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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광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 고함
2016년 03월 2639 9834

 

낚시광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 고함

 

 

 

 

여대를 나왔기에 나는 여자 친구들이 유독 많다. 지금은 열에 아홉은 시집을 갔기에 평상시에 만나기 어려웠다가 연말연시, 이때만 되면 시간을 쪼개 약속을 잡는다. 시집생활과 육아에 찌든 아줌마들 사이에서 아직은 빛나는 아가씨이기에 어리고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내가 제일 욕심쟁이일 듯. 하지만, 약속 시간 전, 옷장을 둘러보다가 ‘오늘의 패셔니스타’에 대한 욕심은 이내 좌절되고 말았다. 옷장 가득 메운 아웃도어 외투, 투박하기 그지없는 나의 등산화와 방한부츠들. 그야말로 낚시인의 옷장이다. 쇼핑을 밥 먹듯이 하는 나인데 그동안 무엇을 산 건가. 그리고 아나운서 시절 입었던 그 많던 드레스들은 대체 어디 처박아뒀단 말인가. 하지만, 등산바지에 두꺼운 외투, 털모자를 쓴 지금의 내 모습이 어쩜 이리 자연스럽고 더 예뻐 보이는지,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여기에 낚싯대만 들면, 완벽한데 말이지.’
강남 한복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출몰한 여자 낚시인에게 친구들은 다행히 낚시스타 왔다며 환호를 해주었다. 대학생처럼 활기 있어 보인다, 낚시방송 재밌더라, 즐겁게 사는구나, 자유롭게 강으로 바다로 낚시 다니는 아가씨는 아줌마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야 만다. 친구들은 내가 낚시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나도 몰랐다. 사실 내가 낚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10년 가까이 고된 직장생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아온 나는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그 못된 병은 삶의 의욕마저 갉아먹더니 결국 안정된 직업과 직장이라는 타이틀까지 내려놓게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치유의 시간을 선택하게 되었다.
삶의 모든 순간이 무기력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라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기가 두려웠으니까. 그때 기댄 곳이 바로 ‘자연’이었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나아가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새까맣게 타버린 내 안에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핑 매니아인 남자친구가 서핑 휴식시간에 할 바다낚시 장비를 산다며 낚시가게에 날 데려갔다.
“너도 해볼래?”
절레절레. 아저씨들의 전유물을 나에게 왜 권하냔 말이다.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서 침이 튀도록 무용담을 펼치는 낚시가게에 서있는 것조차 뻘줌한 나인데(지금은 내 집 드나들 듯한다). 그런데, 방파제에서 새끼 우럭을 잡고 환호하는 그를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징그러운 지렁이도 아니고(지금은 맨손으로도 만진다), 가짜 미끼인 것도 은근 마음에 들었다.
‘후두두두 …’
그렇게 작은 새끼 우럭이 나의 첫 조과였다. 작지만 손바닥 전체로 느껴지는 파닥거림이 좋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 작은 몸집의 생동감이 내 맘속을 크게 두들겼다. 이후 나의 야외활동은 더욱 잦아졌다. 물가의 상쾌한 공기에 빠져들었고 시시때때로 찾아와 괴롭히던 만성질환, 편두통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불쑥 찾아올 생동감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설렘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자연이 주는 행복, 힐링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러다 굳이 물때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민물 루어낚시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서울에서 멀지 않은 대호만과 인근 저수지로 드라이브 겸 낚시를 다녔다. 그곳에서 내 인생의 반전을 가져올 배스란 놈을 만나고 말았다. 4짜급 배스를 내 생애 첫 배스로 낚아버린 것이다.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바늘털이를 하는 몸집 좋은 그 녀석을 보고 기겁해 저수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던 모습, 손에 그만 힘이 풀려 낚싯대를 물속으로 빠뜨리려고 했던 나. 겁은 났지만 기뻤다. 불현듯 희망이 솟구쳤다. 자연은 이처럼 고요하지만 힘차게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나는 왜 주저앉아 숨도 쉬지 않으려 했던가. 무엇이든 잘 이겨내는 나였는데 당차게 해내면 되지. 내 삶이 다시 무한긍정 모드로 바뀐 순간이다. 낚시는 그렇게 고맙게도, 자연과 함께 나를 치유했다. 낚아 올린 배스만큼 차곡차곡 쌓인 생동의 에너지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 도전할 힘을 줬으며, 마음을 어루만져 지금의 나로 새롭게 일어서게 만들었다.

 

   초겨울 비 오는 날, 영산강까지 달려가 낚은 런커 배스

 

 

 

친구들이 물었다. 낚시는 지루하지 않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연애할 때 남자친구를 기다리던 그 시간이 지루했냐고. 입질은 문득 찾아오는 반가운 애인 같은 것이라는 아름다운 비유와 함께. 그리고 내가 하는 낚시는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대상어를 찾아다니며 사냥하는 낚시라 지루할 틈이 없다며 한 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도 선뜻 나서지지 않는 표정들에 약간 머쓱해지고 주눅이 들었지만, 이해가 간다. 나 또한 그랬듯, 여자들은 낚시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많으니까. 주말과부, 비싼 장비, 고급 스킬, 지루함. 남편이 골프나 등산이란 취미를 갖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낚시가 취미라면 왜 혀부터 내두르게 되는지 진심 안타깝다.
나는 이 편견을 깨고 싶다. 낚시도 취미이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데 말이다. 나는 여자이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손맛을 보러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실력도 없고 고가의 고급스런 장비도 몇 없다. 특별한 재능이라면,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촉이랄까. 어쩌면 낚시는 여성들이 더 우월하고 여성에게 더 적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즐겁게 낚시하는 모습으로 편견의 벽이 조금이나마 낮아진다면 여성이 즐길 수 있는 취미 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고.
‘낚시 좋아하는 남편을 둔 친구들아, 이젠 남편 혼자 보내지 말고 너도 가서 같이 해보렴.’
하루 쉬었더니 손이 근질근질해 자다가 이불을 박차고 새벽에 벌떡 일어났다. 옷장에서 방한 내의와 오리털 파카, 털모자를 꺼내 두르고 채비 가방과 낚싯대를 챙겨 나왔다. 목적지는 서울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반 걸리는 충남 아산의 무한천. 솔로 여행의 동반자, 내비게이션 언니의 안내를 받으며 엑셀을 밟는다. 지난 2년간 전국을 쑤시고 다녀서인지 이제는 낚시하다가 생기는 웬만한 난관들은 스스로 극복 가능해질 만큼 지식도 늘고 겁도 없어졌다.
무한천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부터 루어 조사님들이 많이 와계셨다. 역시 모두 시커먼 남정네들뿐. 그 틈새로 등장하는 홍일점은 언제나 기분이 으쓱해진다. 약간의 공주병은 여성 모두의 지병이니 이해해주시길. 입질을 기다리는 동안 올 한해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배스와 힘겨루기하며 낚아내는 동안은 힘찬 에너지를 뿜어본다. 정신없이 라인을 감으며 연신 울려대는 드랙 소리와 배스의 생동감 넘치는 바늘털이 소리에 옆 조사님이 다가와 패턴과 채비를 묻는다. 기분이 더욱 으쓱해진다. 올 한해는 어복이 가득할 것만 같다. 낚시인에게 어복만큼 큰 기쁨은 없으니 단언컨대 나의 2016년은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Writer's Profile

 

 

최슬기. CTS기독교TV 앵커로 활동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서 바리스타, 카페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강서낚시할인마트 강서루어피싱팀 회원으로서 N·S 필드스탭과 피싱TV(FSTV) ‘두 여자의 손맛’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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