낚싯대가 하늘을 진동시키고 팽팽한 낚싯줄이 창공에서 운다’는 뜻이다. 이렇듯 호쾌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한평생 낚시와 음악과 인생을 노래한 고인은 90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며 마지막 그의 문집 「哲3」에다 이런 글귀를 남겼다.
“삶과 죽음이란 이벤트가 아니라 시리즈일 뿐이다. - My philosophy.” <國>

 

 

 

 


 

 

빙하(氷下) 손철(孫澈) 박사 연보

 

1920. 01. 09(陰). 황해도 서흥(瑞興)에서 손영(孫英) 판사의 차남으로 출생
● 1934. 03. 전남 장흥에서 어린 시절 보내며 장흥소학교 졸업
● 1943. 11. 서울제1고보(京畿中) 졸업(39년 3월) 후
중국 청도의전(靑島醫專) 졸업
● 1945. 08. 한국의료단장 광복군(光復軍) 제3지대 청도분견대 군의처장 지냄
● 1946. 11. 46년 2월 귀국 후
전남대 전신인 광주의대(光州醫大) 강사(소아과)로 재직
● 1956. 09. 육이오 전쟁 중 군의관으로 입대,
56년 제대 후 전남대 의대 강사로 재직
● 1957. 09. 전남대 의대 조교수, 동(同) 부속병원 소아과장(小兒科長)
● 1968. 05. 런던大 유학(64.10~65.09) 후 광주중앙낚시회 회장 지냄
● 1971. 10 대한소아과 학회장(11대) 취임
● 1985. 02. 전남의대 간호전문대학장(77.03~78.02),
국민훈장목련장 수상(85.02.15) 후 전남의대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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