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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리아 한국총판 성광물산 김선관 사장
2010년 02월 4225 968

인터뷰

 

야마리아 한국총판 성광물산  김선관 사장 

 


 

 

최근 에깅 붐과 볼락루어낚시 열풍에 힘입어 가장 많은 매출 신장을 이룩한 회사는 어디일까?
아마도 일본 야마시타·마리아(현재 야마리아로 통합) 루어를 수입하는 성광물산이 아닐까? 어구 수입상으로 잔뼈가
굵었고 바다루어낚시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에 앞장선 성광물산 김선관 사장을
부산 연제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지나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제품 팔려면 그 제품의 위력과 사용법을 먼저 알려야”

 

 ▲야마리아 한국총판을 운영하고 있는 성광물산 김선관 사장. 지속적인 현장 마케팅으로 남해안 일대에 바다낚시 붐을 일으킨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김선관(金善寬) 사장은 1953년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김 사장의 부친은 어선 세 척을 가진 선주였다.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김선관씨는 중학교까지 울릉도에서 마친 뒤 부산 경남상고로 진학했다. 부산 동아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8년 금화산업(현재 폐업)이라는 조구업체에 입사한다. 이때부터 낚시와 인연을 맺었다. 
금화산업은 바늘·도래·바늘채비·가방·구명조끼 등을 생산해 외국에 수출했다. 김선관씨는 수출 업무를 맡았다. “주문서 작성부터 제품 발송까지 수출에 관련된 일은 모두 제가 맡았어요. 덕분에 단시간에 수출에 관한 모든 업무를 배웠습니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도 그때 쌓은 것이다.
“당시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 일본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일본 바이어와 대화할 때도 서로 영어를 썼죠. 그러다보니 갑갑하고 업무에 진전도 없어서 일본어 학원을 다녔고 출퇴근하면서 열심히 일본어 책을 읽었습니다. 6개월 정도 하니 웬만한 독해와 대화는 가능하더군요.”
81년에 다른 무역회사로 이직했다. 그러나 옮긴 회사도 별다른 비전이 보이지 않자 김선관 사장은 수익을 낼 물건들을 직접 수출입해야겠다고 판단, 84년에 성광물산을 설립한다. 

 

어구수입상으로 시작 “낚시는 생각도 못했다”

 

성광물산은 낚시용품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어업용 부표, 점멸등, 로프, 도래, 쥐치바늘 등 어구들을 일본 오사카와 시모노세키에 수출했다. 하지만 낚시와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 둔 뒤에도 낚시업계 바이어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낚시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모두 저와 직접 거래하는 사이가 되었고 자연스레 거래처를 늘려갈 수 있었죠.”
그런 과정에서 일본 야마이사의 도히 사장을 만나게 된다. 야마이는 우리나라에 스테키 바늘로 잘 알려져 있다. 야마이사와 거래를 하면서 도히 사장의 소개로 지금의 주 거래처인 야마시타사의 야마시타(山下) 사장을 만났다.
“그 당시엔 야마시타 사장과 개인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소개로 알게 된 사람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가 이런 건데, 거래처를 뚫을 욕심으로 성급히 접근하면 소개해준 사람과 소개받은 사람 모두 잃게 되죠. 야마시타는 2대째 어구를 만드는 업체였습니다. 야마시타 사장은 낚시를 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낚시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김선관 사장이 요코하마에 있는 야마시타사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다. 우연히 다른 거래 때문에 요코하마를 방문했는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야마시타 사장 밖에 없어서 전화를 했고 그때 야마시타 회사를 처음 찾게 된 것이다.
“작은 공장을 가진 어구 생산업체였습니다. 지금처럼 잘 만든 루어는 없었고 어구용 에기와 꼴뚜기루어 그리고 몇 가지 바늘채비가 있었습니다.”
김 사장이 제품에 관심을 보이자 야마시타 사장은 한국에서 팔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그렇게 야마시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대량으로 수입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주문받아 수입하는 방식이었다. 그나마 낚시점에 파는 게 아니라 제주도나 부산의 어구점에 팔아보려 했는데 인기가 없었다.   

 

