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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I 평산의 釣行隨想-자연은 정복征服 대상이 아니다
2016년 04월 1697 9533

에세이 I  평산의 釣行隨想

 

 

자연은 정복征服 대상이 아니다

 

송귀섭

 

 

광풍이 몰아친다. 작대기 같은 빗살이 파라솔을 두드린다. 독한 마음을 먹는다. ‘그래. 이겨내자.’ 그러고는 비바람 속으로 채비를 날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성난 물결 위에 찌를 세워놓고는 찢어질듯 펄럭이는 파라솔을 붙잡고 버틴다. ‘아무리 혹독하게 해 봐라. 그런다고 내가 낚시를 포기하나.’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남보다 더 용기 있는 행동이고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생각했었다. 젊음의 호기로 성난 자연을 이겨내어 정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정복(征服)의 대상이 아니고 온힘을 다하여 극복(克服)은 하되 결국은 스스로가 순응해야 하는 어울림의 대상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낚시터에서 마음을 다스려 즐기는 것은 요수조정(樂水釣情)이다. 즉 물과 낚시 자체를 좋아하여 정감(情感)으로 즐겨야 한다. 그러니 자연에 도전을 하되 꼭 정복하려고 덤비지는 말아야 한다. 결국은 정복할 수도 없거니와 잠시 정복하는 듯 해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 앞에서 만용을 부리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
정복(征服)은 상대를 완전히 지배하여 내 의지대로 통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극복(克服)은 현상을 내 의지로 이겨내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산악인이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거나 낚시인이 악천후 속에서 월척 붕어를 만났을 때 오는 희열감은 자연을 정복하였으므로 맛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극복하면서 이루어낸 성과에서 오는 희열(喜悅)인 것이다.
비단 낚시뿐이랴. 꼭 상대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금해야 하는 것은 사업도, 학문도, 정치도, 인간관계도 같다. 필자 세대가 학교에 다닐 때는 ‘OO과목 완전정복’이라는 참고서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요즘도 서점에 가서 보면 ‘OO정복’이라는 책들이 많이 보인다. 공부하는 것마저도 ‘정복’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당연한 것처럼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사이에 어떤 난제를 극복하는 것을 모두 ‘정복한다’는 극단적인 사고로 고착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문제를 정복하려 하지 않고 친숙하게 가까이 하면서 토론과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순리대로 깨우쳐 가는 공부를 중요시 한다. 그러니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제반 분야에 합리성이 담기는 것이고, 이러한 문화가 상대 진영에 대한 정복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대공약수를 도출해 내는 타협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여유와 타협의 문화를 스스로가 길러내는 가장 바람직한 활동이 때로는 자연을 극복하고, 때로는 자연과 타협하여 순응하며 즐기는 요수조정(樂水釣情)의 낚시다. 낚시를 즐길 때는 정복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시련을 극복하면서 즐겨야 한다. 만약 자연현상을 탓하여 화를 내거나 억지로 이기려고 몸부림치면 낚시의 즐거움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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