“품질보다 마케팅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 깨달아”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90년대 말, 일본에선 바다루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에기가 어구에서 루어로 재탄생했고 수많은 종류의 바다루어가 쏟아져 나왔다. 야마시타는 마리아라는 자체 루어브랜드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김선관 사장에게도 판매를 권유했다.
김 사장은 일본의 바다루어낚시 열풍을 보고 우리나라도 곧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했다. 먼저 에기와 농어용 미노우 등을 들여왔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제주도를 타깃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으나 제주도엔 이미 일본 요즈리사의 제품이 독점하다시피 깔려 있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격이나 품질이 별 차이가 없는데도 새로운 제품에 대한 거부반응은 상상 이상이었죠. 낚시점주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해도 사양하기 일쑤고, 안 사도 좋으니 물건을 걸어만 달라고 해도 바구니에 쏟아놓고 방치해 두더군요.”
혹시나 해서 부산과 서해로 문을 두드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루어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었기에 김 사장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기회는 2003년에 찾아왔다. 야마시타사가 신형 에기(현재 모습을 갖춘 예쁘고 날렵한 에기. 이전엔 크고 투박했다)를 출시하면서 일본의 필드스탭을 한국에 파견해 홍보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신형 에기를 쓰면 낮에도 무늬오징어를 낚을 수 있다는 말에 김 사장은 고무됐다.
2000년대 초까지 제주낚시인들은 무늬오징어는 밤에만 낚이는 걸로 알고 있었다. 야마시타 필드스탭 가와하라씨, 탐라무역 이성철 부장, 제주 솔트하우스의 이승호씨와 함께 박수해안으로 나가 한낮에 에깅을 시도했는데 대성공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광경을 본 낚시인들은 곧장 낚시점으로 달려가 야마시타 에기를 찾기 시작했다. 농어 루어 시연도 함께 했다. 그 후 마리아의 ‘블루스코드’는 제주의 루어낚시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 되었다.
“직접 현장에서 하는 홍보는 엄청난 효과를 냈습니다. 삽시간에 제주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죠. 그때 느낀 것이 마케팅의 위력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야 한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죠.”

 

왼쪽) 지난 2006년 12월, 루어 홍보를 위해 제주도를 방문한 김선관 사장이 직접 큰 농어를 낚아 냈다. 그는 “바다루어의 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야 하며 그것을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른쪽) 야마리아의 신제품 나오리 스테를 보여주는 김선관 사장. 그는 항상 새로운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다.

                                                            

에기 대신 볼락루어로 부산·경남 강타

 

제주도 공략에 성공한 김 사장은 육지로 눈을 돌렸다. 제주도가 루어낚시의 천국이긴 하지만 큰 시장은 아니었다. 김 사장은 부산·경남을 공략하기 위해 에기 외에 볼락루어를 들여왔다.
“볼락루어도 이미 에코기어 제품이 국내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제품도 다양했고 일본에선 우수한 제품으로 정평이 나있었죠. 하지만 국내에선 전혀 붐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것으로 볼락을 낚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다시 현장에서 볼락루어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부산·경남 낚시인들의 루어에 대한 불신은 대단했다. “생미끼도 안 무는 판에 루어를 물 턱 있냐”는 일갈에 주눅 들었다. 하지만 그의 끊임없는 홍보는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볼락루어낚시의 위력을 알고 전문점을 차린 마산 밀물과썰물의 송종찬·송행찬씨가 대단한 활약을 해준 덕에 삽시간에 붐이 일었다. 볼락루어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에깅이 자리 잡기도 전에 볼락루어낚시가 먼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말 그대로 붐이었습니다. 없어서 못 팔았죠. 부산 경남에서 붐을 일으키니 남해 여수 목포권까지 서서히 확산되더군요.”
볼락루어로 루어낚시의 재미를 느낀 부산·경남 낚시인들은 이듬해 여름엔 스스럼없이 에깅대를 손에 쥐었다. 일부 낚시인들은 농어와 연안 지깅에도 관심을 보였다. 바야흐로 바다루어낚시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은 호래기용 에기다. 2005년에 거제 도장포에서 장난삼아 던진 소형 에기에 호래기가 낚이자 김선관 사장은 지체 없이 호래기용 에기도 수입해 팔았다. 2008년에 선보인 ‘옵빠이 스테’는 호래기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이런 결과는 김 사장이 현장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 나는 대로 낚시터를 찾은 덕에 낚시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했다. 물론 수입한 제품이 모두 잘 팔린 것은 아니다. 쥐치낚시 용품은 실패했다. 쥐치낚시연구회가 있는 일본과 아직 관심이 없는 한국의 차이다. 
성광물산은 바다루어로 얼마나 벌고 있을까? 김선관 사장은 “현재 연 매출은 10억 남짓하다. 수입업체의 특성상 마진이 적으므로 순수익은 1억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일본의 대형 매장 하나의 매출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다.
“우리나라의 바다루어낚시는 이제 시작입니다. 제주가 도화선이 되어 그 열기가 부산·경남으로 올라붙은 지 2~3년에 지나지 않죠. 서해나 동해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합니다. 새로운 낚시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 새로운 상품을 파는 첩경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야마시타가 루어낚시에 박차를 가할 때의 기업마인드는 ‘새로운 낚시를 제안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매출이 많이 생기는 제품으로 힘을 쏟는 분위기입니다. 전반적으로 경제 사정이 안 좋기는 하지만 그 초심처럼 끊임없이 낚시인들에게 새로운 낚시를 제안한다면 바다루어낚시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야마리아 카페 cafe.daum.net/skfishing21   성광물산 010-9319-8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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